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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남정맥(落南正脈)
낙남정맥(落南正脈)은 낙동강(洛東江)의 남쪽 울타리라는 뜻이다. 한반도 최남단의 산줄기로 즉 지리산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갈래쳐 나와 옥산, 대곡산, 여항산, 무학산, 천주산, 정병산, 신어산을 거쳐 낙동강하구 매리라는 동네에서 끝나는 산줄기를 말한다. 이 산줄기는 시종일관 경상남도의 남강 남쪽 바닷가를 달리는 산줄기다. 지리산 천왕봉 북쪽에서 흐르는 경호강을 따라오다 경호강이 산청군 단성면 에서 남강 이라는 이름으로 바꿔달고 김해 북쪽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잠시 낙동강이 되었다가 바다로 흘러들게 된다. 지리산군을 제외하고는 함안 여항산(770m)이 최고봉이 될 정도로 대부분 낮은 산으로 이어지지만 남해바다와 인접한 산줄기인 탓에 시야가 확 트이는 조망이 일품이며 남녘의 산 특유의 멋을 즐길 수 있는 정맥이라 하겠다. 산줄기를 이루는 산들은 지리산 영신봉, 지리산 삼신봉, 태봉산, 실봉산, 와룡산, 무선산, 봉대산, 양전산, 백운산, 천황산, 대곡산, 무량산, 백운산, 덕산, 필두봉, 용암산, 깃대봉, 여항산, 서북산, 봉화산, 광려산, 대산, 대곡산, 무학산, 천주산, 정병산, 대암산, 용지봉, 신어산, 동신어산 등이다.
▶ 거림계곡(巨林溪谷) -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에 있는 계곡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시작되는 거림골을 본류로 하여 연하봉과 촛대봉에서 발원한 도장골, 세석평전에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한벗샘에서 발원한 자빠진골 등의 지류가 모여 형성된 커다란 계곡이다. 깊은 계류와 울창한 원시림을 따라 세석평전까지 8㎞를 흐른다. 거림(巨林)이라는 이름처럼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게 계곡을 메우고 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군수용으로 많이 베어졌고 8·15광복 후에는 땔감으로 마구 베어져 한때 벌거숭이 계곡이 되기도 했다.
계곡을 따라 난 등산로는 세석평전으로 가는 가장 가깝고 완만한 길이고, 5월 하순부터 6월 초순까지 등산로를 따라 철쭉이 만발한다. 지류인 자빠진골과 도장골의 경관이 빼어나 본류는 상대적으로 한적한 편이다. 찾아가려면 진주나 산청(원지)에서 중산리행 버스를 탄다. 승용차로 가려면 산청군 시천면 덕산에서 중산리 방면으로 가다가 곡점마을 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 세석평전 음양수 전설
이 물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산신에게 기도를 하고 마시면 누구나 소원대로 아들, 딸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이 예부터 전해오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지리산에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한쌍의 남녀로서 아득한 옛날에 대성동 계곡에서 살았다고 한다. 남자의 이름은 호야(乎也)요, 여자의 이름은 연진(蓮眞)이라고 하였다. 이 두 사람은 남해안에서 섬진강을 따라 화개골을 거쳐서 지리산의 비경을 찾아든 첫 번째의 인간 가족인 것이다. 다정다감한 그들 남녀는 씨족 사회의 엄한 규율과 간섭을 벗어나 연인끼리 남몰래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가정을 꾸미고 맛좋은 산채와 과일을 따서 배부르게 먹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슬하에 자녀를 두지 못함이 한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인 호야가 산과(山果)를 따기 위하여 산골 깊이 들어가고 없는 사이에 근처에 살고 있던 검정 곰이 찾아와서 연진을 위로하며 하는 말이 “이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세석평원에는 소원대로 아들, 딸을 낳을 수 있는 음양수라는 신비의 샘이 있다”는 것을 자랑삼아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들은 연진은 기뻐 어쩔줄을 몰라 하면서 남편과 상의할 겨를도 없이 혼자서 단숨에 음양수 샘터로 달려가서 기적의 샘물을 실컷 마셨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평소에 곰과 사이가 좋지 못한 호랑이가 곰과 연진 여진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엿듣고는 이것을 그대로 지리산 산신령에게 고해바치니 산신이 대노하여 음양수의 신비를 인간에게 발설한 곰을 토굴속에 잡아 가두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그 공으로 백수(百獸)의 왕이 되었고 또 음양수의 샘물을 훔쳐먹은 연진 여인에게도 무거운 벌을 주어 잔돌평전의 돌밭에서 평생토록 혼자서 외로이 철쭉꽃을 가꾸게 되었다. 그날부터 연진 여인은 뜻하지 않았던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저주하며, 세석평원에서 날이면 날마다 손발이 닳도록 꽃밭을 가꾸니 철쭉꽃나무는 무럭무럭 자라서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그러나 연진여인은 닳아 터진 다섯 손가락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꽃밭에서 뿌리며 애처롭게 언제까지나 꽃밭을 가꾸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세석의 철쭉꽃은 절세가인 연진 여인의 애처로운 모습을 닮아 그처럼 청초하게 아름답고 또 연진 여인의 슬픈 넋이 꽃잎마다 서려있어 그처럼 애련하게 해마다 피고 진다는 것이다. 그후 연진 여인은 촛대봉 정상에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속죄를 빌다가 그대로 망부석이 되었으며, 촛대봉의 앉은 바위는 가련한 연진 여인의 굳어진 모습 그것이란다. 천왕봉 산신령도 연진 여인의 가련한 희생을 보고서는 인간에 대한 노여움을 풀고 기적의 샘 음양수를 인간에게 개방하였으며, 그 혜택을 받게 하니 그 후부터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한편 연진 여인의 남편인 호야는 산과를 따러 나간 사이에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 부인 연진을 찾으려고 날마다 계곡과 그리고 밀림, 산령을 넘어 지리산 일대를 헤매다가 칠성봉 중턱에서 까마귀로부터 연진의 소식을 전해 듣고 단숨에 세석평원으로 달려갔으나 산신령의 저지로 접근할 수 없게 되자 세석평원 중턱 능선의 높은 봉우리에서 발돋움을 하고 세석평원을 향하여 연진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 목청껏 날마다 불렀던 것이다. 그래서 칠성봉에서 세석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절벽 위에 우뚝 솟아있는 호야봉(乎也峰)은 그때 그가 애태우며 섰던 자리라 하여 그런 이름을 부르게 되었으며 언제까지나 부르다가 지쳐서 그대로 망부석이 되어 서 있는 호야의 굳어진 그대로라 한다. 수 천년을 두고 남모르게 꽃을 피우고서도 그 아름다운 자태를 찬탄하는 이 없더니 근년에 이르러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불어나서 매년 6월의 첫 번째 주에 전국의 산악회원들이 철쭉제를 올리게 되는데 그 원색의 차림은 이 고용한 평원에 만산의 성황을 이룬다. 이것이 풍수설에서 예언한 천호만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산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서 이곳에도 산장이 지어져 이용객이 끊이질 않는다.
▶ 세석평전(細石坪田)
경상남도 산청군의 시천면 내대리 일대에 있는 평원이다.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고 하여 세석평전이란 이름이 붙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지리산 유산록에는 외세석(外細石)·내세석(內細石)·세석평(細石坪)·세석평전(細石坪田) 등의 관련 지명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현재의 명칭으로 굳어져 있는 세석평전이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일컬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1807년 지리산을 유람한 하익범(1767~1815)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는 세석평지(細石平地)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송병선(1836~1905)의 『지리산북록기(智異山北麓記)』와 『두류산기(頭流山記)』에는 세석평(細石坪)이라고 기록하였다. 세석평전이라는 용어는 1940년 지리산을 유람하였던 이병호(1870~1943)의 『유천왕봉연방축(遊天王峰聯芳軸)』에 나온다. 그 밖에도 20세기 초반의 지리산유산기인 김택술의 『두류산유록(頭流山遊錄)』, 정기의 『유방장산기(遊方丈山記)』, 정덕영의 『방장산유행기(方丈山遊行記)』 등에도 세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영신봉(靈神峰/1,652m)
경상남도 하동군의 화개면 대성리에 있는 봉우리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서쪽으로 제석봉·연하봉·영신봉·칠선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자리 잡았다. 하동군 화개면과 함양군 마천면, 산청군 시천면의 경계에 위치한다. 영신봉은 낙동강의 김해 분산(盆山)까지 이어지는 낙남정맥의 출발점이다. 서쪽으로 칠선봉과 덕평봉, 동쪽으로 촛대봉, 남쪽으로 삼신봉에 이어지는 주요 능선들이 영신봉에서 갈라지는 분기점을 이룬다.
조선시대 하동의 주요 관찬지리지와 군현지도에는 영신봉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산의 남사면으로는 산청군 시천면의 거림골, 하동군 화개면의 큰세개골과 대성 계곡, 북사면으로는 함양군 마천면의 한신 계곡이 있다. 영신봉에서 남서쪽 사면으로 내려오면 화개면 대성리인데, 영신봉과 삼신봉 연맥의 서사면 산기슭에 의신·대성·단천 등의 자연마을이 입지하였다. 산골짜기에서 발원한 화개천 상류가 남서방향으로 흘러나간다.
영신봉의 이름은 영신사(靈神寺)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진주)에, "영신사(靈神寺)는 지리산에 있다. 절 뒤 봉우리에 깎은 듯한 돌이 섰고, 그 꼭대기에 작은 돌이 평상처럼 놓여 있는데 좌고대(坐高臺)라 부른다."라는 기록이 있다. 1472년에 지리산을 유람한 김종직(1431~1492)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는 "영신봉과 좌고대(坐高臺)를 바라보니 여전히 멀리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 삼신봉(三神峰/1,284m) - 경남 하동군 청암면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암면 묵계리에 있는 봉우리이다. 청암면과 산청군 시천면의 경계를 이룬다. 천왕봉에서 서쪽으로 제석봉, 연하봉을 거쳐 촛대봉을 지나 남쪽으로 맥이 뻗어나가서 삼신봉을 이루었다. 삼신봉은 다시 좌우로 팔을 벌려 내삼신봉과 외삼신봉의 지맥을 이루었다. 외삼신봉 아래에는 일월대와 미륵암터가 있다. 내삼신봉과 외삼신봉의 품안에 묵계리가 입지하고 있다. 묵계리는 지리산의 청학동으로 잘 알려진 관광지이다. 삼신봉의 지맥 사이에 Y자 모양으로 형성된 골짜기를 따라 농경지가 형성되고, 작은 분지상에 나지막한 산언덕을 등지고 자연마을이 입지하였다. 삼신봉의 남쪽 사면 골짜기에는 삼신동(三神洞)이 있다. 『진양지』에, "삼신동은 천왕봉의 남쪽에 있다. 신흥사·의신사·영신사 세 절로 들어가는 길이 모두 이 골을 거치기 때문에 이름 지은 것이요, 수각(水閣) 가에 삼신동이라는 세 글자의 석각이 있다."라고 기록하였다. 조선시대 하동의 관찬지리지나 군현지도에는 삼신봉에 대한 표기가 없다.
▶ 고운동재(孤雲洞峙/805m)
고운(孤雲) 즉 외롭게 떠도는 구름이라는 최치원의 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옛날에 고운 최치원 선생이 공부하고 놀던 고운동마을이 있다. 삼거리 동북쪽 산청군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청학동이라고 생각을 하고 머물렀다는 데서 유래한다.
