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 한율아!
농원 화단에는 여름꽃들이 한창이구나. 벌개미취, 참나리, 범부채, 상사화, 무릇, 마타리, 삼잎국화, 부처꽃, 플록스와 루드베키아와 같은 여러해살이 풀꽃. 백일홍, 맨드라미, 코스모스, 노랑코스모스, 과꽃, 족두리꽃(풍접초) 따위의 한해살이 화초와 달리아와 칸나와 같은 알뿌리 식물이 다투어 피고 있어. 이들은 공포스러울 만큼의 푸르름이 압도하는 여름 정원에 신선한 빛을 뿌려주고 있어. 가을이 오는 것과 때를 맞춰 개미취도 꽃을 피우기 시작하구.
그런데 할아버지의 농원에서 여름의 화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어. 봉선화(鳳仙花)야. 봉선화도 지금 한창 꽃이 피고 있지. 올해는 화단에 거름을 좀 한 때문인지 그 키가 1m도 넘는 크기로 훌쩍 자라서 줄기 가득 꽃들을 달고 있어. 그 이름은 줄기에 달려 피어 있는 꽃의 모양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만 같은 전설 속 봉황(鳳凰)의 모습을 닮았기에 얻은 것이라고 하지. 전 세계적으로는 1천여 가지나 되는 많은 종류의 봉선화를 서양에서는 아주 여러 이름으로 불러. 그중에는 ‘Touch-me-not’이라는 재미있는 이름도 있어. ‘나를 건드리지 마’라는 뜻이지. 그 이름은 봉선화가 씨앗을 여물리면 그 씨앗 주머니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톡 터져서 씨앗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연상하게 해줘. 우리나라가 봉선화 본디의 고향은 아니지만, 봉선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서 집집마다 길러오던 화초의 하나야. 할아버지의 기억에도 시골 고향의 초가집 안마당에서 해마다 자라던 봉선화의 모습이 남아있어. 다른 집의 안마당 화단이나 울 밑에서도 봉선화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었지.
봉선화가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 있었던 것은 씨앗이 그 자리에 떨어져서 그 이듬해에도 스스로 잘 자란 때문이기도 했을 거야. 하지만 봉선화는 우리의 가까이에 있으면서 우리가 기쁠 때, 슬플 때, 외로울 때 우리의 시선 속에 있어 주었던 때문이 아닐까도 싶어. 봉선화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아픔에 처해있던 시절 우리가 불렀던「봉선화」란 노래의 소재가 되기도 했지. “울 밑에서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로 시작되는 가사의 멜로디는 나라를 잃은 우리 모두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었어. 또 봉선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먼길을 떠난 사람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노래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지. 봉선화는 주로 집 안에 많이 머물던 여자들에게는 집 안마당 화단이나 울 밑 봉선화의 모습이 더욱 마음속으로 들어와 담긴 것 같기도 해.
한율, 한비야!
율과 비가 유치원 시절인 5년 전의 이야기인데 기억이 날지는 모르겠구나. 할아버지가 농원에서 기른 봉선화를 율과 비가 다니던 유치원 선생님에게 보낸 적이 있었어. 선생님께 미리 연락을 드리고 같은 반의 유치원 어린이들이 그 봉선화로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는 체험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했지. 둥이들 6살 때의 일이니까 아마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을 거야. 그때는 봉선화가 잘 자란 것을 보고 아주 어린 유치원의 어린이들이지만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것과 같은 좀 별난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어. 지금쯤의 나이라면 아마도 그걸 재미있게 즐길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것은 오래전부터 시골의 젊은 여자들이 즐기는 여름철 놀이의 하나였어. 봉선화 꽃과 잎으로 손톱에 물을 들일 때는 봉선화라고 하지 않고 봉숭아라고 말하지. 봉선화보다는 봉숭아라는 이름이 왠지 더 정감이 가는 듯해. 시골의 아낙들이 자신을 치장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시피 하던 시절의 손쉬운 몸치장의 하나라고나 할 수 있을 거야. 여름이 되면 특히 여자아이들은 다투어 봉숭아물을 들였지. 어린아이였던 할아버지도 누나가 하는 걸 한두 번 따라 했던 기억이 있어. 남자가 손톱에 물을 들이면 친구들의 놀림감이 될 수도 있었지만 나도 해보고 싶은 유혹을 떨쳐낼 수가 없었지.
