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운두령로 1243 (노동리)
산행코스 ; 운두령(1,084미터) -계방산 정상 (1,577 미터)-주목군락지- 노동계곡- 계방산 오토 캠핑장- 이승복생가
산행시간 ; 9시 20분 - 3시 10분 약 6시간
해발 1,577m의 계방산은 태백산맥의 한줄기로 동쪽으로 오대산을 바라보고 우뚝 서 있으며, 한라, 지리, 설악, 덕유산에 이은 남한 제 5위봉이다. 부드러운 흙산, 이 산 정상에 오르면 백두대간 등줄기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인근에서는 최고의 전망대로 손꼽히는데 북쪽으로 설악산, 점봉산, 동쪽으로 오대산 노인봉과 대관령, 서쪽으로 회기산과 태기산이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혹한이 닥쳐온 주말, 계방산은 영하 15도는 되리라는 토요일, 동장군의 호령에 심장이 콩알만해 졌지만 20명의 회원님들 즐겁게 눈꽃 여행을 떠납니다. 출발시간 5분전인 6시5분에 모두 도착 완료하여 출발하니 흐뭇해진 김영태 회장님, 식사비를 찬조해 산행 후 뒤풀이에선 소 등심 고기 까지 먹게 되었습니다. 두 시간 후 도착한 평창휴게소에서 김승택님은 초등생 아들 도윤을 위한 아이젠과 스패치를 삽니다. 오늘 도윤은 눈에 하루 종일 굴러도 끄떡없는 스키복바지와 긴 기장의 야생점퍼를 야무지게 착용하고 왔습니다. 1년만의 스패치 착용이라 그런지 헷갈려하는 회원님들에게 대장님은 겨울산도 좀 가라며 면박을 주십니다.
속사 IC로 나와서 세시간만에 운두령 도착, 천 미터가 넘는 고지랍니다. 이 고지에서 시작하는 덕분에 당일 정상까지의 눈꽃 산행 가능해서 그런지 그곳은 우리처럼 새벽에 일찍 출발한 사람들이 타고 온 버스로 가득합니다. 구불구불 고갯길을 뱅글뱅글 몇 번을 돌아서 운두령 오는 동안 멀미를 해서인지 이건두님은 산행을 포기하려 합니다. 버스에 내려 냉랭하지만 맑은 공기를 마신 이건두님, 매운 추위를 떨치고자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던 무리에 들어오십니다. 스트레칭했던 응달진 화장실 뒤쪽에서 나오니 쌓인 눈에 햇빛이 반사되어 좀 따뜻한 느낌입니다. 오대산국립공원이란 표식을 보고 가팔라 보이는 등성이에 길고 넓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한국의 알프스라 불리는 설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뽀드득 뽀드득 고운 눈을 밟으며 한걸음 한 걸음 냉기를 밀치며 오릅니다. 눈만 빼꼼히 보이게 하고 두터운 방한모자와 장갑으로 완전 무장했지만 칼바람은 얼굴과 몸속으로 점점 파고듭니다. 바위가 많지 않고 오르는 길이 완만하며 다행입니다. 장갑을 끼었어도 손이 차갑게 꽁꽁 얼어갑니다. 잎을 다 떨군 물푸레나무가 모여서 함께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행여 미끄러질까 고개 숙여 땅만 쳐다보고 걷게 하는 눈길의 위력에 고개를 돌리지 못합니다. 무릎까지 푹하고 빠지는 새하얀 시트의 눈 침대 위에 발을 벌리고 팔을 벌려 큰대자로 누워버린 도윤, 보기 만 해도 참 편해 보입니다. 그리고 엎어지더니 가슴에 한 아름 눈을 안고 눈을 꼭 감습니다. 그저 눈이 좋은 모양입니다. 김승택님 아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호호 입김이 얼어붙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엉덩이로 계속 눈썰매를 타며 오르고 내리며 눈을 즐기는 모습이 대견한가봅니다. 이 모습을 놓치지 않고 윤미화님은 열심히 사진에 담습니다. 장갑을 끼어도 차갑게 얼어 있는데, 얼어서 새빨개진 손가락을 아프게 움직여가며 사진을 찍자, 대장님은 위대한 종군기자라고 불러줍니다. 벙거지 모자에 몇 개의 작은 고드름이 달리고 눈썹이 하얗게 얼어붙어 있고 속눈썹위에 오른 눈과 함께 얼굴 새빨개져 있는데 극한 작업까지 하다니, 정상 근처에서 만나는 파랗고 청명한 겨울 하늘과 눈꽃나무를 찍는 인내와 투지가 대단합니다. 