◇ 산행거리 : 17.8Km
◇ 산행시간 : 8시간50분 정도
◇ 주요구간별 시간대 : 거림-영신봉(3시간)-외삼신봉(3시간50분)-고운동재(2시간)
◇ 주의사항 :
- 영신봉에서 음양수까지와 외삼신봉에서 고운동재까지 자연 휴식년제 구간
- 삼신봉에서 외삼신봉으로 내려서는 길은 정상에서 곧바로 이어지지않고 봉우리를 넘어서 청학동방향으로 10분 진행후 능선길로 간다(입산금지표지가 있음)
▶ 고운동재(孤雲洞峙/805m)
고운(孤雲) 즉 외롭게 떠도는 구름이라는 최치원의 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옛날에 고운 최치원 선생이 공부하고 놀던 고운동마을이 있다. 삼거리 동북쪽 산청군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청학동이라고 생각을 하고 머물렀다는 데서 유래한다.
▶ 주산(主山)갈림길
주산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시그널이 많이 달려 있는 방향으로 진행을 하면 주산(主山/813m)이다. 시그널이 한두개 있지만 길이 뚜렷하고 좌측 방향으로 가야 낙남정맥길을 갈 수가 있다.
▶ 질마재(鞍峴/490m)
질마재(鞍峴)란 고개의 지형이 길마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 안현(鞍峴)이다. 길마재는 “길마재, 질매재”란 또 다른 이름으로 두루 분포하고 있으며 짐을 실을려고 소나 말의 등에 얹는 안장인 길마(질마)를 뒤집어 놓으면 V형의 선명한 재의 모습이 된다. 길마재는 산청군 시천면 궁항리와 청암면 상이리로 연결되는 고개로 1014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고개마루 좌측 동리가 빈이터라서 동리사람들은 빈이터재라고도 부른다.
▶ 칠중대고지(七中隊高地/565.2m)
칠중대고지(565.2m)는 빨치산 토벌당시 칠중대가 주둔하였다 하여 산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산죽밭에 삼각점도 있고 평이했을 봉우리가 비운의 역사를 만나 그 슬픔을 간직한 채 우리들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양이터재(梁李峙/510m)
양이터재는 동학혁명 때 양씨와 이씨가 터전을 잡았다고 해서 붙여지 이름으로 칠중대고지 아래 옥종면 궁항리에 양씨와 이씨가 있으며 지금은 지리산둘레길이 지나가면서 쉼터와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칠중대고지에서 무명봉(584m)을 넘어서면 사거리갈림길이 나오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양이터재라고 불렀다.
▶ 돌고지재(59국도/314m)
돌고지재는 하동군 횡천면 전대리에서 옥종면 외신리를 잇는 59번 국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교통이 발달하기 이전에 하동에서 진주나, 산청방면으로 가는 보부상들이 넘나들면서 “돌고 돌아 넘는 재”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이 고개를 넘는 서포~옥종간 도로가 돌이 많다하여 “돌고개”라 부르기도 하며 다른 이야기로는 옥종면에 사는 한 참봉이 명당을 찾아 왔다가 다른 사람이 묘를 써 그냥 돌아갔다. 하여 돌고지재라 한다.
▶ 돌고지재(59국도/314m)
돌고지재는 하동군 횡천면 전대리에서 옥종면 외신리를 잇는 59번 국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교통이 발달하기 이전에 하동에서 진주나, 산청방면으로 가는 보부상들이 넘나들면서 “돌고 돌아 넘는 재”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이 고개를 넘는 서포~옥종간 도로가 돌이 많다하여 “돌고개”라 부르기도 하며 다른 이야기로는 옥종면에 사는 한 참봉이 명당을 찾아 왔다가 다른 사람이 묘를 써 그냥 돌아갔다. 하여 돌고지재라 한다.
▶ 백두대간 우듬지분기점(566m)
“신산경표”를 발표한 박성태의 백두대간 우듬지에 대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지리산 영신봉에서 가지를 쳐 지나온 낙남정맥이 옥산분기점에서 남진하여 백두대간 우듬지구간을 형성하고 있는데 “우듬지”는 나무의 꼭대기 줄기“라는 뜻으로 백두대간 꼬리나 끝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조선후기 조선조 영조때 실학자었던 여암 신경준(1712~1781)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산경표(山經表)와 달리 백두대간은 영신봉에서 천왕봉으로 향하지 않고 낙남정맥으로 이어지고 있는 맥을 따라 이곳 우듬지 남해 노량포에서 그 맥을 다하는 것으로 정하고 새로운 낙남정맥은 영신봉이 아니라 이곳 우듬지에서 분기하여 기존 낙남정맥을 따라 이어가는 것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즉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 산줄기는 물을 건너지 않고 산이 곧 물을 나눈다)의 원칙에 의거 이 땅의 산줄기가 되는 모든 맥은 내와 천을 형성하다 결국은 강이나 바다에서 그 맥을 다하는 것을 본다면 천왕봉은 단지 지리산의 최고봉일 뿐이고 천왕봉을 지나 동부능선의 웅석봉도 달뜨기 능선의 이방산이나 수양산도 백두대간의 끝이 될 수 없으므로 남해의 “노량포”를 백두대간의 꼬리로 함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 천왕봉(天王峰/602m)
경남 하동군 북천면에 위치한 천왕봉(天王峰/602m)은 지리산의 한줄기가 뻗어와 청수리(淸水里) 앞산 줄기를 따라서 북천면과의 경계인 백토재를 건너가서 한 줄기는 멀리 사천(泗川)과 고성(固城)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 통영시(統營市)의 폰듸목을 건너서 미륵도까지 갔으며, 또 한 줄기는 함안, 김해까지 갔다. 날씨가 쾌청한 날이면 지리산 천왕봉, 웅석봉, 광양 백운산 억불봉등 명산과, 남해 바다, 하동 화력발전소, 진양호 등이 한눈에 들어 온다. 천왕봉 뒷쪽에는 天王峰의 氣와 血을 받은 우리 후손들은 그 발자취를 남기고자 이 碑를 세웠노라(楊川人의 一同)이라 새겨져 있다.
▶ 백토재(白土峙/180m)
백토재는 경남 하동군 북천면과 옥종면을 넘나드는 고개로 1005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백토재는 옛날에 도자기의 원료인 백토(白土)가 많이 나는 동네라 백토재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베토재로 변음되어 불리고 있단다. 한문으로 백토(白土)는 흰 흙을 말하며 도자기, 보온재, 농약, 고무신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든다고 한다. 아름답게 단장을 한 백토재 고개마루에는 큼직한 자연석 돌석에 한자로 “고향옥종(故鄕玉宗)”을 알리는 표지석이 새겨져 있으며 낙남정맥을 알리는 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다. 백토재는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하면서 이 길을 지났다고 하여 산경표상에 황치(黃峙)로 대동여지도에는 황령(黃嶺)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도로에 자연석으로 “故鄕玉宗”이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도로변에는 낙남정맥 안내도가 있다.
◇ 산행거리 : 18.9Km
◇ 산행시간 : 7시간20분 정도
◇ 주요구간별 시간대 : 고운동재-길마재(1시간40분)-양이터재(1시간30분)-돌고지재(1시간50분)-배토재(2시간20분)
◇ 주의사항 :
- 고운동재에서 700봉까지는 산죽터널로 되어 있다(대부분 사람 키보다 크다, 눈 조심)
▶ 백토재(白土峙/180m)
백토재는 경남 하동군 북천면과 옥종면을 넘나드는 고개로 1005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백토재는 옛날에 도자기의 원료인 백토(白土)가 많이 나는 동네라 백토재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베토재로 변음되어 불리고 있단다. 한문으로 백토(白土)는 흰 흙을 말하며 도자기, 보온재, 농약, 고무신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든다고 한다. 아름답게 단장을 한 백토재 고개마루에는 큼직한 자연석 돌석에 한자로 “고향옥종(故鄕玉宗)”을 알리는 표지석이 새겨져 있으며 낙남정맥을 알리는 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다. 백토재는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하면서 이 길을 지났다고 하여 산경표상에 황치(黃峙)로 대동여지도에는 황령(黃嶺)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도로에 자연석으로 “故鄕玉宗”이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도로변에는 낙남정맥 안내도가 있다.
▶ 안남골재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옥정리 남포마을 안남골(남포의 안쪽 골짜기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에서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음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 북천면 옥정리 남포마을
본래는 진주목 곤양군 초량면에 속해 있었으나 1910년 융희 4년에 빙옥과 신촌이 북면과 대챠천면에 흡수되어 북천면에 속하게 되었으며, 1928년에 빙옥, 신촌, 남포의 행정리동을 합하여 옥정리라는 법정리동이 되었다. 특히, 남포마을은 진주목에 속할 당시 난포(蘭圃)였으나 남해 현령이 왜구의 해적을 피해 피난하여 이곳에서 행정을 하면서 남포(南浦)라고 불렀다. 현재 남포마을의 주요 지명으로는 마을의 동쪽에 있는 산 이름으로 범의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붙여진 지명인 범우골, 연장을 가는 숫돌이 난다하여 숫돌바위골, 남포의 안쪽골짜기에 있다하여 안남골, 농기구의 일종인 긴가래 모양으로 생겼다하여 장가래골, 들이 넓다는 뜻의 황지들, 옛날에 광대가 놀다가 광대 보따리를 그곳에 묻었다는 광대밭골, 일명 돼지난골이라고도 하며 마을 안남골 서편에 위치하는 산골짜기로 그 산이 돼지의 머리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디난골, 마을 앞 대야천변 현재 남포교 옆 개천변에 대내장이라 하여 5일장이 열렸던 곳 장터, 산의 등선이 굽어 용이 웅크리고 있는 형상으로 마을쪽으로 뻗어있어 풍수지리설의 좌청룡 우백호의 청룡리라하고 그 등성이가 청룡등이라 불리고 있다.
▶ 마곡고개(馬谷峙/130m)
마곡고개(밤고개)는 사천시 곤명면 마곡리와 봉계리를 잇는 고갯길이며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때 명군(明軍) 제독(提督) 마귀(麻貴)가 우리 의용군과 연합하여 왜군(倭軍)을 격퇴하였으며 마귀(麻貴)의 성(姓)을 따서 마곡(馬谷)이라 하고 또한 갈마 음수정이 들 가운데 있었음으로 마곡이라고 하다가 구한말 때 마곡으로 개칭하였다. 봉계리(鳳鷄里)의 유래는 앞산의 봉알자리(飛鳳包卵)와 초량천(草梁川)의 내가 흐르고 있으므로 봉계라 부른다.
▶ 원전고개(院田峙/2번 국도/70m)
2번 국도와 경전선이 있는 이곳을 원전고개라 부르며 경전선(慶全線)은 진주와 순천을 잇는 철도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첫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원전(院田)은 조선조 때 완사역에 딸린 봉계원(여관)이 있었으므로 원골 또는 봉계원, 봉계라 하였는데 일명 완사에서 15리의 거리에 있는 원이라 하여 십오리원(十五里院)이라고 한다. 충무공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 삼가(三嘉)에서 노량(露梁)쪽으로 행여(行旅)할 적에 수군패보(水軍敗報)를 들은 십오리원(十五里院)이란 곳이 오늘의 원전(院田)이다.
▶ 산성산(山城山/석장대/239m)
성방리 산성(城方里 山城)이라고도 하는 곤명면 성방리 저전(楮田)마을 남쪽 산위에 흙과 돌로 쌓은 작은 규모의 테메식 산성으로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이 산성은 임진왜란 때 쌓은 것으로 “산성산” 또는 “석장대”라 불리기도 한다. 산 정상의 높이는 239m에 달하며, 사천바다와 멀리는 진주 등지까지도 훤히 바라보이는 요충지이다.
