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대한민국국민이라면
다 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북의 남침야욕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직도 북한은
일인독재체재를 유지하고 있고
북한동포들은 굶주림에 헐 벗고
배고픔에 죽어 가고 있습니다.
당간부들은 배불리먹고
주민들은 배고파 죽고
아직도 이러한 세상입니다.
북한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세계의 한국전쟁 기념비
1. 파리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파리 세느강 마레다리 근처에 위치한 한국전 참전기념비
2. 호주캔버라 Korean War Memorial, Canberra
한국전쟁 가평전투에 참가한 호주군인들
3. 캐나다 Wall of Remembrance(Brampton, Ontario), 한국전쟁기념비
4.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Korean War Veterans Memorial)
링컨기념관 인근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의 기념 조형물은 미국 성조기를 향해서 우비를 입은 한 소대가 전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조각상 양쪽으로 서 있는 벽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2,500명의 얼굴들이 레이저로 새겨져 있다. 미국은 한국전쟁에 150만 명이 참전하여 5만 4000명이 사망하고 11만 명이 잡히거나 부상당했으며, 8,000명이 실종되었다.
가운데 게양되어 있는 성조기 아래에는 "조국은 그들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조국의 부름에 응한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라고 적혀 있다.
5. 맨하탄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기리는 장소가 뉴욕 맨하탄의 최남단 배터리 파크 내에 있다. 배터리 파크 내에는 수많은 기념물과 기념탑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기념물이 군인 형상의 구멍 뚫린 조각물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이다.
6. 미국 Connecticut (컨네티컷) West Haven의 한국전쟁 참전기념비
7. 미국 Atlantic City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8. 미국 Staten Island에 위치한 Korean War Veterans Parkway
9. 보스톤의 한국전쟁기념비
Korean War Veterans of Massachusetts, Charlestown Navy Yard
10, 남아공의 케이프타운 한국 전쟁 참전 기념비.
국내 6.25 참전 기념비
유엔군 초전기념비 (경기 오산시)
유엔군 참전기념비는 한국전쟁(1950년 6월 25일)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1950년 7월 5일 미군 제 24사단 소속 제21보병부대 및 제 52 야포대대 소속 1개 중대로 편성된 스미스 전투부대 406명의 장병이 북한과의 최초 전투를 기념하기 위하여 1955년 7월 5일 미군 제 24단과 장병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UN묘지 (부산 남구 대연동 779번지 일대)
남구 대연동 779번지 일대의 면적 144,146㎡로 유엔 묘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도발에 의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자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16개국의 전투지원국과 5개국의 의료지원국의 유엔군 장병의 전사한 영령을 안치한 곳이다. 1951년 1월 18일에 묘지를 조성 설치하고, 1955년 11월 15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에서 오직 하나 뿐인 유엔 관리의 묘지로, 1959년 유엔과 우리정부 사이에 묘지의 영구적인 관리 및 사용을 위한 협정이 성립되었으며, 1974년에는 관리권이 영령을 안치한 참전국 11개국으로 구성된 국제연합기념관리위원회에 이관되었다. 현재 이곳에 안치된 영령은 영국 884, 터어키 462, 캐나다 378, 오스트레일리아 281, 네델란드 117, 프랑스 44, 뉴우질랜드 34, 미국 19, 남아프리카공화국 11, 노르웨이 1, 한국 36, 무명용사 4, 비전투원 11기로서 총 2,282기가 안치되어 있다. 처음 이곳에 묘지가 설치될 때 묘의 수는 미국 등 16개국 11,000기 이었으나 이디오피아, 태국, 그리이스, 룩셈부르크, 콜롬비아 등 5개국 전몰장병 묘를 이곳에서 본국으로 이장해 갔기 때문에 현재의 기수(基數)로 줄었다.
유엔군 참전기념비
높이 12.05m, 16개의 기둥으로 탑신을 이루고, 기둥의 중간부분에 각국 의 특색을 살린 군인상을 청동으로 조각해 붙였으며, 기둥끝에 각국의 국기를 게양토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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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경수현 기자 = 한국전쟁 발발 59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AP, UPI 등 뉴스통신사의 종군기자들이
촬영했던 6.25 관련 사진들이 공개됐다.
사진 연구가인 정성길(68)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이 8년전 미국에서 구입한 사진들이다.
