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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심판의 상징들이 주는 메시지/겔 4:1-17
성경본문 : 에스겔 4:1-17
1. 너 인자야 박석을 가져다가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
2. 그 성읍을 에워싸되 운제를 세우고 토둔을 쌓고 진을 치고 공성퇴를 둘러 세우고
3. 또 전철을 가져다가 너와 성읍 사이에 두어 철성을 삼고 성을 향하여 에워싸는 것처럼 에워싸라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리라
4. 너는 또 좌편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당하되 네 눕는 날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찌니라
5. 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니 곧 삼백 구십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6.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일로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7. 너는 또 에워싼 예루살렘을 향하여 팔을 벗어메고 예언하라
8. 내가 줄로 너를 동이리니 네가 에워싸는 날이 맟도록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리라
9. 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떡을 만들어 네 모로 눕는 날수 곧 삼백 구십일에 먹되
10. 너는 식물을 달아서 하루 이십 세겔 중씩 때를 따라 먹고
11. 물도 힌 육분 일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라
12. 너는 그것을 보리 떡처럼 만들어 먹되 그들의 목전에서 인분 불을 피워 구울찌니라
13.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열국으로 쫓아 흩을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이와 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 하시기로
14. 내가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
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쇠똥으로 인분을 대신하기를 허하노니 너는 그것으로 떡을 구울찌니라
16.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리니 백성이 경겁 중에 떡을 달아 먹고 민답 중에 물을 되어 마시다가
17. 떡과 물이 결핍하여 피차에 민답하여 하며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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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피영민목사
서론
유대인들은 그들의 역사 가운데 지옥 같은 사건들을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가장 최근의 사건은 1940년대 초반에 아우슈비츠 수용소 사건입니다. 나치 독일군이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서 만든 수용소입니다. 독가스실에서 한 번에 약 2000명씩 살해했습니다. 독가스실에 들어가면 샤워하듯이 가스가 나옵니다. 먹고 죽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고나면 시체를 태워 죽입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은 잘라서 가발을 만들었습니다. 1945년에 이르러서는 유대인 600만 명이 살해되었고, 그 수는 유럽에 있는 유대인 전체의 80%에 해당되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만든 히틀러는 사탄의 화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들은 이 수용소를 가리켜 “인간이 만든 지옥(man-made hell)”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A.D 70년에는 로마 장군 타이터스(Titus)가 와서 예루살렘을 완전히 멸망시킬 때 지옥을 체험했습니다. B.C 587년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에도 생지옥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이 만든 지옥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든 지옥(God-made hell)"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처럼 역사가운데 험한 지옥을 여러 번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에게 이런 생지옥의 사건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파수꾼이었습니다. 목사들이 에스겔 4, 5장을 설교하기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생지옥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이야기를 해도 피곤한데, 생지옥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잘 안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이 말씀도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메시지를 증거하는 방법은 말과 글로만 한 것이 아닙니다. 단 한마디의 말도 안합니다. 4, 5장에는 한 마디도 없습니다. 모두 상징적인 행동으로 보여 줍니다. 자신의 몸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했다면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했을 것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비난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이 시키시는데로 자신의 몸에 상징적인 행동을 통하여 메시지를 증거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에스겔의 상징적인 행동들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정상적인 행동이었습니다만,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고, 명령하신 것이고, 진리를 전달하고자 비상한 방법을 사용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유다 역사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견본으로 하여 오늘날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시대적으로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로 이미 끌려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에스겔이 포로된 것은 B.C 598년 느브갓네살 왕이 2차 침공 할 때입니다. 여호야긴이 포로로 끌려가고, 일만 명의 귀인들도 포로로 끌려가고, 에스겔도 그 포로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B.C 593년에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이상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언의 말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4, 5장의 예언을 증거하고 있을 때에는 아직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지 않은 때였습니다. 유다의 마자막 왕인 시드기야가 애굽과 동맹을 맺어서 바벨론을 대항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느브갓네살 왕이 3차로 침공을 하여 B.C 587년에 예루살렘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위용(威容)을 자랑하던 솔모몬 성전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예루살렘과 성전은 폐허가 된 것입니다.
