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옛 충남도경 상무관'의 추억 :: 대전일보 (daejonilbo.com)
【윤승원 수필】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옛 충남도경 상무관’의 추억
◆ 훌륭한 인품의 무도사범으로부터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정신도 배워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재향경우회 홍보지도위원
“대전의 옛 충남경찰청 상무관(尙武館)이 드디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라디오 지방 뉴스를 듣다가 갑자기 40년 전으로 돌아갔다. 상무관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잊지 못할 경우(警友)들도 많다.
1970년대 후반 전투복 차림으로 상무관에서 잠을 잤다. 교육훈련도 받았다. 기동대 창설 요원으로 별도 막사가 없어 상무관을 임시 숙식 장소로 이용했다. 최근에 이곳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건물 벽은 낡아 흉물스러웠고, 출입구에 붙어 있던 현판은 떨어져 자취를 감추었다. 건물 외관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했으나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헐리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상무관은 1963년 설립된 ‘충남 경찰학교 체육관’이다. 건립 당시 미군의 경제적 지원과 일제강점기 충남 무덕전 건물터에 남아 있던 기단을 활용해 건축됐다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시대적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충남도청이 내포 신도시로 이전 후 충남도경 상무관도 활용 방법을 놓고 당국의 고민이 컸다.
이미 수년 전에 문화재청이 국가등록문화재로 권고했던 문화유산이었으나 추진되지 못하고 방치됐었다. 문화재청은 다양한 의견 수렴 기간을 거쳐 최근에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해 문화재로 등록됐다고 발표했다.
문화재 등록을 위한 평가에서 상무관이 역사성, 예술성, 학술성, 건립연대 등에서 문화유산 가치를 인정 받아 국가등록문화재로 최종 결정, 보존 관리하게 됐으니, 전직 경찰의 한 사람으로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시 당국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시설물을 채우지 않고 현상 보존을 위한 활용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
충남 도경에 근무했던 전직 경찰의 한 사람으로서 상무관을 둘러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오후 4시가 되면 전 직원이 상무관으로 집결했다. 주로 검도와 태권도를 연습했지만, 한때는 ‘단전호흡’도 배웠다. 단전호흡 대가인 안응모 충남경찰국장의 배려였다. 단전호흡이란 시간 여유 없이 고단하게 살아가는 경찰관들에게는 참으로 편한(?) 운동이었다.
‘숨 쉬는 운동’이라니,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심신이 지친 동료 경찰관들은 ‘단전호흡 시간이 기다려진다’라고 했다. 단전호흡하다가 코를 고는 경찰도 있었다. 몸집이 유난히 우람한 B 경사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면 코를 골았다. 단전호흡 강사도 경찰관들의 고단한 일상을 이해하는지 나무라지 않았다.
이곳에서 무도훈련 개인 평가도 했다. 승진에 필요한 인사고과점수에 반영되는 실전과 같은 ‘무술 대련(對鍊)’이었다. ‘약속 대련’이니까 태권도 발차기 등 웬만하면 다치지 않게 슬슬 하자고 사전에 약속하지만, 막상 시합에 임하면 원칙대로 몸을 펄펄 날리는 경찰이 많았다.
뜻하지 않은 사고도 있었다. 통신과 K 순경과 경무과 B 경사가 인사고과 평가 대련에서 맞붙었다. 그런데 K 순경의 발차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인정사정없는 공격이었다. 슬슬 하자고 사전 약속하여 방심하고 있던 J 경사의 팔뚝이 부러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약속 대련에서 팔이 골절된 J 경사는 그해 치열한 승진시험에서 합격했다.
승진시험 합격 비결을 말하면서 ‘팔 부러진 덕을 톡톡히 봤다’라고 해서 동료 경찰들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팔이 골절된 덕에 각종 비상 동원에서도 면제되고 승진시험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는 웃지 못할 후일담이었다.
상무관에서 남달리 존경받는 경찰관이 있었다. 계급은 비록 경사 계급이었지만 어느 상관도 그를 하대하지 않았다. 호칭도 ‘아무개 경사’가 아니라 꼭 ‘L 사범’이라고 존칭했다. ‘L 사범’은 태권도 고단자답게 동료들에게 늘 정중한 예와 반듯한 언행을 보여줬다.
‘상무(尙武)’란 무예를 중히 여기고 숭상한다는 뜻이다. ‘무예’란 민첩한 동작을 갈고 닦는 체력 연마의 뜻도 중요하지만 ‘반듯한 인격 수양’도 포함하는 말이다. 상무관에서 교육훈련을 받는 이들은 치안 일선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관들이다.
