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四抱之鄕
김동현 - 내 본향 부산의 Dark Tourism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은 경관이 빼어난 높은 지대가 유난히 많다.
주변 경관을 내려다보는 지역을 대(臺)라고 하며 해운대, 태종대, 이기대, 몰운대,
신선대, 첨이대, 시랑대, 오랑대, 연가대, 자성대, 오륜대, 학소대, 강선대, 겸호대 등 20여곳에 이른다.
해운대는 신라시대 최초의 조기해외유학생 최치원의 자(字) 해운(海雲)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는 12살 때 당나라에 가서 “남이 백을 할 때 나는 천을 한다(人百己千)”는 비상한 각오로 노력하여
18살 때 과거에 합격했으며 ‘황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을 지어 희종 황제의 칭송을 받기도 했다.
중국에서 여려 관직을 거친 후 귀국한 그는 신라말기의 혼란사회를 바로 잡기 위해
각종 개혁안을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곳 해운대를 비롯하여 의성, 하동, 합천 등을 주유하며 은거생활을 했다.
동백섬 남쪽 바위에 그가 직접 음각으로 썼다고 하는 ‘海雲臺’ 글씨가 세월에 마모되어 흐릿하게 보인다.
특히 그는 아름다운 해안선, 하얀 모래, 푸른 솔밭, 동백숲 가득한 해운대를 예찬한 글을 많이 남겼다.
<동국여지승람> 동래현편에 “해운대는 산이 바다 속에 든 것이 누에머리 같다.
겨울과 봄 사이 동백꽃이 땅에 쌓여 지나가는 말발굽에 밟히는 꽃이 3~4치나 된다”고 멋지게 묘사하고 있다.
달 밝은 밤에 해운대에서 벗이나 님과 술잔을 나누면 5개의 달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늘의 달(天月), 바다의 달(海月), 술잔의 달(樽月), 눈동자에 비친 달(眼月),
마음 속에 간직한 달(心月)이 그것이다.
해운대는 여름철 피서지로 정평이 나 있지만, 매년 1월 초에 열리는 해운대 북극곰축제가
새로운 스포츠로 주목받고 있다. 5천명에 이르는 세계 각국 사람들이 이른 아침 웃통을 벗고
해운대의 싸늘한 겨울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면 건강과 활력이 솟는다.
물에 들기 전에 흥겨운 음악에 맞춰 신나는 댄스 율동으로 준비운동을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국 BBC는 33회째를 맞는 2020년 해운대 북극곰축제를 세계10대 겨울 이색스포츠로 선정했다.
해운대는 산과 강, 바다, 온천을 모두 갖춘 사포지향(四抱之鄕)이라서 영화촬영의 최적지로 꼽히고 있다.
2009년 개봉된 한국영화의 40%가 부산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공존하는 부산은 거대한 영화세트장인 셈이다. ‘해운대’ ‘국제시장’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태풍’ 등 20여편이 이곳을 배경으로 제작되었으며,
부산은 이미 세계 속에 ‘영화의 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2005년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담이 부산에서 열리면서
회의장이었던 누리마루 하우스가 동백섬의 새로운 볼거리를 추가했다.
순수 우리말인 누리는 ‘세계’이고 마루는 ‘정상’이라는 뜻이다.
3층으로 된 누리마루의 컨셉은 한국 전통건축인 정자를 현대화하면서
지붕은 동백섬의 능선을 형상화했다. 특히 대청마루에 해당하는 테라스에서는 오륙도와 달맞이 언덕,
광안대교를 바라볼 수 있어 각국 정상들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회의장으로 칭송을 받았다.
2019년 한.아세안 정상회의 때는 건너편 엘시티 101층 모든 건물에 축하조명을 밝힘으로써
해운대 야경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았다.
엘시티 랜드마크 타워에 있는 높이 384m의 전망대는 123층 555m의 서울 잠실롯데월드 타워 다음으로 높다.
