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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4월 25일 토요일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루살렘 출신으로,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 사도가 선교 여행을 할 때 동행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사도 12,25; 13,5.13; 15,37-39; 콜로 4,10 참조). 본디 이름이 ‘요한 마르코’(사도 12,12.25 참조)인 그는 또한 베드로 사도의 제자였으며(1베드 5,13 참조), 주로 안티오키아와 키프로스, 로마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기원후 64년 네로 황제의 박해가 있고 난 뒤인 65년에서 70년 사이 로마에서, 주로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을 기초로 삼아 「마르코 복음서」를 기술하였다. 이 복음서가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저술되었다.
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고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며, 그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한다고 전한다(제1독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고 전한다(복음).
제1독서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5,5ㄴ-14
사랑하는 여러분,
5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6 그러므로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7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8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9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도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10 여러분이 잠시 고난을 겪고 나면, 모든 은총의 하느님께서,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신 그분께서 몸소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며 든든하게 하시고 굳건히 세워 주실 것입니다.
11 그분의 권능은 영원합니다. 아멘.
12 나는 성실한 형제로 여기는 실바누스의 손을 빌려
여러분에게 간략히 이 글을 썼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격려하고,
또 하느님의 참된 은총임을 증언하려는 것입니다.
그 은총 안에 굳건히 서 있도록 하십시오.
13 여러분과 함께 선택된 바빌론 교회와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14 여러분도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5-20ㄴ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19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20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르코 복음사가는 복음을 기록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의 삶을 본받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전한 사도들과 복음사가들은 인간적으로 모자람이 많은 이들이었지만, 점차 스승의 말씀과 행적을 삶으로 증언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들이 특별한 능력을 갖춘 존재로 ‘변신’한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한다는 믿음 안에서 ‘변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본디 열두 명이던 제자 공동체는 유다의 배반과 예수님의 수난과 돌아가심으로 허망함과 공백, 깊은 상처를 안고 있었습니다. 수난 이후 제자들은 숨어 지내려 하였고, 두려움에 휩싸여 도망치고 싶은 유혹에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시어 그들의 두려움을 걷어 내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제자들이 상처와 허약함 속에서도 복음 선포를 할 수 있게 한 힘은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신]”(마르 16,19) 주님께서는 이제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곁에 계시지는 않지만, 시간과 공간을 넘어 언제 어디에나 현존하십니다. 파견되는 제자들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그들의 인간적인 능력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에 대한 확고한 신뢰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16,20).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이지만, 이는 곧 우리가 삶으로 써 내려가야 할 복음의 시작을 뜻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일상에서 복음은 계속되어야 합니다.(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집필한 복음서!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매일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제가 지니고 있는 신념이랄까 의식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겠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입니다. 내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내 기쁨, 내 영예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기쁨과 영광을 드리기 위해 쓴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직제자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그는 베드로 사도의 제자로서 지속적인 영적 지도를 받으면서, 이 소중한 생명의 말씀, 마르코 복음서를 기술했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 역시 저와 똑같은 신념과 의식을 갖고 복음서를 기술했을 것입니다. 오로지 주님께 기쁨과 영광을 드리기 위해, 갖은 고초와 시련 속에서도,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최선을 다해 복음서를 집필했을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의 큰 노고와 헌신과 희생으로 인해, 오늘 우리 손에 이 아름답고 값진 생명의 말씀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인해, 2천 년 세월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과 가르침을 생생하게 전해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르코가 자신의 삶 전체, 생애 전체, 목숨까지 걸면서 기술한 마르코 복음서입니다. 백번 천번 감사하면서, 세상 둘도 없는 보물처럼 여겨야겠습니다. 복음서는 우리를 구원과 영원한 생명으로 안전하게 인도하는 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바울로의 동료 바르나바의 조카였으며, 성전에 따르면 예수님 최후의 만찬 장소이자 승천하신 후 사도들과 성모님이 성령 강림을 맞이한 장소가 마르코의 집 다락방이었다고 추정합니다.
