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28 土/ 연중 제 25주간 토요일.
또는 <성 벤체슬라오 순교자> 또는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와 동료 순교자들>
또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
-아침/ 평일, 또는 <기념>미사.
① 코헬 11,9―12,8 ㉥ 루카 9,43ㄴ-45
-저녁/(연중 제 26주) 주일 저녁(제1)미사.
* 오늘의 성인('24.09.28)
벤체슬라오 순교자 남, 솔로몬 주교 남, 실비노 주교 남, 알피오 순교자 남.
ㅡㅡTㅡ묵 상ㅡTㅡㅡ
♧ 연중 제 25주간 토요일-사랑이 아니면 ♧
ㅁ
<2022.9.24 土/연중 제 25주간 토요일
- 김찬선>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코헬 11,9)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라’는 번역이 과연 잘 된 번역일까요?
색안경을 끼고 보면 이 번역은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즐기라’는 것이 퇴폐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의미라면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지금의 번역보다 앞선 공동번역성서를 보면 사실 오해를 살만한 면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아, 청춘을 즐겨라. 네 청춘이 가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겨라.
가고 싶은 데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보아라.
그러나 즐기라는 말이 영어로 ‘Rejoice’라고 하고, 개신교 번역에서는
‘즐거워하라’라고 하는 것을 보면, ‘환호하라’, ‘크게 기뻐하라’,
‘크게 즐거워하라’라는 뜻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사실 철학에서 쾌락주의도 나쁜 것이 아닌데 많은 오해를 받습니다.
에피쿠로스가 얘기하는 쾌락은 일시적이고 말초적인 쾌락이 아니라
욕망을 오히려 절제하고 어떤 것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
곧 아타락시아의 경지이며, 고통의 부재 또는 고통의 극복 상태에 가깝습니다.
이와 반대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젊은이가 우울증에 빠지거나 비관주의적이거나
고통에 함몰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삶을 산다면 이 얼마나 불행입니까?
더 쉽게 얘기하면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때 유행했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과도 같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어떻게든 즐겁게 살려는 ‘태도’입니다.
‘나는 무조건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니까!’라는
저의 행복론과도 통하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제가 무조건 행복하려는 것은, 억지가 아니라
행복이 조건에 의해 좌우돼서는 안 되겠다는 저의 의지이고 태도지요.
가난하면 불행하고 부유하면 행복하다면 그것은
돈에 좌우되는 행복이라는 것이고, 그만큼 불완전한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코헬렛서는 근심에 머물지 말고,
고통에만 머물지 말라는 뜻으로 이렇게 얘기하지요.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 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그러니 더 큰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근심과 고통이 마음 안에 머물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수난과 십자가의 길에는 발을 내딛지도 말 것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한국관구//
서울오류동공동체/서울신사동수도원분원//
평의원/여기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국가영적보조/재속프란치스코회 위원장"
*김 신부님의 해외사목관련하여 다음달 10월 6일까지 말씀이 없슴으로,
같은 전례시기에 신부님의 말씀을 올리오니
묵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ofs/정릉 아타나시오 韓 옮김)
ㅡㅡTㅡ1독 서ㅡTㅡㅡ
※ <먼지가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이 하느님께 되돌아가기 전에 젊음의 날에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 코헬렛의 말씀입니다.11,9―12,8
9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10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 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12,1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이런 시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네가 말할 때가 오기 전에.
2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3 그때 집을 지키는 자들은 흐느적거리고 힘센 사내들은 등이 굽는다.
맷돌 가는 여종들은 수가 줄어 손을 놓고
창문으로 내다보던 여인들은 생기를 잃는다.
4 길로 난 맞미닫이문은 닫히고, 맷돌 소리는 줄어든다.
새들이 지저귀는 시간에 일어나지만 노랫소리는 모두 희미해진다.
5 오르막을 두려워하게 되고 길에서도 무서움이 앞선다.
편도나무는 꽃이 한창이고 메뚜기는 살이 오르며
참양각초는 싹을 터뜨리는데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거리에는 조객들이 돌아다닌다.
6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7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8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ㅡㅡTㅡ복 음ㅡTㅡㅡ
◈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43ㄴ-45
그때에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적독서 후에 잠시 묵상합니다>
<묵상 후 사도신경을 바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