56초 동안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전망대를 올라갈 때는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오르는 기분을,
내려갈 때는 잠수정을 타고 바닷속을 여행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투명유리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공중을 떠다니는 것 같은 짜릿함을 만끽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50층 이상에 높이 200m가 넘으면 초고층 건축물로 규정하는데,
전국 초고층 건물 114개 중에서 부산은 가장 많은 35개를 갖고 있는 마천루의 도시다.
101층의 엘시티는 국내 최고층 아파트이다.
해발 634m의 장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해운대는 여름철 해수욕장뿐만 아니라
가장 많은 국제회의와 컨벤션 행사, 각종 전시회,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대규모 축제가 일년 내내
이 곳에서 이어지므로 해운대가 부산을 국제관광도시로 떠받치고 있다.
원래 해운대는 외지 피서객들이 많아 ‘서울의 해운대’라고 불리기도 했다(경향신문.1970.7.27).
한때 부산의 중심이었던 광복동, 동광동의 중구가 이제는 부산 전체 인구의 1.4%인데 비해
외각의 한적한 마을이었던 해운대구 인구가 12.3%일 정도로 인구유입이 급증하는 인기주거지역이다
해운대에 오면 바닷물만 찾는데, 실은 온천이 더 유명하다.
신라 진성여왕이 자주 찾았다고 하는 해운대 온천수는 무색투명한 알칼리성 라듐성분이라
피부병, 위장병, 부인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왔다. 시당국에서 뽑아올린 온천수 양탕장(揚湯場)에서
파이프로 호텔이나 공중탕에 공급해주고 있지만 일제 강점기부터 운영하던 할매탕이나
청풍장 등은 직접 탕원을 개발한 자가온천수를 쓰고 있다.
해운대의 먹거리는 대부분 해산물이지만 해운대암소갈비는 언양불고기 못지 않게 유명하다.
옛날 임금이나 고관들에게 바치는 소고기는 부드러운 육질을 위해 뙤약볕에서 일을 시키지 않고
우리 안에 가두어둔 소를 식재로 사용했다고 한다. 암소갈비는 암컷이라는 뜻이 아니라
어두운 곳, 즉 암소(暗所)에서 키운 소라는 뜻이다.
부산 해운대는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3가지 기록을 갖고 있다.
우선 2008년 8월 1일 해운대해수욕장의 유료 파라솔 7937개 기록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햇볕만 보면 선탠을 즐기는 서양사람들의 속성을 감안하면,
부산이 아니고서는 이 기록을 갱신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인 신세계 센텀 시티.
매장면적이 8만9천평으로 2위인 뉴욕의 메이시스백화점보다 2만9천평이 더 크다.
신세계 부산센텀시티점은 영화관, 서점, 어린이 직업체험 공간 등 ‘체험공간’이 전체 백화점매장의 30%를 차지한다.
체험공간 덕분에 이 백화점 방문객의 평균 체류시간은 다른 지점 방문체류시간의 2배에 가까운 5시간이나 된다.
그러나 롯데, 현대, 신세계 등 골리앗 같은 대형백화점이 들어옴으로써
부산사람들의 추억과 애환이 겹겹이 쌓여있는 토종백화점 미화당, 태화, 유나, 세원,
신세화, 부산백화점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마지막으로 영화복합문화 공간인 ‘영화의 전당’ 건물은 세계 최대의 멋진 캔틸레버 지붕을 갖고 있다.
캔틸레버는 한쪽 끝만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아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공간효과와 햇볕 가리개 역할을 하는 공법이다.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송정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구불구불 15고개의 와우산 15곡도(曲道)가
그 유명한 ‘달맞이고개’다. 해운대 백사장의 선탠(Suntan)과는 달리 벚꽃과 송림 사이로
바다를 구경하며 달리는 8km의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를 ‘문탠로드(Moontan Road)’라고 한다.