시원하게 탁 트인 전망대 테크가 있는 곳에 올라서니 첩첩 눈 쌓인 산 능선이 백호의 등줄기처럼 서늘하면서도 신비스럽습니다. 대장님이 다른 방향으로 줄 서 있는 먼 산을 가리키며 이쪽은 오대산 저쪽은 설악산 그리고 저긴 태기산이라 하십니다. 끝없는 첩첩 산이 바다를 이루고 있습니다. 헬기장 근처에 오니 온 산이 하얀 눈꽃으로 가득합니다. 조팝나무처럼 싸리 꽃처럼 그렇게 더 없이 환하게 활짝 피어 있습니다. 정상인가 싶었는데 두 세 고개를 더 넘어야 정상이라는 소리에 맥이 쭈욱 빠집니다. 눈꽃터널을 지나며 눈의 여왕처럼 마음을 굳게 다잡습니다. 복면을 하고 겹겹 중무장했어도 손과 발은 계속 어는 것 같습니다. 신종국님은 이렇게 손과 발이 오래 시려본 적이 처음이라 했습니다. 입김이 모자로 올라가 얼어버리고 복면에 숨쉬기도 불편하고 움직임이 둔하니 가슴이 답답한 게 차라리 다 벗어던지고 싶습니다. 계속 경사가 가파른 눈길에 더 숨이 찹니다. 신명식님도 표정하나 없이 왠지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십니다. 버스에서 드셨던 떡과 두유가 소화가 안 되어 그런 거 같다 하셨습니다. 드디어 계방산 (1,577.4M) 정상에 도착,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로 북적합니다. 작은 정상석 앞에 인증 샷을 찍기 위해 선 긴 줄에 입이 딱 벌어지고, 한라산 정상에서나 가능한 일인 줄 알았는데, 서리 바람에 줄 서 기다릴만한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돌탑 봉우리 옆에 비켜서서 단체사진 한 컷. 여덟 명의 알록달록 여인들은 맹추위에도 생기를 잃지 않고 무사해 여전히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개인사진을 담습니다. 이삼순님, 오늘도 핑크레이디처럼 예쁘십니다. 소녀처럼 양 갈래로 긴 머리를 땋아내려 모자 아래로 곱슬하게 나와 있는 머리가 빨갛게 빛납니다. 숨을 잘 고르시며 지체함 없이 선두그룹에서 여유롭게 오르신 배미영님과 조선자님의 얼굴을 다 가리는 오버 썬그라스는 미소와 더해져 멋져 보입니다. 무엇이든 척척 잘해내는 억척 맘이 부럽습니다. 정상은 옷을 벗어 살색의 키가 작은 나무들이 팔 벌리고 눈을 안고 있는데 죽순만 파릇하게 살아 녹색으로 하얀 눈 속에서 바스락거립니다. 투명하고 파아란 하늘과 하얀 눈꽃 가지가 어울려 만들어내는 블루 다이아몬드 색채가 깊은 바다 속의 산호와 같이 그윽한 명품의 잔상을 남깁니다.
정상 부근에서 이십미터 가까이 거구를 이루고 사는 나무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나무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주목나무 울타리 안에서 점심을 먹으니 우리 모두 건강하게 장수할 것 같습니다. 울타리 안에서 요새를 다지기 위해 황종률님은 눈삽으로 겹겹 쌓여 있는 눈을 퍼냅니다. 꽃삽보다 약간 큰 듯한 오각형 삽은 눈을 감당하지 못하고, 황종률님의 마른 몸만 비틀비틀 흔들립니다. 대장님의 호출을 받은 김승택님, 단숨에 달려옵니다. 작은 몸이 깊은 눈에 푹푹 빠지지만 열심히 더욱 열심히 눈을 퍼냅니다. 승택이는 아빠가 자랑스러울 것 같습니다. 황종률님은 찬바람을 피하기 위한 비닐 울타리를 나무 가지 가지에 클립으로 고정 시킵니다. 힘을 쓰지 못하는 클립으로 야무지게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옹기종기 앉습니다. 지붕도 만들어야 추위가 덜 할 것 같습니다. 도윤이가 손이 시렵다고 하자 김승택님은 언 손을 녹이기 위해 자신의 목부터 맨살을 드러내더니 가슴속에 손을 집어넣게 합니다. 순간 보는 사람들의 손도 서서히 따뜻해집니다.
그리고 먹었던 순두부라면, 삶은 달걀을 동동 띄운 라면, 문어라면, 어묵라면
라면 레시피는 끝이 없어라, 라면 사랑은 끝이 없어라,
그리고 설산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은 한이 없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