마르코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사람 들 중 가장 인지도와 영향력이 큰 두 인물,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람과 밀접하게 엮여있는데 특히 으뜸사도인 베드로가 마르코를 깊이 신임하였다고 합니다. 베드로 전서 5장 13절에 베드로가 마르코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때 마르코를 자신의 아들이나 다를 바 없다고 지칭합니다.
이후 삼촌 바르나바와 사도 바울로의 제1차 선교 여행 시 통역으로서 동행하지만 키프로스 섬까지만 동행하고 정작 본무대인 소아시아 지역에 들어가기 전에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버리고 마는데 이게 후일 바르나바와 바울로가 갈라서는 계기가 되고 맙니다.
이로 인해 마르코는 바오로 사도에게 미운털이 박히는 모양새입니다. 당시 젊은 청년이었던 마르코가 바오로와의 선교 여행길에 모종의 이유로 자진 이탈해 그에게 실망을 안겨줬기 때문입니다.
후에 바르나바가 바오로에게 건립된 교회 사목 방문시 마르코도 함께 데리고 가자고 제안했을 때, 바오로가 극구 반대했고, 이 문제로 둘이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영웅적인 초기 교회 사도들 사이에서 아직까지 인간적 나약함이나 미성숙이 남아있었다는 흔적을 확인하니 실망하기보다, 그분들도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결국 바르나바는 바르나바 대로 마르코를 데리고 출발하고가 바오로는 실라라는 새로운 협력자를 구하게 됩니다. 그 이후 마르코는 로마 제국 선교 당시 베드로 사도의 일행으로 동행하였고, 당시 베드로에게 직접 배운 가르침을 충실히 기록하여 마르코 복음서를 잘 정리하였습니다.
물론 사도 바오로의 말년에는 둘 사이의 감정이 풀어져서 바오로는 누구보다 마르코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 따르면, 바울로가 감옥에 갇혀서 고초를 당할 당시 마르코가 바울로의 곁에서 끝까지 함께하며 그를 위로해줬다고 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한국에서 맛집을 다니곤 했습니다. 이름하여 ‘원조’입니다. 신당동 떡볶이에도 원조가 있고, 장충동 족발에도 원조가 있고, 의정부 부대찌개에도 원조가 있습니다. 종로의 닭 한 마리에도 원조가 있고, 교대 곱창에도 원조가 있고, 광장시장 빈대떡에도 원조가 있습니다. 원조 집은 늘 사람이 붐비기 마련입니다. 비록 집이 낡았어도, 비록 주차 공간이 좁아도 사람들은 기꺼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조 집이 있기에 옆에 있는 음식점도 낙수효과를 누리기 마련입니다. 음식의 맛에 큰 차이가 없기도 하고, 바쁜 현대인은 기다리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원조의 입맛에 익숙해진 어른들은 기꺼이 원조 맛집을 찾지만, 인공 감미료에 익숙한 세대는 원조의 맛은 심심하다고 좀더 자극적인 맛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제가 가끔 가는 평양냉면 집도 그렇습니다. 저는 삼삼한 것이 좋은데 후배 신부님은 그냥 그렇다고 합니다. 오히려 색다른 맛을 찾아서 다른 평양냉면을 찾기도 합니다. 뉴욕에 있을 때도 가끔 맨해튼엘 가면 ‘큰집’이라는 원조 한식집을 가곤 했습니다.
교회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이라는 4 복음서를 남겨 주었습니다. 어쩌면 이 4 복음서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한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원조 복음 이외에 다양한 복음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많이 소개되고 있는 도마복음이 있었고, 베드로 복음, 유다 복음, 마리아 복음도 있었습니다. 교회의 교도권은 여러 복음서 중에서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4 복음서 중에서 굳이 원조를 이야기한다면 마르코 복음이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조 평양냉면이 삼삼하듯이, 다른 복음서와 달리 마르코 복음은 마태오 복음처럼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도, 동방박사의 경배 이야기도 없습니다. 루카 복음처럼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마리아의 노래도 없습니다. 요한 복음처럼 말씀에 대한 찬가도 없습니다. 마태오 복음처럼 참된 행복에 대한 선포도 없고, 루카 복음처럼 돌아온 탕자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도 없고, 요한 복음처럼 착한 목자 이야기도 없습니다.