눈이 쌓인 들판에 공수부대 요원들이 보급품과 함께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 민간인으로 위장하고 있다가
미군에 붙잡히 북한군의 모습, 노파의 짐을 조사하는 미군 병사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참전 미군들이 잠시의 여유를 즐기는 듯 소를 타고 즐거워 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정 명예관장은 "800여점의 사진을 어렵게 구입해 보관하고 있다"며
"한국전쟁 60주년인 내년에는 사진전을 여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 <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제공 > > 2009.6.24
< <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제공 > > 2009.6.24
< <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제공 > > 2009.6.24
쌀을 숨겨라는 삐라
빨치산 궐기 촉구 북중공군 이간질 삐라
선전선동포스
포스가 넘치는 좌급포스트
추락한 조종사 신변보장 요구
美 워싱톤DC 한국전 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
베트남 전쟁
미국에 살고있는 이승엽 전우께서 미국 백악관 근처에 있는 월남전 기념공원(Vietnam veterans Memorial), 한국전 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을 한국의 파월전우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예전에 말씀하셨는데, 이번에 가셔서 찍은 사진을 www.vietvet.co.kr (월남전과 한국) 운영자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한국전쟁 기념공원 사진을 찍으신 순서대로 편집하여 올립니다. 이승엽 전우님 고맙습니다.
방문객들을 위한 한국전쟁 메모리얼(Korean War Veterans Memorial) 안내 팜플렛.
몰의 정방형 수로(Reflecting Pool)를 가운데 두고 월남전 메모리얼과 마주한 곳에 한국전 메모리얼이 있다.
미국인들의 애국심은 실로 대단하다. 조국을 위해 전쟁에 나가거나 전사하는 것에 대해 매우 자부심을 느끼는 전통이 있다.
어느나라든 자기조국에 대한 애국심이야 다 있겠지만 국가차원에서 이런 애국심을 국민들에게 고양시키려고 노력하는 나라는 그리 많치 않은 것 같다.
한국전쟁 메모리얼에는 625전쟁에 참전한 다국적군의 모습을 하나하나 그린듯한 판초우의를 입은 다소 피곤에 지친 군인들 동상이 대열을 이루며 어디론가 들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다. 그들을 따라 같이 걸어가며 용감한 우리편이라는 생각에 잠길때 그들앞에는 성조기가 펄럭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Freedom is not Free" 벽면에 세겨진 이 선언적 문구는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면에 '너희가 지금 누리는 자유는 우리가 희생된 결과이다'라는 우회적 표현이 아닌지 생각하게 만든다. 수많은 관광객이 집중되는 상징적 공간에 그들의 의도된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우리의 미합중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생면부지의 나라, 일면식도 없는 그들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하여 분연히 나섰던 자랑스러운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한국전쟁 1950년~1953년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1950.6.25일부터 1953.7.27일까지 한국전쟁에 참전 했으며 54,246명이 젊은 목숨을 바쳤고 103,284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아직도 8,176명의 실종자를 남기고 있다.
부상자: 미국 103,284명 / 연합군 1,064,453명
포로: 미국 7,140명 / 연합군 92,970명
실종자: 미국 8,177명 / 연합군 470,267명
전사자: 미국 54,246명 / 연합군 628,833명
6.25 한국전쟁으로 인한 대한민국의 손실은 전사자 415,004명을 포함하여 총 1,312,836 명의 희생자를 냈으며, 당시 대한민국이 입은 경제적 손실은 가히 계수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인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고 이렇게 수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전쟁을 마감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 궁핍했던 우리네 살림살이는 이제 가정마다 자가용 한 대 정도는 두고사는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세계 11위의 경제규모에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가 넘었다. 대한민국의 이름 아래 누리는 이 안락한 삶은, 멀리는 반만년 동안 크고작은 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낸 참전용사들에게, 가까이는 한국전쟁의 참화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유엔연합국 전몰장병들에게 빚을 진 것이다.
한국전쟁후 반세기가 지났어도 한반도는 총성만 멈춘 준 전시 상태로 남겨져있다. 그 반세기동안 남북한은 각각 서로 다른 사회체제가 진행되었고, 남북의 이념적 간극은 벌어질대로 벌어져서 고착화 되었다. 현재 북한은 반미와 남조선해방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고, 전세계의 이목은 유일무이한 독재공산체제 김정일을 압박하고 있는 불안한 정세속에 한반도가 있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방심을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는 과연 얼마나 한국전쟁을 이해하고 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작금의 평택사태를 보노라면 붉은 세력들이 반미를 부르짖고 있고, 대한민국의 법과 정치환경은 붉은 무리들의 활동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었고, 경험부족의 정치가들은 북한의 계략에 놀아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한미동맹이 절실한 현실에 반미를 부르짖으며 국제사회의 고립을 자초하고 있으니, 제2의 6.25 전초전 같은 불안감이 생긴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잊으면 그 민족은 멸망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
워신톤 소재 한국전 참전 기념 공원의 銘文
Freedom is not free.
