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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활동지원사 권리를 찾아서(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스크랩 <연재> 6. 쉬지 않고 일했던 2년, IMF로 무너지다.
코난 추천 0 조회 59 14.11.04 19:4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할인서비스 사업...

 

1996년 11월, 나는 퇴직금과 조금 모아둔 돈을 합쳐 할인서비스사업에 투자겸 입사를 했다. 할인서비스사업은 전국에 있는 호텔, 콘도, 놀이공원, 이미용, 꽃집, 음식점 등 본사와 할인서비스 가맹점으로 제휴한 곳을 고객이 본사에서 발급한 카드를 구입하여 가맹점을 이용하거나 본사와 제휴한 회사의 고객들이 가맹점을 이용할 때 이용금액의 일정부분을 할인받는 서비스이다, 수익은 크게 세가지로 할인카드 판매비, 체인점 가맹비, 회원사 제휴로 인한 수익 이였다.

 

사무실이 서울에 있는 강남 테헤란로에 있다 보니 거처할 곳을 찾아야 했는데 사장님이 분당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같이 지내자고 해서 분당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사업이 초창기라 투자자들이 모여서 앞으로 이 사업을 어떻게 확장 시킬 것인지, 서울에 구역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가맹점은 어떻게 모집할 것인지 회의하는 날이 많았다.

 

처음에는 서울에 있는 일부 구에 지사를 내어 가맹점을 모집하려 하였으나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 본사에서 직접 영업사원을 뽑아 법인 영업팀과 일반 영업팀으로 나누어 가맹점을 모집하게 되었다. 6개월 정도 영업사원이 가맹점을 만들고, 할인카드와 할인가맹점을 안내하는 책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4대 일간지 광고와 수시로 열리는 창업박람회에 홍보부스를 만들어 할인서비스사업을 홍보하고, 지역 체인점도 모집하였다.

 

1997년, 여의도 창업박람회

 

평일에는 사무실로 출근하고, 주말에는 창업박람회에 참석하여 회사도 홍보하고, 체인점 모집 상담도 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빠르게 지나갔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니 일간지와 방송사에서 인터뷰 요청도 많이 왔다. 그렇게 언론에 이슈가 되면서 전국에 40개가 넘는 체인점이 생겼고, 한글과 컴퓨터, 한겨례신문사, 천리안 등 회원들이 많은 곳과 연달아 제휴도 맺게 되었다.

 

그런데 1997년 12월, 갑자기 대한민국에 IMF가 불어 닥쳤다. 우리 회사는 처음에 큰 영향이 없었으나 1998년 봄이 지나면서 서서히 위기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장님은 집과 여러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업을 하였는데 IMF사태로 인해 은행은 대출 상환을 독촉했고, 거래처와는 현금이 돌지 않아 사업은 급격히 어려워 졌다. 몇 개월을 어렵게 버티고 버텼지만 1998년 7월, 회사는 결국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부도가 나고 말았다.

 

2년 가까이를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런데 IMF를 만나 회사가 너무나도 쉽게 부도가 나니 황당하기도 했고, 허탈함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다.

 

폭우로 인한 수해,

 

다른 직장을 알아 봐야 하는데 당장에 갈 곳이 없었다. 그런데 사장님이 얼마 전 결혼한 와이프의 부모님이 서울에서 가까운 장흥유원지에 음식점과 수영장을 같이 운영하는데 여름 시즌이라 일손이 부족한데 가서 좀 쉬기도 하고, 일도 도와주면 어떻겠냐고 해서 양주시에 있는 장흥유원지에 가게 되었다.

 

장흥유원지에 가보니 조금 큰 냇가 옆에 아담한 수영장이 있었고, 주변 경치도 좋았다. 음식점과 수영장을 같이 운영하는 사장님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매점을 관리할 사람이 없으니 매점을 맡아 일을 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장님은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사격부분 금메달을 딴 이은철 선수의 부모님이었다. 그래서였는지 거실에는 금메달을 비롯해 각종 트로피가 진열장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방갈로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고 다음날부터 일을 했다.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같이 일하는 안전요원들과 수영장입구와 수영장에 떨어진 나뭇잎 등 쓰레기를 청소하고, 8시쯤 아침을 먹고, 9시가 넘으면 매점에 앉아 일을 보다가 6시가 되면 하루 일과를 마쳤다.

 

무더위가 다가오자 수영장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그렇게 2주정도 일을 하니 체대를 다니고 있는 안전요원들과도 친해져서 일과가 끝나면 같이 당구장에 가거나 한 방에 모여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7월 말이던 어느 날, 숙소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새벽에 갑자기 방문 틈으로 물이 솟구쳐 올랐다. 그때 나와 같이 자고 있던 안전요원이 방문을 열려고 했으나 아무리 세게 밀어도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순간 방문을 열지 말라고 하고, 바로 뒤에 있는 창문을 뜯었다. 그리고 밖을 보니 주변이 다 물에 잠겨있었다. 마치 하늘이 뚫린 것처럼 엄청난 폭우로 인해 물은 순식간에 불어났고, 빨리 탈출을 해야 했다. 그래서 간단한 짐만 챙겨서 바로 창문으로 탈출을 했다. 물에 들어가니 가슴까지 차 올랐다. 그런데 다행히도 유속이 빠르지 않아 50m쯤 물길을 헤치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물 밖으로 나와 근처 주유소로 가보니 다행히도 사장님 가족과 다른 안전요원들도 모두 무사히 탈출해 있었다. 그리고 한 30분쯤 지났을까? 물은 순식간에 불어나 숙소인 방갈로와 집이 모두 물속으로 잠겨 버렸다. 조금만 늦게 탈출 했어도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이었다.

 

아침이 되서야 폭우가 그쳤다. 그래서 주유소 옥상에 올라가 냇가 건너편을 보니 마을이 모두 물에 잠겨 있었고, 마치 거대한 강을 보는 듯했다. 나중에 기사를 보니 이날 내린 폭우로 인해 이 지역 주민과 여행객 등 24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하루가 지나고 물이 빠지자 동네 일대는 마치 전쟁터와 같은 모습이었다. 수영장과 음식점은 폭우에 쓸려온 진흙과 각종 쓰레기로 가득 차있었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거할 곳이 마땅치 않아 안전요원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연세가 있으신 사장님 내외는 구파발 근처에 있는 모텔에서 잠시 지내게 되었다.

 

음식점 안에 있는 집에는 그동안 이은철 사격선수가 우승한 트로피와 금메달 등 각종 메달이 있었고, 현금과 귀중품도 있었다. 그런데 나이 드신 분들을 두고 나 혼자만 갈 수도 없어서 주유소에 있는 텐트를 빌려 음식점 옥상에 텐트를 치고, 그 곳에서 지내며 수해 복구를 도와 드렸다. 며칠이 지나니 군대와 각종 중장비가 동원되어 수해 복구는 빠르게 진행 되었고, 그렇게 2주가 지나서야 원상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복구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더 이상 도와드릴 것도 없는 것 같아 사장님께 말하고, 짐을 챙겨 가려고 하니 이은철씨가 와서 그동안 힘든데도 도와줘서 고맙다며 “다음에 꼭 식사 한번 같이 하자고”말했다. 그렇게 인사를 뒤로 하고, 나는 서울이 아닌 이천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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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11.22 23:34

    첫댓글 착하기도 하시네요
    저는 코난님의 글에 의지에 푹 빠진 두아들의 엄마입니다
    혼자 보기가 아쉬워서 글을 찾아다니며 댓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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