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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 바울은 여기서 이방인 교회의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구제 헌금의 성격을 '자원하는 심령과 의무'라는 관점에서 규정하고 있다. '빚진 자'라고 번역된 헬라어 '오페일레타이'는 '오페일로''빚지다)의 목적 소유격으로 '의무를 가진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여기서는 '손해를 준 사람에게 아직 보상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바울은 이 용어를 1:14과 8:12에서도 사용하고 있는데, 자신을 가리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빚진 자'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고백은 의미심장한 것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무한한 은혜에 대한 채무자적인 자신의 심정을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복음의 빚진 자로서 사랑의 봉사와 복음 증거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바울의 이와 같은 태도는 이방인들 또한 유대인들에게 가져야 할 태도이다.
이방인은 유대인에게 복음의 빚진 자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에게 빚진 자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신령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코이스'는 '영적인', '성령에 부합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구속적 은혜'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로부터 이방 세계로 전파된 사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 나셨으며 복음의 일차적인 대상 또한 유대인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예루살렘 교회가 그들의 영적 축복 곧 복음을 이방인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아직도 사단의 권세 아래, 죄악의 어두움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방인들은 예루살렘 유대 기독교 신자들로부터 시작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되었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 성도들에게 빚진 자들이 된 것이다. 이 '빚'은 상업적 빚의 의미가 아니라 은혜를 크게 입은 자에 대해 느끼는 의미로서 부채감다. 이런 의미에서 이방인 신자들이 그들의 '육신의 것' -
이 단어는 육신의 죄악된 면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육신의 일상 생활에 속한 필요한 것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부유한 이방인 성도들이 물질로써 가난한 유대인 성도들을 섬기는 것을 의미함을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유대인 성도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복음의 은혜를 갚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당연한 일인 것이다.
[롬 15: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 바울이 서바나 선교 계획을 가지고 중간 기착지로서 로마를 곧바로 가지 않고 지체하면서까지 예루살렘을 굳이 방문하고자 했던 의도가 본문 가운데 명확히 나타나 있다. 바울은 그가 이방인 교회에서 모은 헌금을 직접 예루살렘에 가져가지 않고 그의 신실한 동역자들을 통해서 대신 보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굳은 결심을 가지고 직접 예루살렘을 방문하고자 했던 주된 이유는 기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교회에 그의 선교 사역을 낱낱이 보고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확증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뜻에서 그는 이방인의 헌금을 '열매'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씨를 뿌린 결과 그 보답으로 얻게 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확증한 후에'라고 번역된 헬라어 '스프라기사메노스'는 '인(印)으로 표시하다'의 뜻을 가진 '스프라기조'의 완료형 수동태로서 시험을 위해 '견고케 하다', '증명하다', '엄숙히 선포하다', '확실히 끝내다', '확인의 도장을 찍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의역하면 '구제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확실히 전달한 후에'란 뜻이다. 그리고 또한 이어법은 상업적 거래에서 사용된 것으로 바울 자신에게 맡겨진 돈을 인봉한 채로 가지고 갔다는 뜻으로서 어떤 대표성을 나타낸다고 한다. 어쨌든 바울은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처럼 그의 선교 사역을 완료함으로써 그 증거로 헌금과 함께 그의 사역의 성과를 예루살렘 교회에 확증하며,
이방 성도들의 감사와 그들이 받은 영적인 축복의 열매들을 헌금을 확증한 것으로 대표하여 증거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전달하는 일을 그처럼 중요한 일로 여겼던 것이다.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 바울은 본문에서 로마를 경유하여 서바나로 갈 선교 계획을 언급하고 있는데 바울이 실제로 서바나에 가서 복음을 증거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바울은 이 사실에 대해서 본 서신을 비롯한 그의 모든 서신에 확실히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바울이 로마 교회는 방문했으나 서바나에는 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가 서바나에 복음을 전했다는 증거는 A.D. 1세기말에 살았던 교부 로마의 클레멘트가 쓴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거기에 보면 '바울은 온 세상에 의를 가르쳤으며, 그가 서방의 끝에 도달했을 때 통치자들 앞에서 증거하였으며, 이와 같이 하여 이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서 '서방의 끝'은 당시 서바나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클레멘트의 서신 내용을 볼 때 그의 선교 계획이 서바나까지 성취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롬 15:29]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 바울의 확신에 찬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 확신은 로마에 꼭 도착할 것에 대한 확신이라기 보다는 그리시도의 풍성한 은혜와 능력이 바울의 로마 방문에 함께 동반하리라는 확신이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은 헬라어 '엔 플레로마티 율로기아스 크리스투'로 쓰여졌다.
