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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의 정형은 하나라야 한다.
이봉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현대시조는 무엇인가? 정형시인가? 자유시인가? 아니면 자유시도 아니고 정형시도 아닌 제 3의 글인가?
1894년 갑오개혁과 일제 강점기, 민족의 수난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모든 예술과 문화는 ‘고전’과 ‘현대’라는 접두어를 붙여 구별하게 되었다. 고전음악과 현대가요, 고미술과 현대미술, 고전무용과 현대무용, 고시조와 현대시조 등으로 즉 조선한복을 모두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20C초 시조는 거대한 자유시의 파도에 밀려 창(唱)이 탈락된 순수문학으로 ‘현대시조’라는 이름을 달고 다시 태어났지만 자유시를 압도할 정형시의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가사(歌辭)가 아닌 현대시조는 각인각색 중구난방으로 정의되면서 1세기를 보냈다. 그냥 두루뭉술하게 시조라고 하면서 사설시조, 엇시조, 단장시조, 양장시조, 4장시조, 옴니버스시조..,등등 많은 이름과 형식이 명멸했지만 하나도 고착(固着)되지 못하였고 간신히 명맥을 유지한 평시조마저 자유시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형을 잃어 어디까지가 시조인지? 시조의 자리가 위태롭게 되었다.
서점에서도 시조전문지는 거의 팔리지 않고, 개별시조집은 얼굴도 내밀지 못한 채 시조시인들끼리만 무료로 주고받는 책으로 전락하였다. 현대의 급변하는 도시생활에서 자유시와 차별화된 똑 소리 나는 정형시라야 일반인의 눈에 뜨이는데 현재의 시조는 애매한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철저히 외면당하는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시조시인, 평론가, 학자들까지 현존하는 모든 고시조에 관통하는 하나의 정형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지만 실패하였다. 논자마다 다른 10여개의 정형이 출현하여 서로 다투고 있다. 정형이 여러 개면 이미 정형이 아니다.
일찍이 시조시인 이병기는 ‘整形詩’, 이은상은 ‘定型而非定型 非定型而定型(정형시이면서 정형시가 아니며 정형시가 아닌듯하면서 정형시이다)’이라고 하며 시조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3 형태의 글인 양 정의하였는데, 이 역시 고시조의 울타리 안에서 하나의 정형을 찾으려고 하다가 찾아내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문학의 장르에서는 자유시 외에 ‘정형이 없는 시’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재까지 전해오는 고시조에서 가장 많은 형 3434 344(3)4 3543 을 찾아내어 현대시조의 정형으로 삼고 있다. 비록 이 형에 꼭 맞는 고시조는 “전체 3,335수의 2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김제현저 시조문학론 P58)고 하지만 다른 어떤 형보다 많기 때문에 현대 교과서의 정격시조로 자리 잡은 것이다. 다만 엄격한 ‘자수정형’을 지키기 어려움을 이유로 아직까지는 ‘음보정형’이 통용되고 있으나 하루속히 하나로 굳혀져야 할 것이다.
혹자는 시조형식론을 소모적인 논쟁으로 치부하고 “서로를 용납하는 방향으로 가자”고 하지만(‘현대시조의 위상’-유승식-계간 현대시조 2012 봄호 P75), 정형론은 단순한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현대시조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이와 같은 정형의 의미를 모르고 편법으로 시조는 정형을 무시해도 된다는 ‘비논리적인’ 억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 있어 안타깝다.
“시조시인들에게 시조가 지닌 형식의 제약성 따위는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다. 거추장스럽다기보다 그냥 정형이라는 형식을 즐기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격조 있는 시조미학’-김연동-월간문학 2012.1월호 P168)는 글을 보았다.
‘정형은 필요 없는 것인데 시조시인들이 그냥 재미로 정형을 찾는다‘는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 차라리 현대시조는 정형시가 아니라고 하든지, 정격시조는 어려우니까 못쓰겠다고 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고무신
눈보라/ 비껴 나는/
전-/군-/가-/도(全群街道)/
퍼뜩/ 차창(車窓)에 스쳐가는/ 인정아!/
외딴집/ 섬돌에 놓인/
하나/
둘/
세 켤레/
(백색부, 1968)
위와 같이 고시조의 어떤 형에도 없고 전혀 시조의 운율과 모습이 아닌 자유시를 시조라고 우기며 “이 시가 자유시인가? 그 동안 잠잠하던 시조단에 요새 부쩍 시조의 형식론을 들고 나와 시조단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있기에 묻는 말이다. 이런 시조를 놓고 똑똑한 체를 해보시라”(위 ‘현대시조의 위상’-유승식-계간 현대시조 2012 봄호 P69)는 글도 보았다.
