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299) 어른, 이제 진짜 공부할 때 - ③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 한양대 교수, 시인 정재찬
어른, 이제 진짜 공부할 때
티스토리 http://if-blog.tistory.com/7453/ 100세 시대, 60세 지금이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
③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
이제 진짜 공부를 시작할 때입니다.
공부는 젊었을 때 하는 거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흔히 청년기가 인지능력의 절정기라고 말들 하지만,
뇌과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계산능력과 지각 속도만 그럴 뿐,
다른 고차원적인 인지능력은 중년 이후가 더 뛰어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하늘길을 지휘하는 항공교통관제사의 경우,
정보처리 속도는 젊은이가 빠르지만 충돌 피하기 같은 위기관리 능력은 중년의 관제사가 더 낫다는 것이지요.
중년에 이르러서야 인생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비로소 모든 조각들이 하나로 합쳐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성실성, 자신감, 배려, 평정심도 발달한다고 하지요.
중년의 뇌는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노력하기 때문에 감정에 대한
통제력이 증가되어 훨씬 더 침착하고 낙관적으로 사태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겁니다.
웬만한 일은 다 겪어봤으니까요.
감정의 통제력이 나아진 나이이기에 중년은 사랑보다는 역시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인 겁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하면 할 말이 없을 겁니다.
배려 없이 고집만 센 늙은이,
평정심 없이 화만 잘 내는 늙은이,
감정과잉의 목소리 큰 늙은이도 많지요.
하지만 이는 새롭게 변화될 자신이 없어 고집부리고,
자신이 틀린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 화내고,
논리로 당해낼 재간이 없어 목소리 높이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아무튼 그런 증상이 보이면 무조건 학교에 가야 합니다.
‘나무학교’에 말이지요.
나무 학교
문정희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 푸른 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놓을 때
사랑한다! 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 하며 숲을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민음사, 2004)
제주도에 가면 비자림을 자주 찾습니다.
그곳의 나무들은 웬만하면 오백 살이 넘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봐서는 어느 나무가 더 노인네인지 도무지 그 나이를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처럼 나이를 아미의 겉주름에 새겨 넣은 것이 아니고,
나이테를 속에다 쟁여 넣어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까?
그렇게 오래 산 나무도 봄이 되면 푸른 잎을 답니다.
역시 나무학교에서는 배울 것이 많습니다.
세월은 안으로만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
그리하여 내년엔 더 울창해지는 사람.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어른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 계속 커가면 좋겠습니다.
늙음은 젊음의 반대말도 아니고, 젊음이 모자라거나 사라진 상태도 아닙니다.
늙음은 젊음을 나이테처럼 감싸 안고 더욱 크고 푸른 나무가 되어 쉴 만한 그늘을 드리우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공부는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겁니다.
중년이 넘어 공부를 한다는 건 청년들의 자기계발과는 목표와 차원이 다릅니다.
월급을 높여주는 것도 아니고, 더 나은 직업을 갖게 하는 것과도 무관합니다.
그러나 공부의 목표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비로소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는 겁니다.
공부해서 뭐해? 그때가 진짜 공부해야 할 때입니다. 안 해도 될 때,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때 내가 좋아서 하는 것.
그게 진짜 아마추어로서의 공부입니다.
공부의 아마추어라면, 공부를 사랑하는 애호가라면,
공부할 게 많다는 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백년을 살면서 고작 이삼십 대 안에 공부를 끝내는 것이야말로 비극 아닐는지요.
물론 인생 이모작, 삼모작을 위해, 수단과 도구로서 해야 하는 공부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른의 공부에선 그보다는 나의 내면의 문제들,
내 삶의 의미를 찾는 문제들, 그런 것에 비로소 진지하게 눈이 가기 시작합니다.
젊은 시절 하루하루 먹고사느라 바빠서 그만 놓쳤던 궁극의 질문들, 그
해답을 찾아가면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겁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하다가 도대체 나중에는 뭘 공부하게 될까요?
역시 죽음을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으니까요.
거기에는 스승도, 선배도 없습니다. 갔다 온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아는 게 없어요. 죽는다는 게 뭘까?
이것까지 공부하는 것, 그것이 정말 내 삶의 끝, 공부의 끝이 아닐까요?
<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정재찬, 인플루넨셜, 2020)’에서 옮겨 적음. (2022. 2. 6.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299) 어른, 이제 진짜 공부할 때 - ③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 한양대 교수, 시인 정재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