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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나여야 하는 이유가 뭐예요?"
볼멘 소리로 중얼거리는 장추삼을 유쾌한 눈으로 보던 목자 노인이 손짓으
로 무당의 도사들을 물리쳤다. 그에 따라 하운과 북궁단야도 어쩔 수 없이
물러서야 했다.
"나여야 하는 이유가 뭐냐니까!"
그저 말없이 웃는 노인의 얼굴에 옅은 회한의 기운이 감돌았다.
목자 노인. 본래 도명은 청목자(淸木子).
청화(淸火), 청수(淸水), 청금(淸金), 청토자(淸土子)와 함께 무당에서 보
낸 시간이 어언 육십 칠 년이 흘렀으니 그야말로 무당의 역사라고 불릴 만
한 인물.
'네겐 미안하지만 우리로서는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구나.'
무당의 최고배분을 자랑하는 오송이지만 그들에게도 결코 남에게 말하지 못
하는 쓰라린 경험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이십 오 년 전에 벌였던 한번
의 승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 당시 무림에서 오송은 거의 잊혀진 존재나 다름없었다. 막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강호에서 전대의 고수로 평가받는 그들을 기억하는 이도 없었을
뿐더러 워낙 속세에도 관심이 없었기에 다섯 명의 고수들은 유유자적 시간
을 보내며 도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이름, 백무량.
치무환검존이라는 이름이 절대오존 가운데 하나로 자리 매김 해서 오송이
일어섰던 것은 아니다. 단지 검을 잘 쓴다는 무인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을
지도 모른다.
같은 검수로서의 검로에 대한 흥미, 또 같은 유파의 문인으로서 깨달음에
관한 흥미... 이 두 가지의 궁금증은 세속에 초연했던 다섯 명의 노도사들
을 승부의 장으로 이끌었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만남, 그리고... 패배.
변명 한마디 붙이지 못할 만큼의 완벽한 패퇴였다.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이제 완벽하다고 믿었던 양의문검은 환검존의 차가운
검로 앞에서 기세조차 펼치지 못했으며 설익은 태극혜검으로는 감히 바라
보기조차 어려운 상대였다.
여태까지의 승부들 가운데 가장 힘겨웠던 겨룸이었다는 인사 같은 건 들어
오지도 않았다. 배분에 대한 배려 정도라는 것쯤은 알았으니까.
무당으로 돌아온 그들을 기다리는 건 살아온 인생에의 덧없는 회한, 그리고
참기 어려운 굴욕.
비록 철저히 숨겼던 만남이었고 감추기로 했던 승부의 엇갈림이었지만 그들
의 가슴에 자리하는 엄연한 현실은 늙은 검수들의 칠십 노구를 다그쳤다.
몇 날, 며칠을 한숨 속에 보내던 그들은 곧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화산이 배출한 검수를 개인이 꺾을 수는 없다고.
그래서 그들은 뭉쳤다.
오행검진(五行劍陣)이라는 이름아래.
무당이 자랑하는 천고의 검진, 검으로 펼쳐내는 가장 완벽한 조화라는 검진
. 다섯 명의 힘으로 오십 명의 힘을 뽑아낸다는 환상의 검진.
무당의 오행검진을 수식하는 수많은 말들이지만 정작 무당의 도인들조차 오
행검진의 본래 위력을 견식한 이는 별로 없었다.
오행검진은 검로와 보법에 따라 몸과 검을 움직이는 통상의 검진과는 달리
도가의 근원이라는 음양(陰陽)의 법칙을 완벽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오행의
원리에 따라 몸과 검로를 가져가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한마디로 깨달음이 없이는 제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뜻이니 어찌 일반
적인 검법에 비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도가의 성지라는 무당이라고 해도 음양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한 노도
인들이 무려 다섯이나 있어야 하고 그 도인들이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
검진을 펼치려할 때 한 사람이라도 나머지의 검수들보다 쳐지게 된다면 검
진 자체가 불가능함은 기본적인 일이다 - 검로를 밟아야 하니 그야말로 오
행검진처럼 구현해내기 까다로운 검진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그 어렵다는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 검진이 펼쳐진다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발할까.
하지만 깨달음을 쇠붙이로 전달하는 일은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
다. 그들은 일반 문도들이 펼쳐내는 오행검진 같은 건 염두해 본적이 없었
으니까.
