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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GIF 페트로비치
Doctor J 추천 7 조회 2,305 13.03.12 23:48 댓글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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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3.13 00:08

    첫댓글 아 정말 안타깝네요ㅜ 마누나 쿠코치와는 다른 느낌의 플레이어인가요? 문득 드는 생각이 예전엔 유럽선수들, 즉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차별이나 텃세가 심했다고 하셨는데 이런 문화가 없었다면 nba나 세계농구의 수준이 더 진일보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 작성자 13.03.13 00:14

    마누나 쿠코치가 플레이메이킹을 잘하는 올-어라운더라면,
    페트로비치는 레지 밀러, 레이 알렌 타입의 전천후 슈터였습니다.

    89-90 시즌부터 외국선수들이 NBA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페트로비치, 디바치, 마슐로나스 등이 그 첫 주자들입니다.

    하지만 이 당시엔 상대팀 선수들이나 심판들까지도 대놓고 텃세를 부렸죠.
    심지어 같은 팀원들까지도 얏잡아 보고, 골탕먹이기 일수였고요.
    수비나 파울에 대한 룰 적용도 석연치 못한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90년대 후반이 돼서야 이런 부분들이 고쳐지기 시작했죠.

  • 작성자 13.03.13 00:51

    물론, 말씀하신대로 이런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차별이나 텃세가 없었다면,
    저도 세계농구의 수준 자체가 진일보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저 당시 시대적 상황도 고려하셔야 하는데요... 미국인들의 눈에서 보면,
    저 뛰어난 유럽선수들이 모두 국제대회에서 미국을 골탕먹인 국가들 소속이었단 거죠.

    88년 올림픽 때는 마슐로나스와 사보니스가 이끈 소련이,
    90년 세계 선수권 때는 페트로비치와 쿠코치가 이끈 유고가
    미국으로부터 우승을 빼앗아 갔거든요.

    당시만 해도 동서냉전 시대였기 때문에 공산권 국가들에 대한 시선이 안 좋았고요.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가 잘 안 되지만, 저 당시의 상황은 그랬습니다.

  • 13.03.13 00:30

    하긴 당시의 정세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스포츠에서 조차 이런 진영논리에 갇혀야 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ㅠ 어찌보면 지금도 알게 모르게 그런 부분이 작용하는건 아닌가 괜히 노파심도 들구요.. 답변 감사합니다!!

  • 작성자 13.03.13 00:40

    스포츠에서조차 이런 진영논리에 갇힌다는 게 현실이죠. 안타깝게도...

    사실 페트로비치와 디바치도 어릴 때부터 함께 농구를 해온 죽마고우입니다.
    그러나 1991년에 크로아시아가 세르비아에 맞서 독립전쟁을 하게 되자,
    페트로비치와 디바치가 서로 말도 안 섞고 외면하는 비극이 발생했었죠.

    둘 모두 서로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지만,
    막상 자신의 동족들이 전쟁에서 죽어가자 이 둘도 원수지간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페트로비치가 사망하자...
    디바치가 당시에 좀 더 적극적으로 관계개선을 못 했던 부분을 자책하며
    눈물을 많이 흘리기도 했습니다.

  • 13.03.13 09:25

    영화같네요... 닥터제이님 댓글 읽고 지금 원스 브라더스 라는 espn에서 제작한 다큐 다운받고있습니다 ^^

  • 13.03.13 00:12

    ㅠㅠ

  • 13.03.13 00:25

    아마 텃세만 좀없었다면 평득이 올라가지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 작성자 13.03.13 09:45

    92-93 시즌에 동부 올스타에도 뽑혔겠지요.

  • 13.03.13 01:13

    아아 너무 안타깝네요.. 사고 장면과 장례식 장면을 보니 마음이 쓰려요ㅠㅠ

  • 13.03.13 02:10

    조던도 아니고 슈터가 야투 성공률이 50%였다니 대단하네요;;

  • 13.03.13 07:29

    레지 밀러가 삼점슛 콘테스트 해설하면서 "나보다 나은 슈터라고 생각했던 건 페트로비치 뿐"이라고 할 때 깜짝 놀랐습니다. 좋은 선수였지만 그 정도까지일줄은....근데 밀러가 덧붙이길 암내가 심해서 막기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

  • 작성자 13.03.13 08:44

    레지 밀러는 올해 올스타 위켄드 직전에도 페트로비치를 '역대 최고의 슈터'로 선정했죠.