마르코 복음의 핵심은 3가지입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도 간결합니다. ‘때가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입니다. 마치 원조집의 조리법을 다른 맛집이 따라 하듯이 마르코 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기적과 표징은 다른 3 복음서에도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마치 원조집의 맛에 색다른 맛을 내듯이 다른 3 복음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과정을 좀 더 세밀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셋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3가지 사명을 주십니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 마귀를 쫓아내는 것, 병자를 고쳐 주는 것입니다. 마치 원조집 근처에 새로운 맛집이 생겨나듯이 다른 3 복음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풍요롭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엠마로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제자 이야기도 있고, 베드로 사도에게 ‘너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예수님께서 묻는 이야기도 있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성령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복음 선포의 사명입니다. 복음 선포를 위해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병자를 고쳐 주고, 마귀를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은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힘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두려움에 숨어 있던 제자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자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제자들은 삶으로 복음을 증언하였고, 순교로 신앙을 완성하였습니다. 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우리의 상황에 맞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회칙 ‘찬미 받으소서.’에서 이야기했듯이 21세기의 복음은 환경과 생태계를 지키고 보존하는 복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돌을 던지려고 했던 남성들로부터 부정한 여인을 보호하고 용서하셨듯이 21세기의 복음은 성, 직업, 신분, 이념, 세대, 지역의 갈등을 해소하는 평등한 복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명의 물을 주셨듯이 21세기의 복음은 종교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복음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아는 사람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공동체 안에서 복음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으로, 용서로, 희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라.”
<당신처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당신께서 내게 오시듯
나 벗에게 갑니다
당신께서 내게 믿음이시듯
나 벗에게 믿음이려고
당신께서 내게 오시듯
나 벗에게 갑니다
당신께서 내게 희망이시듯
나 벗에게 희망이려고
당신께서 내게 오시듯
나 벗에게 갑니다
당신께서 내게 사랑이시듯
나 벗에게 사랑이려고
당신께서 내게 오시듯
나 벗에게 갑니다
당신께서 내게 사귐이시듯
나 벗에게 사귐이려고
당신께서 내게 오시듯
나 벗에게 갑니다
당신께서 내게 기쁨이시듯
나 벗에게 기쁨이려고
당신께서 내게 오시듯
나 벗에게 갑니다
당신께서 내게 섬김이시듯
나 벗에게 섬김이려고
당신께서 내게 오시듯
나 벗에게 갑니다
당신께서 내게 살림이시듯
나 벗에게 살림이려고
오늘의 성인
성 마르코(Mark)
신분 : 복음사가, 주교, 순교자
활동연도 : +74년경
같은이름 :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인 성 마르코(Marcus)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사도 12,12. 25)과 동일 인물이며,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회합 장소로 사용한 집주인 마리아가 그의 어머니인 듯하다. 또 그는 성 바르나바(Barnabas, 6월 11일)의 사촌이며(콜로 4,10), 키프로스(Cyprus) 태생의 레위 사람이다.
그는 예수께서 체포되실 때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른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가다가 붙들리게 되자,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던 인물로 여겨지나(마르 14,51-52) 확실하지는 않다.
그는 사도 바오로(Paulus, 6월 29일)와 바르나바를 수행하여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고(사도 12,25), 그 다음에는 키프로스로 바르나바와 함께 갔으며, 바르나바와 함께 바오로의 제1차 선교여행을 수행하였다(사도 13,5).
그러나 팜필리아에서 바오로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사도 13,13).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바오로와의 의견 대립 때문에 바오로의 제2차 선교여행에는 동행하지 않았다(사도 15,36-40). 마르코는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로 갔으며(사도 15,39), 바오로가 투옥되었을 때에는 로마(Roma)에 함께 있었다(콜로 4,10).