우연인지는 몰라도 다섯 도사들은 그들의 사부가 내려준 도명에 따라 오행
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의 원소들에 익숙해 있던 터였다.
거기에 맞추어 몸과 검을 쳐내는 것은 그야말로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 아
니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들에게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기꺼웠다.
나이도 잊고, 명예도 잊고...
그들은 그렇게 오행검진과 하나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 정도 검진이 손에 익고, 다섯 가지 물질들이 지닌 상생(
相生)의 원리를 제법 그려낼 줄 안다고 자부할 무렵 뜻밖의 비보를 접하게
되었다.
환검존의 패사...
슬프고, 어이없었지만 먼저간 노검수에게 예의를 바치면서도 진한 아쉬움에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며 이런 저런 소일거리로 시간을 죽이던 그들이었다.
산송장과도 같은 세월 속에 느닷없이 난입한 청년은 죽어있던 그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큼 흥미로운 존재였다.
장추삼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강호삼성 가운데 괴성이라면 다섯 명의 노검수
들을 자극할 소지가 충분한 인물이었으니까.
그건 바로 소림에서 벌인 그의 행동 때문이었다.
본시 무당과 소림은 겉으로 서로 치켜 세워주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리
아름다운 관계가 아니다. 아니, 절대로 좋을 수 없다는 편이 옳다.
그도 그럴 것이 무당의 개파사조인 장삼풍진인이 소림사에서 추방당했었던
전력이 일조(一助)함은 물론이고 두 문파가 강호에서 가지고있는 위상 때문
이기도 하다.
정도 무림을 떠올린다면 누구나 구파일방을 머리에서 그려낼 것이고 그 가
운데에서도 소림과 무당이라는 쌍두마차가 가장 먼저 언급됨은 물론이다.
문제는 두 문파가 나름대로의 색깔이 다르다는데 있다. 불(佛)과 선(仙)이
라도 목표는 깨달음이라는 공통점으로 한가지의 지향점을 추구한다고 일반
인들은 말을 하겠지만 말 그대로 아직은 갈망하는 입장이다.
지금 현재로는 인간이란 말이다!
어찌 공명심이 없고, 어찌 호승심이 없을까? 어찌 출발점이 다른 것에 대한
거리감이 없을까?
무려 팔백 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무당이지만 한번이라도 소림의 명성을
앞서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긴 시간동안 단 한번도 없었다.
소림이라는 이름 앞에 늘 따라붙는 붙은 최고라는 명성... 모든 강호인들의
무의식일까? 아니면 실제적으로도 무당이 이룩한 모든 것이 숭산의 불호
앞에서는 힘을 잃어 버려서일까?
물론 무당도 소림의 권법과 봉술은 인정을 하는 바다. 그 화려하면서도 고
요한 외침을 가슴 깊이 느끼고 존경해마지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무당의 주요 무학은 누가 뭐라고 해도 검법이다. 검 한 자루로 도를
추구하고 삼라만상의 이치를 들으려하며, 우화등선을 꿈꾸는 사람들이 바
로 무당에서 수련하는 도사들이다.
그러기에 소림을 존중하면서도 암묵적으로 그들과 경계선을 그려놓고 나름
대로의 길을 걷고 있는 무당이었다.
검만으로는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청년에 의해 천년 소림의 자부심이 여지없이 깨졌
다고 했다.
강호 삼성 중 일인이라는 청년은 소림의 영원한 자랑이라는 대일인합격진
가운데 최고봉, 십팔나한진을 단신으로 격파했을 뿐 아니라 현 소림의 실세
라는 소림삼주마저 압도했다고 했다.
더욱 기경할 일은 그 청년의 움직임을 보고 소림 방장인 혜광선사가 잊혀진
절기, 연대구품을 재현해내었다고 하니 이 어찌 기사가 아닐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청년이 무당에 온 것이다.
소림에 대한 호승심이 잠들었던 오송의 발길을 끌어당겼는지도 모른다. 혜
광선사와 같은 기연을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아무튼 그들은 몇 십 년 만에 검을 쥐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유는 승부를 짓고 나서 말 해줌세, 무량수불..."
"에휴..."
그토록 피하고자 했건만 또 싸움질을 하잔다. 그것도 한 대 제대로 들어가
면 뼛가루가 날릴 것만 같은 노인네들이 말이다.