납작한 돌멩이 위에 봉선화 꽃과 잎을 섞고 거기에 백반을 뿌려서 짓찧으면 그것은 걸쭉한 죽과도 같아져. 그러면 그것을 알맞게 덜어서 손톱 위에 얹고 그 손가락을 피마자(아주까리) 잎으로 두른 뒤에 그것을 실로 묶어서 달아나지 못하게 해주지. 그리고 하룻밤을 자고 나면 그 손톱은 물론 손가락에는 온통 짙은 주황색 물이 들어. 하지만 살갗에 든 물은 며칠이 지나면서 깨끗이 가시고 손톱엔 든 물은 선명하게 남겨져. 손톱의 봉숭아물은 요즘 손톱에 바르는 매니큐어와는 그 느낌이 전혀 다르단다. 손톱을 파고든 봉숭아 물은 그 색감이 무척이나 화사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을 줘. 그리고 손톱에는 든 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옅어지지만 더욱 은은해지지. 또 손톱 안쪽 부분에 초승달 모양의 속손톱이 자라나면 연분홍빛 손톱의 색깔과 새하얀 속손톱의 빛깔이 대비되면서 오묘한 아름다움의 조화를 만들어내. 여름을 나며 여자아이들은 이렇게 몇 번이고 손톱에 물을 들이고는 했어. 물을 들이는 횟수를 더할수록 손톱의 봉숭아물은 보다 더 새틋해 지고 가을이 다 갈 무렵까지도 손톱에 남아있어.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장난감 같은 것들은 아주 귀했어. 할아버지의 기억으로는 장난감 가게에서 산 장난감을 선물 받았던 기억이 없어. 그 대신 할아버지의 놀이나 장난감은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것과 같이 자연 속에서 스스로 찾아냈어.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기 위해서는 집 마당 어딘가에 봉선화를 길러야만 했고. 또 봉선화를 기를 때는 으레 맨드라미라는 화초도 함께 가꿨지. 추석이 돌아오면 그 꽃으로 술떡 또는 증편이라는 이름의 떡을 만드는데 맨드라미로 그 떡 위에 빨간색 무늬를 넣기 위해서였어. 이때 이 맨드라미 꽃을 잘게 찢어서 떡 위에 올리는 일은 어린이들의 차지였지.
요즈음 어린이들이 즐기는 놀이는 사시사철 계절과 관계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지. 컴퓨터 게임, 줄넘기나 훌라후프 돌리기, 수영이나 태권도 수련, 음악이나 미술 교습과 같은 학과 후 활동은 계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친구와의 놀이도 함께 여럿이 만나서 하기보다는 스마트폰 같은 것을 통해서 각각의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을 거야. 주말이 되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부모님과 함께 놀이방이나 체험 학습장을 찾아 여러 활동을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테고.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에는 매일같이 눈만 뜨면 집 밖으로 달려나가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온갖 것들을 스스로 찾아서 놀고는 했지. 그리고 그 대상과 장소가 자연이다 보니 계절에 따라서 그 놀이가 완전히 달라졌어. 요즈음 같은 한여름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강가에 나가 모래사장에서 뛰놀거나 물속에 뛰어들어 헤엄을 치고는 했지. 또 도랑을 거슬러 오르며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때로는 산에 올라 산돌배나 개암을 따기도 했어. 그리고 밤이 되면 모깃불을 놓은 마당에 나와 감자나 옥수수를 먹으며 밤하늘의 별을 세는 것이 잠들기 전의 놀이였어. 또 어쩌다가는 한밤중에 몰래 집을 빠져나와 친구들과 함께 서리라는 걸 했지. 그때는 참외나 토마토, 자두나 복숭아와 같은 과일이 아주 귀했어. 우리는 두셋이 한 팀을 이루어 참외나 오이, 토마토 농사를 짓는 곳에 몰래 숨어 들어가서 그것을 훔쳐서 나누어 먹고는 했지. 이 짓을 하다가 발각이라도 되는 날에는 엄청나게 혼이 나고 벌을 받기도 하는 모험을 감수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한비나 한율이와 같은 여자아이들은 남자애들처럼 그렇게 모험적인 놀이를 하지는 않았어. 집으로부터 멀지 않는 곳에서 마찬가지 친구들과 소꿉장난을 하거나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사방치기와 같은 놀이를 했지. 또 냇가에서 주워온 작고 동그란 조약돌로 공기놀이를 하기도 했어. 남자아이들이 딱지치기와 같은 활동적인 놀이를 했다면 여자아이들은 실핀 따먹기와 같은 얌전한 놀이를 했지. 하루해가 가는 줄 모르고 놀이에 열중하는 것은 남자아이들이나 여자애들이나 마찬가지였어. 그러고 보니 요즘과 같은 때는 반딧불이가 나타나는 시기지. 그때는 반딧불이가 흔했는데 8월 이때쯤 늦장마가 물러가고 호박꽃이 한창일 무렵 밤이 되면 반딧불이가 많이 나타났어. 여자아이들도 남자애들도 꽁무니에서 반짝반짝 불빛을 내는 반딧불이를 잡아 호박꽃 속에 집어넣어 불빛이 환한 호박꽃 초롱을 만들고는 했지. 우리는 이처럼 자연 속에서 놀며 아주 자연스럽게 자연과 친해질 수 있었어. 한비와 한율이도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가급적 많이 가졌으먼 해.
