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석 유 감
자식들이 찾아오는 즐거운 추석날 이건만 왜이리 가슴속에서 찬바람이 불가?
아들 며느리 큰딸 큰사위 작은딸 작은사위 외손녀 외손자들 !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고향생각 집생각 추석생각을 하고 있을 손자가 빠젓다
온가족이 다 모인것은 지난 어버이날 이였다
이제는 아들 딸들이 쉰살이 되어가니 내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렵지 않다
나이 이기는 장사 없다드니 이제는 머리로 부터 발끝까지 어디 성한곳이라고는 한곳도 없다
이것이 세월탓이라면 어디 나혼자 뿐이겠는가
나 어릴적 살던 시골 집에서 대천역 까지는 대충잡아 자그마치 16Km 였다
지금이야 4차선 아스팔트가 한일자로 쭉뻣어 끝이 보이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먼지가 푸석푸석 날리는 꼬불탕 꼬불탕 좁은 자갈길은 하루종일 두번 다니는 낡은 버스가 먼지를 뒤집어 쓴채 덜컹거리며 달렸고 이따금 탄광으로 가는 짐차가 한두대 지날뿐이였다
공책 쪼가리에 연필로 적어놓은 서울에서 내려오는 기차 시간표가 안방 아룻목 머리위 벽에 붙어있었다
행여나 이번 차에는 서울에 있는 아들 딸들이 귀여운 손자 손녀 데리고 내려오겠지 하시며 기다리다 못하여 야금야금 대천역까지 걸어 나오시며 손자손녀 보실생각 뿐이셨던 아버지 !
바쁘다는 핑게삼아 얼굴 조차도 한번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한 자식을 기다리다 지처 되돌아 가시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우며 멀고 쓸쓸하셨을가
허연머리 긁으시며 먼산을 바라보시던 모습이 아른거리자 마음이 울컥하며 목이 메일것같다
어느덧 내나이가 아버지의 그때 나이를 훌쩍 넘기였다
가난이 어디 나혼자만의 짐이였을가마는 황량한 서울 복판에 달랑 몸둥이 하나가 전부이다보니 먹고사는게 무엇인지 추석도 설도 제때를 맞추어 찾아가지 못한게 어디 효심이 부족해서일가
한시간이라도 더일을 해야했고 밤이고 낮이고 쉬지 않고 휴일도 모르고 일을해야 목구멍을 때울수 있으니 추석이란 이름은 나에겐 마음아픈 불효의 날이되였다
불효의 날 !
나는 이날을 잊지 못할것 같다
어버이 살아실때 섬길수 있는 일이란 다하라고 하였다
지나고 나서 가슴아파한들 무얼하겠는가마는 그래도 마음을 후비는 아픔을 어이 삭일가
자식보다 손자가 더 예쁘다는말 그속에 얼마나 많은 진심이 묻어있을지 알것만 같다
고깃국에 밥한술 말아 먹고는 답답하다는 핑게로 혼자서 안양천을 걷다보니 아무도 없는 정자 한쪽 의자에 멍하니 앉아 흐르는 물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 !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쵸크렛 사탕 두개를 꺼내어 내밀자 아무말 없이 받아 우물우물 드시고 있다
하얀 머리칼이 바람에 날린다 옛날 어머니 그대로의 모습이다
생전에 고생만 하시다 호강한번 못하시고 떠나가시였다
흔해빠진 옷한벌 흔해빠진 신발 한켜레 그리고 용돈 한푼을 제대로 써보지 못하시고 평생을 자식들 걱정만으로
사시던 어머니였다
혼자서 살다보니 추석날이 무슨 의미가 있을가 밥한술 대충 뜨고 나오셨다고 하신다
거리가 왜 이리 조용하고 쓸쓸하냐며 묻지도 않는 말을 듣고는 그대로 지나칠수 없어 말동무가 되어 드렸다
불면 나를세라 비가오면 젖을세라 고이 기른 외동아들 !
젊어서 일찍히 영감을 떠나보내고 오직 그것하나 믿고 살아온 세월이 그냥 야속할 뿐이라고 푸념이다
가난한 집구석에서 그나마 영감의 병수발 끝에 남은것은 빚과 철모르는 어린것 하나
그래도 잘자라 주었고 공부도 잘하드니 돈벌어 오겠다며 외국으로 떠난지 몇년이나 되었을가
얼마간은 편지도 또박또박 일주일이 멀다하고 보내 오드니 어느날 부터인지 갑자기 소식이 끊키였다
그리고 오랜세월이 지났다
어디선가 죽지않고 살아 있어 주기만을 바랄뿐이지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하소연하리
다만 죽기전에 한번만이라도 보고싶은 마음뿐 세월이 지나다 보니 자식에 대한 미련만 쌓여갈 뿐이다
왜이리 세상이 야속하냐고 눈물을 글성이시며 앙상한 손으로 눈가에 맺힌 이슬을 닦으신다
이 세상에 아픔이 어디 당신 혼자 뿐일가
너른세상 구석구석에는 아프고 서럽고 쓰라린 고통들이 도사리고 있고 또 누구를 찾아갈지 모르는 세상이 아닌가
- 여기 자주 나오세유 ? -
- 그러믄요 자주 나오고 말고요 가끔 나와서 친구라도 되어 드릴가요 ? -
- 내사 좋지만 누구라도 보면 남사스럽게 ! -
노인네 스럽지 않게 쑥스러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오는길이 왜 이리 발길이 무겁기만할가
하늘을 바라보니 푸른하늘에 뭉게구름이 어디론지 조용히 흘러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안양천은 소리없이흐른다
산다는게 무얼가
뭉게구름처럼 저 물결처럼 그냥 그렇게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인생은 커피한잔 같다 하지않았나
뜨거워서 후후 불다가 마실만하니 이미 식었더라 인생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커피는 따뜻할때 마시는것이 잘마시는 것이요 인생은 즐겁게 사는것이 잘사는 것이라 했지만 지나온 세월속에
따뜻한 시간이 얼마이며 즐겁게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될가
뒤돌아 정자를 보니 땅만 바라보며 머리를 숙이고 자식이 돌아오기를 빌고 있는 할머니가 덩그라니 앉아있다
다시 뒤돌아 넋두리를 받아주며 위로라도 하고픈 심정이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가
- 힘내세요 어둠이 다하면 태양은 다시 떠오릅니다 -
손자손녀 데리고 옛날이야기나 해주며 짧은 시간이나마 억지로라도 허허껄껄 웃으며 보낼걸 !
돌아오는 길이 왜이리 발걸음이 무거울가
마치 어머니 닮은 하얀 머리칼의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는것 같아 또다시 뒤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