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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5:21-28)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있던 우리를 예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하나님 곁에 가까이 나아올 수 있도록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함으로,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 10:12-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불행하게 살기보다는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 그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고,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불행이 떠나가고, 행복이 찾아올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거운 짐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짐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 내려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주님께서 “오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님 앞에 나와 부르짖어 기도할 때, 우리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시 22:4)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여리고에 살고 있는 맹인 거지 바디매오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그를 꾸짖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더욱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를 부르신 예수님께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그는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의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세상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두움이 사라지고, 환한 빛이 그를 감싸 안았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어두웠던 세상을 보게 된 것보다도,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예수님을 보게 된 것이 더 행복했습니다. 그는 아무 미련없이,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바디매오는 그의 부르짖음을 통하여, 응답받았습니다. 그의 믿음을 통하여,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디매오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주님께 부르짖으면,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을 때, 가나안 여인이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이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인 이방 여인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지만,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침묵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냉담하셨습니다. 아주 차갑게 그 여인을 대하셨습니다. 아니, 아예, 무관심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와서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라고 청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라고 아주 단호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듣는 사람에게는 낙심되는 말이었습니다. 절망스러운 말이었습니다.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예수님을 찾아와 부르짖었는데, “나는 너와 상관이 없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실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방 민족인 가나안 여인을 만나주지도 않고, 그의 소원도 응답해 주지 않겠다는 아주 단호한 대답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나안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께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침묵하시고, 자기에게 무관심하셨던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 관심을 표현했다고 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작은 희망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 앞에 나와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 불씨 같은 희망을 붙잡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 여자를 바라보시면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만한 희망이 사라지는 듯한 말씀이었습니다. 응답해 주지 않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을 구해주지 않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작은 불씨마저 꺼버리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가나안 여인의 대답을 들은 예수님께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았습니다. 고침 받았습니다. 그 여인의 딸을 괴롭혔던 흉악한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여러분! 귀신 들린 딸을 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귀신 들린 딸을 볼 때마다,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을 것입니다. 딸에게서 귀신이 떠나가리라는 희망이 사라져갈 때,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주저함없이, 그 아픔을 가지고, 그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속히 응답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처음에 침묵하셨고, 다음에, 마음 아픈 말씀을 하셨습니다. 쓰리고 아픈 마음을 마구 후벼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매달렸습니다. 부르짖었습니다. 장애물을 만났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녀의 마음을 아시고,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그녀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마가복음 9장을 보면,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온 아버지는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주님은 계시지 않고, 그의 제자들은 아들 안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 주지 못했습니다.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져가는 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를 예수님께로 데려왔을 때, 그 아이 안에 들어있는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그 아이로 하여금,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그 아이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너무나도 답답한 마음에, 마음이 너무 아파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불쌍히 여기시어,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에게 믿음이 없음을 깨달은 그 아이의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더러운 귀신에게,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라고 꾸짖었습니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라고 말할 때, 예수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 아이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답답한 마음이 해결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아픔이 사라졌습니다.
그 후,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4)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 그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고, 우리는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시 145:18-19)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 부르짖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딴 데로 가서는 안됩니다. 오직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다윗은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4-5)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6절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어떤 믿음을 말합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여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그와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평안할 때에나, 문제가 있을 때에나,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5)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 16:3)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우리의 길을 맡기고, 우리의 짐을 맡기고, 우리의 행사를 맡기고, 우리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의 부르짖음을 쉽게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예수님께서 침묵하셨습니다. 냉담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방해도, 어떠한 제재도, 어떠한 난관도, 그녀의 소원을 포기시킬 수 없었습니다. 막을 수 없었습니다. 중지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여인은 갈급하고, 절박하고, 뿐만 아니라, 그녀의 믿음은 확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장애물 앞에서도, 그녀의 믿음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어떠한 환경을 만났다 할지라도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염려가 떠나갑니다. 걱정거리가 사라집니다. 불안이 떠나갑니다.
가나안 여인은 나라와 민족도, 종교와 환경도 초월하는 믿음을 통하여, 그녀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의 간절한 소원대로, 딸의 병이 치유되었습니다. 흉악한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회복되었습니다.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큰 믿음을 가짐으로, 소원이 이루어지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주 앞에 아뢰오니, 응답하여 주옵소서.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큰 믿음을 소유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