가을에 접어들기 시작한다는 입추(立秋)라는 절기에 들어선 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구나. 8월 중순에 접어들며 여름 늦장마가 물러가니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기분이 드는구나. 더위를 보내고 가을을 맞이한다는 처서(處暑)의 계절이 며칠 남지 않았고. 다음 주중에는 어느 하루 율이와 비도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보지 않겠니? 둥이들이 이번 주말에 농장을 다녀가기는 어려울테니 할아버지가 농장에서 키운 봉선화 꽃과 잎을 좀 가져갈 참이야. 할아버지 어린 시절의 추억도 되살려 볼 겸 둥이들과 함께 봉숭아물을 한번 들여보고 싶구나. (2022.8.18.)
첫댓글 어려서 가장 먼저 익힌 노래가 바로 홍난파선생이 작곡한 노래였는데 요즘 아이들은 노랫말에 숨은 뜻조차 모르고 지내는것 같아요. 하나씩 손녀에게 교훈을 주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이지요~
지난 주 아내가 밭에서 따 온 봉숭아 꽃으로 온 손톱에 물들이더니 내 손 약지에도 물들였는데 ,, ,,, 남자가 해서 우습긴 했지만 앙증맞기도 하네요.
봉숭아와 맨드라미 이야기를 들으니 고향집 앞마당이 떠오릅니다. 사춘기 시절 보릿고개를 넘기에도 버거워 화초 가꾸기와 또래들과 놀이시간을 별로 갖지 못했지요. 요즘 어린이들은 도시에 살면서 컴퓨터와 휴대폰에 몰두하다보니, 역사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매우 적지요. 내 감수성의 원천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 자연과 함께하고 선친을 도와 농사짓던 기억에서 유래하는 것 같으니, 순우처럼 손주들에게 가능한이면 많은 시간을 자연을 즐기게 하고 싶네요.
옛 시골 화단에 꼭 있었던 꽃이. 봉숭아, 맨드라미, 채송화, 다알리아, 접시꽃 등이었죠.
누나 들이 봉숭아 꽃물 들이던 모습,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순우의 글을 보니 강원도와 전라도
문화는 대동소이합니다.
내가 수년전 즐겨부르던 노래가
봉선아 연정으로 기억되고요.
추억이 많다는것은 감정이 풍부하다
는 의미겠지요.
봉선화,말만 들어도 정겹고 그리운 꽃.
어렸을 때 집 뜰에 봉선화가 없어서 아쉬었는데, 시골 외갓집에 가면 피어있어서 반가웠지요. 여름 밤에 손톱에 꽃물 들이면, 시간의 흐름 속에 손톱 끝에 초승달이 뜨고ᆢ그 이듬해 여름을 기다렸지요. (저도 봉선화에 대한 수필을 쓴 적 있어요.)
손녀들이 시골에 와서 직접 물들인다면 더 좋을텐데ᆢ애틋한 손주 사랑이 그대로 전해지네요. 덕분에 추억의 꽃을 떠올려서 감사합니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이노래를 들을 때마다 왜 처량하게만 느껴졌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의 정서가 아닌가.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옛날이 그립습니다...
딸들이 어렸을땐 놀이삼아 같이 물 들이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턴 봉숭아가 아닌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더군요
추억삼아 들여봐야겠다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강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