▶ 사립재(235m)
경상남도 사천시 곤양면 송전리에 있는 야트막한 봉우리로 높이는 235m이다. 그리고 삼각점이 있다. 진주, 산청 등지에서 곤양으로 통하는 대로였으며 곤양의 동북방 관문격이라는 뜻에서 민가의 사립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고개이며 ‘사천시 문화원 자료에 의하면’ 사립재는 봉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 딱밭골재(110m)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성방리 새미골에서 곤양면 묵곡리 딱밭골마을을 잇는 고개로 18번 군도가 지나는데 신도로명이 묵성로이다. ‘딱밭’은 닥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선들재(仙讀峙/1001지방도/90m)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신흥리에 있으며 신흥리 만지마을에서 곤양면 흥사리 갑사마을을 잇는 고개이다. 신도로명이 흥신로인 1001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신선(神仙)들이 글을 읽었다고 해서 기인된 이름이라 한다.
▶ 덕천고개(德川峙/2번국도/60m)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정곡리 완사마을에서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를 잇는 고개로 신도로명이 경서대로인 2번 국도와 경전선 철도가 지난다. 진주시 내동면 내평리에 있는 솔티마을은 산에 소나무가 많이 있다 하여 솔티라고 부른다. 서쪽 사천시 곤명면 신흥리와 동쪽 진주시 내동면 내평리를 접하고 있는 2번 국가도로가 지나는 고개이다. 2번 국가도로는 하동읍과 진주시를 연결하는 도로이다.
◇ 산행거리 : 21Km
◇ 산행시간 : 7시간20분 정도
◇ 주요구간별 시간대 : 배토재-마곡고개(1시간50분)-떡밭고개(3시간)-덕천고개(2시간30분)
▶ 덕천고개(德川峙/2번국도/60m)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정곡리 완사마을에서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를 잇는 고개로 신도로명이 경서대로인 2번 국도와 경전선 철도가 지난다. 진주시 내동면 내평리에 있는 솔티마을은 산에 소나무가 많이 있다 하여 솔티라고 부른다.
서쪽 사천시 곤명면 신흥리와 동쪽 진주시 내동면 내평리를 접하고 있는 2번 국가도로가 지나는 고개이다. 2번 국가도로는 하동읍과 진주시를 연결하는 도로이다.
▶ 솔티고개(松峙/64m)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내평리에 있는 고개로서 산에 소나무가 많이 있다 하여 솔티라고 부른다. 마을 앞으로는 진주~하동 간 일반국도가 지나고, 뒤로는 경전선 철도가 있다.
▶ 태봉산(191m)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내평리 산 105번지에 있으며 높이는 191m이다. 정상에 삼각점(진주613 1986재설)과 그 옆에 마모가 되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구)삼각점도 같이 있다.
▶ 진양호(晉陽湖)
진양호는 1968년 낙동강 지류인 남강상류를 막아 경남지역 최초로 축조한 인공호수로서, 물이 맑고, 자연경관이 훌륭한 관광명소이며, 다목적 댐으로 건설된 이 인공호수는 길이가 975m, 높이가 43m이고 총저수량이 약1억3천6백만 t이다. 진양호 물은 원래 남강을 지나 창녕 밑에 있는 남지에서 낙동강 본류와 만나 부산 앞바다로 흐르게 되어 있었다.
▶ 가화천(加花川)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에서 사천시 곤양면·축동면을 흐르는 국가하천이다. 낙동강 권역의 낙동강 남해권 수계에 속하며, 유로연장(流路延長)이 12.52㎞, 하천 연장이 10.38㎞, 유역 면적이 29.08㎢이다. 진주시 내동면(奈洞面) 유수교 아래, 남강댐에 의해 생긴 진양호(晋陽湖)의 수문(水門)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사천시 곤양면(昆陽面) 가화리를 거쳐 사천시 축동면 구호리와 곤양면 중항리의 경계 지점까지 흘러간다. 가화천의 하류에는 3개의 교량이 있는데, 지방도가 지나는 교량은 가화천교이고, 남해고속국도를 지나는 교량은 가화교이며, 가운데 교량은 구 고속도로 교량으로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1969년 남강댐을 건설한 이후 가화천이 남강댐의 방수로 역할을 하여 홍수위를 조절해 주기 때문에, 진주를 관통하는 남강의 하류부인 의령군과 함안군에서의 홍수 위험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가화천의 하상(河床)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백악기 공룡의 발자국이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 가화천 상류에서 공룡 이빨, 경린어류의 비늘, 거북의 배갑이 산출되었고, 사천시 곤양면 가화리에서는 100여 개의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어 학계에 정식으로 보고되었다. 공룡 발자국은 조각류가 우세하고 수각류 것도 일부 발견된다고 한다. 이것은 1997년 천연기념물 제390호로 지정되었다.
▶ 비리재(1049지방도/60m)
사천시 축동면과 진주시 내동면의 경계를 짓는 고갯마루로 1049번 지방도로가 통과한다.
▶ 실봉산(實峰山/186.3m)
경상남도 진주시의 내동면 독산리와 정촌면 대축리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내동면 독산리 모산마을과 정촌면 대축리 심대마을 경계에 걸쳐 있다. 실봉산 약간 북쪽에서 낙남정맥은 동쪽으로 뻗어가지만 산세가 매우 미미하여 구릉에 불과한 곳도 더러 있다. 실봉산 근처 낙남정맥에서 한 줄기가 갈라져 북쪽으로 내달리다가 진주의 조산인 망진산(望晉山)을 이루었다. 산은 높지 않으나 주변의 낙남정맥 가운데 최고봉이어서 전망이 매우 뛰어나다. 서북쪽의 지리산부터 남동쪽의 와룡산, 동북쪽의 자굴산, 북쪽의 집현산, 동쪽의 장군대산·방어산까지 한눈에 전망이 가능한 산이다. 문헌에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는 삼각점(진주11; 진주시 내동면 독산리 산 33-6)이 있다.
▶ 유수교(柳樹橋/48m)
사천시 축동면 반룡리와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柳樹里)를 경계하고 있는 1049번 도로가 지나는 고개이다.
▶ 진주 분기점(晉州 分岐點)
10호선 남해고속도로와 35호선 통영대전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분기점이면서, 남해고속도로 방향 옆으로 진주시내에서 사천시 사천읍으로 연결되는 3번 군도가 지나간다.
▶ 화봉산(花峰山/110m)
진주시 정촌면 화개리(花開里)에 있으며 높이는 110m이다. 화봉산은 지리산의 주령으로 정촌면의 주된 산인데, 예부터 “당개”라 불렀다고 하는 이 산은 자생하고 있는 진달래, 연지, 들란초, 복숭아꽃, 살구꽃, 백일홍 등이 만발하였던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꽃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 모산재(73m)
진주시 정촌면 화개리 모심마을과 매동마을을 잇는 고개로 신도로명은 화개길이다.
▶ 와룡산(93.8m)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과 사천시 경계에 있으며 정상은 대나무 숲으로 거의 마모 된 삼각점이 있다.
▶ 죽봉동(竹鳳洞)
죽봉 등 해발 고도 100m 이하의 구릉성 지형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고, 화봉산과 그 아래의 죽봉저수지에서 시작하여 남쪽의 사천만 쪽으로 작은 하천이 있다. 동쪽은 관봉리, 서쪽는 대축리, 남쪽은 예상리와 예하리, 북쪽은 가호동과 각각 접하고 있다. 국도 3호선이 남북으로 관통하여 지나고 진주 I.C가 화개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남해고속국도와 중부고속도로 대전-통영 구간이 교차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또한 현재 폐선된 철도 진삼선이 남북 방향으로 가로놓여 있다. 화개리(花開里)는 화동, 화원, 매동, 이동, 모심, 죽봉의 6개 행정리가 있으며, 정촌면사무소가 지역 내에 입지하고 있다.
▶ 고미동재(古美峙/63m)
진주시 문산읍과 정촌면을 잇는 고개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난다. 고개 좌측에 새말마을이 있고 우측에 옹골(소곡리)이 있다. 옛 이름은 산 꼬리가 아홉등으로 이루어져 구미골(九美谷)이라 부르다가 정자나무가 여러 나무 있어서 길손들의 휴식처로 더 없는 곳이기에 계미골이라고 고쳐서 부르다가 그 뒤 아름다운 골이라 하여 고미(古美)라고 부르고 있다.
▶ 계리재(鷄狸峙/3번국도/91m)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관봉리와 문산읍 두산리 계리마을을 거쳐 금곡면 정자리를 잇는 고개이다. 진주시 문산읍 두산리의 계리재는 옛날부터 풍수설에 의하여 전해진 말에 의하면 닭(鷄)과 삵쾡이(狸)가 이쪽 저쪽에 있다고 해서 계리재라 하였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정촌면의 관봉초등학교가 있는 고미동을 계미골이나 계미동으로 부르는데 이 지역의 산세가 고양이처럼 생겼다 하여 계리재라 부른다고도 한다. 3번 군도가 지난다. 관봉초교와 금곡면을 잇는다.
◇ 산행거리 : 18.9Km
◇ 산행시간 : 6시간10분 정도 정도
◇ 주요구간별 시간대 : 덕천고개-유수교(1시간20분)-모산재(3시간30분)-고미동고개(1시간20분)
◇ 주의사항 : 2번국도에서 포장도로따라 5분정도 진행 후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10여분 올라가면 묘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지말고 직진 한다.
- 진주분기점에서 통로 2개 통과후 편의점종합물류 조립식 창고에서 왼쪽으로 간다
- 산불감시초소에서 오른쪽 감나무 밭으로간다.(감 딸때 시멘트 포장도로로 간다)
▶ 고미동재(古美峙/63m) 진주시 문산읍과 정촌면을 잇는 고개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난다. 고개 좌측에 새말마을이 있고 우측에 옹골(소곡리)이 있다. 옛 이름은 산 꼬리가 아홉등으로 이루어져 구미골(九美谷)이라 부르다가 정자나무가 여러 나무 있어서 길손들의 휴식처로 더 없는 곳이기에 계미골이라고 고쳐서 부르다가 그 뒤 아름다운 골이라 하여 고미(古美)라고 부르고 있다. ▶ 계리재(鷄狸峙/3번국도/91m)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관봉리와 문산읍 두산리 계리마을을 거쳐 금곡면 정자리를 잇는 고개이다. 진주시 문산읍 두산리의 계리재는 옛날부터 풍수설에 의하여 전해진 말에 의하면 닭(鷄)과 삵쾡이(狸)가 이쪽 저쪽에 있다고 해서 계리재라 하였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정촌면의 관봉초등학교가 있는 고미동을 계미골이나 계미동으로 부르는데 이 지역의 산세가 고양이처럼 생겼다 하여 계리재라 부른다고도 한다. 3번 군도가 지난다. 관봉초교와 금곡면을 잇는다. ▶ 봉전고개(鳳田峙/140m) ▶ 무선산(舞仙山/278m) ▶ 돌장고개(1002지방도/90m) 돌장고개에는 경남 문화재 자료 179호로 지정된 ‘두문리 경계비석’이 있다. 지금은 진주시(옛 진양군)와 사천시(옛 사천군)의 경계석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이 비석은 천태산의 마구할미(마고할미)가 물레질을 하기위해 바위 3개를 갖고 사천군 큰골(두량, 즉 서쪽)에서 오다가 하나는 사천군 구암 숲에, 또 하나는 고성군 영오에 놓고, 남은 하나는 지금의 자리에 꽂아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즉 마고할매가 시루공이를 지고 가다가 이 고개에 놓고 간 것이 유래되어 ‘돌짱빼이’가 ‘돌장고개’로 불리게 되었다. ▶ 객숙재(客宿峙/350m) ▶ 봉대산(鳳臺山/409m) ▶ 양전산(陽田山/310.3m) ▶ 부련이재(190m) ◇ 산행거리 : 19.5Km ◇ 산행시간 : 7시간20분 ◇ 주요구간별 시간대 : 고미동고개-돌장고개(3시간30분)-봉대산(2시간50분)-부련이재(1시간)
진주시 정촌면 봉전마을과 금곡면 인담리 인담마을을 잇는 고개이며 신도로명이 무선산로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난다. 봉전(鳳田)마을은 무선산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로 뒷산이 학이 밭에 내려앉는 형상이러서 붙여진 이름으로 우백호 등은 학등이고 좌청룡은 무선산이다. 우백호 등 밑에 용청사(龍淸寺)가 있었으나 지금은 석탑만 남아있고 절은 없어졌다. 좌청룡인 무선산(舞仙山) 중턱은 진(陳)터라고 전해 왔는데, 지금은 성터만 남아있다. 무선산 밑 중턱에 용바위가 있는데 용이 등천했다고 하는 굴이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관봉리에 있으며 높이는 277.5m이다. 무선산 북쪽 기슭에는 봉전마을이 있다. 진주와 사천의 접경지역에 솟은 산으로 멀리서 볼 때 선녀가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정상에는 삼각점(진주310 1991복구)이 있는 것 외에는 조망도 좋지 않고 칡넝쿨과 잡목만이 무성할 뿐이다. 무선산 중턱은 진(陳)터라고 전해왔는데, 지금은 성터만 남아 있다. 무선산 밑 중턱에 용바위가 있는데 용이 등천했다고 하는 굴이 있다.
