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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관수록(古士觀樹錄)―4>―감나무 인문학
지난 주말 오래간만에 서울 종묘를 들렸다. 여름날의 그 무성하던 나뭇잎들이 이제 때가 되어 그야말로 소목황엽(疎木黃葉)에 초목귀근(草木歸根)이라. 초목의 잎은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고 앙상한 가지아래 낙엽만 싸여있어 나라의 가장 신성한 영역인 종묘는 더욱 그윽함 속에 침묵으로 있었다. 정전 전사청 앞에 예외적으로 심어진 감나무는 까치밥 두 알만 남긴 채 적황색 잎이 땅바닥 붙어 가을비에 젖어가고 있었다. 법도 상 종묘에는 화려한 꽃피는 나무나 실과 달리는 나무는 심지 않는다는 금기를 깨고 누가 언제 그 자리에 감나무를 심어 보는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했을까? 조상숭배가 남다른 우리들은 제사를 모시는데 반드시 삼색실과(三色實果) 즉 대추, 밤 그리고 감이 제수로서는 빠질 수 없는 법. 혹시 종묘 제례 시 긴요히 쓸려고 저 자리에 금도를 넘어 심지 안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감나무는 주로 한, 중, 일 삼국을 중심으로 자라는 나무 인데 한자로는 시목(柿木, 枾木)으로 때로는 시수(柿樹)라고 쓰기도 한다. 순 우리말로 감은 한자의 달다는 뜻의 감(甘)에서 기원한다는 조선말기 어원속담 사전격인 <동언고략東言考略>에 나오긴 하지만 신빙성이 없는 것 같다. 제주도에서는 “감”이 “갈”과 뿌리를 같이해서 “갈옷”이라 할 때의 “갈”은 “감”을 말하고 이것이 일본말 “kaki 가키=감”로 전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감의 만국공통공용의 학술상의 이름인 학명은 Diosphyros kaki Thunberg인데 속명의 ‘Dios'는 그리스 말로 神신이고 phyros는 음식 또는 곡물이라는 뜻이니 감은 감히 신이 내리신 먹을거리란 뜻이다. 종명 kaki는 일본말 감이고 명명자 Thumberg는 스웨덴 사람이니 그가 감의 학명을 지었다는 뜻이다.
기독교 신, 구약 성서에는 통틀어 식물이름이 110여종이 등장하는데 우리가 아는 <감나무>와 <감자>의 표현은 찾아볼 수 없고 동물로는 <고양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기록을 읽은 적이 있다. 신의 과일이 성서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아마도 기독교 발생지역인 중동 땅에 풍토상 감나무 생육지로서 적당하지 않는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경험상 감나무의 노거수(老巨樹>로 적어도 300년 이상 된 것은 만나기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 많은 감 열매를 해마다 생산해 내자니 너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여 단명하지 않는가 한다. 우리나라에서 감나무 노거수로 기록을 가진 것은 경남 의령 백곡면의 천연기념물 492호로 지정된 450년 묵은 것이 있고, 곶감으로 유명한 경북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에도 530살 먹은 경북도기념물로 지정된 “하늘아래 첫감나무”란 별명을 가진 감나무도 있다. 한국 최고령 감나무는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의 700살 드신 노목이 있는데(경남 보호수 590호) 기록상 이 나무는 원목은 상해서 없어지고 밑동거리 근처에서 난 새가지가 자란 것이니 나이를 따질 때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다.
감나무 가지에는 요즘말로 뜨는 수많은 인문학이 걸려 있다. 우리 조상들은 어떤 사물. 나무, 돌, 바위, 동물 등에 어떤 깊은 뜻을 부여하고 거기서 우리의 삶의 교훈을 얻고자 했던 것이 많다. 또한 사물에 어떤 의미를 두어 교육목적과 지혜를 배우고자 했다. 중국의 고서 유양잡조(酉陽雜俎-단성식 지음)라는 책에는 감나무에 일곱 가지 절묘함이 즉 칠절(七絶)이 있다고 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하였다.