조직 폭력범죄, 민생 침해 사범 등 불철주야 몸을 아끼지 않고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는 형사들이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 부녀자, 장애인 등을 따뜻하게 돌보고 봉사도 해야 하는 ‘지역 주민의 파수꾼’들이다.
‘L 사범’이 상무관에서 보여준 것은 멋진 태권도 품새만이 아니었다. 태권도를 20분 가르쳤다면 나머지 40분간은 무술 유단자의 정신을 강조했다. 인간의 기본 도리와 예법도 설파했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특별히 강조하는 무도인(武道人)의 올곧은 정신 자세를 일선 경찰관에게 심어준 것이었다. 충남도경 상무관 건물을 바라볼 때마다 훌륭한 인품의 ‘무도 사범’ 얼굴이 겹쳐 떠오른다. ■
2022.03.18. 윤승원 소감 記
■ 따뜻한 공감과 격려의 말씀 주신 분들
필자는 지난해 가을(2021. 11. 21.) 대전 선화동 '옛 충남경찰청사'와 '상무관'을 둘러보고 나서 블로그와 카페에 사진과 함께 소감을 썼다.(하단 링크 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는 충남도경 상무관』 참조) 이곳 충남도경에서 20여년 근무했던 전직 경찰의 한 사람으로서 건물이 낡고 퇴락해 가는 현상이 안타까워 쓴 글이다.
■ 이에 따뜻한 댓글로 공감해 주고 응원을 보내준 경찰 동기생도 있었다. 1970년대 후반 당시 상무관에서 함께 숙식했던 김희곤 경우(警友)이다. 김희곤 경우는 댓글에서 “충남경찰에 처음 입문하여 상무관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지내면서 대전권 파출소에 파견 나가서 선배들과 야간 통금 위반 단속하고, 장발 단속도 하는 등 많은 추억이 생각이 납니다.”라고 회고하면서
“특히 10.26 사건 때는 작업복과 전투화를 신고 출동대기인 상태에서 그 추운 상무관에서 지냈던 기억도 나는군요. 아마 지금 후배경찰들에게 지난날들의 생활을 이야기하면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정말 우리 경찰 동기생들 그때 너무나 고생이 많았지요. 좋은 추억담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공감의 뜻을 표했다.
■ 바로 이웃 건물인 충남도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여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가기천 수필가(전 서산시부시장)는 당시를 자상하게 회고하면서 향후 의미 있는 모습으로 '재 탄생'하기를 기원했다.
“윤 선생님. 짠한 심정은 단숨에 읽지를 못하게 합니다. 사진을 보니 옛날로 돌아가게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쓰셨습니다. 수 십 년 동안 쌓인 추억이니 몇 아름되고도 남지요. 뭉게구름 내려 앉은 듯한 향나무 울타리, 불에 탈 때는 제 살갗이 데는 듯했습니다. 올 초, 개념 없는 사람들이 뽑아냈다는 보도를 보고 분노보다는 서글픔이 앞섰습니다. 아직도 용도를 두고 이야기가 분분한 채, 날로 기력을 다하는 노인처럼 쇠락해가는 모습만 보이니, 대전 아니, 충남 역사의 중심을 그렇게 가볍게 여겨도 되는지 정말 아쉽습니다. 지혜를 짜내어 의미 있는 모습으로 '재탄생' 되기를 진정 소망합니다."
■ 뿐만 아니라, 충남지방경찰청장을 역임한 조용연 작가는 댓글에서 “근현대 역사 전시관이 된 옛 충남도청, 그리고 헛간처럼 내단 1960년대식 허접한 충남경찰국 청사, 상무관이 허물어져 가는 풍경! 그 속에서 건국, 구국, 호국을 주문처럼 외우던 선배님들의 애국이 다시 우러러 보입니다.”라는 의미 심장한 회고를 해주었다.
■ 또한 필자가 특별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에서 존경하는 역사학자 낙암 정구복 박사(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따뜻한 위로의 말씀과 함께 옛 상무관이 근현대사 자료로서 향후 보존 가치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해 주셨다. 그야말로 학자적 '선견지명'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일찍이 예감하고 정확하게 짚어 주신 셈이다.
