크킹에 나오는 카톨릭 이단들에 대해 검색해봤습니다.
프라티첼리
이탈리아에서 <형제>를 나타내는 말에 유래하고, 번영한 도시에 유입한 많은 탁발승을 경멸적으로 나타내는 말로서 사용되는데, 특히 예수와 사도의 청빈을 강조해서 프란치스코수도회에서 이반하고, 온건파를 승인한 교황과도 대립해서 이단시된 종파를 가리킨다. 종파로서의 통일, 조직, 교의는
불명. 지도자는 안젤로 클라레노가 알려져 있다. 1317~23년의 요한 22세의 대교서에 의거해서 두 개의 교회론(육적
부유교회=로마교회, 영적 빈곤교회=이 파의 교회), 오류교회ㆍ성직자의 영력과 재판권의 부정, 이 파에 의한 그리스도의 복음의 완성
등을 주장하고, 이것이 기성교회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져 이단이 되었다. 나폴리, 시칠리아, 움브리아, 마르케의 여러
지방에 확산되고, 토스카나에서는 15세기 말까지 하층민 사이에서 존속했다.
발도파
발데스 복음주의 또는 왈도파 등으로도 불린다. 12세기 프랑스에서 발생하였다. 재산가였던 발데스(Peter Waldo)는 하느님을 위해서 자신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1176년 재산을 모두 빈민들에게 나누어준 뒤, 그리스도의 사도나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처럼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설교에 전념하였다. 설교에 감동한 많은 사람들은 2명씩 조를 짜 리옹의 빈자라 이름짓고 각지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로마교회에서는 복음이 잘못 전해질까 우려하여 설교를 금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 활동을 계속하자 교황 루키우스 3세는 1184년 칙서《Ad Abolendam》을 발표해 발도파를 이단으로 단죄하였으나 그들은 로마교회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었다.
발도파의 교리에는 로마교회와 다른 점이 많았다. 연옥을 인정하지 않았고 죽은 자를 위한 연미사, 속죄를 위한 보속 등에 반대하였고, 서약이나 유혈을 거부하였다. 또 단순한 성서주의, 엄격한 도덕,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리옹 부근에서 시작해 점차 프랑스 전역으로 세력을 넓혀나가다가 이탈리아·에스파냐·독일·헝가리·폴란드 등 인근 국가로 전파되었다. 1217년 발데스가 세상을 떠난 후 박해가 더욱 심해졌고 종교재판 등 엄격한 조치로 말미암아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 결국 16세기 종교개혁으로 프로테스탄트에 흡수되었으나 그 일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국경지대와 알프스의 보도와 계곡에 잔존하였다.
1848년 발도파는 완전한 시민권을 되찾았고 1855년 토리노에 독자적인 신학교를 세웠으며, 대부분이 우루과이로 이민을 떠났다가 다시 미국으로 옮아가, 몬태나주에 발도파 장로교회를 세웠다. 나머지는 이탈리아와 남북아메리카에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발도파 [Waldenses, ─派] (두산백과)
순결파(카타리파)
중세 유럽에서 한때 유력하였던 그리스도교 이단의 일파. 카타리(Cathari)라는 것은 청정파(淸淨派)라는 뜻으로 극도로 금욕적인
계율을 받들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생겼는데 이신론(二神論)을 기본 교의로 한다. 알비주아파, 파타리니파, 불가리아파,
푸블리카니파 등 지방과 시기에 따라서 많은 별명이 있다. 최초 12세기 중반 라인강변의 도시 및 저지대에서 발견되었는데, 점차로
남쪽으로 확산되어서 남프랑스와 북ㆍ중부 이탈리아에 확고한 기반을 구축했다. 이 때문에 남프랑스에서는 알비주아 십자군의 발진을, 또한 이단심 문제도의 창설을 필요로 하였다. 14세기 중반에 근절된다.
선
식과 악신, 나아가서 각각의 속성이나 영역의 대립을 상정하고, 일체의 물질적 존재, 현실 세계 등을 악신에 속한다고 본다.
인간관은 선신의 천사(영혼)가 악신에 잡혀서 감옥(육체)에 봉입되어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점에 특징이 있다. 교의의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그들 사이에 차이점이 있으며, 이신(二神) 이세계(二世界)의 영겁의 병재(幷在)를 상정하는 절대파, 선신의 한 천사가
반역해서 악신이 된, 즉 악은 선으로부터의 파생물로 유한하다는 온화파가 있었다. 영혼의 윤회전생설을 취하는 것을 절대파만이다.