감나무 칠절(七絶-즉 일수(一壽), 이다음(二多陰), 삼무조소(三無鳥巢), 사무충양(四無蟲襄), 오상엽가완(五霜葉可玩), 육가실(六佳實), 칠락엽비대(七落葉肥大)있고 , 오
덕(五德) 문무충효예절(文武忠孝禮)이 감나무에 있고 , 오색(五色) 즉 청홍백흑황의 색이 있으니 따라서 오방(五方)을 가춘 나무라 하여 감나무를 칭송했으며 그 감나무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해왔다.
그중에 잘 익은 감 홍시를 최대로 칭송하는 말에는 금의옥액(金衣玉液 즉, 황금 옷자락에 싸인 옥 같은 맑은 수액)이 백미이다. 우리 조상들은 집주위에 나무를 둘러 심었다. 이는 식물의 유용성과 생태적 특성을 알고 있다는 뜻이고 자연친화적 생활을 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무 한그루 심는 데에도 함부로 마구한 게 아니라. 집 동쪽에는 살구나무, 남쪽에는 오동나무, 서쪽에는 감나무. 북쪽에는 대나무를 심도록 후손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렇게 함에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감나무에 약 200여종이 있다. 열리는 감의 종류에 대해서 알아본다. 우선 맛으로 <단감>과 <떫은 감>으로 대별 되는 데 요즘 한창 사랑 받는 단감은 일본에서 도입된 신종으로 생식용 이고, 생감열매 안에 탄닌 성분이 많아서 맛이 떫은 것은 소금물에 담가서 소위 침시(沈柿)라 하여 탄닌성분을 과당 변형시켜서 단감처럼 생식용으로 만들어 먹는다, 감 껍질을 벗겨 햇볕에 건조한 것이 이른바 곶감으로 (꼬지에 꽂은(串)감) 이도 완전히 말린 건시(乾柿)와 반건시(半乾柿 감말랭이)를 만들어 저장성과 맛을 높이여 두고두고 쓴다. 건시를 오래두면 표면에 흰 가루가 이는 데, 이는 과당으로 단맛을 더 잘 낸 것이다. 또한 감은 그 생산 지역 이름이나 생김새에 따라 이름이 붙는다. 예를 들자면 청도지방에 나오는 넓적감은 청도반시. 고종황제가 즐겨하시던 연시는 고종시. 경북 의성 사곡지방에서 나는 사곡시, 단성시, 월하시, 경북 예천지방에서 나서 진상품이 되어 정다산의 문집 <여유당전서>에도 나오는 은풍준시 등등 다양하다. 근년에 와서 이들 지역 특산품은 그 지방이름을 함부로 쓸 수 없게 하는 소위 <지리적표시단체표장>제도가 있어 지역특산품을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고 넘어가야할 사항 한 가지가 있다. 같은 감이라도 <단감>과 <떪은 감>의 생산물로서의 관활 부처 기관이 다르다는 것이다. <단감>은 느타리버섯, 새송이버섯과 함께 <농림수산부>와 <농촌진흥청>의 관할 속에 들고. <떫은 감>은 임산물로 <산림청> 관할로 생산 지도와 국가지원을 받는 소속이 다르다는 점이다. 업무지도와 지원기능 효율을 위해 빨리 일원화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옛 그림과 시에도 감이 송 죽 매만큼은 빈도가 낮지만 이따금 등장한다.
옛 그림에 감은 감 시 柿자가 중국어 발음 일 사 事와 동일하기 때문에 사사여의(事事如意), 나아가서 백사여의(百事如意)의 뜻으로, 하는 일마다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이르소서라는 의미를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옛 문양에도 주화문 또는 시채문(柿蔕紋=감꼭지문양)이라 하여 단청이나 궁궐 정전 앞 답도(踏道)의 조형물의 바깥 테돌림을 이 문양으로 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꽃잎이 네 개 펼쳐진 형 또는 네입크로바형의 문양에 이 감꼭지 문양이 쓰인다. 이는 시경에 나온다는 말, 나무 중 그 뿌리가 가장 견고한 것은 감나무가 최고(木中根固者 最爲柿)라는 데 기원을 두나 실제 나는 이 말의 근원을 확인하려 시경에 나오는 시 삼백 편을 몇 번이나 뒤졌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중국 고전 좌전 <이아 爾雅)에 이 글귀가 있음을 확인 했다. 그래서 튼튼한 기본 바탕을 시반(柿盤)이라 한다는 것도 배웠다. 한편 이 구절을 음미하면서 좀 별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저 조선초기의 용비어천가 앞머리에 나오는 구절 <불휘 깊은 남간 바람에 아니 멜세―>가 이아<爾雅)의 이 구절과 어떤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하는 무엄하고 엉뚱한 생각 말이다.
