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덕 산문집 p192-195
눈을 똑바로 뜨시오
오늘날 시중에는 Z세대(1996~2005년생, 15~24세)와 밀레니엄세대(1991~1995년생, 25~39세) 즉, MZ세대에 대한 논란이 무성하다. 그들은 약 1700만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2%를 차지하고, X세대(40대)와 86세대(50대)를 합한 인구와 비슷하다. 그들은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하고 인터넷과 모바일에 익숙하고 실용주의적 경향도 보이지만 위에서 본 바와 같은 문제점도 안고 있다.
앞으로 젊은이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 인간상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묻고 싶다. 이상적 인간상은 삼성(三性)을 갖출 때 가능하다. 심신이 강건해 개척정신이 돋보이는 야성(野性)과 교양이 풍성한 지성(知性)과 인격이 원만한 덕성(德性)이 그것이다. 기성세대는 무조건 보수이고 젊은 세대는 무조건 진보라는 좁아터진 '1 vs 99'라는 프레임에 갇혀 가치판단의 오류를 범하면서도 공정과 정의, 자유와 평등을 마음 내키는대로 재단할 수 있는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언제까지 낭만적 민족주의나 배타적 민족지상주의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리며 세계시민으로의 성장을 스스로 박차고 말 것인가.
“잔잔한 바다만 찾으면 만선(滿船)은 없다”고 한 것은 오대양을 누비며 원양어업으로 대성한 동원산업의 김재철 회장이 한 말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든가, 위기는 기회
를 가져온다든가, 간난은 성취의 디딤돌이라든가 하는 좋은 격언은 다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나약함만을 보이는 파리한 지식인은 젊은이들의 표본적 기상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아이스하키의 전설적인 선수인 웨인 그랜츠키가 “시도하지 않은 샷은 100% 빗나간다”고 한 말이나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水滴穿石)”는 격언에 유의할 일이다.
40여 년 전 부녀문화사절단원으로 자유중국에 다녀온 집사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자주 얘기하는 것이 있다. 즉 당시 사절단장이었던 안호상(安浩相) 초대 문교부장관이 기회 있을 때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액센트 높은 카랑카랑한 어조로 눈을 똑바로 뜨시오”, “눈을 크게 뜨시오" 하면서 너무도 다구쳐 눈박사라는 별명까지 붙여 주었다는 것이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요, 영혼의 창이며, 신체의 태양이다. 특히 젊은이들의 눈엔 정기(精氣)가 빛나야 한다. 젊을 때는 때로는 레이저광선이 나옴직하지 않는가. 더구나 머리를 들라. 어느 독일 시인이 말했듯 인간은 얼굴을 들고 별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지 않는가. 눈을 똑바로 뜨고 푸른 창공을 응시하면서 다부지고 옹골찬 모습으로 미래를 향해 척척척 도전해 가는 젊은이들의 결기에 찬 모습을 보고 싶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딸 것이 아닌가. 성경에도 있듯이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도전하지 않고는 기회는 없다. 역사는 기회를 놓친 자를 가장 엄중히 처벌하고 저승사자는 '인생을 낭비한 죄'를 가장 엄히 다스려 사형선고를 내린다지 않는가.
젊은이들의 활기찬 희망가 또는 장엄한 코러스도 보고 싶다. 뾰족한 말과 글로 상대방과 사회를 찔러 자기의 존재이유를 찾고 인정욕구에 대한 원초적 갈증을 충족시킬 것이아니라 보다 가치있는 담론을 펼치고, 파안대소하면서 남들과 더불어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모습도 보고 싶다. 얼굴모양은 선택할 수 없지만 얼굴표정은 선택할 수 있지 않는가.
또한 젊을 때 꽃길만 좋아하다 보면 늙어서 가시밭에 넘어진다는 격언도 잊지 말아야겠다. 한시바삐 삶이라는 코트에서 자신의 존재만으로 우뚝 서 있기를 바란다. 일찍이 한용운 선생은 “자중자애(自重自愛) 하라” 이르고, 독립운동가 이상재 선생은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외쳤지 않았는가. 다시 말하거니와 세상이 아무리 대파· 쪽파실파 또는 양파 · 당파로 나뉘어 휘청거리더라도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밝음을 지향하는 미래지향적 자세와 호연지기의 기상으로 보무당당하게 전진해 가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보고 싶다.
* 오늘의 묵상 (221027)
오늘 제1독서는 ‘에페소서’의 마지막 권고 단락입니다. 여기서 바오로 사도는 신앙인들의 여정을 악의 세력과 전투하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이 전투에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할 것을 주문합니다. 우리 몸에 갖추어야 할 무장을 조목조목 나열하는 부분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갖출 요소들이 허리띠, 갑옷, 신발, 방패, 투구, 칼과 같이 당대에 실제로 쓰였던 전쟁 도구에 비유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허리띠는 허리 주변의 옷을 동여맴으로써 전투 과정에서 신속하고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의 가르침으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영적 전투에 참여할 태세를 갖춥니다. 하느님을 닮아 정의롭게 되려는 노력, 곧 일상에서 “의로움”을 실천하려는 자세는 악의 공격에서 우리 몸을 보호하는 갑옷을 입음에 비길 수 있습니다(이사 59,17 참조). 발에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라 함은 악한 세력의 방해에 굴복하지 말고 평화의 복음을 전파하려는 열정을 언제나 갖추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니는 굳건한 “믿음”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 곧 악의 세력이 던지는 거센 유혹을 막아 내는 튼튼한 방패 구실을 합니다. 투구는 우리 몸에서 매우 중요한 부위인 머리를 보호하는 구실을 합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라” 함은(이사 59,17; 1테살 5,8 참조) 우리의 머릿속 모든 생각을 하느님께서 이루실 구원에 대한 확신으로 무장하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칼을 언급하시는데, 앞선 도구들이 방어하는 수단이었다면 칼은 공격에 쓰이는 도구입니다.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유일한 공격 수단은 성령의 칼로, 이는 곧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독서 말씀을 통해서 마치 전투를 앞둔 병사처럼 비장한 각오를 다지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 여정 안에서 상대해야 할 적은 매우 강한 세력들입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죄악으로 유혹하며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할 간계를 꾸밉니다. 이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진리와 의로움, 복음에 대한 열정과 굳건한 믿음, 구원에 대한 확신과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무장해야겠습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인천가톨릭대신학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