이런 기막힌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있는가? 이 작품이 ‘현대시조의 전범’으로 오랫동안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는데 오늘날의 시조가 본래의 모습을 잃고 몹시 왜곡되어 자유시처럼 된 원인을 이제야 알겠다.
이하 최근 몇 달 동안의 시조 마당을 둘러본다.
1. [월간문학]의 작품들
(1) 2012.1월호
연초 문인협회 회원주소록이 많은 지면을 차지한 관계로 작품공간이 줄어 시조는 4편에 불과하다. [秋日](선정주), [겨울 아침](김일연), [한라산](문태길), [하르방](김만수) 모두 깨진 음보가 많아 정격시조는 1편도 없다.
하르방
김만수
입술 다물고/ 왕방울 눈/ 위에는/ 벙거지/ 5433
두 주먹 불끈 쥔 채 수호자로 곧게 서서 3444
비바람 속/ 송송 뚫린 얼굴/
무척/ 수줍구나/ 4624
(3수 중 첫째 수)
음보는 둘째 두고 종장 첫째 마디 3도 지키지 못하여 시조의 자격을 잃었다.
[입술 다물고]? 입은 다물 수 있지만 입술은 어떻게 다무는지 물어 보고 싶다. 시는 내용상 흠이 없어야 하며 표현도 정확해야 한다.
(2) 2012.2월호
시조 8편중 [여보오.37](최권흥)은 2수 정격시조이나 수의 구별이 뚜렷하지 못하고, [걱정스럽다](박영교), [그리움의 순(筍)](강양기), [난해한 사랑](김태은), [상사화](황정희), [빗나간 장난](모상철), [산수유를 바라보니](양분희) 등 6편은 깨진 음보가 많다.
송덕시
하장수
노수의 팽나무여 백련동 보살핀 덕
자강불식 버팀목 의젓한 마을 표품
고아한 청취 풍겨 위풍당당 자란 자태
진주 하씨 입향 선조 심으시고 기른 자혜
의흥 연계 안식풍류 호연지기 길렀으며
오백 년 넘은 지금 생기 활활 타오른다
온 누리 거울이 되어 영보장생 푸르리
이것도 시조인가? 7장 1수인지, 2수 연시조인지, 엇시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시조형이 어느 책에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시조가 갈 데까지 가서 천 길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아 아찔하고 무섭다.
(3) 2012.3월호
이 달에는 비교적 정격에 가까운 시조 9편이 실렸다. [알몸 뜨는 날](李周南), [꿈길](강정부), [노을 빛은](이경자), [농막의 봄](이근구), [잠 못 드는 산사](이종복), [나리님들](박청길) 등 6편은 음보정형을 잘 지킨 작품들이다. [빛이여, 소리여](최종섭), [강가에 서면](유상용) 등 2편도 음보정형을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수의 구별이 없어 한 계단 밑에 놓인다.
눈꽃
박희성
입춘날 눈꽃들이
참말로 곱게 폈다
노을물 젖어들어
산,산마다 도원이다
깔끔한
봄소식 하나
목련 필 때 안단다.
자수는 정격이지만 [산,/산마다]는 2음보이므로 정격시조의 자격을 잃었다. 내용은 산뜻하다. 흰 눈꽃만 해도 고운데 그 위에 노을이 덮어 산마다 살구꽃 핀 것 같이 아름답다. 목련꽃도 곧 피겠다.
(4) 2012.4월호
시조 8편 중 [겨울 벽방산](류상덕), [바다여, 맑은 것을](강문신), [영종도 해당화](한미자), [새벽 성묘길](박영록), [마르지 않는 샘](이민규), [손자(孫子)](이창희) 등 6편은 수,장의 구별이 뚜렷하고 음보율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창(窓)](고성기)은 수의 구별을 허물고 자유시의 흉내를 낸 사이비시조이다.