Our nation honors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the country
they never knew and the people they never met.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조국은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하노니,
그대들은 이름도 알지 못한 나라의 만난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조국의 부름에 응했도다.
미국의 워싱턴 DC에는 한국전에 참전하여 희생된
미군을 추모하는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이 있다.
19명의 육,해,공군 병사들이 판초 우의를 입고
총을들고 행군 하는 모습이다.
한국전에 참가하여 희생된 미군 사망자만 5만4246명,
한국군을 포함하여 유엔군 사망자는 모두 62만8833명,
부상자는 미군 10만3284명, 유엔군 전체는 106만4453명,
실종자는 미군8177명, 유엔군 전체는 47만 267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이락크전 미군 사망자가 3000여명에 비추어 볼때 엄청난 희생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할말을 잃는다.
북한의 모습입니다.
지난 10년간 300만이 굶어죽었다는 북한의 현실 - 믿어지는 사진들.
대한민국이 많이도 도와주었는데 그것은 원자폭탄 만드는데 다 쓰고‥
북한 주민의 평균수명은 66세.
남한 국민의 평균수명은 79세.
▲ 국가기록원은 6.25전쟁 56주년을 맞아 '기록사진으로 본 해방.전쟁.생활상'을 주제로 한 사진전시회를 22일부터 정부중앙청사 1층 로비에서 연다. 사진은 경찰관 23명에 대한 인민재판을 집행하는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
▲ 재탈환 전 서울 독립문 국가기록원은 6.25전쟁 56주년을 맞아 '기록사진으로 본 해방.전쟁.생활상'을 주제로 한 사진전시회를 22일부터 정부중앙청사 1층 로비에서 연다. 사진은 재탈환 전 서울 독립문 부근(51. 3. 5). /국가기록원 제공 |
▲ 임진강 부교 국가기록원은 6.25전쟁 56주년을 맞아 '기록사진으로 본 해방.전쟁.생활상'을 주제로 한 사진전시회를 22일부터 정부중앙청사 1층 로비에서 연다. 사진은 휴전회담장으로 가는 길-임진강 부교(浮橋)(51.7.15). /국가기록원 | | |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위의 서명으로 한국전쟁 발발 56주년을 앞두고 당시의 상처들을 담은 사진집 2권이 사진전문 눈빛 출판사에서 발간됐다
소설가 박도씨가 2004년 2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의 사진자료실에서 찾아낸 한국전쟁 사진들을 모아 펴낸 책이다.
우리에게 전흔이 사라진지 오래 전쟁이 이땅에 있었다는 것을 간간히 기억해내야 할 만큼 지금 우리는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산다.
얼마전 옥수수죽과 덩어리 탈지분유 이야기를 보고 그 이야기가 사실이냐구 묻는 사람이 종종있다.
사진을 보는 내내 이런 풍요를 일궈낸 우리 부모님들 세대에 감사한 마음만 터져 나온다.
고생하셨습니다. 지켜오시고 닦아내어주신 상처 저희가 더 발전시키고 아름다운 조국으로 지켜 나갈 것입니다.
사진은 서부전선에서 체포된 중공군들이 자신들을 사살할 것으로 오인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 (1951년)//문화/ -눈빛출판사 제공-
사진은 집단학살 현장에서 수습된 시신 중에서 가족을 확인한 유족들이 울부짖고 있는모습. (1950년.10월 함흥)/ -눈빛출판사 제공-
사진은 자기가 그린 태극기를 들고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평양의 한 학생과 엎드려 있는 북한군 병사. (1951년 10월)//문화/ -눈빛출판사 제공-
사진은 미 공군 전투기가 원산 시가지를 폭격하는 모습. (1951년)//문화/ -눈빛출판사 제공-
사진은 장갑차를 탄 미군들이 서울로 진입하는 모습 (1945년 9월) -눈빛출판사 제공-
사진은 얼음이 둥둥 떠내려 가는 차가운 강물을 건너는 부자의 모습 (1951년 1월) -눈빛출판사 제공-
사진은 북으로 돌아가는 북한 여군 포로들이 열차 밖으로 인공기 등을 내걸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 (1953년.8월) -눈빛출판사 제공-
사진은 인적사항이 적힌 목걸이를 걸고 새 옷이 지급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북한군 포로들. (1950년 10월) -눈빛출판사 제공-
"아! 아! 잊으랴! 어찌우리 이날을!"
원조 금순이?