로마교회를 악마의 교회로서 공격하고, 『구약성서』는 악의 세계의 창조주인 악신의 책으로서 배격했다. 십자의 성호는 그리스도를
살해한다는 인류 최대의 죄의 기념이라고 해서 싫어했다. 독자적인 교단을 조직해서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라고 하고, 주교(主敎)를
받들었다. 안수례를
받아서 교회의 신자가 되어서 계율을 지키려고 할 때, 영혼은 악신의 세계에서 해방되어서 천계로 복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육식,
살생, 생식, 혼인, 소유 등 일체의 세속생활을 부정하고, 가끔 단식해서 가혹한 고행을 실행하였다. 가족, 서약, 권력 등
일체의 사회관계도 부정한다. 이와 같이 극도로 비관적 부정적인 교단에 입신하는 자는 비교적 소수였으나, 그 주위에 그들을 존경하는
자가 많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 파는 중세에는 마니교의
부활이나 재유입으로 이해되며, 현재도 이교냐 이단이냐는 논의가 행하여지고 있다. 10세기부터 14세기 말까지 발칸반도에 존속한
이신론 이단 보고밀파의 강한 영향하에 서구에 발현한 것을 확실하며, 카타리 교단의 설립에 있어서는 보고밀 교단의 지도를 받고
있으며, 『요한문답록(비밀의 만찬)』이나 『이사야 견신기』 등의 위서도 동방에서 수용된 것이다. 또한 선행하는 근동의 이신론 이단 소(小)바울파로
부터의 영향이 혼입되어 있는 것도 충분히 고려되지만 이들 선행이단과 마니교와의 연속은 입증할 수 없다. 카타리파는 약간 독특한
해석을 가하는 경향은 있지만, 신약성서를 고집하고, 원시 그리스도 교단의 생활을 이상화해서 그대로 실천하려는 강렬한 의지를
나타내었다. 이신론 교의도 입론의 근거는 항상 『신약성서』였다. 의전이나 관행 중에도 이교적 요소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마니교로부터, 또는 그노시스파에서 간접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리스도교 내의 이단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타리파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롤라드파
어원은 고대영어 loller(게으름뱅이), 독일어 lollen(노래부르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위클리프의 가르침을 받은 ‘가난한 설교자들’의
설교는 1381년 농민봉기(와트 타일러의 난)의 원동력이 되었다. 같은 해 롤라즈를
탄압하기 위한 최초의 법률이 제정되어 검거가 시작되었으며, 1382년에는
옥스퍼드대학에서 추방된 위클리프의 제자들이 각지로 흩어져 스승의 가르침을
설교하였다. 특히 존 볼의 “아담이 밭을 갈고 이브가 베를 짤 때에 누가
귀족이었는가?”라는 말은 유명하다. 1394년 의회에 항의문을 제출하고
세속영주(世俗領主)나 주교(主敎)도 대죄(大罪)를 저지르고 있는 한 어떤 권력도
가질 수 없으며, 성서에 근거를 두지 않은 법률은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1401년 ‘이단자 화형령(火刑令)’이 제정되고 탄압이 가중되었으나 롤라즈의 세력은
여전히 10만 명을 헤아렸다고 한다. 헨리 5세 초기에는 존 올드캐슬의 지도 아래
궐기를 꾀하다 실패하여, 약 40명이 처형되었다. 1414년 종전의 법률 규정이
강화되어 헨리 6세 초기에도 처형이 잇따르자, 롤라즈는 차차 지하로 숨어들었다.
이처럼 끈질긴 탄압으로 그 세력이 급속히 쇠퇴, 15세기 중반에는 옛 롤라즈 사상의
전통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15세기 말에는 다시 활기를 띠어
루터파의 종교개혁운동에 합류하였다. 성서의 영역(英譯)과 보급에 공이 컸으며,
영국 비국교파(非國敎派)의 원류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롤라즈 [Lollards]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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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어본후 느낀건... 이단으로 불리우던 종교들이 카톨릭보다 오히려 더 순수(?)하게 느껴진다는 거네요.
결국 누가 권력을 가졌느냐에 따라 이단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고ㅈ.....파
불교는 부정하는게 아니죠.
대부분의 불교 신자들은 결혼하고 육식하고 애낳고 다 하니깐..
단지 스님들만 자기수행을 위해 '안'하는 것일뿐.. 부정하는건 아닌걸로 알고있어요.
명칭이 번역에 따라 다른데 러시아에 거세파라고 있었다고 합니다.
앗! 여긴 정교회쪽 진영 이군요. 실수. 게다가 위 파는 생긴지 얼마안된 신생? 파 였구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만민평등사상!! 당시로선 굉장히 혁명적인 사상이었을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때 배웠던 고려시대 만적의 난이 생각나네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ㅋㅋㅋㅋ
몇몇 탁발수도회 및 수도회운동도 그 급진성 때문에 이단지정될 뻔 했죠. 가장 중요한 차이는 로마 카톨릭의 계서제를 인정하는가 아닌가죠. 카톨릭이 교회를 통한 구원을 중시했다면, 이단들은 전 신도가 직접 신과 접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순수한 삶을 강조하고 계서제를 부정했으며, 이는 후대 프로테스탄티즘으로 이어집니다.
왈도파?
우리는 믿는다. 신을 건전함!
으앜ㅋㅋㅋㅋㅋ 빵터졌습니닼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