그는 분명 사도 베드로(Petrus, 6월 29일)의 제자였는데, 베드로는 그를 애정 깊게 “나의 아들 마르코”라고 언급한다(1베드 5,13). 또한 그는 신약성경에 여러 번 언급된 바와 같이 예루살렘 출신의 요한 마르코임이 분명하다(사도 12,25). 동방에서는 이 요한 마르코를 마르코와는 다른 사람으로 여기는데, 그가 비블로스(Byblos)의 주교였다고 하며 9월 27일에 축일을 지낸다.
어쨌든 성 마르코는 60-70년 사이에 최초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서를 기술했는데 주로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을 기초로 했다. 소아시아 지방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Papias)는 그가 베드로의 통역자였다고 하며,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을 위해 로마에서 복음을 기술했다고 전한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초대 주교였으며, 부활절 미사를 드리던 중 이교도들의 습격을 받아 붙잡혀 목에 밧줄을 걸고 거리를 끌려다니다가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이교도들이 성인의 시신을 불태우려 하자 천둥과 번개가 쳤고, 그 틈에 신자들이 성인의 시신을 수습해 인근 성당에 모셨다고 한다. 그 후 성 마르코의 유해는 9세기에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Venezia)로 옮겨졌다.
이를 기념해 베네치아 사람들은 성인의 이름을 딴 산마르코(San Marco) 대성당을 짓고 그곳에 성인의 유해를 모셨다. 성 마르코 복음사가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며, 그의 문장은 날개 달린 사자이다.
성 아니아노(Anianus)
활동년도 : +1세기
신분 : 마르코의제자, 주교
지역 :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같은 이름 : 아니아누스
복음사가 성 마르코(Marcus)의 위경에 의하면 성 아니아누스(또는 아니아노)는 알렉산드리아의 구두장이였다가 후일 그곳의 두 번째 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그는 성 마르코에 의하여 주교로 임명된 귀족으로 마르코를 승계한 사람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 베드로 데 베탕쿠르트(Peter de Betancurt)
신분 : 3회원, 설립자
활동지역 : 과테말라(Guatemala)
활동연도 : 1626-1667년
같은이름 : 베드루스, 베탄커, 베탄쿠르트, 베탕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성 베드로 데 베탕쿠르트(Petrus de Betancurt)는 1626년 3월 21일(또는 19일)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에 위치한 에스파냐령 카나리아 제도(Canary Islands)에 속한 테네리페(Tenerife) 섬의 빌라플로르(Vilaflor)에서 태어났다. 영웅적인 성덕으로 잘 알려진 그의 생애는 복음에 대한 충실함으로 대변된다.
그는 카나리아 제도의 노르만족 정복자들 중 하나인 후안 데 베탕쿠르트(Juan de Betancurt)의 후손이었지만, 그의 부모와 가족은 매우 가난했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얼마 안 되는 양떼를 돌보는 목동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신앙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도록 돌보았고, 어린 베드로는 자연스럽게 깊은 명상적 영혼을 갖고 성장했다. 그래서 그는 소년 시절부터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 안에서 하느님을 보는 법을 배워나갔다.
서인도 제도(West Indies, 오늘날의 아메리카)에서 사는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상에 대해 들었을 때, 그는 그곳에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해야 할 강력한 소명을 느꼈다. 그래서 24세가 된 1650년, 성 베드로 데 베탕쿠르트는 자신의 한 친척이 총독의 비서로 일하고 있던 과테말라를 향해 출발했다.
하지만 그가 준비한 돈은 아바나(Havana)에서 이미 다 떨어졌다. 그래서 그는 부두에서 힘든 일을 하며 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또 과테말라시티까지 갈 여비 또한 마련해야 했다. 이렇게 힘든 여정 끝에 그는 무사히 과테말라시티에 도착했다.
당시 너무나 가난했던 그는 하루를 버틸 빵을 얻기 위해 구호품을 나누어주던 프란치스코 수도원 앞에 줄을 서야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는 자신을 환대하고 또 일생 동안 그의 상담자가 되어준 유명한 선교사였던 페르난도 에스피노(Fernando Espino) 수사를 만나게 되었다. 페르난도 수사는 그 지방의 직물공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도 찾아주었다.