마음
석성우
마음에/ 달빛 스며들면/ 보살이/ 되고/ 3632
마음에/ 햇볕 스며들면/ 부처/ 되나니/ 3623
달빛도 햇볕도/ 다 벗어나면/ 참사람/ 되나니/ 6533
(2수중 첫째 수)
이런 작품은 어디서 끊고 어디를 붙여 낭송해야 할까? 뜻이 전달되도록 읽자니 정격시조 와 거리가 먼 3행 자유시가 되었다.
시조는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우선 모양이 반듯해야 하며 겉모습이 초라하면 시조잔치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 어렵고 심하면 퇴출당한다.
(5) 2012.5월호
시조 9편 중 [풍경](유성규), [6월 유감(有感)](김몽선), [지친 풍경](강세화), [곡비(哭婢)](오기일), [어머니](裵文平), [서울 가는 길](이재호), [억겹의 세월](이창원) 등 7편은 수의 구별이 뚜렷하고 [무위(無爲)의 날](김월한),[환승](신필영) 등 2편은 수의 구별이 없다.
지친 풍경
강세화
주택가 소공원에 누워 있는 의자 하나
색깔이 홀가분한 나뭇잎도 뒹굴고 있다
이따금 지나던 바람이 안쓰럽게 보고 있다
아무도 안부조차 묻지 않는 그림 한 점
골목길 들머리에 리어카 한 채 앉아 있다
주름살 깊숙한 세월이 가무러져 졸고 있다.
자수정형에는 못 미치지만 음보율이 맞아 읽는데 지장은 없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밖에 버려진 의자, 나뭇잎, 리어카 등은 소외된 소시민이 아닐까? 주택가에서 흔히 보는 지친 도시민의 모습을 본다.
시조의 구(句)는 따로 떼어 놓아도 자립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안부조차], [묻지 않는 그림 한 점]등은 자립할 수 없는 단점을 안고 있다.
(6) 2012.6월호
시조 7편 중 [청자 주병](유자효), [야래향(夜來香)](권영춘), [밥풀 꽃이 아름답다](송양숙), [산수유.2](김희선), [동심속의 사랑방](정운작), [떠도는 섬.2](유 헌) 등 6편은 자수정형에는 못 미치지만 3장 6구 12음보가 뚜렷하고 한두 개 깨진 음보가 있지만 거의 음보정형을 지키고 있다. 내용 또한 소재를 적절히 발굴하여 잘 다듬어 낸 근래에 보기 드문 작품들이라 하겠다.
오래된 사진첩
신대생
긴 시간 잊고 있던 사진을 꺼내 보니
유년의 기억들이 애잔하게 멈춰 있다
옛날을 생각해 보는 가슴 또한 찡하다
소박한 옷차림에 눈빛은 초롱초롱
어릴 적 영상들이 촉촉하게 젖어 온다
이제는 흰머리 이고 어디에서 사는지
그 동안 무심하게 잊고만 살았었지
깊은 밤 달빛 속에 하늘에서 웃는구나
이 세상 떠나기 전에 사진 한 장 찍을까.
3수의 긴 연시조이지만 자수정형을 완벽하게 지킨 정격시조이다.
이와 같이 글자 수를 맞추면 탈이 나는가? 읽기가 껄끄러운가? 정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쓴 글이 더 가치가 있는가?
정격시조의 가치를 모르면서 ‘시조의 형식론을 들고 나와 시조단을 어지럽힌다’고 하는 시조시인이 있는 한 우리의 현대시조는 정형시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자유시에 눌려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2. 계간지의 작품들
(1) [계절문학]<2011겨울호>
시조 12편이 겨울호에 올라 있지만 모두 깨진 음보가 있어 정격시조는 찾아 볼 수 없다. [참는 것이 약](유동삼), [숲](황다연), [연필을 깎다](남궁경숙), [그 자리](김차복), [마중물길](김선희), [5월,누에고치](이전안), [찔레꽃](이숙자), [나비의 꿈](문복희), [바보 밥집](장점환), [불망기(不忘記)](정영진) 등 10편은 수의 구별이 선명하나, [물뫼골 연가](김은숙), [바닷가 소묘](이상야)등 2편은 수의 구별마저 희미하다.
5월, 누에고치
이전안
호박벌은 귓전에서 풀무 소리 잉잉거리고
가느스름 눈 뜬 채 장엄 열반 꽃 둥지 엮는,
한 살이 터억 매조지한 울 할머니 뒤태 같다.