  • 13.03.13 09:45

    정말 안타깝고 맘이 안좋아지는 사고 장면이네요....ㅠㅠ, 뻣뻣해 보이는 몸과 볼핸들링으로 어찌 그리 득점을 잘해내는지 그저 놀랄뿐입니다. 지난번 게시글에서도 잠시 이야기 드렸지만, AKN에서 처음본 드라젠의 득점실력은 정말 경이로웠어요.,엄청난 속도로 던지고 달리고...그게 마구 꽃히는데, 국내 농구에서는 볼수 없던 환상적인 플레이였습니다.
    그랬군요...이바니세비치가 그런말을....그 역시 참 멋진 스타인데요..30에 윔블던 우승(아마도 첫 그랜드슬램)하고 군대갔다는 소릴 들은거 같은데.... 크로아티아에는 멋진 선수들이 많은듯 합니다.
    자료 고맙게 잘 보고 갑니다.

  • 작성자 13.03.13 09:51

    물론 본인의 최전성기 시절에 벤치에서 썩고 있는게 싫었겠지만...
    마누나 쿠코치처럼 조금만 참고 포틀랜드에 남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90년대 초반의 포틀랜드는 시카고 다음 가는 최강팀이었죠.
    하지만 드렉슬러가 92년에 최정점을 찍은 이후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고,
    테리 포터와 대니 에인지도 92년 전후해서 전성기가 끝났기 때문에...
    93년을 기점으로 페트로비치가 팀의 주축으로 떠올랐을 수도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페트로비치는 1번, 2번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선수였고요.

    그랬다면... 일찍 죽지도 않았을 것이고,
    사보니스와 한솥밥을 먹었을 수도 있었겠죠.

  • 13.03.13 12:39

    페트로비치 입장에선 최전성기때 벤치에서 썩는게 싫어서도 있겠지만 드렉슬러가 팀의 중심적 선수이자 리더이기때문에 자기가 득점을 많이 올리고 날라다닌다해도 팀에서 인정해주지 않을것이라고 포기하고 등진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게다가 아델만 감독의 본인을 이도저도 아닌 선수로 만들어서 묻어버리기때문에 이걸로 포틀랜드와는 끝내자고 결심했을수도 있고요 이런점이 당시 동서냉전 영향도 있지만 포틀랜드 팀 자체가 드랙슬러가 중심인 팀이었기에 팀원들의 텃세가 벌어졌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저라도 팀에서 나갔을거고요 그래도 뉴저지에서는 포틀랜드 시절과 달리 동료들이 텃세 안부리고 인정해서 다행이었지만...

  • 작성자 13.03.13 12:55

    넷츠의 척 데일리 감독이 페트로비치를 높이 평가하던 분이고,
    데릭 콜먼이나 케니 앤더슨이나 다 신세대들이어서 텃세같은 것 없이 좋은 케미스트리가 구축될 수 있었죠.

  • 13.03.13 16:45

    가정이지만, 드라젠이 계속 포틀에서 뛰었다면...그리고 적응을 잘 했다면.. 91-92 시즌은 정말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르셀로나에서 MJ와 맞붙은 그의 모습을 본다면 깡에서 절대 뒤지지 않았을거라 생각됩니다...

  • 작성자 13.03.13 17:04

    92년 파이널에 페트로비치가 있었다면...
    당연히 대니 에인지보다는 잘 했을 겁니다.
    에인지가 파이널 시리즈에서 이름값 해준 경기는 2차전 달랑 하나 뿐이었어요.

    원래 페트로비치가 올림픽 때도 그랬고 NBA 와서도 그랬지만,
    조던이나 스카티 앞에서 쫄아든 적이 없습니다.
    이 두 선수 앞에서 항상 자기 몫은 다 해줬던 선수죠.

    만약 페트로비치가 뛰었다면, 3차전과 6차전에서 큰 변수를 만들어냈을 것 같습니다.