에스겔이 예언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점쟁이가 예언한 것은 시간이 지나고 현실이 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시간이 지나면 현실이 됩니다. 점치러 다니지 마시고 성경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점쟁이가 미래를 잘 알면 점쳐서 먹고 살겠습니까?
Ι. “상징적 행동”의 내용은 무엇인가?
에스겔 4장과 5장에는 다섯 가지 상징적 행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에스겔 4장 1절에서 2절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명령합니다. “너는 박석을 가지고 와라!”
박석(薄石)은 얇은 돌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용어로 하면 “타이루”입니다. 건물 벽과 바닥에 붙이는 타이루입니다. 그 타이루를 가지고 와서 그 위에다 예루살렘 성의 그림을 그리고 그 성 밖에 운제를 세우고 토둔을 쌓고 진을 치고 공성퇴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운제(雲梯)는 구름까지 높이 올라가는 사닥다리, 즉 이삿짐 센터에서 쓰는 사닥다리를 말합니다. 토둔은 흙으로 성을 쌓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 바깥의 흙으로 더 높이 쌓아서 군인들이 흙성에 올라가서 예루살렘을 향해서 화살을 쏘는 것입니다. 공성퇴(Battering Ram)는 큰 통나무를 옆으로 뉘어 가지고 끈을 묶어서 좌우로 흔들다가 성문에 충격을 주어 성문을 파괴하는 기구입니다. 타이루에 성 그림을 그리고, 그 근처에 사닥다리, 토성, 공성퇴를 만들라는 것은 바벨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게 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 에스겔 4장 3절입니다.
“에스겔아 너는 전철을 가지고 와라!”
전철(Iron Pan)은 프라이 팬을 말합니다. 무엇으로 만들었습니까? 쇠로 만들었습니다. 그 쇠로 만든 것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을 그린 그림 바깥을 두르라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는 예루살렘 성 안에 앉아 있지 말라고 하셨는데, 즉 에스겔이 서 있는 곳과 성 사이에 프라이팬을 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바벨론 군대가 쇠처럼 강한 군대일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당시에 에스겔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한 것은 쇠로 만든 프라이 팬입니다. 바벨론 군대는 그렇게 강한 군대가 될 것이며,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성 안에 있지 않고, 밖에 계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 편에 서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군대도 강하고, 하나님도 한편이 아니기 때문에 필연코 망한다는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셋째, 에스겔 4장 4절로 8절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명령합니다. “너는 잘 때 편히 누워 자지 말고 모로 누워 자라!” 좌편으로 누워서는 390일, 우편으로 누워서는 40일을 지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루가 일 년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즉 좌편으로 누워서 390일을 자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390년 동안이나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편으로 누워서 40일 자는 것은 남아 있는 유다 백성들이 앞으로 40년 동안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390일은 과거 사건이고 40일은 미래 사건입니다. 390년 동안 죄를 지어서 앞으로 40년 동안 벌을 받을 것임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팔을 벗어 메고 예언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펀치”를 날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겔은 누워 있으면서 줄로 묶여 있으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꼼짝도 못하고 옴치고 뛸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을 맞게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넷째, 에스겔 4장 9절로 17절입니다.
390일 좌로 누워 있는 동안에, 먹을 곡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닥치는 대로 곡물을 모아서 떡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맛없는 떡을 만들어서 먹습니다. 그런데 물과 떡을 조금씩 먹으라고 하십니다. 하루에 나누어서 먹는데 떡이 딱딱해서 굳으면 인분을 가지고 구워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인분으로 구워서 먹으면 무슨 맛이 나겠습니까? 냄새도 지저분하고 맛도 없을 것입니다. 에스겔은 팔 벗고, 끈 매고, 누워 있으라고 하면 하겠는데 인분으로 만들어서 떡을 먹으라는 것은 못먹겠으니 바꾸어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소똥으로 바꾸어 줍니다. 소똥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소똥은 섬유질이 많아서 냄새도 덜 나고, 화력도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 인천 축현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걸어서 다니면 온 동네 개똥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학교 갈 때에 개똥을 피해서 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거리에 똥 없는 나라 된 것만으로도 발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분 좋은 날이 있습니다. 소똥 밟는 날입니다. 냄새도 안나고, 미끄럽지도 않습니다. 또 마르면 손으로 털어 낼 수 있습니다.
