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突厥
583년 ~ 657년
돌궐 제국이 동서로 분열된 후, 서쪽에 세력을 잡고 있던 돌궐. 초창기에는 중국 북쪽 지역의
동돌궐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지만 이후 완전히 분열되었다.
동로마 제국의 기록에는 이스테미 야브구
[1](Istemi Yabgu 혹은 Istämi)라고 하는 실점밀(室点密)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돌궐의 기반을 세운
부민이 죽자 돌궐은 이스테미는 서돌궐을, 부민의 아들인 무칸 카칸(목간가한 : 木杆可汗)은
동돌궐을 나누어가졌는데, 서돌궐이 동돌궐에 형식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형태였다고 한다.
철륵의 남은 부족을 박살내고 바스밀(Basmil), 카를룩(Qarluq)등의 부족도 손을 봐주었고, 사산조 페르시아의 군주이던 호스로우 아누시르반1세(Khosraw Anuchirvan I)와 동맹을 맺고 에프탈을 박살내고 아무다리야 강을 국경으로 삼아 실크로드에서 끗발을 날렸다.돌궐은 실크로드 교역에 관심을 가져 소그드 상인 마니악이 이끄는 사신단을 사산 왕조에 파견했지만 사산 왕조는 돌궐의 실크로드 교역 개입을 거부하고 사신단이 갖고 온 비단을 공개적으로 불태워버렸다. 돌궐은 이란을 경유하지 않는 교역로를 트기 위해 568년에는 마니악을 동로마에 보내어 콘스탄티노플까지 갔다오기도 했다. 유스티니아누스 2세 황제에게 비단 파는 이야기를 했는데, 돌아갈때 제마르코스라는 동로마 장군이 따라와서 서돌궐 칸인 디자불로스를 만나고 가기도 했다. 동로마 측 기록에 따르면 제마르코스는 환대를 받았고, 사산 왕조에서 온 페르시아 사신들을 일부러 동로마 사신들이 보는 앞에서 박대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동로마와 서돌궐은 꾸준히 교류해서 6세기 후반의 역사가 메난드로스의 기록에 따르면 568년부터 576년까지 서돌궐에 다섯 번 사신단을 파견했고 규모는 백 단위가 넘었다. 627년에는 양국 연합군이 티플리스(지금의 조지아)를 포위공격하기도 했다. 수백년 뒤 동로마가 서돌궐의 후손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당한다는 걸 알면 아이러니하지만 서돌궐 시절에는 대체로 사이가 좋았다.
서돌궐이 실제로 완전히 동돌궐과 분열된 것은 아파 카칸{Apa Qagan)때였다. 아파 카칸의 본명은 다르빈인데, 동돌궐의 무칸 카칸이 죽고 형인
타파르 카칸도 죽은 뒤에 후계자로 지명되었으나 모친이 돌궐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후계자가 되지 못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그리하여 동돌궐의 군주가 된 인물은
샤폴루 카칸이었는데, 이스테미의 아들 타르두를 서돌궐의 칸으로 임명했다. 아파 카칸은 당분간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샤폴루 카칸은 수나라를 공격했는데, 마침 반란이 일어나서 재미도 못보고 돌아와야 했다.
샤폴루 카칸은 아파 카칸을 반란의 주동자로 몰았다.
그러자 아파 카칸은 서돌궐의 타르두에게 달아났고, 어떻게 꼬드겼는지 타르두는
샤폴루 카칸과 전투 개시, 크게 당한
샤폴루 카칸은 수나라에 귀부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타르두는?
아파 카칸이 몰아내버렸다....그리고 이번엔 사산조와 격돌하기 시작했는데, 일단 두 나라는 에프탈을 멸망시킬 당시 국경으로 타협한 옥수스 강
[2]에서 대치하였으나 서로 신경전이 끊이지 않았다. 588년 결국 샤바에게 대군을 이끌게 하고 한번 쳐들어갔으나 사산조의 장군
바흐람 추빈(Bahrām Chobin)
[3]에게 떡실신을 당하며 대패, 샤바는 전사하고 오히려 역공을 당한데다 동쪽으로는 중국
수나라에게까지 공격을 받아 상황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619년에는 사산조 페르시아가
동로마 제국과 치열하게 다투는 통에 뒷치기를 해서
이스파한까지 갔지만……또 지고 쫒겨났다.
근성의 서돌궐은 627년 동로마 제국의
헤라클리우스 황제와 손을 잡고 또 공격, 이번에는 막대한 피해를 주는 데 성공한다. 그 후에 사산조 페르시아는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 장군을 비롯한
이슬람 세력에 쑥대밭이 되고……
그러다
당나라가 중국을 재통일하고 동돌궐(630년),
토욕혼(634~635년),
타림 분지의
도시국가들, 그리고 서돌궐과 연합한
고창 왕국(639년)을 공격해 하나하나 복속시켰고, 서돌궐은 마침 카를륵의 반란에 시달리며 정신을 못차리던 사이 당나라는 서돌궐에 652년, 653년, 657년 세 차례 서역 원정군을 보냈다. 결국 657년
당고종이
소정방,
임아상,
소사업 등을 시켜 보낸 원정군에 서돌궐의 수도 수야브가 함락당하고 마지막 왕 사발라가한은 생포당해
장안으로 압송당해 멸망했다.
서돌궐 원정이 마무리된 이 직후 당나라는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670년부터
나당전쟁이 시작되니 한국사의 흐름과도 관계가 있는 셈이다.
이후 당나라는 서돌궐 수령들을 곤릉, 몽지 두
도호부로 나눠 통제, 위협이 사라진 후에는 안서사진을 설치해 이 지역을 지배했다.
첫댓글 위의 내용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터키가 서돌궐의 후손이라고 나와 있는데 서돌궐에 복속되어 있었던 오구즈족이 돌궐에서 독립한 것입니다. 터키가 서돌궐과 관련이 있긴 하지만 직접적인 후손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내용에서 참고해 볼 것은 그당시 동로마제국과 서돌궐이 협력관계였다는 것이고 사산조 페르시아와도 대립관계가 있었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참고하시면 좋를 것입니다. 참고로 돌궐은 역사상 이슬람국가 였던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터키의 직계 조상이 되는 오구즈족에 대한 내용은 이 링크에 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서돌궐
아마 오늘날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서돌궐이나 훈족들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훈족은 완전히 이주해서 그 일부가 헝가리에 정착했다고 생각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