장추삼은 뼛가루를 전신에 두르고 잇는 듯한 이 노인네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미쳐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나이 많고 배분 높아 상대하기 까다로운 노도사들쯤으로 여겨졌다.
"뭐, 알았어요. 이번엔 약속을 지켜야 해요?"
"아까부터 말하지만 우린 약속을 한 일이 없다네, 무량수불..."
웃음이 나올 것 같아 도호로 말을 뒤를 막은 청목자가 미소를 풀고 수중에
서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신선이 따로 없네.'
팔자 좋은 생각을 할 처지가 아니련만 장추삼은 제각기 무기를 든 노검수들
의 자태에 잠시 넋을 놓았다. 이건 완전히 노검선(老劍仙)들의 집합 아닌가.
'이런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서 나랑 싸우자는 거냐.'
생각은 생각, 느낌은 느낌, 그리고 현실은 현실이다. 지금 장추삼은 싸워야
하고 또 싸운다면 봐준다거나 지고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노인네들이라 좀 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선빵은 때리지 말자.'
또 다시 그의 찬란한 경로사상이 표출되는 순간이었으나 알아주는 이는 하
나도 없었으니 참으로 애석한 광경이었다.
"자자, 너무 무리들은 하지 마시고 오세요."
오송의 얼굴에 제각기 여러 색채가 얼룩졌다. 분노, 흥미, 어이없음... 그
래도 모두는 한 가지 생각을 떨치지는 못했다.
그 누구의 앞이라도 오만할 정도로 당당한 장추삼을 알리 없는 오송이기에
그의 이런 태도에서 왠지 모를 서글픔을 느꼈다.
언젠가, 기억도 나지 않는 먼 시간 속에서 검 한 자루만 들면 만인이 부복
했던 세월이 짧게나마 그들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늙은 검수들은 추억만을 곱씹으며 아련한 향수(鄕愁)에 몸을
맡기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에 서서히 지워져 가는 노강호들의 자화상.
어떤 식으로든... 잊혀진다는 건 슬픈 일이로구나...
잠시 상념에 빠져있던 노인들은 청목자의 나지막한 도호에 의해 느슨했던
마음을 되잡았다.
"우리는 오행검진을 펼칠 것이네. 일단 검진이 발동되고 나면 막대한 압력
과 고통이 올 것이니 단단히 대비를 해야 할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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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위력?"
"그렇다네. 우리의 검진은 그저 방위를 점하고 칼을 쳐낸다는 개념이 아니
라 검진 자체에 의미를 심어준다는 거야. 자연과의 동화라고나 할까? 아무
튼 검진이 발동되는 순간 자네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게야."
"자연과의 동화?"
조금 더 고차원적이면서도 세월에 순응하는 동화도 있잖아요!
장추삼이 혀를 쑥 빼물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기에 청목자는 여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단단히 준비를 해야할 것이네."
"그 검진이 그리 위력적이라면..."
순간 장추삼의 눈이 반짝 빛났다. 예의 짓궂은 미소까지도.
파박!
그가 청목자 앞에 불쑥 나타났다. 무당의 노검수가 너무도 놀라 반응조차
보이지 못하는데 장추삼이 느믈느믈 빈정거렸다.
"발동하기 전에 깨버리면 되지?!"
"허..."
네 노인도 미쳐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몸을 잘 놀린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
데 이건 거의 사기 수준이 아닌가.
적의 약점은 아군의 이로움이다. 그건 기본적인 사실이고 그런 전술이야말
로 승리를 낚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만약 마음만 먹었다면 검진은 발동도 되기 전에 깨졌을지 모를 일이다. 몸
을 그리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면 기타의 부속물 역시 빠를 테고, 그런 공
격에 예비하기는 어려울 터였으니까.
다섯 노인의 얼굴에 특이한 빛깔이 일렁였다.
그건 바로 은은한 기대.
청목자가 얼굴을 치켜든 장추삼에게서 한 발 물러서며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 정말 몰랐다. 이런 유쾌한 순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맞네, 맞는 말이야! 자칫하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네! 자네는 말보다도 몸
을 더 잘 놀리는군. 하지만 우리가 지금 승패를 걸고 싸우자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검진의 발동을 허락해주게. 억지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무공고하를 겨루어보자는 게 아니니 우리 늙은이들의 청을 거두어주게."