(5수중 다섯째 수)
12음보 중 깨진 음보가 성한 음보보다 훨씬 많은 기형아(畸形兒)로 자유시의 리듬을 타고 있다.
[가느스름]은 [가느스름하다]의 어근이므로 [가느스름 눈]은 [가느스름한 눈]이라야 맞은데 억지로 1자를 뽑아버려 절름발이가 되었다.
[계절문학]<2012봄호>
오랜만에 자수정형을 지킨 정격시조가 보인다. [산행일기(초)](김영덕)는 2수 연시조인데 1자도 가감이 없이 사대육신이 반듯한 체격이다.
[없어서 아름답다](권도중), [의사 안중근](황무굉), [굽다리접시](박영식), [눈물보다 아픈 자리](노종래), [햇살날개](김숙희), [마음의 꽃](송귀섭) 등 6편은 깨진 음보가 많고 [푸른 눈의 후예](전학춘)는 온전한 음보가 거의 없는 사금파리시조이다.
[순(舜)임검,무궁화를 심었습니다](신동익)는 수의 구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임금]을 [임검]으로 표기한 착오까지 범하였다.
앞
문무학
앞장서
이끈다는 것
아프니까
앞이다.
이 짧은 글로 의미전달이 제대로 되고 독자가 감명을 받을 수 있을까? 이와 같이 초,중장을 날려버리고 종장만 남겨 놓은 절장시조는 상체는 없고 다리만 남은 반쪽시조이다.
평시조마저 확고한 자리를 굳히지 못하고 소외되어 가는 마당에 시험용 형(型)인 양장시조나 절장시조가 제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 [현대 시조]<2011겨울호>
[현대시조단]에 게재된 70여편의 작품 중에서 정격시조에 가까운 (A)와 파격시조 (B)를 2편씩 골라 파격을 해도 시조맛이 나는지, 정격시조보다 내용이 좋은지 검증하여 본다. 파격을 해서 형이나 글자 수가 자유로우면 그 만큼 내용이 우수한 작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A)
나무늘보
김월한
느릿 느릿 손짓 발짓
너처럼 살고 싶다
세월도 저만치서
비켜서서 기다리고
내 몸도
아마존 숲속
몰래 숨어 들고 싶다.
별 빛
유 선
희미한 새벽부터
잉태를 시작하여
대낮엔
저 바다에
진통을 펼쳐 놓고
저물녘
침묵을 깨며
눈을 뜨는
갈망이여.
(B)
밝음이의 출생
전학춘
아침이면 뭉클한 햇볕 내리는 바다
느린 청색 물고기들 지느러미 흔드는 바다
성녀의 아랫배는 늘, 그런 바다가 출렁였다.
(4수중 둘째 수)
생명의 숲
황다연
젖은 희망 만큼 솟아 평화가 된 것들
첫새벽 샘물가에 맺힌 간절함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새하얀 시간의 물살
(3수중 둘째 수)
[현대 시조]<2012봄호>
이번호 [현대시조단]에는 90여 편의 많은 작품이 실리고 음보정형에 충실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보기 좋다. 특히 1자도 가감이 없는 자수정형의 정격시조도 여러 편이 있어 시조단에 새 희망이 보인다.
파리채 대감
-공천을 보며
채명호
수만번
피를 묻혀
세운공 어이하고
뒷전에 밀려앉아
처분만 기다리나
공신록
기웃 하여도
이름석자 없구나
선거철에 힘 있는 정당의 공천을 받아 입신출세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였지만, 애타게 기다리던 공천 소식이 없어 허탈감에 빠진 대감(?)의 심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만 선
김두만
석양은 부글부글 늦도록 술을 빚고
치솟는 그리움은 술이랑 만선의 꿈
숙성한 일몰의 바다 일렁일렁 취한다.
물새도 흥겨워서 뱃전을 매암 돌며
우람한 뱃고동에 펄렁인 오색 깃발
저 만선
기우뚱거려
술잔 가득 넘친다.
석양에 붉게 물든 바다 이랑으로 만선의 배가 뱃고동을 울리고 기우뚱거리며 들어오고, 그 위에 술이 가득 넘치는 술잔이 오버랩되어 있다. 한 폭의 복합영상 같다.