에스겔에게 그것으로 떡을 구워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땔감도 없고, 먹을 떡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기근과 가난이 찾아오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시면 가난이 찾아옵니다.
에스겔 5장 9절로10절을 보면 “네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내가 전무 후무하게 네게 내릴찌라 그리한즉 너의 중에서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그 아비를 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의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프면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 먹습니까?
또 아들이 아버지를 잡아 먹습니다. 이 정도로 기근이 심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1년 동안 교환 교수로 가서 강의를 했습니다. 학생들이 질문합니다. “한국 사람들 개를 먹습니까?” 저는 “그래 먹는다.”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다시 질문하기를 “너희가 존경하는 족속이 어디냐?”라고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유대인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다시 설명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비가 자식도 먹었다. 6·25때 배고파서 개를 먹었는데 무슨 잘못이냐?” 그렇게 배고플 때에는 개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생지옥을 경험할 때에는 아비가 자식을 먹은 것입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고 하나님이 예루살렘 편을 안들어 주고, 죄악을 390년 동안 참으셨기에 참으신 진노를 예루살렘을 향하여 다 쏟아 부으심으로 기근이 오고 가난이 온 것입니다.
다섯째, 에스겔 5장 1절에서 12절입니다.
에스겔에게 삭도를 취해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에 달아 1/3씩 정확하게 나누라고 했습니다. 1/3은 예루살렘 성 안에서 불사르고, 1/3은 성 밖에서 칼로 치고, 1/3은 사방으로 흩으라고 명했습니다. 이 의미는 예루살렘의 성 인구가 1/3은 성 안에서 죽고, 1/3은 도망가다 죽고, 1/3은 포로되어 사방으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는 상징적 행동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의 포로가 되어 결국은 전쟁과 기근으로 멸망을 해도 하나님이 예루살렘 편에 서지 않을 것이라는 이런 예언이 상징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Ⅱ. 왜 예루살렘에 이런 비참함이 이르는가?
예루살렘이 생지옥이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에스겔 5장 5절에서 11절을 보면 두 가지 원인이 나와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유다 백성들이 이방인 보다 더 큰 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불신자보다 더 큰 악을 행하였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도 있고, 규례도 있고, 하나님의 이름도 알고, 능력도 경험했고, 음성도 직접 들었고, 선지자들도 수 없이 많았고,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방인 보다 더 악을 행하고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방인 보다 더 악했습니다. 어둠가운데 빛을 비추어야 하는데 더 어두워 졌고, 공평을 원했더니 더 포악합니다. 공의를 원했더니 더 큰 불의를 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방인 보다 더 악하지 않은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 악의 극치는 성전 안에서 행하는 우상 숭배였습니다.
에스겔 5장 11절을 보면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성소를 더럽혔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만든 성소에서 우상 숭배를 했습니다.
에스겔 8장 14절로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성령으로 환상 중에 에스겔을 성전으로 데려갑니다. 성전에 가보니 여인들이 울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신을 우는 것이 아니고 담부스라고 하는 신을 위해서 울었습니다. 또 장로 25인은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진노를 하셨는지 역사상 최고 의인 노아와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연합하여 기도할지라도 기도를 물리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축복 받으라고 주신 땅과 지어주신 성전에서 각종 우상과 더러운 사신을 390년 장시간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인내심에 한계가 온 것입니다. 오래 참으시지만 390년을 참았더니 더는 못 참겠다고 진노를 내리신 것입니다.