"오랫동안 근무했던 건물이 없어지는 애닯은 감정을 아름다운 글로 술술 풀어내셨군요. 마음의 허전함을 극복하기 어렵겠습니다. 그 건물이 우리나라 경찰박물관으로 살리는 방안 등을 많이 연구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경찰 역사박물관으로 존치하면 세계사적인 경찰 자료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로서의 자료 가치, 그리고 미래의 경찰상까지를 담아 놓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좋은 소식 있기를 기대합니다."(낙암 정구복)
※ 예측 적중 : 정구복 박사님이 일찍이 필자의 소감 댓글에서 언급하신 "좋은 소식"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옛 충남도경 상무관이 드디어 『국가등록문화재』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 단순히 기대감 표출로 그친 게 아니라 '예측 적중'이다. 감사합니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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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글 :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는 ‘옛 충남경찰청사’를 둘러보며(윤승원 글, 사진) - Daum 카페
【윤승원 추억 더듬記】낡고 퇴락한 ‘옛 충남경찰청사’를 둘러보며 (daum.net)
▲ 필자가 둘러 본 상무관 전경(2021. 11. 21.)
※ 상무관 사진과 역사 자료
▲ 옛 충남도경 상무관 현판(문화재청 자료 사진, 현재는 떨어져 나감)
▲ 충남도경 상무관을 지역 청소년과 주민에게도 '무도수련장'으로 개방(1992년).
위 사진은 필자가 편찬위원으로 참여했던 《충남경찰史, 1998》 자료 중 '상무관'에 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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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예측 적중 : 정구복 박사님이 일찍이 필자의 소감 댓글에서 언급하신 "좋은 소식"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옛 충남도경 상무관이 드디어 『국가등록문화재』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
단순히 기대감 표출로 그친 게 아니라 '예측 적중'입니다. 감사합니다
충청남도 경찰관의 심신의 단련장이었던 상무관이 국가문화재로 등록되었음을 경축합니다. 장천 선생이 늘 걱정하시던 것이 이제 다리 쭉 뻗고 주무셔도 되겠습니다. 후손들에게 오랜 동안 많은 길이 전해지게 될 이야기와 전설, 꿈을 키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외치는 역사창조의 상징의 하나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의 역사창조를 위하여 올사모 회원 모두 다 함께 축배를 올립시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데다, 예술성, 학술성, 건립연대 등에서 문화유산 가치를 평가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전 현직 경찰들에겐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건축물입니다.
정 박사님 따뜻한 격려와 응원도 문화재 전문가들의 평가기준과 다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아침 대전일보에 실린 저의 졸고를 보시고 서울에서 재향경우회 중앙회장님도 반갑다면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뜻있는 소식을 서로 나눌 수 있어 필자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청촌수필’ 블로그 댓글
◆ 김희곤(전 경찰관, 필자와 경찰학교 동기생) 2022.03.18. 10:26
윤승원 작가님의 "옛 도경 상무관의 추억"을 다시 한번 읽어 보면서
우리 작가님의 노력으로 상무관이 "국가등록문화재"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앞으로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서 잘 복원 관리를 해야되겠다 라고 생각합니다.
각 분야 모든 직장인들이 세월이 지나면 그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
은퇴후에는 저마다 지난 날들의 추억들을 되새기면서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 인생의 단면 일 것입니다.
특히 옛 충남도경 상무관에는 많은 선후배 경찰관들의 추억담들이 담겨져 있지만,
특히 경찰 54기 동기생들은 잊지 못 할 추억과 기억들이 많이많이 깃들여 있어서
동기생들은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추억들을 생생하게 상기시켜주고 회상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
훌륭하신 윤승원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윤승원 작가님께서
많은 분에게 감동을 주고 희노애락을 느낄수 있는 훌륭하신 작품들을 많이 써주시길
기대하면서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54기 동기생 김희곤 올림
▲ 답글 / 윤승원 2022.03.18. 10:45
김희곤 경찰 동기님.
영원한 警友이며 남달리 인품이 따뜻한 동지이지요.
상무관에서 벌어졌던 숱한 에피소드 중 만분지 일의 추억담만
언급했습니다.
최근에 지인들과 옛 도경 인근 고려회관에서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상무관을 둘러보며 이런 사진을 찍게 됐고,
잇따라 추억의 글도 쓰게 됐습니다.
김희곤 동기님.
가슴이 따뜻해지는 댓글 참으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옛 충남도경 상무관의 추억'과 더불어 상록관 사진과 역사 자료를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박 교수님께서 저의 졸고를 따뜻하게 살펴주시고 격려해 주시니 소개한 보람을 느낍니다.
문화재 당국에서 옛 충남도경 상무관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가치를 평가해 주니
많은 추억을 간직한 경우(警友)들과 지역 주민들도 크게 반가워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