목련이 필 때
이동림
한 올의 치장 없이
잎 하나 펼쳤을 뿐
숨죽인 호흡으로
고요를 쥐락펴락
묵언의 아름다움이
완성되는 이 봄밤
숨죽인 고요속에 목련 꽃잎 하나 펼쳐지는 장면을 잘 묘사하고 있다.
한 편 다른 구석에는...
조선 밥상
김창현
소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만든
통영, 나전칠기, 운각, 자개무늬
운학, 십장생, 亞, 절(기호), 당초문
버선 코 살짝 올려 모양 내고
상다리 구멍 파낸 옻칠 빛
나주, 해주, 꽃모양 밥상.
시조잔치의 불청객이 볼품없이 앉아 있다. 두 말 할 필요 없이 정격시조와는 천리만리 거리가 멀고 횡설수설하는 자유시이다.
3. 중앙시조백일장의 작품들
(1) 12.1월 심사위원: 오승철 강현덕(대표집필 강현덕)
<장원>
백악관 초대 손님 (강송화)
백악관 성탄 전야 블루룸의 귀한 손님// 아비에스 코리아나* 이름표가 선명하다//
태평양 건너 온 나무 몽근 잎새 푸르고//
황토색 살갗 밑엔 아버지의 피가 돈다// 해 돋는 엄마 나라 아랫목에 손 녹이고//
윌슨가家 아들이 되어 바장이던 오십 년//
영주산 제주백단 줄기 세워 잘 있는지// 천 년을 지킨 기상 죽어서도 다시 천 년//
칼바람 살을 찢어도 내 핏줄은 뛰고 있다//
버려진 외떡잎은 이름 하나 없었던가? // 록키산맥 치마폭에 핏물로 쓴 ‘코리아나’//
불 켜진 삼색 방울이 온 누리를 밝힌다//
*아비에스 코리아나(Abies koreana Wilson): 구상나무의 학명
<차상>
출근길
-제천 쌍용공장 - (최승관)
꼬리 문 어둠 속에 새벽별 명료한데// 재색 담 철문 여는 잠 덜 깬 발소리들//
건조한 방범등 불빛 전깃줄에 널렸다//
오백 년 파 먹힐 산 긴장돼 웅크리고// 시멘트 가루 담은 트럭들 오가는 길//
백 년도 채 살지 못할 출근도장 세 글자//
동 축을 감고 도는 피댓줄 혈맥 따라// 척추를 타고 내린 온기는 절절하다//
막 꺼낸 오백 년 시름 오늘 첫 삽 떠낸다//
<차하>
테라코타 (이종현)
그리스 타나그라 지방에 살고 있는// 한무리 테라코타가 팥소를 품에 안고//
사거리 손수레 위로 따끈하게 파닥인다//
물장구 유희들을 한 움큼 움켜쥐다// 빵틀 속에 꼬리치며 엎치락뒤치락//
가스불 원탁 맴돌다 설익어 깃든 시간//
밀반죽 헤엄치던 일상의 하루해가// 도심의 물길 속을 거슬러 터를 잡다//
밀랍 속 생의 줄기를 구워 담는 붕어빵//
* 심사위원 심사평
백악관 트리 된 구상나무 - 독일로 간 광부들 떠올려
장원작은 고향을 떠나 지독한 노동과 향수병에 시달렸던 60년대 독일로 간 우리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떠올리게 하여 애잔해진다. 특별한 수식이나 묘사 없이도 우리 것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훌륭하게 녹여냈다.
차상은 단 한 글자의 변형도 없이 시조가 가져야 할 기본 음수율을 정확하게 지켜냈다. 화자는 석회석을 가득 안고 있는 산 아래 시멘트공장으로 출근한다...삶을 지켜내려는 현대인의 현실이 잘 드러났다.
차하는 붕어빵을 그리스 유물에서 많이 본 테라코타처럼 생각한 것이 재미있다. ‘팥소를 품에 안고’ ‘따끈하게 파닥인다’ 같은 구절은 생동감이 넘친다.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자수정형에는 못 미치나 음보정형을 잘 지켜낸 작품이다. 우리의 구상나무가 백악관에 성탄절 장식품으로 등장한 것을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자랑하는 내용이지만 사대주의적 심상이 약간 비치고 있다(심사위원 심사평과는 반대). 신인에게는 무리한 요구일지 모르지만 자연속의 구상나무에서 숨어있는 시적세계를 찾아내어 작품화하였더라면 더욱 좋았겠다. 블루룸, 아비에스 코리아나, 윌슨가家 등 시어는 그 자리에 꼭 있지 않아도 될 고유명사들이므로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작품의 질을 떨어트린다.