저는 이 진노가 어떤 진노와 비교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서 중동 지방에 진출했습니다. 제 대학 동기생들도 건설 회사 입사하여 중동 지방에 많이 갔습니다. 무더기 속에서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리고 달러를 벌어가지고 생존해 온 사람도 많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한 5년 먹지 않고, 입지 않고, 마시지 않고 달러를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보내 주었습니다. 5년 뒤에 들어와 보니 자신이 누워야 할 침대에 다리가 넷입니다. 이때에 남자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정말 살 소망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정도의 진노에 비유하면 비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390년 성전에 우상 숭배하는 것을 참아 오셨습니다. 드디어 B.C 587년 바벨론 군대를 통해서 심판을 하신 것입니다.
Ⅲ. 상징적 행동들이 주는 현대적 메시지는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은 불신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죄의 질과 양에 따라서 형벌의 질과 양을 결정하신다. 그러나 그 벌은 감당키 어려운 고통이 될 것이다.”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로 14절을 보면 기본적인 형벌이 불못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지옥이라는 단어보다 불못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심판의 기준은 자기의 행위라고 했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자기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사람들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책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지은 죄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심판을 받아도 남의 행위 때문에 받는 일은 없습니다. 아직도 예수 믿지 않으신 분이 계십니까? 사실 때는 어떻게 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죽은 후에 이런 불못의 심판의 형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와 상관없다고 무관심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주의를 기울이시는게 좋습니다. 불신자들은 마땅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는 죄가 많습니다. 마땅히 형벌 받을 존재입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게 구원의 길을 알려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겔은 390일 동안 이스라엘의 죄악을 담당해서 좌편으로, 모로 누워 지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좌편으로 390일을 누워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죄악을 속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의 기간을 알려 줄 뿐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누구의 죄를 속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죄악을 대신 지시고 형벌 받으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그 사람의 모든 죄를 다 씻어 버리는 것입니다. 과거의 지은 죄도 씻고, 미래의 지을 죄까지도 다 씻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저지른 죄도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를 믿는 순간 하나님이 그 피로 우리의 모든 악을 지워버리시는 것입니다. 그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바다 깊은 곳에 던져 버리십니다.
마귀가 복사본을 가지고 꿈속에 나타나 괴롭힐 때에는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고, 예수의 피가 내 죄의 파일의 원본은 지워버렸느니라.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니라.”라고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이렇게 좋습니다. 죄에 대해서 큰 형벌을 부과한다는 것은 죄를 사소히 여기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죗값을 인간 스스로 갚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죗값을 대신 갚아주신, 진노를 대신 받아주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받는 것이고 심판에서 해방되는 것이고, 이제는 형벌과 공포, 근심이 없는 것입니다.
에스겔 4, 5장은 먹구름 같지만, 하나님은 먹구름 뒤에 강력한 햇빛을 비추고 계십니다. 그 강력한 햇빛이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4, 5장에 감당 할 수 없는 진노를 부으시지만, 그 진노 뒤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은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불신자들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 믿고 그 피로 사함 받고 이 땅에 살 때에도 천국사시고, 죽어서도 천국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믿고 구원받은 신자들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유대인들은 외형적인 모든 종교를 다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내면으로 하나님을 향한 참된 신앙이 없습니다. 껍질은 있지만 내면의 신앙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 보름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루에 밥을 일곱 번씩 먹고 호두와 땅콩 먹었기 때문입니다. 호두를 깠는데 알맹이 없다면 호두를 어디다 쓰겠습니까? 우리 신앙이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가 없으면 그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겉으로 내가 지금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고 있다고 해서 천국 갈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적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님 말씀을 향한 참된 신앙이 없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내적 신앙을 확실히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두 종류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지옥 맛을 보다가 내세에도 지옥 가는 인생입니다. 가련하고 불쌍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세상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천국 맛을 보다가 죽어도 천국 가는 인생이 있습니다. 어느 쪽에 서시겠습니까? 인간 부류를 가르는 기준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다른 기준은 없습니다. 예수를 믿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알맹이 있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