다른 헬라어 사본이나 KJV에서는 '...의 복음'(투 유앙겔리우투,이라는 말이 삽입되어 있지만 의미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이것은 신적인 충만함을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골 1:19)로부터 신령한 은혜를 로마 성도들에게 풍성히 나누어 준다는 뜻으로 쓴 것이다. 여기서 '축복'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율로기아스'는 원래 '축복', '관대', '이익'의 의미이나
본문에서는 구체적으로 '예수께서 주시는 풍성한 축복'을 가리킨다. 즉,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것을 예수께서 친히 완성하신 축복으로서(갈 3:8, 9),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택함을 받은 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적인 축복이다(엡 1:3).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이 이러한 풍성한 주의 은혜를 통해서 더욱 견고한 믿음에 서기를 원해왔다.
실제로 로마 교회를 방문하기 오래 전부터 이를 위해 항상 기도해왔다 이제 바울은 예루살렘을 거쳐서 로마에 가게 될 경우 그리스도의 축복을 충만히 소유해서 가게 되리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충만한 은혜와 능력이 바울과 주를 믿는 모든 성도에게 영구적으로 내려질 것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실제로 죄수의 몸인 바울을 놀라운 방법으로 로마로 가게 하셨고, 그의 선교 사역을 수행하게 하셨다(행 28:16-31).이러한 체험에 근거해서 그리스도의 은혜와 축복을 확신있게 말하는 것이다.
[롬 15: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 본문을 좀더 쉽게 직역하면 '형제 여러분, 나는 성령이 베푸시는 사랑을 믿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공동 번역)라고 번역할 수 있다. '말미암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는 일반적으로 수단, 매개, 동인을 나타내는 전치사로 여기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을 매개로 하여 권유를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형제들아~권하노니'라고 부드럽고 정중한 태도로 부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함축적으로 자신의 부탁을 보다 강력하게 나타내고 있다. '성령의 사랑'(아가페스 투 프뉴마토스)은 '성령이 지니고 있는 사랑', '성령이 성도에게 부어 주시는 사랑'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란 말이 위엄과 권위로써 권하는 성격이 있다면 반면에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란 말은 사랑에 호소하는 부드러운 권고적 성격이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로 말미암고 ~로 말미암아 권하노니'란 표현은 사도 자신의 권위나 주관이 전혀 없이 오직 크신 삼위 하나님이 그 이유와 근거와 내용이 되고 목표가 됨을 강력히 시사해준다. 그만큼 심각하고 강력한 부탁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연합된 로마의 성도들이 자신의 사역에 기도로 적극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는 것이다.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 바울은 그에게 닥칠 위험으로 그의 선교 계획에 지장이 초래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다. 그는 주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처방책 즉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는 말씀에 따라 합심하여 기도하면 모든 문제를 선히 해결해 줄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와 힘을 같이하여'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쉬나고니사스다이 모이'로 여자적으로 '죽을 힘을 다하다'라는 일사 각오(一死覺悟)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말은 신약에서 본절에서만 사용되었는데 그 뜻은 운동 경기에서 한 팀에 소속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처럼 마음과 영혼을 다 바쳐서 온 힘을 다하여 기도하라는 뜻이다. 또한 이것은 기도가 내포하고 있는 씨름을 암시하고 있다.
기도는 끈질기고 열심히 내는 것이어야 하며 마치 투쟁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수단이며 성령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이다. 물론 이때 힘써서 하는 기도는 자기 욕심의 응답을 위해 간구하는 기도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을 알아
그 뜻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구하는 기도를 말하는 것이며 무조건 무엇이든지 기도만 하면 이루어주신다는 뜻이 아니다. 아무튼 이와 같이 전례없는 강력한 기도의 요청은 현재 사도 바울이 처해 있는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롬 15:31]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 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강력하게 기도 부탁을 한 데에는 두 가지 주요 목적이 있었다. 본문이 그 중 한가지이다.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의 헬라어로 '아포 톤 아페이둔톤 엔 테 유다이아'인데 여기서 '아포'는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나타낸다.