차상작은 3수의 장시조이지만 1자도 가감 없는 완벽한 자수정형의 정격시조이다. 파격으로 오염된 신인 백일장에 이 정도의 정격시조가 응모된 것이 놀랍다.
내용은 어려운 취직문을 뚫고 시멘트공장에 첫 출근하는 기분을 형상화한 것으로 [오백년 파 먹힐 산]은 신선한 충격을 주는 시어이며, 이와 나란히 선 [막 꺼낸 오백 년 시름 오늘 첫 삽 떠낸다]는 오백년 같았던 긴 시간 미 취업상태의 시름을 오늘 꺼내어 첫 삽으로 바꾸는 기쁨을 노래한 절창이다.
이 작품은 시조의 형식과 내용 어디로 보나 장원작보다 훨씬 낫다.
차하작은 약간의 깨진 음보가 있어 정격에서 벗어났다. 먼 나라의 풍물 테라코타를 제목으로 내세웠지만 내용은 붕어빵이 주인이다. [타나그라 지방], [테라코타] 등 생소한 시어는 유식한 체 하며 독자들을 홀리고 사전을 찾아야 하는 부담만 줄 뿐 작품의 질을 높이는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2) 12.2월 심사위원: 오승철 강현덕(대표집필 오승철)
<장원>
외규장각 의궤 (김석인)
갓 쓰고 도포 날리며 행서체로 눈을 뜬// 그믐밤 지워버린 등불 같은 가시연꽃//
천 년 더 날숨을 쉴까,// 물 위에 들숨 얹어//
인질로 끌려가서 불어로 꿈꾸는 동안// 5대째 벗어둔 의관 앉은 채로 눈이 멀고//
내 깜냥 이제 여기까지// 사뭇, 슬픔이 인다//
환향의 길에 오른 여인들의 행색처럼// 차마 버리지 못할 수모 겪은 저 몸뚱이//
그리운 말의 지문을 찾아// 겉더께를 닦아낸다//
온몸이 먹먹해도 향불 같은 마음으로// 끝끝내 잊지 않고 찾아온 너를 위해//
천 년 더 들숨 쉬고 싶다,// 허공에 날숨 던져//
<차상>
숟가락, 보시에 관한 짧은 필름 (류미월)
허름한 국밥집에 번을 서는 밥숟가락// 간단없이 목구멍을 들명나명 공양해온//
뜨겁게 몸을 녹이는 봉긋 솟은 손등이다//
감자 싹 파란 멍울 도려내며 잠재우고// 날카로운 칼날대신 예를 갖춘 굽은 허리//
얇아진 가장자리엔 눈빛 절로 반짝인다//
두레상에 둘러앉아 달그락 화음을 낼 때// 이야기꽃 피워 올린 그 몸짓 따사롭다//
모질게 닮아지도록 배가 불룩! 큰 보시//
<차하>
눈의 탁본 (김경숙)
뿌리 깊은 것들 모두 고요를 털어내고// 바람의 안부에 낭창낭창 몸을 열 시간//
결 마른 산벚나무 가지 위 여백을 채우는 눈//
누군가에게 여백은 점자로 읽혀져서// 시린 가슴 녹여낼 하롱하롱 꽃이 피고//
감격의 악수를 청한 첫 직장 초대장 되고//
큰 대자로 엎어져도 영화가 되는 기념적인 날// 작은 다짐 밑줄까지 뚜렷하게 찍히도록//
모처럼 본심을 내보인 흰 세상을 껴안다//
* 심사위원 심사평
의궤·환향녀 엮은 장원작 만만치않은 내공 보여줘
김석인의’외규장각 의궤’는 서사적 구조를 탄탄히 구축한 수작이다. 145년 만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 길 여인들을 동시에 보아내는 눈은 이 작가의 저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엿보게 한다.
류미월의 ‘숟가락, 보시에 관한 짧은 필름’은 한 가정의 내력을 그린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숟가락이 우리 몸을 살리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잘 표현해냈다.