"뭐가 그리 복잡해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든 간에 이기면 그만이지. 싸움하
면서 별걸 다 따지네, 정말."
하여튼 정파니, 뭐니 하는 치들은 헛 바람만 잔뜩 들었다니까, 하며 투덜거
리는 장추삼의 빈정거림에 청목자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다. 목숨을 걸고 벌이는 생사결이 아닌, 그야말로 순수
한 비무라 해도 결국 승패는 나뉘게 되고 두 가지 결과 가운데 하나를 강요
받는다면 누구나 이기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리고 무학 탄생의 근원 역시 호신에서 비롯되었으니 이기기 위해 존재한
다고 봐도 옳다.
고개를 반쯤 숙이고 생각에 골몰하던 청목자가 새삼스러운 얼굴로 장추삼을
바라보다 수중의 송문고검을 칼집에 갈무리했다.
"자네 말이 백 번 지당하네. 선전포고를 보내고 상대편더러 아군의 진용이
덜 갖추어졌으니 나중에 침공하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하지만 우린
그 진용에 대해 말하고픈 거네. 뭐, 정히 싫다면 강요하지는 않겠어. 그토
록 매달렸던 하나의 검진과 그렇게 흘려보낸 이십 오 년의 세월이 신기루만
은 아니라는 걸 입증 받고 싶은 늙은이들의 치기인지도 모르지. 싫다는 데
야 별 도리가 있나. 암, 그렇고말고..."
뭔가 묘하게 돌아가는 상황.
일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는 그에게 청목자가 야릇한 목소리로 말꼬리를
이어 붙였다.
"자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텐데... 아쉽군."
"좋은 경험?"
호기심을 보이는 장추삼의 반응에 청목자와 네 노인의 얼굴에 반색이 돌았
다.
"방금 전 자네의 움직임을 보고 느낀 거지만 만약 우리 검진과 상대하게 된
다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될 거야.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권각가(拳脚
家)들에게 우리의 오행검진은 천적이 될 수도 있거든."
천적...
그 한마디가 모든 얘기를 종결지었다.
"좋아요! 당장 그 오행인지 뭐시긴지를 그려요!"
"정말인가?"
뿌드득.
목을 오른쪽으로 틀며 어깨를 돌리는 것으로 장추삼이 대답을 대신하자 청
목자를 가운데로 두고 네 명의 노인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드디어 시작이다...
"오게!"
쿠르릉-
거대한 잠력이 다섯 노인의 검진에서 생성되었고 그 사이로 장추삼이 뛰어
들었다.
'뭐야, 이거! 장난이 아니잖아!'
마구 흩날리는 머리와 금방이라도 찢겨져 나갈 것만 같은 옷소매들은 차지
하고라도 전신을 내리누르는 압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단지 서있는 것만으로도 잠력이 파생되는 검진은 들어본 적도 없는 그였기
에 이런 괴현상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젠장, 이래서야 펄펄 날아다니면서 싸울 수가 없잖아! 만만하게 봤다간 제
대로 당하겠는걸?'
문제는 노검수들의 검이 한번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거다. 그들은 단지 방위
를 점하고 자신들의 기를 쏘아낸 것만으로 이러한 기세를 만들어낸 것이다.
만약 그들의 검이 움직인다면?
노인네들이라고 걸려하던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봐준다고? 웃
기는 일이다.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야 할 판이다.
으드득.
세차게 이를 갈며 양 허벅지에 단단히 힘을 준 그가 힘껏 신형을 비틀었다.
'자고로 급소하면 중앙, 중앙 하면 급소가 아닌가!'
스스로의 천재성에 감탄하며 장추삼이 매처럼 날카롭게 청목자에게로 쇄도
했다. 생각인즉슨 크게 틀리지 않았지만 문제는 도달하느냐 일 것이다.
그의 돌진에 청목자가 외쳤다.
"수생목(水生木)!"
물은 나무를 이롭게 한다...
촹! 촹!
청수자가 검을 한 곳으로 쳐내자 갑자기 청목자의 주위로 막대한 힘이 발생
하여 장추삼은 순간적으로 거대한 쇠망치에 가슴이 가격 당한 착각마저 들
었다.
'뭐, 뭐야?'
그때 검을 내뻗은 탄력 그대로 몸을 쭉 내밀며 청수자가 낭랑하게 소리쳤다.
