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교회 / 엄상익 변호사
남의 한 대형교회 신도들 몇 명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목사 부부가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송을 하려고
왔습니다. 이미 고령인 목사는 젊은 날의 강한 의지도 믿음도 없습니다.
부인 말과 아집에 이끌려 가고 있습니다.”
“그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다른 교회로 옮기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성경에는 신발을 털고 떠나라는 글이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게 정답이 아닐까.
“그건 아니죠. 세습하려는 목사와 아들이 떠나야죠.”
그들의 표정이 완고했다. 그들은 세습은 악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얼마 전 다른 대형교회의 목사와 아들이 세습 문제 때문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아들목사는 현명했다. 아버지의 자리를 원하지 않으면서 자기는 나름대로
시골의 작은 교회를 하겠다고 했다. 욕망에 이끌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가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자격을 박탈당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아들목사를 보면서 교회세습이라는 편견이 깨졌다.
훌륭한 자식이 부자관계를 이유로 자격l 박탈 당해서도 안된다.
공정한 경쟁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법적인 관점으로 들어가 물었다.
“소송을 하려면 권리침해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권리를 침해당하셨습니까?”
“저희가 교회를 다니는 이삼십년 동안 사실상 사회와 완전히 단절됐습니다.
교회가 사람을 잡아두는 프로그램에 충실하다보니까 일주일 내내 교회에
잡혀 있었어요. 또 교인들 경조사나 아이들 결혼식에도 수십번 가서 축의금을
냈는데 그 교회에서 쫓겨나오면 그 동안 사회와의 단절은 누구한테 보상받고
우리 아이 결혼식 때면 그동안 낸 축의금은 누구한테 돌려받습니까?”
그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교회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영혼을 교류하는
곳이 아니었다. 사교의 장이고 장사꾼들이 모여 흥정하는 곳이었다.
끼리끼리 분당을 짓고 다른 사람들과 헐뜯고 싸웠다. 성경 속의 고린도 교회도
그런 것 같았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안병무 박사가 쓴 수필내용이 떠올랐다.
그는 수필에서 이렇게 쓰고 있었다.
‘어떤 단체든 싸움하는 이면을 들여다보면 공로의식이 뱀처럼 머리를 드는데
그 원인이 있다. 교회 분란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공로 싸움이다.
그 교회를 시작했다는 목사가 공로자로서의 위세를 너무 부려서 부목사도
장로도 붙어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목사의 일갈은 언제나 내가 누군데?이다.
즉 공로자를 몰라본다는 분노이며 싫은 놈은 나갈 것이고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는 통에 그는 사람을 다 잃고 한 때 명성을 날리던 그는
노망한 노인으로 따돌림을 받고 있다.
어떤 목사는 하도 사임을 하지 않아 젊은이들이 들것에 싣고 멀리 가서 던지고
왔더니 얼마 후 다시 돌아와서 난 못나간다.
너희들이나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수필을 쓴 안병무 박사는 독일에서 하이데거등 세계적인 석학과 함께 공부한 분이었다.
중앙신학교장과 한국신학대학에서 일한 믿을 만한 분이었다.
키르케고르는 ‘거미형 인간’을 말한다. 일찍이 공들여 쳐 놓은 자기 판도 한복판에
웅크리고 앉아 거기 걸리는 것을 먹고 살겠다는 마음이 생기면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나는 교인 사이에 싸움이 있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공로다툼과 욕심과 분열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영혼의 눈이 감겨져서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과 예수는 그런 교회의 화려한 단상의 십자가에
계시지 않는다. 그 분은 웅장한 교회 건물이 아니라 종이와 잉크로 된 성경교회 속에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교회 속에 계실 것 같았다. 내가 찾아온 그들에게 되물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분 맞습니까? 아니면 실례되는 말이지만 종교 주식회사의 주주이십니까?”
첫댓글 이런 일들도 일어나는군요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