김경숙의 ‘눈의 탁본’은 둘째 수 ‘누군가에게 여백은 점자로 읽혀져서’와 같은 발견의 눈을 높이 산다.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깨진 음보가 많다. 외규장각 의궤를 인질로 끌려가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돌아 온 환향녀로 묘사한 것은 초점이 맞지 않은 잘못 된 비유이다.(심사위원 심사평은 정 반대) ‘강도한테 납치당해 타향살이를 했지만 후한 대접을 받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수모를 당한 것이 아닌) 고귀한 몸’으로 묘사해야 옳을 것이다.
차상작은 약간 깨진 음보가 있지만 음보정형에 가깝다. 국밥집, 감자싹 도려내는 곳, 두레상 등 여러 장소에서 활약하는 숟가락을 재미있게 그려 내었다.
차하작은 정격에서 크게 벗어났다. 내용도 추상화되어 독자에게 무엇을 전해 주려는지 초점을 잃었다.
(3) 12.3월 심사위원: 오승철 강현덕(대표집필:강현덕)
<장원>
막차를 타다 (김태형)
“이 열차는 신도림행 마지막 열차입니다.”// 적막의 동맥 끊는 날카로운 안내 메시지//
플랫폼 짚은 발등 위// 갈 곳 잃은 바람이 인다//
운세 같은 시 한 편 떠받치는 스크린도어// 지퍼를 벌리는 문 하루를 닫는 사람들//
어디로 가는 길일까// 긴 한숨의 꼬리가 길다//
가끔은 헤아려본다 막차에 올랐다는 것// 내일의 정거장에 그만큼 가까워지는//
거룩한 부담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끼는 곳//
“이번 역은 이 열차의 종착역인 신도림입니다.”// 이파리 같은 차창들 승객 떠난 옹이진 자리// 연둣빛 철길 사이로// 내일의 숲 눈부시다.//
<차상>
벌집 (안준혁)
불투명창 사이사이 씨앗처럼 영근 햇살// 햇빛마저 발목 잡힌 회현동 쪽방촌에//
온종일 구걸한 꿀을 고스란히 털어 놓는다//
틈과 틈을 맞대놓은 방// 알을 까듯 움츠리며// 날개를 반만 편 채 앓아누운 일벌들//
제 속에 꿀보다 진한 삶의 독을 품고 산다//
<차하>
봄동 (강영미)
칠순의 발자국이// 텃밭으로 들어갔다//
철없는 눈발이 또// 그 뒤따라 들어갔다//
샛노란// 손등 위에서// 배추꽃이 피었다//
제 자리 묻고 또 물으며// 한발 한발 딛는 아침//
겹겹이 눈 헤치고// 봄동 한 포기 뽑아 드시는,//
입춘녘// 둥근 밥상에// 숟가락이 푸르다//
* 심사위원 심사평
장원...젊은 피가 느껴진다....오늘의 끝자락은 ‘내일의 정거장’이 가까워진다는 메시지 전달이 어두운 막차를 ‘연둣빛’ ‘숲’으로 환치시키는 재기와 함께 신선하게 읽혔다.
차상...화자는 그 아픈 현장을 묘사와 진술을 적절히 버무려냈다.
차하는... 한 편의 동화를 읽는 듯 맑다... 율격도 경쾌하게 몸에 착착 감긴다.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깨진 음보가 많다. 첫째 수 종장 첫 구는 [플랫폼 짚은/ 발등 위]라 읽어야 하므로 시조의 절대 요건인 3.5보법을 벗어나 치명상을 입었다.
[긴 한숨의 꼬리가 길다]는 형용사 ‘길다’를 중복 사용하여 시어를 낭비하였다.
차상작 또한 깨진 음보가 많은 파형시조이다. 벌집 같은 쪽방촌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 내었다.
차하작 ‘봄동’은 깨진 음보도 문제이려니와 무슨 의도인지 첫째 수 종장과 둘째 수 초장을 묶어 수의 구별을 없애고 5연 14행의 자유시형을 취하였으므로 시조의 자격을 잃었다.(혹시 원고와 다른 편집 실수 아닌지?) 심사위원의 심사평이 무색하다.