  • 13.03.13 09:52

    케니 앤더슨이 그랬죠. 죽지 않았다면 최고의 선수가 되었을 거라고.
    게다가 저 때는 구유고 연방이 내전으로 시끄러울 때고 드라젠도 실제로 고국에서 생고생한 가족들 때문에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고 합니다.
    심리적으로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NBA에서는 최고의 슈터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포틀랜드에서 빛을 못 본 건 드렉슬러의 존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릭 아델만 감독이 외면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작성자 13.03.13 09:58

    그것도 일종의 텃세였죠.

    페트로비치가 루키시즌을 마치고 릭 에들만 감독에게 트레이드 요청을 했었습니다.
    그러자 에들만 감독이 다음 시즌부터 출장시간이 늘어날 것임을 구두로 약속해줬죠.
    그래놓고, 곧바로 대니 에인지를 영입한 겁니다.

    그나마 자신에게 주어졌던 벤치 출장시간조차 에인지에게 빼앗기자,
    트레이드를 강력하게 요구했고, 결국 뉴저지로 가게 된 것이죠.

    워낙 큰 경기에 익숙해져 있었던 선수여서,
    90년 플옵, 그리고 피스톤스와의 파이널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선수인데,
    우승 경험이 풍부한 식스맨이 필요하다는 프런트의 판단때문에 희생됐다고 볼 수 있죠.

  • 13.03.13 09:58

    맞습니다. 페트로비치가 뻔히 있는데도 대니 에인지를 보스턴에서 영입.. 대놓고 '난 너 안 써'였죠.
    아델만 감독의 커리어 최대의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13.03.13 11:14

    90년 파이널 직후, 포틀랜드 내부의 패인분석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드렉슬러-포터 백코트가 아이재야-듀마스 백코트에 밀리진 않는데,
    피스톤스의 식스맨, 비니 존슨에 맞불을 놓지 못한 것...

    그래서 80년대 보스턴에서 좋은 슈터로 활약하며 3번의 우승을 경험했고,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최전성기를 막 보낸 바 있는 에인지를 영입한 것이죠.

    포틀랜드 프런트의 이 결정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33살의 에인지 나이를 고려해봤을 때 이게 최선이었는지... 의문은 갑니다.

    특히 뱃보이스의 터프한 수비에 깡좋게 맞서며 득점을 하던 선수를
    단지 NBA 경험없는 유럽선수란 이유로 벤치에 앉혀놓았던 직후의 결정이라...

  • 13.03.13 12:33

    아델만 감독 진짜 치사한 사람이네요 자기가 안쓸거면 그냥 보내주지 왜 출장시간 약속해놓고 대놓고 대니 에인지 영입해서 묻어버리려고 한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데 아무리 텃세라 해도 그건 도무지 용서가 안되네요 국내스포츠에도 자기가 쓰긴 미덥지않고 남에게 주자니 아까워서 묻어버리려는 감독들이 있어서 그점은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NBA에도 저런 치사한 행위를 하는 감독이 있었네요

  • 13.03.13 10:02

    아.... 안타깝네요. 살아있었다면 리그에 큰 족적을 남겼을텐데 ㅠㅠ
    사고차량은 골프2세대로 보이네요... 조금만 천천히 가지 ㅠㅠ

  • 작성자 13.03.13 11:39

    사고 당시, 페트로비치는 조수석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헝가리 출신의 모델인 여자친구가 운전하고 있었는데...
    앞에서 달려오던 대형트럭이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면서 동체가 옆으로 돌았다고 하죠.
    어떻게 브레이크를 밟아 볼 여지도 없이 그냥 박게 된 겁니다.

    과속으로 운전하던 여친이 본능적으로 트럭 반대쪽으로 차를 꺽자
    페트로비치의 몸이 차 유리창을 뚫고 날아가 트럭의 디젤 탱크에 머리를 부딪히고 즉사했죠.

    페트로비치의 여친도 사고 직후 심한 우울증으로 시달리다가
    최근에서야 결혼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됐다고 전해집니다.

    이 여인은 최근에도 페트로비치 팬들의 살해위협까지 받은 적이 있습니다.

  • 작성자 13.03.13 11:42


    참고로, 이 여인의 이름은 클라라 살란치...
    배우자는 독일의 축구스타, 올리비에 비어호프.