숲길 사이로 교교한 달빛을 맞으며 연인과 촉촉한 흙길을 걸으면 프로포즈가 필요 없을 것 같다.
옛날 한 처녀가 와우산에 소를 먹이러 갔다가 소를 잃어버렸는데
어떤 총각이 밤늦게 소를 몰고 찾아왔다고 한다. 첫눈에 반한 두 남녀는 보름달이 뜨면 와우산에서 만나자고
약조했다는 것. 처녀는 달과 님을 만나러 보름날 밤마다 나갔으나 총각은 한해가 다가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실망한 처녀가 마침내 자살하려는 순간 총각이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여 나타남으로써
극적인 해후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달맞이 고개 중간에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추리문학관이 있다.
김내성에 이어 한국의 대표 추리소설가인 김성종이 추리문학의 보급과 발전을 위해
1992년에 세운 우리나라 제1호 전문도서관이다.
<여명의 눈동자>로 유명해진 김성종은 1.4후퇴 때 13살의 소년 피난민으로
어머니와 동생을 잃고 부산과 첫 인연을 맺었으며,
1980년대에는 부산일보에 <안개 속에 지다>와 <백색인간>을 연재하면서
부산으로 이주하여 출판사도 내고 계간지 ‘추리문학’도 발간했다.
건물 입구의 커피점은 코난 도일의 작품에 등장하는 탐정가의 대명사 ‘셜록 홈즈의 집’이다.
북카페와 열람실에는 추리문학서 뿐만 아니라 일반도서까지 4만여권이 내방객들의 손과 눈을 기다린다.
4층은 김성종 작가의 집필실이 있으며 추리소설 창작교실, 독서토론회, 문화강좌 등을 열고 있다.
송정 바다에서 떠오르는 달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는 달맞이고개에 최근 유명 갤러리가 들어섬으로써
복합문화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 청담동에 지점까지 낸 부산 미술시장의 개척자 조현화랑,
갤러리 문턱을 낮추어 미술품 소장의 대중화에 앞장선 맥화랑, 유럽 경험을 토대로
국제교류전에 특장을 발휘하는 오션갤러리가 돋보인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의 악재 속에서 한국미술계를 빛낸 곳은 부산비엔날레와
아트부산 디자인전이었다. 매년 5월이면 우리나라 최대 아트페어인 ‘부산아트’ 전시회를 찾아
국내외 미술고객들이 해운대에 몰려온다. 2021년 부산아트에는 관람객 8만명이 몰리면서
거의 완판에 가까운 320억원어치의 미술품이 거래되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길이 막히자 집안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명품가방보다
미술품을 통해 안목과 취향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해운대구청에서는 문학과 예술이 서로 기대고 있는 달맞이 언덕을 오르내리며
다양한 볼거리를 안내하는 갤러리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을숙도의 현대미술전시관에서부터 도심 여러 갤러리를 거쳐 해운대의 부산시립미술관과
벡스코 제2전시장까지 전시장 구석구석마다 방문객이 줄을 이었다.
달맞이 언덕 끝자락에는 음식 맛보다 전망이 더 좋은 프랑스 식당 메르씨엘이 있다.
불어로 메르는 바다이고 씨엘은 하늘이라는 뜻이다.
낮에는 탁 트인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밤에는 해운대와 광안대교의 환상적인 야경을 즐기면서 먹는 요리의 맛은
오랜 추억이 될 것이다. 메르씨엘은 프랑스 관광청이 선정한 2019년 세계 맛집 1000곳에 들어 있다.
달맞이고개의 한국식 애프터눈 차를 파는 ‘비비비당’은 단호박 빙수와 단호박 식혜,
계절 꽃차로 유명하다. 불가에서 가장 높은 하늘을 나타내는 비비비당은
정갈한 한옥식 인테리어가 돋보여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재능교육'고문/前동아일보 기자('東鬪')/부산고~고대 영문학과 졸/하동 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