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별명은 잘 넘어가는 여자.
의미심장한,
웬만큼의 사고력만 있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아, 그대의 상상력이 불건전하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답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요^^;;>
여하튼 대학 4학년,그녀의 별명은 잘 넘어가는 여자.
얼굴은 줄리델피라는 외국배우를 닮았는데
희멀겋고 투명한 피부에 선홍색 입술
약간 멍해보이면서도 느낌이 오는
순진무구해보이면서도 요염한 얼굴을 한 그녀는
입학이후 예비역들을 비롯한 무수한 남학생들의 동경과 관심을 한몸에 받았고
그 관심만큼이나 많은 염문을 뿌리고 다녔으며
지금까지 대여섯명의 남자와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해왔는데
<흔히 씨씨라고 하는 학교 분위기 흐리는 몹쓸 짓을 한 횟수니
바람이 전해주는 소문에의하면 학교밖엔 몇 더 있을거라는 얘기가..>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흔들리는 눈빛을 갖고 있으며
항상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한 태도와 수줍음에 가득차서
입을 소매부리로 가리며 말을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은
경외심을 일으키기를 지나쳐 숭배하게까지 만들어버리는데..
여러 소문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토록 끊임없는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녀의 그러한 태도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이같은, 그러면서도 섹시해보이는,
핏줄이 훤히 들여다 보일듯이 얇고 보드라워보이는 입술이나
하얀 목선, 가느다란 몸매며 하늘거리는 몸짓따위가
얼마나 많은 마음들을 흔들어 놓는지.
같은 여자인 나도 이따금 그녀의 매력에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인데.
많은 남자를 사귀었다고
그 남자들 중 몇몇은 대단한 자랑이라도 되는 듯이
그녀와의 속내를 승전한 장군의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길 즐기는데
"어머, 정말이예요? 진짜로 그랬어요?"하는 질문에
"다 그런거지 뭐.."란 식으로 대답해가면서.
외모가 탁월하고 인기가 많은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녀는
여자친구들이 별로 없었고
은근한 질투나 시기, 혹은 그런 여자들에 대한 소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보통의 여자애들에게 적대감에 가까운 거리감이
따라다녔다.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녀의 별명을 붙인 남자애들 또한
그녀에게 과잉친절을 베풀지만 그녀가 자리를 비우면 곧
엉뚱한 얘기들을 하곤 했으니..
아마 그녀에겐 남자도 여자도 좋은 친구가 되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나마 좀 친했던 보편적인 미의 기준에서 좀 벗어나는 단짝친구는
어학연수를 떠났다는데,
어제 친하지도 않았던 그녀와 우연히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녀가 좀 격하게 마신다 싶더니 대뜸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 그녀에겐 어울리지 않는 자조적인 표정을 짓고서 말이다.
"그래, 나도 알아.
사람들이 나보고 뭐라고 그러는지.."
속으로 생각했다.
'잘 넘어가는 여자'
정말 웃기지 않은가.
누구였던가, 멀리서 지나가는 그녀를 보고
그 사람을 끄는 매력에 감탄하면서 하던 말이 생각났다.
"걔는 사귀자고 그러면 다 사귀잖아.
남자친구가 있어도 다른 사람이 사귀자그러면 넘어간대더라.
별명이 괜히 있는게 아니지..
예쁘긴 한데 그런 여자 부담스럽잖아"
"그래도 한번 사귀어 봐, 쉽잖아"
그냥 가만히 쳐다보는 수밖에 내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녀는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고
그녀와 난 친하지않고 그저 인사만 하는 정도의 사이였다.
그녀는 나름대로, 항상 바빠보였으므로
또 나도 좀 바빴으므로 <그녀와는 다른 이유로>
게다가 나 또한 은근한 질투심에 휩싸이기도 했고
당연히 그래야 된다는 듯이 소문을 그대로 믿었으며
친구들이 열변을 토하며, 사람의 겉과 속이 얼마나 다른지
황수정, 전도연등의 연예인들과 비교해가며
그녀를 설명할때엔 맞장구까지 친 일이 있었으니
그녀와 딱히 할 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여느떄처럼 학생회관으로 향하다가 그녀를 만났고
<그 시간에 그녀가 학교에 남아있다는게 의아했고
다른 곳도 아닌 학생회관에 있다는 게 의아했으나>
그냥 스쳐지나가는 소리로
"우리 술이나 한잔 할래?"
라고 무심하게, 당연히 그럴리 없다고 믿었으므로 말했더니
그녀는 흥쾌히 승락하며
-실은 그녀의 의사를 물은 것도 아니고 그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수준이었는데-
"어디서 마실까?"하며 나를 따라오는게 아닌가.