(4) 12.4월 심사위원: 권갑하 강현덕(대표집필:강현덕)
<장원>
몽당연필 (변우연)
검은 심, 너의 저녁이 육각형으로 저문다// 깨알 같은 슬픔을 질긴 실선으로 쏟아낸다//
척추가 닳고 닳았다 한 뼘의 몽당연필// 제 몸으로 움켜쥔 못 다한 시한부 삶//
흔적과 손때 묻은 흑심 침묵으로 피어난다// 백지에 흘린 검은 피 모든 것이 유언이다//
<차상>
달덩이 양변기 (엄미영)
단단한 파편들을 수장하기 위해서// 물을 품은 달덩이 양변기에 앉았더랬죠//
이울다// 차오르기를// 무한 반복 재생하는//
철없던 스무 살 적 눈물뿐인 사랑도// 엉덩이를 보이고도 천연스런 거기선//
미쁘게// 랜덤 기억을// 쏟아내곤 했더랬죠//
편집된 영상으로 오늘이 환해진다면// 버튼을 꾸욱 눌러 별 무더기 쏴아아//
기꺼이// 밤하늘 가득// 밑거름을 줬더랬죠//
<차하>
초승달 (윤애라)
추스르고 추슬러도// 떨어지는 마음이다// 그래도 참아보자고// 쳐다 본 밤하늘에//
우주를 잡았다 놓은// 신의 환한 손톱자국//
* 심사위원 심사평
손에 잡힐 듯한 감각 탁월 노년의 쓸쓸함 보여준 수작
장원작...심상이 두드러지고 감각이 손에 잡힐 듯하다. 작품 전체를 의인화하여 상징성을 더욱 높였다. ‘척추가 닳고 닳’은 노년기의 쓸쓸함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수작이다.
차상은 상상력과 해학성이 돋보이는...구어체로 엮은 이 작품은 참 천연덕스럽다.,,,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차하는...깔끔하고 명징하여 사랑스럽다. 힘든 삶...자꾸 ‘떨어지’려는 ‘마음’... ‘그래도 참아보자고 쳐다본 밤하늘’에 ‘신의 손톱자국’ 같은 초승달이 떠있다.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깨진 음보가 많을 뿐만 아니라 2수를 붙여 수의 구별을 없애버린 1연 6행의 자유시라 함이 마땅하나, 내용은 노년의 인생을 몽당연필로 형상화하여 슬픔, 닳은 척추, 침묵, 유언 등을 점묘(點描)한 무난한 작품이다.
차상작은 깨진 음보가 약간 있으나 수의 구별이 뚜렷하고 음보정형에 맞는 시조이다. 시적화자는 익살스런 ‘얄개’로 양변기와 배변을 쉽고 재미있게 그려내었다. 웃음을 자아내는 시적 표현이 돋보이는 우수작이다.
차하작은 정격시조는 아니지만 초승달을 [신의 손톱자국]으로 묘사한 재치가 돋보인다. 그러나 ‘역경에 처한 현실에서 보는 초승달보다는 밝고 긍정적인 기분으로 보는 초승달을 그려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끝)
* 현대시조 2012년 여름호에 게재
첫댓글 시조는 평시조의 3434/3434/3543입니다. 음보의 잣수를 못 맞출 경우에는 구의 잣수를 계산하여 초장 두번째 구 43. 중장 두번째 구 43. 종장 두번째 구 34 로 하여 창작을 하여 구의 잣수를 맞추고. 항상 초장과 중장의 첫구 34와 종장의 첫구 35는 맞추어야 정격으로 볼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정격 시조는 어디 까지나 3434/3434/3543을 지키고 고수 해야 수준 높은 고유의 문학 장르로 정착 할 것입니다. 저도 이제는 3434/3434/3543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3434 344(3)4 3543 은 어느 시조시인도 부인할 수 없는 시조정형입니다. 여기서 한 자라도 가감하면 정격이 아니라고 반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1%의 반박도 받을 염려가 없는 작품(정격시조)을 써야 합니다.
이봉수, 김성호 사백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고시조, 현대시조를 논할 때가 아니라 봅니다
우리도 하루빨리 한시, 하이꾸처럼 완전 정격화하여 이것만을 시조로 토착화 해야 된다고 봅니다.
아니면 설에 설을 낳고 하세월로 요원하여 시조가 정형시조가 될수 없습니다.
정녕 아니라면 크게 정형시조, 자유시조로 장르를 달리해야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