신도로명이 구암두문로인 돌장고개는 서쪽의 사천시 사천읍와 동쪽의 진주시 금곡면을 연결하는 1002번 도로상의 고개이다. 지금은1002번 도로옆으로 대전통영간고속고로가 지나고 있어 돌장고개는 단절 된 상태이다. 돌장고개는 통과가 불가능해 보여도, 고속국도상의 장전1터널 쪽으로 향하면 국도 아래로 터널이 있어 쉽게 관통할 수 있다.
일명 객숙치(客宿峙)라고도 한다. 진주시 금곡면 죽곡리 대실 남쪽에서 사천군 정동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산세는 험하지 않고 낮지만 옛날에 골이 하도 깊고 멀어서 손님이 고개를 넘으려면 자고 넘었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이 골을 객숙골이라고도 한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죽곡리의 해발 409m인 봉대산은 진양, 사천, 고성 3개 군을 포옹하여 웅장하게 솟은 명산이다. 죽곡에 위치하였으나 이 산은 금곡면의 주봉이며 전설도 많다. 죽곡에는 옛날에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으면 그 대밭에는 봉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한다. 그 후 천지개벽이 있자 봉은 봉대산 꼭대기로 날아가 앉았다. 그 후 물이 빠진 자리에는 대나무도 없어지고 깊은 골짜기가 이루어져서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 한다. 그리하여 봉이 앉아있는 밑이라는 뜻에서 여기를 봉하죽임이라 불렀다 한다. 그 이후 대나무가 있는 골이라는 뜻에서 죽곡으로 불리어 오늘에 이른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도 마을 어귀에는 대나무가 있다. 등로에서 6m 정도 벗어나 표지석이 있으며 사천시와 진주를 경계하고 있다.
경남 고성군 영현면 봉림리에 있으며 높이는 311m이다. 삼각점(진주473 1986재설)이 있다.
경상남도 고성군 상리면 고봉리와 영현면 영부리를 잇는 고개로 인근의 고봉리 주민들은 고시내미재라고 부른다 한다.(신도로명; 고봉로)
▶ 부련이재(190m)
경상남도 고성군 상리면 고봉리와 영현면 영부리를 잇는 고개로 인근의 고봉리 주민들은 고시내미재라고 부른다 한다.(신도로명; 고봉로)
▶ 문고개(190m)
부련이재와 연결되는 임도이며, 주변의 농지와 산림을 관리하기 위한 임도는 남쪽으로 길게 배곡고개까지 이어진다.
▶ 백운산(白雲山/391m)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척정리에 있으며 높이는 391m이다.
▶ 배곡고개(180m)
경상남도 고성군 상리면 망림리와 영현면 봉발리를 잇는 고개로 신도로명이 망봉로이며, 봉발리로 고개 넘어 가는 길에 봉발소류지가 있다.
▶ 천황산(天皇山/343m)
경상남도 고성군 영현면 봉발리에 있으며 높이는 342.5m이다. 낙남정맥 추계재와 배곡고개 사이에 있다.
▶ 추계재(楸溪峙/가리고개/1016지방도로/190m)
경상남도 고성군 영현면 추계리와 상리면 망림리를 잇는 고개로 지방도 1016호선(신도로명; 부포로)이 지나며, 대가면 종생마을로도 이어지는 도로(신도로명; 갈천로)가 있는 삼거리이다.
▶ 대곡산(大谷山/543m)
경상남도 창원시의 마산합포구 문화동 서쪽에 위치한 산이다. 북쪽의 무학산에서 대곡산으로 이어지고 대곡산의 서쪽으로 대산, 광려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의 경계가 된다. 산의 남쪽으로 쌀재고개, 만날고개가 있어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 내서읍을 연결한다. 지금은 쌀재터널이 있다. 옛 기록에서는 대곡산의 기록을 찾기 어렵다. 『조선지지자료』(마산)의 외서면에 대곡(大谷)이 있다. 한글 지명은 '큰골밧탄'으로 두릉리(杜陵里)와 월영리(月影里) 사이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같은 문헌의 내서면 두척리(斗尺里)에 대곡산이 있다. 한글 지명은 '큰골'이다. 『조선지형도』에는 월영리의 서쪽에 대곡산이 있다.
낙남정맥의 가장 남쪽에 있으며 삼각점(통영401)이 있고, 통영지맥 분기점이다. 소나무 가지에 많은 표지기들과 ‘준.희’님의 낙남정맥 대곡산542.9m 팻말이 달려있다. 그리고 작은 케른 1기 옆에 삼각점(충무401 1986 재설)이 있고 그 옆에 있는 삼각점 안내판은 지적삼각점 통영 -401호(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 산170-1)로 표기 되어있다.
▶ 화리재(양화고개/버천재/395m)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갈천리 종생마을에서 대가면 양화리를 잇는 고개로 네 갈래 임도와 두 가닥 산길이 지나며 무량산 등산 안내도가 있다. 바로 아래 종생마을에선 양화고개 또는 버천재라 부르지 화리재라 하진 않는다고 한다.
▶ 무량산(無量山/천왕산/581m)
경상남도 고성군의 대가면 양화리와 갈천리에 있는 산이다. 낙남정맥(洛南正脈)에 속하며 서쪽으로 봉화산(353m) 그리고 남쪽 대곡산(545m), 철마산(417m)을 거쳐 고성읍 무량리까지 산지가 이어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무량산(無量山)은 현 서쪽 10리 지점에 있으며 진산이다."고 하였고, 『여지도서』에는 "무량산(舞量山)은 관아의 서쪽 10리에 있다. 진주 지리산(智異山)에서 뻗어 나와 진산을 이룬다."고 수록하고 있다. 『경상도읍지』와 『영남읍지』에는 서쪽 50리에 있다고 수록하였다. 『해동지도』, 『광여도』, 『대동여지도』에는 무량산으로 표시하였고, 『조선지도』에는 기량산(旡量山)으로 적고 있는데 무량산(无量山)을 잘못 적은 것이다. 한편 『호구총수』의 지명을 살펴보면 서읍내(西邑內)의 동리 중에 무량리(武良里)가 있고, 『1872년지방지도』에는 무량리와 무량지(武良池) 위에 무량산(武良山)을 표시하였는데, 지금의 고성읍 무량리 지역이다.『조선지지자료』에는 대둔면(大屯面) 종생동(宗生洞)의 무량산(無量山)과 서읍(西邑) 무량동(武良洞)의 무양산(無恙山)을 각각 기록하였다. 하지만 두 산 사이의 철마산도 상서면(上西面) 이동(梨洞) 무량산(無量山)으로 기록하였고, 대가면 양화리 삼계마을의 효자 이행이 시묘살이를 하였던 모친 묘소에 '무량산하(武良山下)'라는 글귀를 새긴 돌이 남아 있어 대가면 양화리에서 연지리를 거쳐 고성읍 무량리까지 이어지는 산지를 하나의 진산으로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명은 기우제를 지내면서 비를 한없이 내려주시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정상석(581.4m)과 삼각점(함안 314, 2002재설), 삼각점 안내판이 있으며 소방구조목(고성4-1)이 있으며, 무인산불감시카메라 탑도 있다.
▶ 큰재(어실고개/350m)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갈천리에 있으며 신도로명이 유흥갈천길이다. 대가면 갈천리와 대가면 유흥리를 잇는 고개이다. 고개 정상부근을 어실고개로도 부르며 주소지는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척정리로 되어있다.
▶ 백운산(白雲山/486m)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척정리에 있으며 높이는 486m이다.
▶ 장전고개(場田峙/1009지방도/제일목장)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송계리와 척정리를 잇는 고개로 1009번 지방도로로 2차선이다. 장전(場田), 장밭, 마당밭으로도 불린다. 진주-통영간 고속도로가 지나며 수도원과 장전버스정류장이 있다. 송계리에 장밭마을이 있는데 장밭마을은 이곳에 마당만한 밭이 많다고 하여 장전(場田)이라 불린데서 장밭마을이 되었으며 이 고개도 마을 이름을 따서 장밭고개 또는 장전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 산행거리 : 17.5Km
◇ 산행시간 : 7시간20분
◇ 주요구간별 시간대 : 부련이재-배곡고개(1시간50분)-대곡산(2시간20분)-장전고개(3시간10분)
◇ 주의사항 : 무령산 갈림길에서 10분지나 왼쪽으로 간다(직진 등산로가 더 좋다)
▶ 장전고개(場田峙/1009지방도/제일목장)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송계리와 척정리를 잇는 고개로 1009번 지방도로로 2차선이다. 장전(場田), 장밭, 마당밭으로도 불린다. 진주-통영간 고속도로가 지나며 수도원과 장전버스정류장이 있다. 송계리에 장밭마을이 있는데 장밭마을은 이곳에 마당만한 밭이 많다고 하여 장전(場田)이라 불린데서 장밭마을이 되었으며 이 고개도 마을 이름을 따서 장밭고개 또는 장전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 떡고개(210m)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좌연리 월곡마을과 마암면 신리를 잇는 고개이다.
▶ 덕산(德山/278m)
고성군 개천면과 마암면 경계에 위치한 덕산은 남족으로 떡고개와 북쪽으로 배치고개가 있다. 덕산은 해발 278m로 삼각점이 위치하고 있다.
▶ 배치고개(175m)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신리와 개천면 좌연리간을 잇는 고개로 1007번 지방도로(옥천로)가 지난다. 고개마루에는 개천면 입간판이 있으며 해발 175m이다.
▶ 신고개(170m)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좌연리 좌이마을에서 윗자구실 마을을 거쳐 마암면 성전리를 잇는 고개이다.
▶ 탕근재(宕巾峙/369m)
탕근재는 고개가 아니고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봉치리(鳳峙里)와 마암면 성전리(聖田里), 구만면 용와리(龍臥里)가 갈리는 삼면계봉으로 봉우리 생김새가 탕건(宕巾)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탕건은 조선시대에 벼슬아치가 망건의 덮개로 갓 아래에 받쳐 쓴 관(冠)을 말하는데 모양은 앞쪽이 낮고 뒤쪽이 높아 턱이 졌다. 원래 경상도에서는 ‘의’와 ‘어’의 발음이 구분이 되지 않는지라 ‘탕건’이 ‘탕근’으로 변음되어 오늘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각점(함안315)이 있으며 삼각점 안내판에는 배락370.1m로 표기되어 있다. 산봉우리에 무슨 연유로 재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다.
