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야 봄나들이 가자**
신상숙
예전에는 앞마당에서 어미 닭과 병아리가 노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가정에서 암탉이 알 품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인공부화기가 알아서 다량으로 병아리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어미 닭이 모이를 앞에 놓고, 구구구 어린 병아리 부르는 정겨운 모습과 어미 품속을 삐악삐악 파고드는 노랑 병아리의 구경거리도 사라졌다. 어미 날개 죽지를 비집고 바깥 구경하는 고 녀석들이라니, 갓 부화한 병아리는 어미닭에게 모이 먹는 법도 배우고 노는 것도 배워서 여간 똘똘한 게 아니다. 하지만, 부화기에서 부화한 어수룩한 병아리들은 채소 따위를 주어도 겁을 먹고 도망치기 바쁘다.
어릴 적, 우리 집 닭장에서도 30여 마리의 닭이 매일 알을 낳았다. 금방 낳은 달걀을 꺼 낼 땐 조심을 해야 한다. 암탉들이 둥우리에 있을 때 손을 넣었다가는 손등이 성하질 못하다. 계란 꺼내기를 즐겨 하던 내가 달걀 반찬을 넘보지 않은 건, 달걀찜은 아버지의 몫이고 수란은 오빠의 몫이 어서다. 따뜻한 수란 양쪽에 젓가락으로 톡톡 쳐서 구멍을 낸 후, 후루룩 들이키는 오빠에게 수란 껍데기가 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게 고작이었다. 그건, 화롯불에서 달걀밥이 보글보글 끓을 수 있어서다. 나도 달걀을 혼자 먹을 때가 가끔 있었다. 감기, 몸살 후유증으로 입맛이 달아나도 다른 먹을거리가 별로 없으니, 꼬맹이가 안쓰러우신 어머니께서 그리하시는 게다. 더러는 눈깔사탕과 날계란을 바꿔 먹기도 했다.
닷새 동안 착실하게 모인 달걀은 짚 꾸러미에 묶여서 어머니와 오일장으로 나간다. 어머니는 달걀판 돈으로 막내 딸내미의 학용품과 고무신, 옷가지와 식구들 용돈까지 해결하셨다. 게다가 아버지의 술값도 그 돈에서 충당하셨다. 무럭무럭 자란 암탉들이 알 나을 때가 다가오면, 구구구 소리를 지르면서 알 나을 자리를 찾아다닌다. 이때 가짜 알을 만들어서 둥우리 넣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둥우리에 맘 놓고 알 낳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닭은 여기저기 허투로 알을 낳는 게 아니다. 하나의 알을 낳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그들에게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게 사람이다.
정이월은 암탉들의 알 품기 계절이다. 녀석들의 몸이 더워지면서 더 이상 알을 생산하지 않고, 알 품을 자리를 찾아다니느라 여간 애를 쓰는 게 아니다. 이때, 지푸라기로 다독다독 자리를 만들어 놓고 모아둔 유정 란 20여 개를 넣어 주어야 한다. 스무날 정도 알 품기를 하면서 가끔 알 속으로 머리를 처박고 알을 굴려주기도 한다. 알 굴리기 과정에서 비껴간 달걀은 안타깝게도 곤달걀이 되고 만다. 알 품기 할 때는 쫄쫄 굶어도 여간해서 모이와 물도 먹지를 않는다. 어미 닭이 먹이를 찾아 둥우리에서 이탈하면 알에서 온기가 사라지고 부화율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 때문에 영리한 어미 닭이 달걀 속에서 병아리가 나올 때까지 그 고생을 하는 것이다. 하여, 그 보상으로 어미 닭과 병아리의 줄 탁 동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병아리가 어느 정도 성장을 하면 어미 닭과 분리를 시켜야한다. 어미가 병아리를 품고 있을 때는 달걀을 생산하지 않아서다. 병아리 분리 작업용으로 싸리나무로 만든 발채가 제격이었다. 발채에 병아리를 가두어 놓으면 솔개에게 빼앗길 걱정도 줄어들고, 채마밭을 헤집어 놓지 않아서 더 좋다.
마당 넓은 새집으로 이사 와서다. 어릴 적 추억으로 5일 장에서 병아리 20여 마리를 사 왔다. 헌데, 비가 내릴 때마다 병아리들이 한둘씩 죽어 버리는 것이다. 겨우 수놈 한 마리가 살아남아서 가을마당을 헤집고 다녔다. 기뻐하긴 아직 이르다 복병이 생긴 것이다. 앞 논배미 벼 이삭을 수시로 따 먹었으니, 논임자가 불같이 화를 내는 건 당연한 일, 어쩔 수 없이 불쌍한 내 달구 새끼를 엉터리로 처리하고 말았다.
요즘, 닭장에서 까만 달구들이 푸른색의 달걀을 낳는다. 우리 집 어미 닭이 부화시킨 삐악 병아리가 성장해서 달걀을 낳은 것이다. 10여 마리의 암탉이 낳아주는 달걀은 우리 부부가 우선이다. 나머지는 지인과 자식들의 몫이다. 우리 엄마 김언년 여사님, 고 여우같은 막내딸에게조차 아까워하시던 달걀이 씀씀이 헤픈 손에서 수시로 행복을 퍼 나른다.
첫댓글 저는 경험해보지 못한 닭 이야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달걀 병아리 어미닭 등의 추억이 많으신 햇살타고마리아님이 무척 부럽습니다
늘~ 주님함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클로틸다 자매님, 고맙습니다.
어릴 적 추억으로 이곳 민통선 마을에 정착하였습니다.
시골 사람들의 텃세 살이 힘들어도
나를 따르는 동물들 덕분에 건강 유지하고
잘 살아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또한 병아리에 대한 추억도 있었지만 장성하여 도계장과 닭 가공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었죠 갈산리에서요
시골에선 훔쳐 먹는 저의 간식과 운동회와 소풍때엔 빠지지 않는 먹거리였지요
아련한 추억 거리가 눈이 아픔니다
상숙 샘 고맙습니다
건강한 새해되시고 행복하세요~^^
요즘, 갈산리가 공장 지대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때 땅 좀 사 놓으셨으면 참 좋았을 걸
우리 동네, 농경지가 많이 사라집니다.
논 한 가운데로 양 차선 길이 난답니다.
우리 논배미에도 붉은 깃발이 꽂혀있습니다.
@햇살타고, 마리아 무분별한 개발은 반대합니다 용강리는 전방이라 군저적인 차원에도 길이 확장되는 것도 이유가 될거예요 건강하세묘 샘~^^
어린시절 시골살던 기억이 나네요.
예쁜기억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날 되세요~!
어릴 적 추억으로 지금의 삶이 건강한 것 갔습니다.
아니면 농사 일 힘들어서 죽을 맛 일 겁니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기쁨이 와야 하는데,
슬프게도 개와 닭에게서 기쁨이 옵니다.
하늘 바래기님! 고맙습니다.
줄탁동시.
참 좋은 의미입니다.
병아리 키우신 얘기 정말 잘 써셨습니다.
내가 병아리를 직접 키우는 것 같습니다..
즐거운 월요일 되십시오
이 추운 날에도 달걀을 꺼낼 수 있으니
뭘 더 바라겠습니다.
눈 쌓인 삶이 봄 날처럼 따듯하답니다.
@햇살타고, 마리아 고맙습니다.
눈 쌓인 삶이 봄처럼 따뜻하답니다.
보람찬 삶을 사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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