그녀가 그 말을 하자마자 내가 한 말을 후회했으나
그냥 이렇게 예쁜 사람은,
-말 그녀는 너무 예뻐서 사람이 아니라 인형에 건전지라도 끼워서
움직이게 만든 것 같아보였으니까-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동아리방으로 데리고 갔다.
탕수육에 소주를 두병 시켜놓고 앉아 얘기를 하는데
서로의 근황을 가볍게 확인하는 얘기와
자기는 나와 정말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는 둥의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들어왔고 내가 써먹은
식상한 멘트를 지껄이다가
그녀가 갑자기 말한 것이다.
자기에겐 친구가 별로 없다고 왜 그런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이쁘니까 그렇지'고 말해주었다.
그것 말고는 딱히 그녀에게 그렇게 친구가 없을 이유가 없었다.
그녀가 여우같은 짓이나 얄미운 짓을 하지도 않았고
흔히 볼수 있는 예쁘장한 애들이 그렇듯이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언제나 그걸 의식하며 그만큼의 대우를 바라거나,
은근한 자기 과시를 한다거나 행동에 있어서 부자연스러워보일만큼의
과장이나 좀더 돋보여보이게끔 하는 노력을 하지도 않았으니까.
어쩌면 딱히 그럴 필요도 없었을테고.
남자애들한테만 특별히 잘한다거나 내숭이 심하다거나 하지도 않았고
그래도 절대 평범해질 수 없었던 그녀.
그 이유는 정말 그녀가 예쁘다는 사실을 빼고는 다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약간은 측은해보이기도 하고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흔히 하는 고민의 내용과 전혀 다른 얘기를 듣고 있다가
전혀 공감이 되지 않고
그런 말을 하는 그녀를 조금씩 어색하지 않게 훔쳐보는게 더 흥미로웠던 나는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격해지면서 그렇게 말 했을때
놀랐다.
아이처럼 혼자 웅얼거리듯이, 인형에게 소근거리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그 조그만 꽃잎같은 입술에서
갈색빛이 나는 밝은 빛 눈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그렇게 말했을 때.
그녀에 대해 내가 들었던 소문들을
그녀 주위에서 치근덕거리는 낮은 목소리들을 상기했고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모두 나한테 바라는 건 딱 한가지였어."
"나는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사랑해보고 싶었어."
"사랑한다고 믿었고 사랑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렇게 우스워 질 줄은 몰랐는데.."
그녀가 울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작고 예쁜, 새같고 고양이 같은 그녀.
가만히 움켜쥐고 있으면 조그만 심장의 팔딱임이
두손 가득 느껴질 것 같은 새같고 고양이 같은 그녀
새처럼 우는 그녀의 흐느낌 소리.
쓰러지는 여자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안타까운지.
봄밤에 꽃잎이 지는 것처럼 얼마나 가슴 시리게 하는지.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소주를 몇잔 들이키고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그 다음엔 꼭 이말이 필요하지>반,드,시,
너를 알아주는 니 마음까지 보듬어 줄 그런 사람을 만날거라고
사람들이야 워낙 남 말하길 즐기니까 말이 말을 부풀리니까
그런거에 신경쓰지 말라고 그런 시덥잖은 소리만 반복하는 수 밖에 없었다.
수업을 들어갔다가 굵직한 목소리를 들었다.
"아, 외롭다. 봄인데..
여자가 필요해.
모두들 교미를 하는 계절인데"
"..감정까지, 마음 저 깊숙한 곳까지 '교미'할 수 없다면
아예 잘라버리지 그래?"
너무 과격했나?
여하튼 지들이 사랑해서 그녀를 넘어뜨렸다면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못했을테고
그들의 접근조차 이따금 너무 빤해 보이는 구석이 있었으므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때 그렇게 조심성이 없으면 어떻하냐고 따지고 싶다.
그녀에게 사랑이 찾아오기를, 예쁜 사람이니만큼
<속상하게도 그녀는 마음까지 예뻤다.>
예쁘게 사랑하기를 바란다.
여하튼, 거 우리는 남얘기하는거 좀 자제허고
사소하게나마 남에게 상처주지 않고 살아갑시다들.
봄꽃이 폭죽 터뜨리는 소리를 내는 이 계절에
어디서 마음들이 터져서 아파하는 소리나 듣고 있어야하다니.
꽃이 피는 이유는 꽃가루 날리며 사랑하기 위해서라는데.
그래서 가장 아름답게 단장하고 있는거라는데.
어떤 식물학자는 활짝 핀 꽃은 참 섹시하다라고 말했다는데.
으이구... 그녀에게 꽃이 활짝 피기를
당신들도 활짝 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