▶ 봉광산(鳳光山/386m)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봉치리에 있는 이 산의 높이는 지도에 따라 391.3m, 389m 등 다르게 표기되어 있으며 나무에 걸린 정상표시 목판에는 ‘고성 봉광산 386m’로 되어있다.
▶ 새터재(샛곡/230m)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봉치리와 구만면 저연리, 용와리를 잇는 고개로 2차선 6번 군도로가 지나고 있다.
▶ 새터재(샛곡/230m)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봉치리와 구만면 저연리, 용와리를 잇는 고개로 2차선 6번 군도로가 지나고 있다.
▶ 봉치리(鳳峙里)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봉치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약 150m나 되는 고지의 분지에 형성된 마을이다. 봉치리를 원래 새티(鳥峙里)라 불렀으나 호칭이 상(常)스럽다 하여 조치(鳥峙) 또는 조치리(鳥峙里)라 불렀다. 그러나 다시 호칭이 상(常)스럽다 하여 새 조자(鳥)에다 궤를 씌워 새 봉자(鳳)자로 하여 봉치리라 하였다고 전한다. 최초 새티라고 하게 된 것은 아주 옛날 천지가 개벽할 때 봉치골에 물이 범람하여 새티재에 새 한 마리가 앉을 정도만 남고는 모두 물에 잠겼다고 새티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 봉치고개(鳳峙-/230m)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봉치리 봉치마을과 구만면 저연리 저동마을을 잇는 고개이다. 그러나 오래 묵은 길인 것으로 보아 오래전에 발길이 끊어진 것 같다.
▶ 필두봉(筆頭峰/420m)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청광리와 구만면 저연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420m이다. 서쪽 필봉산(344m), 동쪽 용암산과 능선이 이어져 있는데, 남쪽 구만천과 북쪽 개천천의 분수계가 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필두산(筆頭山)으로 기록하였는데, 산봉우리가 붓처럼 생긴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동쪽 용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중간에 담티재(墻峙)가 있다. 담장처럼 길게 경계를 이룬 고개라고 해서 '담치', '탕치', '장치'로도 불렀으며, 1906년(광무 10) 이전에는 개천면이 진주에 속하였기에 고성에서 진주로 넘어가는 고개이자 경계였다. 현재는 1002번 지방도가 지난다.
▶ 담티재(墻峙-/장치/1002지방도/195m)
경상남도 고성군 구만면 화림리와 개천면 청광리를 잇는 고개로 높이는 195m이다. 1002번 지방도로가 지나며 용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담장처럼 길게 경계를 이룬 고개라고 해서 '담치', '탕치', '장치'로도 불렀으며, 1906년(광무 10) 이전에는 개천면이 진주에 속하였기에 고성에서 진주로 넘어가는 고개이자 경계였다. 현재는 1002번 지방도가 지난다.
▶ 용암산(龍岩山/399.5m)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나선리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높이는 399.5m이다. 원형의 소삼각점 동판으로 된 삼각점(함안442) 안내판에는 399.8m로 표기되어 있다.
▶ 남성치(南星峙/180m)
개천면 나선리와 구만면 화림리를 잇는 고개로 높이는 180m이다. 남성치란 표지석과 선도마을을 알리는 입간판이 있으며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난다.
▶ 420.4m봉(벌발들/418.5m)
경상남도 고성군 구만면 화림리와 주평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벌받돌’로 불리는데 ‘풀국새산’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이름은 양지쪽 산이 유난히 따뜻해 첫 봄 일찍 풀국새가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 곳의 다른 이름인 ‘벌밭들’도 ‘벌발들’,‘벌받돌’ 등 여러 이름으로 혼용되고 있어서 어느 지명이 정확한지 모르겠다. 산 높이 또한 지형도엔 418.5m이지만, 삼각점(함안439 2002복구)안내판에는 420.4m로,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424.3m로 각각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 선동치
이정표(선동마을회관1.2km /준봉산 깃대봉0.7Km / 음나무재0.6Km)가 있으며 좌측 아래쪽에 나선리 선동마을이 있어서 선동치로 불린다.
▶ 깃대봉(521m)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곡안리에 위치한 산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528.6m로, 다른 지도에는 528m로 표시 된 봉우리이다. 진양농협인산악회에서 세운 대리석 깃대봉 정상석에는 해발520.6m로 표기되어 있다.
▶ 발산재(鉢山峙/120m)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리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전리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2번 국도가 지난다. 이 고갯길은 조선시대 진주목의 소촌도(召村道)의 역로에 위치한 고갯길이었다. 진주 주내에서 소촌역(召村驛)·반성현(班城縣)을 거쳐 발산재를 넘으면 진해현 상령역(常令驛)으로 이어졌다. 발산재는 스님의 탁발을 엎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는데서 유래한 지명인데 이 곳은 임진왜란 당시 고종후 장군 등 선열들이 왜적에 맞서 싸웠던 역사의 현장으로 당시 발산재 싸움은 진주성 전투에 앞서 치열하게 벌어진 격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 산행거리 : 17.8Km
◇ 산행시간 : 7시간50분
◇ 주요구간별 시간대 : 장전고개-배치고개(1시간20분)-남성치(4시간10분)-발산재(2시간20분)
▶ 발산재(鉢山峙/120m) ▶ 큰정고개 ▶ 오봉산(五峰山) 갈림봉(528.9m) ▶ 524.4m봉 ▶ 오곡재(烏谷峙/비실재/1029지방도/370m) ▶ 미산령(眉山嶺/정자/540m) 함안군 미산마을과 창원 진전면 둔덕마을을 잇는 임도가 가로지른 미산재에는 동물이동통로가 있으며 정자와 낙남정맥 미산령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 미산봉(眉山峰/돌탑/743.5m)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 있으며 높이는 743.5m이다. 정상에는 돌탑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1481)에는 여항산의 서북쪽에 위치한 미산봉(眉山峰)에서 기우제를 지내기 위한 사단(祠壇)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 배능재 미산령과 여항산 사이에 있으며 돋을샘 갈림길이다. 소방구조 위치는 함안군1-다 지점이 된다. ▶ 여항산(艅航山/770m) ▶ 여항산의 지명유래 여항산(艅航山/770m)은 예부터 함안의 주산(主山)이자 진산(鎭山)으로, 지리산 영신봉에서 김해 분성산을 잇는 낙남정맥(洛南正脈)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 강명리 일원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일원에 분포한다. 함안의 지형적 특성인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세와 하천의 역류(逆流)는 바로 함안의 남단에 위치한 여항산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여항산에 관한 기록은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1425),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1481),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1530), 『함주지(咸州誌)』(1587), 『영남읍지(嶺南邑誌)』(1871) 등 다수의 문헌에서 확인된다. 그 중 『함주지』산천조(山川條)의 기록이 백아홉 글자로 비교적 상세한데, 「(요약) 군성(郡城:함안읍성)에서 서남쪽으로 15리(上里)에 위치하며, 두류(頭流:현재의 지리산)에서 300리를 이어져 와 군을 진압하는 진산이다. 산꼭대기 바위는 깎아지른 듯하고 남쪽은 낙숫물을 받는 댓돌처럼 생겼는데 그 위가 편평하여 10여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이다. 바다를 바라보면 멀리 대마도의 여러 섬들이 뚜렷하게 보이고, 산허리에는 한낮에도 신령한 퉁소 소리가 나는 듯하며 구름이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가뭄이 심할 때에는 군민들이 기우(祈雨)의 깃발을 꽂고 비가 올 것인지 점을 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항’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관련한 전설로는 천지사방이 물에 다 잠겼을 때 여항산의 꼭대기만이 배 만큼 남았다고 하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경상도지리지』를 비롯한 조선시대 대부분의 기록에 ‘남을 여(餘)’자에 ‘배 항(航)’자의 ‘餘航’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1586년 한강(寒岡) 정구(鄭逑) 군수가 부임하면서 함안이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으로 물이 역류(逆流)하는 까닭에 역모를 꾀할 기운이 있다하여 이를 풍수지리적으로 바로 잡고자 낮은 북쪽은 뜻과 글자로써 높여 대산(代山)으로, 높은 남쪽은 배가 다닐 수 있는 낮은 곳이라는 의미에서 여항(餘航)으로 고쳤다는 설이 있지만, 대산과 여항은 이미 사용해 오던 지명으로 이는 잘못 알려진 것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배이름 여(艅)자에 배 항(航)자의 ‘艅航’은 문헌기록과 각종 지도로 보아 18~19세기 사이에 ‘餘→艅’로 변경된 것으로 추정되나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여항산은 이외에도 마을주민들에 의해 곽(갓)데미산, 배넘기산, 필봉(筆鋒)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 왔는데, 이 중 ‘곽(갓)데미산’은 정상에 있는 마당바위(平岩, 곽바위)를 가리키는 ‘곽(槨, 郭)’이나 ‘갓(冠)’에 큰 덩어리를 의미하는 순우리말 더미(데미)가 붙어 만들어진 이름으로 생각된다. 또 ‘갓’을 ‘어미’로, ‘데미’를 ‘산’으로 보아 ‘어미산’ 또는 ‘모산(母山)’의 의미를 가진다는 의견도 있다. ‘배넘기산’은 『함주지』총담조(叢談條) 천하의 지세(天下之地勢)에 「여항산의 ‘여(餘)’자는 방언에 ‘월(越)’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배(航)가 넘는다(越)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겠다. 한편, 6.25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사수를 위해 여항산을 중심으로 피아간 격렬한 전투가 있었는데 이 때 많은 피해를 입은 미군들에 의해 ‘갓뎀(goddam:빌어먹을, 제기랄)산’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이는 ‘갓데미산’의 발음을 들어 희화(戱化)하여 부른 것이다. ▶ 여항산의 문화유적 여항산성(艅航山城) 여항산성과 관련한 옛 기록은 전혀 없으며, 지방의 지리적 특색을 비교적 잘 기록하였던 조선시대의 여러 문헌에서 조차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산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1996년 5월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에서 실시한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여항산성의 존재가 알려졌으나, 아직까지 정식의 학술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산성의 축성연대와 구조 등에 관한 정확한 내용은 분명하지 않다. 여항산성은 여항산 제1봉과 제2봉에 각각 축성되어 있는 2개의 테뫼식(봉우리를 둘러쌓아 축성하는 방식) 석축산성(石築山城)으로, 해발이 높아 주변 일대를 조망하기에 특히 유리하고 남쪽의 진동만에서 함안으로 북진하는 적들에 대한 효율적인 관망과 방어가 유리하다는 점에서 군사적 기능의 산성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항산성Ⅰ’은 여항산 제1봉(770m)의 정상부와 능선에 남북으로 길게 축성되어 있는 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약 750m 정도이다. 1996년 지표조사 당시에는 산성의 동문지(東門址)와 북문지(北門址)로 추정되는 곳이 있었으며, 특히 동쪽 성벽 일부는 비교적 잘 잔존해 있어 여항산성이 협축식(夾築式:내 ․ 외벽을 각각 수직으로 쌓아 올리면서 그 안을 흙이나 돌로 채우는 축성방식)의 산성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훼손으로 인해 그 흔적을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인데, 다만 산성의 북동쪽 능선을 따라 회곽도(廻郭道:성곽 내에 이동을 쉽게 할 목적으로 만든 길)로 추정되는 길이 약 150m, 너비 4~5m 정도의 평탄지가 조성되어 있어 이곳이 산성이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경사면이 급한 서쪽과 남쪽은 별도의 축성 없이 암반을 그대로 활용하였으며, 산성 내에는 저수시설(貯水施設)로 추정되는 구덩이도 확인된다. 