6.25전쟁이 터지자 생활필수품을 한보따리 싸서 머리에 인체 아기를 업고 피난 가는 이 젊은 새댁. 사진은 전쟁 발발 직후 발행된 미국 LIFE잡지(1950년 7월 10일자)에 전면 크기로 실렸다. 얼마 전 워싱턴 근교에선 일일 골동품 시장에 갔다가 이 잡지를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이 새댁의 모습이 요즘 인기 절정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의 주인공을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왼쪽에 삽입한 사진은 TV화면을 보고 촬영한 것.
어른들은 왜 싸울까?
전투 중인 미군 아저씨들로부터 철모를 얻어 쓴 두 꼬마 아가씨가 대포 소리가 너무 무서워 귀를 막고 있다. 난리 통에 부모를 잃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유명한 사진기자 David D. Duncan이 찍은 보도사진이다.
이게 유토피아?
인천 상륙작전이 끝난 뒤 한 해병이 파괴된 인천 시내를 순찰하다가 어린 아이와 만난다.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행운아들이다. "유토피아"(이상향)이라는 다방 간판이 폐허가 된 거리 풍경과 아이러니칼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미국 국립 문서보관소 사진)
"피난을 가더라도 갓은 써야지"
미군 ?차에 실려 두 손자와 함께 피난 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있는 사진인데, 사진 설명을 보면, 중공군과 전투가 있으니 동네를 떠나달라는 미군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동네 이장인 이 할아버지가 피난 가기를 거부, 할수없이 ?차로 모시고 가는 길이라고 적혀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군인은 북쪽으로, 피난민은 남쪽으로
6.25가 터진지 열흘이 지나서 미군은 처음으로 오산 죽미령에서 인민군과 싸웠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계속 남하하는 북한 침략군을 저지하기 위해 북으로 행진하는 미군들과 그 정반대 방향으로 피난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겁다.(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탱크도 무섭지 않은 아이들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탱크가 지나가도 마차가 지나는 것처럼 무관심한 어린이들.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식량 구하러 간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아줌마는 강하다!
머리엔 무엇인가 잔뜩 이고 지팡이를 짚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두 아줌마... 아마도 식량을 구해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 것이다. 길옆에서는 미군들이 대포를 쏠 준비를 하고 있다.(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
북진하는 탱크에 방해가 될세라 얌전히 길 한쪽에 한 줄로 서서 걸어가는 피난민 대열. 자세히 보면 젊은 사람은 없고 노인들과 아녀자들 뿐이다.(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헬로! 땡큐!
미군으로부터 초컬렛을 받고 있는 어린이. 처음 보는 것이라 과자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만약 서울에..핵탄두가 떨어진다면 !
만약에 서울에... 핵탄두가 떨어진다면 . . . mt 규모의 핵폭탄이 터졌을 경우의 시나리오입니다.(mt:메가톤의 약자) 1mt으로 정한건 일반적인 전략 핵폭탄의 기본 크기이며,말 그대로 전략 핵폭탄인 만큼 도시들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죠. (전술 핵폭탄이 전략 핵폭탄에 비해 3배이상 강합니다.) 오후 1시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상공(2500고도)에 1mt 전략 핵폭탄 직격..
1. 열복사
서울시청을 중심으로 반경 약 3km의 모든것이 폭발과 동시에 '증발'합니다.
경복궁, 서울역, 을지로, 종로, 동대문, 연세대, 숙명여대, 용산구청,북한산 국립공원 일부가 태양의 약 1000배의 열로 약 1에서 2초간에 순식간에 '증발'해버립니다.
그냥 밝은 빛이 카메라 후래쉬 터지듯 반짝한후 동시에 '증발'입니다.피해자들은 자신이 죽는지도 핵폭발이 일어났는지도 느낄 수 없습니다. 그와 동시에 전자장펄스(EMP)에 의해 서울 및 기타 인근도시의모든 전자장비 및 자동차, 심지어 여러분의 손목시계까지 모두 작동을 멈춥니다.
또한 약 7~9km떨어져있는(서울시립대, 성산대교, 동작대교, 국립묘지,반포고속버스 터미널, 미아삼거리, 동덕여대, 서대문 시립병원, 서부시외버스터미널)등의 모든것이엄청난 열로인해 타기시작하며,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같이 타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3도 화상을 입게되고 노출부위가 25%가 넘는
사람들은 몇 초 뒤 절명하며, 거의 이 지역의 대부분인 노출부위 25%미만의 사람들은 약 1분뒤 후폭풍이 다가올 때까지 고통 속에서 기다리게 됩니다.