"금생수(金生水)!"
쇠는 물을 이룹게 한다...
주위를 돌던 청금자가 한발 앞으로 나서며 장추삼에게 태산압정 식으로 일
검을 내리 그었다.
'젠장!'
몸을 반 바퀴 틀며 검을 피한 그가 왼쪽 어깨로 청금자의 감슴을 노리고 들
어갔으나 옆에서 들어오는 청수자의 검에서 밀려오는 검풍에 다시 몸을 틀
어야 했다.
그러자 청금자가 내렸던 검을 힘껏 들어올렸다.
"토생금(土生金)!"
흙은 쇠를 이롭게 한다...
이번에는 청토자가 나섰다. 그의 검은 교묘하기 그지없어서 단 한번의 변화
였는데 장추삼은 무려 세 번이나 몸을 움직여서 피해내야만 했다.
문제는 한 사람의 검을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공세를 편
사람은 수세에 몰린 쪽을 철저히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도움을 받은 쪽은
다음 공격을 예비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차륜검진(車輪劍陣)이라 아
니할 수 없었다.
이대로 피하다간 제풀에 지쳐 쓰러질 판이다. 그냥 서있기에도 힘들만큼의
압력과 한 명, 한 명의 연환 공격에 장추삼은 두 손을 들 힘조차 없었다.
"뭐지? 물가에 갓 나온 생선처럼 파닥거리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거야?"
북궁단야가 장추삼을 보며 혀를 찼다. 그가 알고있는 장추삼의 전투와 지금
의 싸움은 너무 대조적이었으니까.
"글세... 저런 오행검진은 들어본 적이 없소. 저건 하나의 검진이라기보다
소검진(小劍陣) 다섯이 커다란 기본검진 하나에 묶여 있으면서 필요할 때마
다 제각기 발동하는 모양새로구려."
하운의 대답은 얼음 같은 청년의 의혹만 증폭시켰다. 다섯 이든 하나든 상
관없다. 왜 저리 둔한 움직임을 보이냔 말이다.
"늦잠 자고 막 일어난 고양이처럼 허우적거리지 않는가? 저런 모습이 괴성
장추삼이라고 한다면 정말 부끄러운 광경이지."
"뭔가... 이유가 있을 거요."
이유? 들어와 보면 안다!
먼발치에서 종알거리는 치들이 뭘 안다고 입방아란 말인가!
'진짜 죽겠네!'
쿠오오-
그들의 공격이 합쳐졌다 떨어지면서 압력은 오히려 배가되고 있었다. 오행
의 원리에 따라 오송이 밟고있는 대지에서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오행상생의 극대화.
당연히 그것을 다스리는 쪽이야 편하겠지만 그 법칙에 위배되는 장추삼이기
에 상극(相剋)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고 그건 놀랍게도 물리적인 압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저 물리적인 압력?
이런 경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슷한 경험을 했던 장추삼이기에
처음 들어오는 잠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박옹과의 승부 시에 겪었던 단층수!
주위에 파생시킨 공기의 압력을 빌어 상대를 꼼짝못하게 만든 후 결정타를
날리는 그 똥똥한 노인의 절기를 몸으로 겪었고, 또 깨기도 했었다.
그래서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자연현상... 제기랄!'
그렇다, 이건 자연현상임에 틀림없다. 어찌 자연의 힘이 아니고서야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단층수에 당했을 때는 그나마 방비할 여력 정도는 있었다. 그래서 유성우를
날린 것이고 본의 아니게 박옹과 한 몸이 되어 나뒹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최 실마리가 없다. 일단 대상 자체가 다섯 명이라 하나의
지점을 깰 수도 없다. 아니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떤 목표를 설정하든 그 사람에겐 반드시 조력자가 있고, 둘의 힘이 합쳐
지면 감당하기 어려운 공력이 파생되어 가뜩이나 더딘 장추삼의 발길을 묶
어버렸다.
힘을 실어준 이는 그 공격이 끝나면 반드시 다음 공세를 준비해주고 뒤로
빠져버리니 목표점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거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으아아!"
두 손을 꽉 쥐고 힘을 응축시킨 그가 발작적으로 다리를 박찼다.
촤르르-
신비로운 산무영이 펼쳐지며 넷으로 불어난 장추삼이 네 방향으로 나섰다.
첫댓글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