성내에 위치한 헬기장 주변에서 토기편과 기와편이 채집되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산성과 관련한 건물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항산성Ⅱ’는 여항산의 제2봉(744m) 즉 정상으로부터 약 700m 정도 북서쪽에 위치한 산성으로, 전체둘레는 약 270m 정도이다. ‘여항산성Ⅰ’과 마찬가지로 정상부와 능선에 축성하였다. 성벽의 대부분이 허물어져 원형을 알기 어려우나 무너진 성벽의 부재(部財)들이 동서사면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어 산성이 존재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현재 정상의 북동쪽 사면에서 산성의 일부로 추정되는 석축이 확인되며, 산성 내에는 저수시설로 추정되는 구덩이가 확인된다. 여항산성과 관련한 문헌기록이 전혀 없어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지만, 지표조사 당시 채집된 도질토기 파편과 선문계(線文系)의 기와편으로 보아 삼국시대 말~통일신라시대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여항단(餘航壇) 함안에 심한 가뭄이 들면 여항산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는 옛 기록이 여러 문헌에서 확인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1481)에는 여항산의 서북쪽에 위치한 미산봉(眉山峰)에서 기우제를 지내기 위한 사단(祠壇)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함주지(咸州誌)』(1587)에는 여항산의 정상에 있는 소위 마당바위에서 기우제의 깃발을 꽂고 비오기를 기원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함주지』단묘조(壇廟條)에 선조(宣祖) 정해년(丁亥年, 1587) 여름 오랜 가뭄으로 농사가 많이 상하여 여항산에 석단(石壇 : 餘航檀)을 쌓아 놓고 비니 영험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함안총쇄록(咸安叢瑣錄)』(1891)에는 1891년 4월 경, 각각 여항산 상봉(上峰)과 용연(龍淵), 별단(別壇)에서 십 수차례의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환여승람(還輿勝覽)(1929)에는 여항산에 기우단(祈雨壇)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여항산의 정상에 기우단이 있었다는 기록, 미산봉에 기우단이 있었다는 기록, 또 이외에 용연이나 별단 등에서도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로 보아 여항산에 있는 특정의 여항단(餘航壇)에서만이 아니라 여항산과 그 주변을 포함한 수개의 장소에서 기우제를 지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현재 여항산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약 200m 정도의 위치에 등산객들에 의해 만들어진 십 수개의 돌탑이 있으며, 그 아래에서 약간의 석축(石築)이 확인된다. 1996년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의 지표조사 당시에는 이곳에서 가로 13m, 세로 9m 정도 규모의 타원형 석단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 역시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일 가능성이 높으나, 여러 문헌기록에서 전하는 여항단의 위치와는 차이가 있다. ▶ 서북산(西北山/739m) 서북산의 서릉은 진전면의 산역 속으로 흐름을 파묻고 국도 건너편의 적석산과 마주하면서 대정골까지 산자락을 들이밀고 있다.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산이라 아직도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서북산의 등산은 학동 마을에 기점을 두고 있으며 마산에서 통영으로 가는 국도가 진동을 넘어서면 오른쪽으로 학동으로 들어가는 포장도로가 눈에 띈다. 그 길의 끝머리에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에서 오른쪽 산등성이를 향하는 농로를 따라 산에 접근하면 산릉을 따라 오르는 산길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렇게 능선을 따라 정상에 이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저수지에서 1시간 30분이다. 서북산 정상에 서면 바닷가에 위치한 산답게 시원한 조망을 만끽할 수 있으며 등산하는 내내 시야가 트여 있어 큰 어려움이 없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하산은 반대편으로 넘어 과수원 쪽으로 붙어 대정 마을로 내려갈 수 있으며, 산릉을 따라 여항산까지 가서 좌촌 마을로 내려가는 방법도 좋다. 종주 산행에 소요되는 시간은 4시간 정도이다. 대정 마을로 하산하면 양촌 마을에 양촌 온천이 있어 산행의 피로를 풀고 갈 수 있으므로 등산 이외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인근에 있는 대정골은 여름에 사람의 발길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 ▶ 감재고개(1021지방도/430m) ▶ 봉화산((烽火山)/파산/676m) 정상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어 예로부터 봉화산이라고 불리며 이 봉수대는 조선 전기에 축조되어 후기까지 경상도 방면의 직봉2로로서 기능을 수행해 왔으며, 진해의 가을포봉수를 받아 의령의 가막산봉수에 연결되었다. 함주지에 의하면 연대(煙臺)1, 연굴(然窟)5, 화덕(火德)1, 망덕(望德)1개의 봉수시설(烽燧施設)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현재 연대1, 건물터 2곳만 확인되고 있으며, 1999년8월6일 기념물 제220호로 지정되었다. ◇ 산행거리 : 20.5Km ◇ 산행시간 : 8시간40분(후미기준) ◇ 주요구간별 시간대 : 발산재-오곡재(3시간)-미산령(1시간10분)-갈밭고개(3신간)-한티재(1시간30분)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리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전리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2번 국도가 지난다. 이 고갯길은 조선시대 진주목의 소촌도(召村道)의 역로에 위치한 고갯길이었다. 진주 주내에서 소촌역(召村驛)·반성현(班城縣)을 거쳐 발산재를 넘으면 진해현 상령역(常令驛)으로 이어졌다. 발산재는 스님의 탁발을 엎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는데서 유래한 지명인데 이 곳은 임진왜란 당시 고종후 장군 등 선열들이 왜적에 맞서 싸웠던 역사의 현장으로 당시 발산재 싸움은 진주성 전투에 앞서 치열하게 벌어진 격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고사리에 있는 고개로 과거 진주 장안리와 마산 여양리를 잇는 고개였다. 이 재는 특이하게도 잘록이 안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에서 ‘심방분맥(尋芳分脈)’이 가지쳐 나가는데 심방분맥은 낙남정맥 9구간의 큰정고개에서 오곡재 방향 약 1Km 지점 528.9m봉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하여 오봉산(五峰山, 524.7m), 제산령(祭山嶺), 30번 도로, 어색재(어시재), 괘방산(掛傍山, 460m), 남해고속도로(10번 도로), 심방산(尋芳山, 156m)을 거쳐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용봉리 남강에서 맥을 다하는 24Km의 분맥을 말한다.
삼각점(함안414 2002복구)이 있으며 지형도에는 523.0m로 표시되어 있다.
함안군 군북면 오곡리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를 잇는 고개(370m)로 1029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옛날에는 보부상에게 매우 중요한 길이었다고 한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있는 산으로 창원시의 마산합포구 진전면 북쪽 끝에 위치하여 함안군과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고도 770m이다. ‘여항산(艅航山)’이라는 지명은 1588년(선조 16) 함주 도호부로 부임한 정구(鄭逑)[1543~1620]가 여항산의 지형은 풍수 지리적으로 반역의 기가 있으므로 남쪽을 ‘낮아서 배가 넘어갈 수 있다’는 뜻으로 배 여(艅), 배 항(航)자를 써서 ‘여항산’이라 이름 붙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옛날 천지가 개벽할 때 물이 산꼭대기까지 차올라 정상에 각[곽] 하나를 놓을 자리만큼만 남았다는 데서 ‘각데미산[곽데미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산 정상에 오르면 20~30명이 앉을 수 있는 넓고 큰 마당 바위[곽바위]가 있으며, 마당 바위에서 남쪽에는 상여 바위, 북쪽으로 조금 지나면 배넘기 도랑이 나오는데 노아의 홍수 때 배가 넘나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산은 갓을 쓴 사람이 요강에 오줌을 누는 형상이라 ‘요강산’이라고도 부른다. 산 동쪽 아래에 형성된 봉성 저수지가 오줌을 눈 흔적이라 전해진다. 여항산은 여항 산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진전면의 최북단에 있다. 산정이 뾰족한 봉우리로 되어 있고 사면이 급한 장년 산지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으며 남쪽이 험준하고 북쪽이 완만한 산지를 이루고 있다. 남쪽으로는 서북산 산맥과 줄기를 잇고 있으며 서북산에 이어 동쪽으로 봉화산, 평지산과 산맥이 이어진다. 여항산 주변에서 발원한 하천들은 사방으로 흘러 미산 저수지, 여항 저수지, 여양 저수지, 중산 소류지, 절골 소류지로 유입한다. 여항산 정상에는 20~30명이 앉을 수 있는, 소위 ‘곽바위’라고 불리는 넓고 큰 마당 바위가 있다.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여항산 주변에서 발원한 하천이 사방으로 흐른다. 여항산 북쪽의 함안군은 남고 북저의 지형이라 하천이 북류하여 거꾸로 흐르는 듯하다. 여항산은 특히 계곡의 맑은 물과 산허리를 감싸는 운무, 산중턱의 원효암과 칠성각, 의상대, 서리봉, 피바위 등으로 유명하며, 6·25 전쟁 때는 낙동강 방어선으로 격전을 치른 곳이기도 하다. 여항산 산행에는 7코스가 있는데 어느 길이든 당일 코스로 충분하다. 제1코스는 주서리 좌촌에서 정상에 올라 다시 좌촌으로 내려오는 길로 2시간 걸리고, 제2코스는 좌촌으로 정상에 올라 서북산을 타고 갈밭골로 내려오는 길로 4시간 걸리며, 제3코스는 좌촌으로 정상에 올라 미산을 타고 내려오는 길로 3시간 걸리고, 제4코스는 미산을 타고 정상에 올라 서북산으로 해서 갈밭골로 내려오는 길로 5시간 걸린다. 여항산은 연중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그 정상은 한 발자국 하늘이 낮아 보이고, 쾌청한 날이면 지리산이 저 멀리 안개 속에 떠있으며, 남해의 푸른 물결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대중교통편은 가야읍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여항면 좌촌행 완행버스를 타고 좌촌에서 내린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에 있는 산으로 여항산에서 뻗어 내린 남릉이 진북면과 진전면의 경계선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이룬 산봉이 서북산이다. 고도는 738.5m이다. ‘서북산(西北山)’이라는 지명은 마산합포구 진북면의 서북단에 위치하는 데서 ‘서북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이 고전을 면치 못한데서 ‘갓데미산’이라고도 불리며, 이 산의 격전에서 희생된 공산군과 아군의 백골이 산적하였다 하여 ‘백마산’ 이라 불리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서북산은 여항산과 북쪽으로 줄기를 잇고 있으며 전형적인 장년 산지의 특색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인 산세는 부드러우나 봉우리가 뾰족하고 사면이 급한 편이다. 동남쪽으로는 평지산에 이어 베틀산과 산맥이 이어져 있고 북동쪽으로는 봉화산과 이어져 있다. 서북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학동 저수지로 유입되고 있으며 산기슭에 감재 고개가 있어 진북면과 여항면의 교통로가 되고 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영학리에 있으며 함안군 여항면 버드내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미천을 잇는 고개이다. 1021번 지방도로는 감재고개에서 주동리까지 미포장 구간이다.
▶ 대부산(649m)
삼각점(함안423)이 있으며 삼각점 안내도에는 높이가 649.1m로 표기되어 있다. 옛 지형도에는 봉화산(烽火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함안군 여항면 주동리, 내곡리 일원에 위치한 봉화산은 산세가 험하고 경사가 급하다. 꼭대기에서는 남쪽의 진동만과 대현관문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로는 함안성점산성(咸安城岾山城:경남기념물 180), 북쪽으로는 아라왕궁지(阿羅王宮地)와 봉산산성(蓬山山城)이 멀리 내다보이며, 서쪽으로는 여항산이 보인다.