  • 13.03.13 12:31

    비어호프 오랜만에 보네요 비어호프 키가 192인데 저 여자분 키도 꽤 크네요 그 팬들도 너무한게 일부러 죽이려고 한게 아닌데 최근까지 살해위협은 너무하네요

  • 13.03.13 12:31

    아 그런사연이.... 비어호프의 사적인 부분은 잘 모르지만 왠지 느낌은 꽤 인성도 좋을 것 같던데 저 여성으로선 배우자를 잘 만난 것 같습니다.

  • 13.03.13 12:48

    제독&던컨// 비어호프 인성이 좋은건 물론 선수시절 동료들에게 인기가 많은건 물론 선수단을 뭉치게 하는 리더쉽이 있고 유로2000 끝나고 주장으로서 책임을 진답시고 주장완장을 올리버 칸에게 양보할만큼 대인배적 기질이 있는 선수죠 부부생활이 어떨지 몰라도 비어호프의 익히 알려진 성격으로 보면 저 여자분은 남편 잘 만난거라고 봐요

  • 13.03.13 13:11

    스포츠에 만약이라는건 없지만 페트로비치가 89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던 스페인 국대의 PF 페르난도 마르틴(86년 포틀랜드 지명 그러고보니 포틀랜드는 예전부터 외국인선수 지명이 참 많은팀인거같음)처럼 몸싸움이 90년대보다 더 격렬했던 80년대중반에 진출했다면 어떤 성적을 거뒀을까요? 그땐 거친 수비의 피스톤즈는 물론 레이커스, 셀틱스도 한참 전성기였고 몸싸움이 더 거친 시대였는데 그때 진출했어도 잘했을지 궁금하네요 페트로비치도 대단하지만 87,89 유럽선수권 당시 페트로비치를 앞에 두고서 엄청난 득점력을 선보이면서 강한 면모를 보인 그리스 국대의 레전드 니코스 갈리스도 대단하다고 봅니다

  • 13.03.13 13:12

    당시는 프로선수들이 국제대회 출전금지 규정이 있어서 NBA에 복귀못한것도 있지만 규정이 좀더 빨리 완화되서 갈리스가 NBA에 복귀했다면 페트로비치 못지않은 활약을 했을거라 추정해봅니다 페트로비치와 갈리스가 유럽선수권에서 1;1 붙을떄 보니 페트로비치가 쉽게 상대하지 못하더군요 80년대 후반인가 그때 페트로비치가 레알 마드리드(축구팀 말고 농구팀도 운영) 시절 62점을 올린 경기를 비롯해서 몇몇 경기를 봤는데 완전히 혼자 다 득점하더군요 마치 80년대 독보적으로 득점을 올렸던 조던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 13.03.13 18:14

    국장으로 치뤄졌을 정도로 국민적인 스포츠 영웅이었나 보네요;;

  • 13.03.13 21:15

    저는 살짝 기억만 나는 선수네요. 저 정도 스탯이면 정말 조금만 더 있었으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을 것 같은데.. 안타깝습니다.

  • 13.03.13 22:43

    다른건 둘째치고 웃는 모습이 제가 참 부러워하는 그런 것이군요 미소란 말이 어울리는 그런...

  • 13.03.14 11:09

    박사님덕분에 페드로비치라는 대단한 선수를 알게되었고 이선수가 이미 오래전에 고인이 되었다는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ㅠㅠ 저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을줄 알았네요....

  • 작성자 13.03.14 20:06

    일찍 운명을 달리한 훌륭한 선수를 소개하게되어 저도 기쁩니다.

  • 13.03.14 18:42

    대강 알던 페트로비치를 Doctor J님 덕분에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차에 있을때에는 정신차리고 있어야 겠어요~

  • 13.03.15 15:07

    일단 스텟만으로 봐도 주전...아니 올스타급이군요...요즘 처럼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였다면, 페트로비치는 더 나은 대우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텃세나 감독의 좁은 시야도 한 몫해서 페트로비치의 실력이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딱 10년뒤에 활약했을 인물이라면, 좋았겠군요...

  • 작성자 13.03.15 15:10

    그렇죠. 페트로비치, 사보니스, 쿠코치, 마슐로나스, 디노 라쟈 등이
    10년 뒤에 20대 초중반의 나이로 NBA에 입성했다면.... 하는 상상을 저도 자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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