감과 감나무가 우리와 가까이 있어 유용하게 쓰이는 나무인고로 우리 조상들은 감나무 번식과 감나무 보호에 대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어 감나무를 소중히 하도록 경고 했으니 그 예를 덜어본다. 당시로서는 법 못지않게 무서운 주력을 가진 속담이나 격언으로 감나무를 보호했다.
* 감나무에 올라가 떨어져 다치면 약이 없다. 죽는다. -오래 가지 말라
* 감 씨를 화롯불에 태우면 우환이 생기고 문둥병이 생기거나
미친 사람이 난다.
* 감 씨를 함부로 버리면 엉덩이에 종기난다.
* 석가여래의 눈은 감 씨로 만들었기 때문에 감 씨를 태우면 눈이 멀 게 된다.
이 모두가 감 씨와 감나무를 함부로 취급 말고 소중히 하여 감나무을 보호육성 하라는 의미 이다.
감나무가 한편 우리와 늘 가까이 있어 농경생활 하던 우리 삶에 기상예보하거나 풍흉을 점치는 농운목(農運木)으로서도 한 몫 한 증거도 있다.
* 감나무 잎이 빨리 떨어지면 그 겨울에 눈이 일찍 내리고
* 감이 일찍 익어도 눈이 빨리 온다.
* 감나무 잎이 빨리 떨어지면 그해는 대설이 내리고
* 감 수확이 적으면 그해 겨울 눈도 적게 오고
* 감 속에 씨가 많으면 그해 겨울 추위가 심하다.
* 감 순이 콩알만 할 때에 콩 씨를 심는 때다
* 임산부에게 감은 금식해야하고 어패류를 감과 같이 먹으면 부종이 생기거나 사망에 이른다.
* 축국장, 오늘로 치면 축구경기 할 때 목이 마르면 감음료를 먹으면 갈증을 해소한다.
* 백 년 된 감나무에는 1000개의 감이 달린다고 보고 감나무에 자손 번창과 득남을 빌고 기도하는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등등 한방적 이용 외에도 여러 가지 평이하지만 경험에서 나오는 가르침이 감과 함께 해왔다. 감의 한방적 이용과 목제로서 감나무는 너무 많아 여기서는 생약 한다.
한 때 모방송국에서 <달인>이라는 프로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그렇게 할 수가 있을까 하는 기적 같은 일이 실제 상황으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경. 예를 들자면 초밥전문가가 한손으로 살짝 밥을 집었다하면, 몇 번하던지 쌀알수가 120개. 찐빵장수가 반죽을 단번에 뜯어냈다하면 몇 번이든지 적확히 같은 무게, 고기깐 주인이 손님의 주문에 따라 단칼에 요구한 무게의 고기를 정확히 잘라내는 신기. 이와 비스한 일이 내가 자란 곳이 감 곳, 감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라. 이와 같은 상황 내 어릴 때 봤다. 이 가을 이때처럼 감나무마다 감이 가지 찢어질 정도로 마을과 들판을 온통 붉게 될 무렵 읍내의 감 수집상들이 마을로 짐차를 몰고 온다. 감나무 주인과 마을 어른 중 경험 많으신 노인 한분과 삼자가 모인다. 감 사러 온 사장은 저 집 감나무의 감 갯수를 알 수 없다. 그러면 마을 원로 노인에게 저감나무 감이 몇 모두 개나 되는가를 자문 한다. 그러면 그 노인은 저 집 감은 시방 몇 동 몇 접이라고 단언 한다. 일종의 추정경기다. 인부들이 따 모은 감 개수 결과는 그 노인의 말이 오차범위 안에 있다. 여기서 감 몇 동 할 때의 한 동은 10.000개를 이르는 말이고 감 100개는 한 접, 즉 감 한 동은 100 접이다. 마치 우리가 연필 한타 스는 12개, 계란 한 줄은 열 개, 한판은 서른 개 하는 것처럼. 그런데 그 노인어른의 추정결과는 신통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오랜 생활의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이리라 생각한고 그 때 나는 신통하다고 생각 했다. 물론 그런 단언을 한 노인은 수집상으로부터 담배 값이나 막걸리 값을 사례로 받는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깨우치는 격언하나 더 들어본다. “일흔 개의 고염이 감 한개 보다 못하다.”는 말, 이는 자잘한 여럿보다 크고 중요한 일하나가 더 좋다는 뜻인데. 이 말은 나는 찬성과 반대가 반반이다. 어디 세상 다 큰 것만 좋으랴. 때로는 자잘한 것도 아주 중요한 때가 있느니 말이다.