2. 후폭풍
폭심지부터 반경 약 3km의 불덩이가 생기며 엄청난 양의 산소를 태우게 됩니다. 그리고 모자라는 산소를 주위에서 흡수하기 시작하는데 불타고 있는 폭심지 주변의 건물들이 산소를 빨아들이는 속도에 못견디고 대부분 폭심지 안쪽을 향해 붕괴합니다.
그리고 몇초뒤 시속 1000km로 산소를 팽창시키는데 속도는 점점 느려져서 25초뒤에는 약 시속 400km 속력의 후폭풍이 (동대문, 연세대, 숙명여대,용산구청) 등에 도착하게 되고, 1분 뒤에는 시속 50km 속력의 후폭풍이 약 7~9km떨어져있는 서울시립대, 동작대교, 반포등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후폭풍은 약 진도7의 지진의 파괴력으로 도시를 덮치는데,지상의 90%이상의 모든 건물들은 이 충격으로 파괴되고 모든 건물파편이나 유리파편은 조각조각나서 이 부근의 사람들의 몸을 총알처럼 관통하여 살상하게 되며, 더욱이 파편뿐만 아니라 이 바람에 직접 노출되면 사람의 몸도 두동강이 납니다.
또한 엄청난 열을 발산하므로 인근의 아스팔트도로들이 부글부글 끓게 됩니다. 약 2~3분정도 경과하면 후폭풍은( 과천시청, 정부종합청사, 서울랜드,중부고속도로입구, 카톨릭병원, 김포공항, 도봉산, 광명시청, 송파구, 부천역곡, 태릉선수촌, 구리시, 미금시, 행주산성)에까지 도달하며이 지역들 역시 처음 지역보다는 덜하지만 후폭풍으로 인한
건물붕괴,화재 등이 일어나며,이로 인해 피해 속에서 겨우겨우 생존해건물 밖으로 도망쳐 온 생존자들에겐 화재선풍이라는 또 하나의 재앙이 덮칩니다.
오후 1시로 시간을 정한 이유는 이 시간대에 일반적으로 불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핵폭발시에 더 많은 피해를 내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인 후폭풍의 범위는 말씀하시는 분마다 가지각색인데 반경 약 30km 이내의 건물들을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결국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후폭풍이(인천, 의정부, 수원)
까지도 도달하여 건물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3. 선낙진피해
엄청난 후폭풍으로 인해 차량, 인간, 건물파편등이 공중으로 날아가는데약 2~3km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갑니다.
그 뒤 후폭풍의 영향으로 폭심지 멀리 떨어지는데 피해 예상지역은
(인천, 안산, 수원, 용인,동두천, 심지어 강화도까지)날아갑니다. 대부분의 선낙진은눈처럼 떨어지는 뿌연 재인데, 앞서 언급한 차량, 인간, 건물파편 등도 많은 양이 같이 떨어집니다.
선낙진들은 엄청난 방사능을 띤 오염물질들인데 처음 열복사 내지 선낙진에 노출된 사람은 2주 내지 길게 6개월 안에 사망하게 됩니다.
4. 후낙진피해
작고 가벼운 먼지 크기의 재들은 더 높이 올라가 바람을 타고 더 멀리 뿌려지게 됩니다. 서울에서 터졌을 때 후낙진은 무역풍을 타고 일본까지 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종합했을 때 1차 열복사및 2차 후폭풍에 의해 서울의 모든 80~90%의 건물파괴 및 서울인구 천만명 중 약 200만명은 찍소리 한번 내보지도 못하고 즉사,약 2백만명은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다 사망, 그리고 약 300만명은 2주 내지 6개월 안에 사망하게 될 것이며,
교통마비, 수돗물 중단, 전기 중단, 의료기관 및 의료요원의 부족 속에서 사망자는 더욱 더 늘어날 것입니다.
또한 인근도시 (인천, 수원, 동두천, 의정부)등은 열복사 및 후폭풍에 의한 직접피해는 그나마 서울보다는 좀 덜할테지만 선낙진피해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은 서울 못지 않을 것이며 전체적인 피해역시
약 60% 이상의 인구가 직간접적인 피해로 6개월 안에 사망할 것입니다. 간단히 계산했을 때 우리나라 인구 중 천만에서 천이백만명 정도가 사망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수도권 붕괴로 우리나라는 당장 후진국이 되겠죠. 방사능피해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의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며, 핵전쟁 후를 표현한 TTAPS보고서에서는 이를(The quick envy the dead) 라고 표현했습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하는 세상
말 그대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남아 있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고통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만이 있을뿐입니다.
* 어떻한 경우라도 전쟁은 막아야 합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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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누구에게나 자식은 귀할것인데 이름에 이병이많네요.......스무살의 어린 영혼들을 다시 생각합니다
천안함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
넘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