▶ 한치(한티고개/진고개/150m)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에 있는 고개이다. 광려산과 봉화산 사이에 있는 큰 고개가 바로 ‘한치’이며 ‘한티 고개’ 또는 ‘진고개’로도 알려져 있다. 예부터 진북면에서 함안군으로 넘어가는 고개 중 가장 큰 고개였다. ‘큰 고개’, ‘목 너머’, ‘대현’이라고도 불렀으며, 지금은 고개 아래로 국도 79호선이 지나고 있다. ‘한치’라는 지명은 “큰 고개”라는 뜻에서 ‘한치’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창원시 마산 일원과 함안군의 경계선을 형성하고 있는 광려산에서 산은 두 줄기로 갈리어, 북쪽으로는 상투봉(724m), 화개산(457m)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진동면과 함안군을 잇는 한치 고개를 건너 봉화산(676m), 서북산(739m), 여항산(770m)에 이른다. 한치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창원시의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함안군의 경계를 잇고 있는 광려산이 있으며 서쪽으로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함안군 여항면의 경계에 위치한 봉화산이 있다. 광려산 산기슭에는 광산사(匡山寺)를 비롯하여 법륜사(法輪寺) 등의 사찰이 있고 광산, 매봉, 길마봉, 상투봉, 삿갓봉[또는 투구봉], 중바위[또는 흔들 바위] 등 빼어난 봉우리들이 한자리에 앉아 있다. 한치를 지나는 국도 79호선에는 ‘진고개 가든 휴게소’가 자리 잡고 있다.
▶ 한치(한티고개/진고개/150m)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에 있는 고개이다. 광려산과 봉화산 사이에 있는 큰 고개가 바로 ‘한치’이며 ‘한티 고개’ 또는 ‘진고개’로도 알려져 있다. 예부터 진북면에서 함안군으로 넘어가는 고개 중 가장 큰 고개였다. ‘큰 고개’, ‘목 너머’, ‘대현’이라고도 불렀으며, 지금은 고개 아래로 국도 79호선이 지나고 있다. ‘한치’라는 지명은 “큰 고개”라는 뜻에서 ‘한치’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창원시 마산 일원과 함안군의 경계선을 형성하고 있는 광려산에서 산은 두 줄기로 갈리어, 북쪽으로는 상투봉(724m), 화개산(457m)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진동면과 함안군을 잇는 한치 고개를 건너 봉화산(676m), 서북산(739m), 여항산(770m)에 이른다. 한치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창원시의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함안군의 경계를 잇고 있는 광려산이 있으며 서쪽으로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함안군 여항면의 경계에 위치한 봉화산이 있다. 광려산 산기슭에는 광산사(匡山寺)를 비롯하여 법륜사(法輪寺) 등의 사찰이 있고 광산, 매봉, 길마봉, 상투봉, 삿갓봉[또는 투구봉], 중바위[또는 흔들 바위] 등 빼어난 봉우리들이 한자리에 앉아 있다. 한치를 지나는 국도 79호선에는 ‘진고개 가든 휴게소’가 자리 잡고 있다.
▶ 광려산(匡廬山/720m)
창원시 마산 일원과 함안군의 경계선을 형성하고 있는 광려산은 높이 720m이며 주봉은 삿갓봉이다. 마산회원구의 무학산(舞鶴山/761m)이 물가에서 춤추는 학이라면 등 뒤 서쪽에 숨겨져 알려지지 않은 광려산은 학 집 같이 아기자기한 맛이 난다. ‘광려산(匡廬山)’의 지명은 산의 형상이 마치 큰 집[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삼국사기(三國史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창원읍지(昌原邑誌)』 등에도 기록되어 있는 유서 깊은 명산이다.
광려산은 중생대 백악기 말기(약 8000만 년 전)의 퇴적암이 주류인 함안층 산지이다. 광산사 약수터에서 계곡을 지나 폭포의 오른쪽 산비탈과 동릉을 거쳐 정상에는 돌탑이 있고, 정상에 서면 가곡 「가고파」의 남쪽 바다가 발아래 펼쳐져 있으며,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여항산(艅航山)[744m]이 보이며 남북 방향으로 대산, 대곡산, 무학산의 산맥이 이어져 있다. 북쪽으로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신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광려산은 남북의 대산(代山)[727m]에서 730봉과 이어져 산세가 위풍당당하다. 무학산, 대산, 광려산, 730봉으로 둘러싸인 마산회원구 내서읍 감천골[감골, 중마을]은 첩첩산골로 700m급 산들 때문에 청정한 풍광을 지녀 사시사철 인근을 찾는 등산객과 유람객들로 붐비기까지 한다. 광려산 산기슭에는 신라 때의 사찰인 광산사(匡山寺)를 비롯하여 법륜사(法輪寺) 등의 사찰이 있고,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옛날에는 함안 고을을 오가던 광산재, 매봉재, 질마재 등의 고갯길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광려산은 광산, 매봉, 길마봉, 상투봉, 삿갓봉[투구봉], 중바위[흔들바위] 등 빼어난 봉우리들이 모여 있는 골짜기와 천혜의 비경 덕분에 등산객들이 많은 것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이 있다. 또한 마산회원구 내서읍의 젖줄인 광려천(光廬川)은 광려산에서 흘러내린 물과 대산의 계곡물이 모여 형성된 것으로 무학산, 화개산(華蓋山)[445m], 천주산(天柱山)[656m]의 지류인 안성천(安城川)과 삼계천(三溪川) 등을 안고 장장 약 20여㎞[50여 리]를 감돌아 기름진 들녘을 넓히며 낙동강 중류에 합류하고 있다. 광려산은 특히 봄철 진달래로 매우 유명한 대산과 함께 등정하는 것으로 인기가 많다. 광려산의 남쪽 능선은 쌀재에서 무학산의 능선을 이어 받아 길게 북으로 치달려 올라 감천 마을을 포용하면서 옥수골을 만들어 놓고 있으며, 동쪽 능선은 함안군으로 흘러나가고, 북쪽 사면은 산세를 열어 여항산으로 산기운을 보내고 있다.
한편, 광려산은 무학산의 명성에 가려 크게 알려져 있지 않아 아직까지는 자연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산행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제공해 주지만, 광려천은 여름철에 많은 피서 인파가 찾고 있어 혼잡하기까지 하다.
광려산의 산행 기점은 내서읍 뒤쪽의 계곡에 있는 신목리[신목 마을]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으며, 광려산에 바로 오르는 길은 광산사 앞의 약수터에서 왼쪽의 계곡 방향을 올라 서쪽 능선에 오르거나, 또는 우측 산비탈의 길을 따라 동쪽 능선을 타고 정상에 오른다.
▶ 삿갓봉
광려산의 주봉으로 높이는 723m이다.
▶ 대산(大山/727m)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727m이다. 무학산과 광려산을 동서로 잇는 능선에 위치하여 마산합포구 진북면, 진동면, 마산회원구 내서읍의 경계에 있다. 만장년 산지로 비교적 험준하며 북서쪽으로 광려산, 북동쪽으로는 대곡산에 이어진다. 산의 북쪽에 정확한 규모와 시기를 알 수 없는 대산 산성이 있다.‘대산(大山)’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 지형도』에 진동면과 내서읍의 경계에 ‘대산’이라 기록되어 있다. 대산은 지리산 영신봉[1651.9m]에서 출발해 진주시~마산~창원을 거쳐 김해시 낙동강 하류에서 끝나는 약 230여 ㎞의 낙남 정맥[정간]의 주요 봉우리 중 하나로 여항산~서북산~봉화산~광려산~대산[727m]~대곡산~무학산~천주산 등이 인근 지역과 시[군]계를 이루며 힘차게 뻗어 너른 바다와 그 기상을 겨루고 있다. 특히 지리산 권역을 제외한 낙남의 산줄기 중에서 가장 높은 여항산과 무학산이 대산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구(舊) 마산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고 그 뒤로 마산항이 보이며 남쪽으로는 남해 뿐만 아니라 다도해의 풍광도 전망되고 있다.
대산의 동쪽에 위치한 대곡산 아래쪽에는 ‘만날 고개’가 있는데 이곳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가를 받고 시집보낸 딸을 그리워하던 어미와 그 딸이 그리움을 참지 못해 고갯마루에 올랐다가 우연히 만났다는 애틋한 전설이 전해지는 고개이다.
대산의 산세는 전체적으로 급한 편이며 만장년 산지로 비교적 험준하다. 동쪽으로 뻗어있는 대곡산으로부터 무학산에 이르기까지 진달래꽃이 산록을 붉게 물들이는 봄철이면 진가를 발휘하는 산으로 유명하다. 큰 나무가 별로 없는 산이라 진달래의 붉은 벌판이 가로막을 장애물이 없어 더욱 볼만하다. 대곡산 일대의 진달래 군락이 가장 화려하고 밀도도 짙어 붉은 치마를 산 사면에 널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무학산으로부터 이어지는 진달래는 마산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 봄철이면 첫 진달래의 만개 소식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이곳 진달래꽃을 보러 먼 길을 내려오곤 한다. 대산으로부터 대곡산, 무학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산을 좋아하는 등산객들에게 으뜸으로 꼽히는 등산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 쌀재고개(5번국도/320m)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과 마산합포구 현동을 이어주는 고개로 대곡산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쌀재 고개는 쌀이 쌓였다는 의미에서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짐작된다. 즉 조선 시대 조창이 인접하였고, 고개 북쪽에 위치한 무학산의 옛 지명이 두척산으로 ‘두척(斗尺)’은 조창에 쌀이 쌓인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쌀재 고개는 ‘살재 고개’라고도 불린다. 일제 강점기 기록에 인령(籾嶺), 사리치 등이 있는데, 쌀재 고개의 이칭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 지지 자료[마산]』에 기록된 인령은 부내면 신감리(新甘里)와 감천리(甘泉里)에 있는데 한글로 ‘싸리재’라고 병기되어 있다. 『조선 지형도』에는 구산면과 내서면 길목에 사리치(沙里峙)가 기록되어 있다. 대체로 쌀재 고개라는 지명은 “쌀을 져 나르는 고개”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단편적인 기록만으로는 ‘쌀재 고개’라는 명칭의 유래를 단정할 수는 없다.쌀재 고개는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지만 차량의 왕래는 비교적 많다. 쌀재 고개에서 대곡산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파르고 오른쪽으로 송전탑이 지나는데, 20분을 올라야 평탄한 지대를 만날 수 있다. 낙남 정맥을 종주하는 산행의 종점으로 쌀재 고개가 많이 이용하는 인기 있는 코스 중에 하나이다. 지금은 쌀재 고개 위로 쌀재 터널이 개통되어 있다. 쌀재 터널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과 마산회원구 내서읍을 연결하는 길이 약 1,450m의 터널이다. 왕복 4차선으로 국도 제5호선의 터널이다. 1997년에 착공하여 2005년 9월 9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임시 개통되었으며, 2006년 12월 21일 완전히 개통되었다. 이 터널의 개통으로 기존 도심을 거쳐 40분 이상이 소요되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과 진동면 간의 통행 시간이 도심을 거치지 않고 바로 외곽으로 빠져 나가게 됨으로 20분 정도 단축되었다. 또한 내서 분기점에 나들목이 건설되면서 고속도로 접속 교통량이 기존 서마산 나들목으로 집중되던 것을 이곳으로 분산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 대곡산(大谷山/516m)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에 있다. 대곡산은 무학산 일대의 산이라고도 하며 높이는 516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북쪽의 무학산에서 대곡산으로 이어지고 대곡산의 서쪽으로 대산과 광려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의 경계가 되고 있다. 산의 남쪽으로 쌀재 고개, 만날 고개가 있어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 내서읍을 연결한다. 지금은 쌀재 터널이 형성되어 있다.‘대곡산(大谷山)’이라는 지명은 산의 형상이 큰 곡(谷)처럼 생겼다 하여 ‘대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옛 기록에서는 대곡산의 기록을 찾기가 쉽지 않다. 『조선지지 자료[마산]』에는 외서면에 대곡(大谷)이 있고, 한글 지명은 ‘큰골밧탄’으로 두릉리(杜陵里)와 월영리(月影里) 사이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같은 문헌의 내서면 두척리(斗尺里)에 대곡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한글 지명은 ‘큰골’이다. 『조선 지형도』에는 월영리의 서쪽에 대곡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대곡산은 지리산 영신봉[1651.9m]에서 출발해 진주시~마산~창원을 거쳐 김해 낙동강 하류에서 끝나는 약 230여 ㎞의 낙남 정맥[정간]의 주요 봉우리의 하나로 여항산~서북산~봉화산~광려산~대산~대곡산[516m]~무학산~천주산 등이 인근 지역과 시[군]계를 이루며 힘차게 뻗어 너른 바다와 그 기상을 겨루고 있다. 특히 지리산 권역을 제외한 낙남의 산줄기 중에서 가장 높은 여항산과 무학산이 대곡산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구(舊) 마산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그 뒤로 마산항이 보이며 남쪽으로는 남해 뿐만 아니라 다도해의 풍광도 전망되고 있다.