조금 전에 나훈아가 부른 <홍시>라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나는 이 노래들을 때마다 정말 울 엄마가 절실히 생각난다. 경북 영주 소산서원을 개창한 주세붕 선생은 평생 감을 입에 되지 안았다한다. 그 이유는 생전의 그의 아버지가 그리도 좋아하시던 그 감이었는데 감히 자식인 그가 어이 입에 델 수 없다는 아버지 그리는 효심의 결과 이다. 아마도 기억하시는 분 있을 거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 나다. 유자 아니어도 품음직 하다만은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 노계 박인로(蘆溪 朴仁老) 선생의 효심이 짙게 보이는 시조 말이다.
지금 가을이 익어가서 단풍지고 낙엽저서 가지 앙상하고 고향집마을 흙돌담 가 떠난 사람 기다리며 서 있는 감나무에도 몇 개 남은 까치밥이 보인다. 어 허. <도사리> 이 도사리가 무언지 안시는 분 있소? 우리말 겨루기에 도 오래전 나왔던 문제.(이 단어 꼭 검색 해보시길) 이 풍성한 계절에 <도사리>진 내 새끼를 생각하며 혼자 고향마을 어머니 그리고 꿈 많던 그 때를 회상한다. 너, 나, 우리 서로 감 사서 드리자(感謝). 그러지 못하면 주는 감(感)을 꼬- 옥 잘 잡자! <끝>
첫댓글 도사리. 가슴 아픈 단어네여.
감(柿) 하나에도 이리도 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있엇군요
때로는 옛날 종댜래끼 들고 새벽에 빠지는 감 주으러 가던(감이 떫어서 물러 떨어지는 감은 그냥 먹을수 있었음)
어릴적 생각도 나고~~
잘보았습니다
얼마 전에 김천에 있는 언니가 ' 대봉'을
한 박스 보내왔는데 떫은 감 보내 왔다고
투덜거렸습니다.이왕이면 맛있는 단감을
보내주었으면 여기저기 나누어 주고 같이
먹었을텐데 말이죠.
그러다 백화점에서 대봉홍시가 비싸게 팔리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는데요, 그나저나 저
많은 떫은 감을 어떻게 먹어야할지 난감합니다.
대봉감홍시로 샐러드 소스로 쓰면 아주 맛있어요..
감쥬스도 만들어 드시고요..내동보관했다가 감쥬스하면 끝내줘요..남편 숙취에도 좋답니다.
대봉감을 맛있게 드시는 방법- 우선 박스에 그냥 두시면 한 일주일 내에 거의 모두가 말랑말랑 달콤한 홍시(연시)가 됩니다, 냉동실이 여유가 있으면 생감을 그대로 넣어 두시면 내년 봄부터 여름사이 녹여서 아이스크림처럼 잡수실 수가 있습니다.그 맛은 별미입니다, 떡찍어 먹는 그맛이야- 지금 많은 대봉시를 당장 배란다나 거실 한쪽에 신문지를 깔고 늘어 놓고 매일 만저서 말랑한것부터 골라 자시도 됩니다. 연시가 된 것을 너무 더운데 오래두면 식초가 되니 바로 잡숴야 됩니다. 누가 그랬지요.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대봉 -보기만 해도 배부르고 먹음직한 신의 선물--
감이야기가 진짜 많군요?
임산부는 특히 감을 삼가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