1653년 성 베드로 데 베탕쿠르트는 그 지방의 예수회 대학에 들어가 사제가 되고 싶어 하는 소망이 자신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산 보르자(San Borgia)에 있는 예수회 대학에 들어갔지만 학업에 자질이 부족해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느님의 섭리는 다시 한 번 그를 도와 이곳에서 장차 그의 고해신부가 되어줄 예수회의 마누엘 로보(Manuel Lobo) 신부를 만나게 해주었다.
페르난도 에스피노 수사는 그에게 평수사로서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이 세상 안에 남아 살아가길 원하심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1655년 프란치스코 재속 3회에 입회해 서원하면서 성 요셉의 베드로(Pedro of St. Joseph)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때부터 성 베드로 데 베탕쿠르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된 일과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인간에 대한 너그러움과 진실한 인류애를 갖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신하면서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과 비인간적인 노동으로 고통 받는 인디오들, 이민자들, 버려진 아이들의 사도가 되어갔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고무된 그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고자 노력했다. 1658년 그는 한 작은 오두막집을 얻어, 도시의 병원으로부터 버려졌지만 여전히 간호가 필요한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병원으로 변모시켰다. 이 병원은 ‘베들레헴의 성모님’으로 명명되었다.
그는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와 가난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고 작은 경당도 지었다.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시민들과 교회당국으로부터 모금활동을 펼쳤고, 가난한 사제들의 미사 봉헌을 위해 거리에서 기금을 모금하기도 하고, 이른 시간에 봉헌되는 미사를 위해 기부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이 일 때문에 미사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했다.
그는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한 시설 안에 작은 경당도 마련했다. 그리고 매년 8월 18일에 그는 어린이들을 모아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바치던 성모님의 칠락 묵주기도를 암송했고, 이 관습은 오늘날까지도 과테말라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남녀 젊은이들을 모아 조직했고, 이는 후에 베들레헴 형제회와 베들레헴 자매회로 발전했다. 그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기도와 절제와 인내에 기초하여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 그리고 불행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활동 사도직을 포함하는 새로운 규칙서도 작성했다.
베들레헴 수도회는 이렇게 설립되었다. 전 생애를 통해 그의 영적 묵상의 중심 주제는 ‘베들레헴의 소년 예수’였다. 늘 가난한 이들 안에서 소년 예수의 얼굴을 보고 그들에게 경건하게 봉사했던 그는 1667년 4월 25일 41세를 일기로 과테말라시티에서 선종해 안티구아(Antigua)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묻혔다.
성 베드로 데 산 호세 데 베탕쿠르트(Pedro de San Jose de Betancurt)의 시복시성을 위한 심사는 이미 1709년에 시작되었다. 그는 1980년 6월 2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2002년 7월 30일 아메리카 대륙 순방 중 사목방문을 위해 과테말라를 찾은 같은 교황으로부터 과테말라시티에서 시성되었다.
이로써 그는 과테말라뿐만 아니라 중앙아메리카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일생 동안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위해 헌신했던 그는 ‘아메리카의 성 프란치스코’로 불리며 존경을 받고 있다. 그의 축일은 성 마르코(Marcus) 복음사가와 겹치는 관계로 전날인 4월 24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복자 보니파시오 (Boniface)
활동년도 : +1243년
신분 : 주교
지역 : 발페르가(Valperga)
같은 이름 : 보니파시우스, 보니파키오, 보니파키우스, 보니파티오, 보니파티우스, 보니페이스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이탈리아 카나베제(Canavese)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계속해서 토리노(Torino)의 주교였던 그의 삼촌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토리노에서 북쪽으로 약 20km 정도 떨어진 프루투아리아(Fruttuaria)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되었다. 그 후 그는 다시 아오스타(Aosta)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율수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영성과 세속적 방면 모두에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1219년 그는 아오스타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