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자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고통을 무시하고 '평범'을 열망하며, 냉소로 혐오하는 사람들
일베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민낯은 무었을 말하는가?
한국 사이버공간에서 정치나 사회의 실패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냉소와 가차 없는 조롱이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징징기리지 마' 그렇게 고통을 말할 수조차 없는 분위기를 만든다. 김학준이 이 책에서 말하는 '고통의 평범 내러티브'다. 최근에는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시켰어? 네 선택이니 책임도 네가 져야지. 한강 물 따뜻해.' 그렇게 사람이 '망한' 이야기. 사람을 '망가뜨리는' 이야기에 열광하는 사회가 된다.
열광은 '웃음'을 가장하여 전달되지만 메시지는 강력하다. 그 메시지란 사회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홀로 '강력크'해지기를 포기한 약자들은 도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이들을 색출하고 박멸하여 국가를 지키는 것, 그것이 정치가 된다. 능력주의와 각자의 책임론, 그리고 자유인이라는 성숙한 개인에 대한 담론이 사이버공간에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며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서구에서도 볼 수 있는 세계적 현상이다.
많은 이들이 오늘날을 혐오 사회라고 일컫는다.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갈등은 항상 기존의 힘과 대안적 힘이 어느 정도 비등한 수준이 되었을 때 폭발했다. 지금의 이른바 '젠더 갈등'과 소수자 혐오는 바꿔 말하면 한국 사회에 '평범'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며, 자신을 소수자로 인식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장 일베적 언어 표현의 기원을 따져보아도 언더도그의 그것이 아니던가. 일베 이용자들이 언더도그의 언어로 얻더도그마를 비난하나마, 전통적인 '평범한 남성'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의 불만 역시 임계치에 다다랐음을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