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 나니 남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침대 위에 덩그러니 저만 있었습니다.
필경 새벽운동을 나간 거죠.
갑자기 홀로 된 것처럼 마음이 썰렁하더라구요 .
아침기도를 바치고 앉아 있는데
잠결에도 새벽 다섯시 남편이 나갈때
제가 어떤 자세로 자고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매일의 일에 지쳐 잠들어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천진난만한 그의 웃음이 사라지고 무심한 표정으로 자는 그 모습...
비록 제가 그를 사랑하긴해도 아주 멋있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요.
역지사지라고 그가 잠들어 있는 저를 바라보면서 어떤 느낌이었을까 .....
남편이 나가는 줄도 모르고 곯아 떨어진 제가
아마 처음 만났을 때의 스무살 귀여운 여자가 아니라
중년의 퍼진 몸매로 무표정하고 무심히 널부러진 저를 바라보며
결코 여성을 느끼진 못했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나이 든 여성이 아름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깨어 있는 지성을 추구하는 것과
인생 살면서 깨달은 삶에 대한 지혜를 축적시켜
자신을 관리하는 작은 노력만이 그를 위한 유일한 배려일 것 같았습니다.
저녁을 차려주고 늦은 저녁에 전 시내에 나갔습니다.
운전 중에 지나치는 예쁜 속옷가게를 기억해 내고.....
가게에 가니 제가 즐겨 입던 펑퍼짐한 면팬티는 하나도 없고
그저 야실야실한 레이스가 여기저기 달린 속옷과 잠옷들이 그림처럼 고왔습니다.
만지기만 해도 근질거리는... 하여간 이쁘긴 합니다.
아가씨들이 몇 명 서성거려서 차마 드러내진 못했어도
옷을 고르는 안목만은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으로
중년의 제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주인의 무심함에도 개의치 않고
너무 요란하지도 않고 너무 밋밋하지도 않은 속옷을 골라 내었습니다.
그제서야 살 의사가 있음을 확신 했는지
주인이 추천도 해 주기 시작했고
가게엔 '중년 아줌마 갱생의 밤'이 열렸습니다. ^^
브래지어와 팬티를 셋트로 한 속옷을 몇 벌 고르고 난 후
전 하얗고 까만 레이스를 단 물방울 무늬의 잠옷 한 벌도 마지막으로 골랐습니다.
가게를 나오며 전 갱년기가 다가오는 저를 인정합니다.
그때가 되면 여성들이 더 남성화 된다는 기사를 떠올리며
이제 의지적인 여성을 추구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레이스 달린 잠옷을 입었다고 더 여성스러워지지는 않겠지만
제가 노력을 한다는 건 남편도 알아 주겠죠?
제가 사온 것을 풀러서 장에 담는 걸 본 저희 남편
"왜 갑자기 그런 걸 사오고 그래?"
호기심에 차서 궁금해 했는데
"여보, 저 나이가 들어 점점 타성에 빠져 살아갈 거 같아.
근데 이제 노력하지 않으면 점점 제가 남성처럼 씩씩해질 나이라
여편네가 아닌 여자가 되려고.....
사실 어렸을 때 제 나이의 여자들에게서 난 여자를 느끼지 못하고
엄마, 그리고 아줌마만 느꼈거든.
난 여자이고 싶어.. 근데 나 예뻐 보여요?"
거울 앞에 선 제가 생뚱맞게 여겨질 정도로 다른 사람이 서 있습니다.
젬마라는 여자로....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치매에 걸리지 않는 한 저는 여자로 노력하며 살기로 결심 했습니다.
주님이 창조하신 세상 한 귀퉁이의 엑세서리처럼....
우리 가슴 한 쪽에 반짝이 코사쥬하나 달아 자신을 돋보이게 노력하듯
제가 주님의 반짝이는 보석 귀걸이나 목걸이 역할을 하는
그런 존재가 되려고 노력을 해 보겠다는 뜻이죠...
다소 교만하긴 하지만 이 나이에 여자가 되는 게 뻔뻔한 꿈은 아니잖아요?
큰일 났습니다.
우리 남편 앞으로 보석구경 흔하게 하게 생겼습니다.
딸 없는 우리 집, 남자들만 셋인 우리집에선
제가 온 세상 여성을 대표하는 위인입니다.
아들에겐 여성에 대한 개념을 만드는 엄마...
남편에겐 여성이란 어떤 성적 정체성을 가졌나를 보여주는...
일도 잘하고...멋도 내고...치장하기 좋아하는
저만의 노하우로 저희 집에서 세계 여성을 대표하겠습니다. ^^ ㅎㅎ
참, 살랑거리는 레이스 속옷 입어보니
생각보다 편하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던데 적극 추천해 봅니다.
첫댓글 설악산에서 흘러 나오는 맑고 새파란 물소리 처럼 티없는 젬마님의 외침, 잘읽고 갑니다.
역시 언니네요! 이 글을 통해서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언니 고마워요!!!
여편네가 아닌 여자가 되려고.... 합니다. 해를 넘기면 마흔을 맞는다 하니 더욱 공감하는 부분이예요. 나의 입과 눈빛에서 나오는 언어들에서도 여성의 보석들이 흘러나오게 하려하는데.... 그언어들안에도 주님이 함께 해주셔야 되더군요.
지기님!! 원래 여자셨어요..목소리 웃음소리 어디하나 남성같은 면을 갖춘데가 없는데 왜그러실까..마음이 그러셨나요?^^*
그런가? 쑥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