그리고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이란 복음에 대적하는 유대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데, 그들은 단순히 예루살렘이나 팔레스틴의 남부에서 뿐 아니라 전 유대 지역에서 바울을 대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전에도 그들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를 대적하는 열기가 식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을 가게 될 경우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그 곳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고 있어야만 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바울은 더욱 간절하게 로마 성도들에게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고 대적하는 자들로부터 화를 입지 않게 해달라고 구체적으로 기도를 부탁하고 있다.
'구원을 받게 하고'로 번역된 헬라어 '뤼스도'는 바울의 이런 심정을 잘 반영해 주는 말이다. 바울은 '자기의 생명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고백하였지만 유대 불신자들의 살인적 음모에 대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무모하게 내어 맡기거나 또는 자기의 생명을 구하고자 비겁하게 타협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오직 복음의 증진을 위한 그의 뜨거운 열정 때문이었다. 그는 결코 불신자들의 무모한 살인적 음모에 희생당하므로 복음 전도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를 위하여 기도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
본문은 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기도 부탁을 한 중요 목적 중의 또다른 한 가지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 성도들이 그들을 위해 마련한 이방 교회의 구제 헌금을 감사함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다. 바울은 이방 교회의 사랑의 선물이 예루살렘 유대인 성도들의 큰 고통을 덜어주기에 아주 적절한 시기에 제공되고 있지만 그들이 이방인 교회의 헌금 받기를 거부하거나 형식적인 감사로밖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염려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첫째,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합당한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 안의 바리새적인 유대인 성도들은 바울과 이방인 교회들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둘째, 바울의 이방인에 대한 선교 사역과 그의 활동에 관한 잘못된
거짓 소문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러한 문제들을 예감하고 예루살렘 교회 방문시 이러한 문제들로 인한 갈등의 소지가 없도록 로마의 성도들에게 미리 기도를 간절히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과 그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롬 15: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롬 15: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찌어다 아멘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 한글 개역 성경에는 헬라어 성경에 있는 '데'라는 접속사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을 넣어 해석하면 지금까지 말한 15장 전체의 결론이 맺어짐과 동시에 로마 교인들을 향해 부탁했던 그 내용들의 간절성이 한층 살아난다. 한편 혹자는 본절에 '아멘'이 있는 것을 이유로 들어 이 대목이 본 서신의 끝이고 16장은 다른 곳에서 삽입된 독립된 서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절의 아멘은 기도의 끝에 따라오는 당시의 전통적인 축복 양식의 한 표현으로서 바울 사도가 지금까지 로마 교인들에게 부탁하고 그들을 위해 축복한 내용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그 내용에 대한 중요성 및 그것들이 그대로 성취될 줄을 믿는 믿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사본상에서 보더라도 본장에 뒤이어 16장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호 데오스 테스 에이레네스'는 바울의 다른 서신서에서도 축도 중에 자주 언급되고 있다. 이것은 유대교적 표현으로서 바울이 '평화'에이레네를 하나님과 함께 관련지어서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기본적으로 성도의 평강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평강의 본래적인 의미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 구원이 보증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서 영혼의 평온한 내적 상태, 항상 만족한 상태를 가리킨다. 바울이야말로 이러한 참된 평화를 간절히 바랬고 그의 모든 독자들이 이 평화를 누리게 되길 소원했다. 바울은 로마에 가기 전 도중에 방문할 예루살렘에서의 많은 충돌과 고난을 예상했기에 이 평화를 갈구했고,
\또한 로마의 성도들에게도 영적인 일치와 기쁨의 신앙 생활을 위해서는 참된 평화가 있어야만 했음을 안 것이다. 그런데 평화를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 뿐이었다. 왜냐하면 평화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해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즉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써 주어지는 모든 축복이 로마 교회 안에 충만하게 나타나기를 바라는 사역자의 심정을 잘 보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