대곡산으로 가는 길은 다른 지방과는 달리 단풍 절정의 시기에도 아직 단풍이 시작하지는 않지만, 덩굴 잎에 물든 단풍과 부분적으로 눈에 띄는 갈색조의 붉은 색들, 숲길 여기저기 활짝 핀 야생화들과 짙푸른 색이 드높게 보이는 하늘만으로도 초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정상까지 가는 동안 나무 위와 낙엽 쌓인 바닥에서 쉴 새 없이 부스럭거리는 다람쥐와 청설모의 움직임이 눈길을 붙잡는다. 봄철이면 진달래꽃이 산록에 넓게 퍼져 있는 모습이 전국에서 손꼽히는데, 특히 대곡산 일대의 진달래 군락이 가장 화려하고 밀도도 높다. 진달래는 대개 4월 중순에 산기슭을 물들이기 시작하여 하순이면 절정을 이룬다.
마산 지역의 대표적 등산로 중 한 코스가 바로 만날재에서 대곡산을 거쳐 무학산으로 이어지는 두 산 잇기 코스이다. 코스 중간에 진달래 군락의 백미로 꼽히는 ‘학의 머리’를 지나고 있다. 등·하산로를 어디로 정하느냐에 따라 산행 시간이 달라지겠지만, 중리~밤밭 고개 종주는 넉넉히 7시간 걸리고, 대부분의 코스는 보통 4시간 이내로 가능하다. 또한 이정표와 편의 시설이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대곡산은 무학산에서부터 약 2.6㎞로 1시간쯤 걸린다. 이곳에서 만날재와 쌀재로 길이 나뉘는데 낙남 정맥 코스인 대산 쪽으로 가려면 쌀재 방향으로 가야하며 만날재 방향으로는 하산이 가능하다. 대곡산에서 만날재까지는 1㎞의 하산길이어서 30분이 채 걸리지 않으며 줄곧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경남 대학교 야구장이 먼발치로 내려다보이고 내서읍 감천곡으로 통하는 이 고갯길에서 산행을 마쳐도 되지만, 밤밭 고개로 길을 더 이어 고즈넉한 산책을 좀 더 즐기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 무학산(舞鶴山/761m)
무학산은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761m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에 있으며, 마산회원구 내서읍과 마산회원구 회성동, 마산합포구 교방동 사이에 위치한다. 남쪽으로 대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서쪽으로 꺾이면서 대산, 광려산, 봉화산 등으로 이어진다. 진해만에 산자락을 적시면서 마산 일원의 뒤편을 병풍처럼 막아선 무학산은 창원 시민에게 사랑 받는 산이다.‘무학산(舞鶴山)’의 지명은 산세가 마치 학이 춤추는 듯 날개를 펴고 나는 형세와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두척산(斗尺山)’ 또는 ‘풍장산’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두척산은 원래 이 지역에 조창이 있어 쌀이 많이 쌓여 있는데, 그 쌀을 재는 단위인 ‘말(斗)’과 쌀이 쌓인 높이를 재는 단위인 ‘척(尺)’에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신라 말기 최치원(崔致遠)[857~?]이 산세를 보니 학이 춤추는 듯 날개를 펴고 나는 형세와 같아 무학산(舞鶴山)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고도 하고,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붙여졌다고도 한다. 조선 시대의 기록에는 ‘두척산’으로 나타나 있다. 『여지도서[창원]』에 두척산이 “부의 서쪽 15리에 있다. 함안과의 경계를 이룬다.”라는 기록이 있고, 『영남지도』에는 두척산 봉산(斗尺山封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창원]』에는 읍치 북쪽의 천주산에서 서쪽 광려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가운데 지점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에 두척산이 묘사되어 있고, 『조선지지 자료[마산]』에는 외서면 자산리(玆山里)에 무학산이 기록되어있다. 무학산은 백두대간 낙남정맥 기둥 줄기의 최고봉이다. 지리산 영신봉[1651.9m]에서 출발해 진주~마산~창원을 거쳐 김해 낙동강 하류에서 끝나는 약 230여㎞의 낙남정맥[정간]의 주요 봉우리 여항산~서북산~봉화산~광려산~대산~대곡산~무학산[762m]~천주산 등이 인근 지역과 경계를 이루며 힘차게 뻗어 너른 바다와 그 기상을 겨룬다. 특히 무학산은 백두대간 낙남정맥 기둥 줄기의 최고봉으로 동쪽으로는 구(舊) 마산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뒤로 마산항이 보이며 남쪽으로는 남해 뿐만 아니라 다도해의 풍광도 전망되고 있다. 억새 투성인 주봉과 서마지기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주능선을 펼치고 있는 서쪽 사면은 광려산과 마주하면서 경사가 급한 반면, 동쪽 사면은 산세를 열고 마산 일원을 포용하고 있다. 북쪽 능선은 경상남도 창원시의 천주산역과 이음을 맞대고 느긋하게 경사를 올리면서 두척골, 앵지밭골을 펼친다. 남쪽 능선은 대곡산을 통해 만날재까지 내리면서 그 서쪽 끝을 대산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대곡산 아래쪽에는 ‘만날 고개’가 있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가를 받고 시집보낸 딸을 그리워하던 어미와 그 딸이 그리움을 참지 못해 고갯마루에 올랐다가 우연히 만났다는 애틋한 전설이 전해지는 고개이다. 산세는 전체적으로 급한 편이며, 크고 작은 능선과 여러 갈래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동쪽의 서원곡 계곡이 무성한 수목과 경관으로, 창원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가 되고 있다. 옛 마산시에서 관광객 유치 홍보를 위해 선정한 9경(景) 5미(味) 중 9경의 하나이기도 하며, 특히 무학산은 진달래꽃이 산록을 붉게 물들이는 봄철이면 진가를 발휘하는 산이다. 큰 나무가 별로 없는 산이라 진달래의 붉은 양탄자를 가로막을 장애물이 없어 더욱 볼만하다. 대곡산 일대의 진달래 군락이 가장 화려하고 밀도도 짙어 붉은 치마를 산 사면에 널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현재 무학산의 진달래는 창원 시민만의 것이 아닌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 봄철이면 첫 진달래 만개 소식에 목말라하는 전국의 상춘객들이 이곳 진달래꽃을 보러 먼 길을 찾아오곤 한다. 무학산 정상에는 일제시대때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일제가 쇠말뚝을 박아놓았던 것을 뽑아내고 우리의 소원은 민족통일이라는 동판을 새겨놓은 것이 있다.
▶ 마재고개(斗峴/남해고속도로/5번국도/100m)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두척동에 있으며, 창원시의 마산회원구 내서읍과 회성동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마재고개는 남쪽에 위치한 무학산의 옛 이름, 두척산(斗尺山)에서 유래한 것이다. 두척산의 '두(斗)'는 쌀을 재는 단위인 '말'을 뜻하고 '척(尺)'은 '자'를 뜻한다. 즉 '말자'가 점차 바뀌어 '마재'가 된 것이다. 『조선지지자료』(마산)의 내서면에 두곡리(斗谷里)와 두척리(斗尺里)가 있으며 두곡리는 한글로 '마'로 병기되어 있다. 또한 두현(斗峴)이 두척리에 있는데 한글로 '마고'다. 『조선지형도』의 내서면에 두현이 있다.
◇ 산행거리 : 18.9Km
◇ 산행시간 : 6시간50분
◇ 주요구간별 시간대 : 한티재-광려산(1시간20분)-대곡산(2시간50분)-무학산(1시간20분)-마재고개(1시간20분)
▶ 마재고개(斗峴/남해고속도로/5번국도/100m)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두척동에 있으며, 창원시의 마산회원구 내서읍과 회성동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마재고개는 남쪽에 위치한 무학산의 옛 이름, 두척산(斗尺山)에서 유래한 것이다. 두척산의 '두(斗)'는 쌀을 재는 단위인 '말'을 뜻하고 '척(尺)'은 '자'를 뜻한다. 즉 '말자'가 점차 바뀌어 '마재'가 된 것이다. 『조선지지자료』(마산)의 내서면에 두곡리(斗谷里)와 두척리(斗尺里)가 있으며 두곡리는 한글로 '마'로 병기되어 있다. 또한 두현(斗峴)이 두척리에 있는데 한글로 '마고'다. 『조선지형도』의 내서면에 두현이 있다.
▶ 송정고개(100m)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두척동 두척송정마을과 마산회원구 내서읍 평성리를 잇는 왕복 4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며 고개는 생태이동통로가 있다. 두척송정마을에서 평성리 방향의 생태이동통로를 지난 고갯마루에는 곰티고개란 이름의 일반버스정거장이 있다. 평성리에서 두척송정마을 방향의 생태이동통로 직전의 고갯마루에는 곰티고개란 이름의 일반버스정거장과 일레븐(7) 편의점도 있다.
▶ 중지고개(임도/제골농장(내서읍 안성리)/서당나무/100m)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안성리와 마산회원구 두척동 송정마을을 잇는 고개이다. 현재는 시멘트 포장도로이다.
▶ 장등산(446m)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안성리에 있으며 이정표 기둥에 장등산 표시가 되어 있다. 금강산계곡 2.7km, 금강사 1.9km, 약수터로 가는 삼거리 이정표가 있다.
▶ 안성고개(485m)
안성고개의 위치는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평성리 132 이다. 안성고개는 금강산계곡 구암동,소계동과 북쪽 골안골로 연결되는 고개이다. 안성고개 주변에는 넓은공터로 이루어져 있고 그 옆으로 평상과 이정표가 있었다. 장등산과 천주산은 안성고개를 두고 東西(직진)로 연결이 된다.
▶ 천주산 용지봉(天柱山 龍池峰/639m)
경상남도 창원시(昌原市) 의창구 북면(北面) 외감리(外甘里)에 있으며 높이는 638.8m이다. 천주산은 창원시와 함안군(咸安郡)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주봉우리인 용지봉(龍池峰) 일대에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역 주민의 정서 순화와 화합, 애향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진달래축제가 1996년에 시작하였으며 매년 진달래가 개화하는 시기에 맞추어 4월경에 개최한다.
천주산(天柱山)은 해발 638.8m로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주봉우리는 용지봉(龍池峰)으로 창원시와 마산시, 함안군 3개 시·군을 품은 산이다. 천주산은 전국의 산 가운데 진달래 군락의 장관이 국내에서 으뜸 가는 진달래의 명산으로 우리민족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말고 깨끗한 동심을 일깨우는 동요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창작 배경지 이기도 하며, 인근에는 피부병, 잠수병 등에 뛰어난 효험이 있는 마금산 온천이 자리 잡고 있다.
▶ 천주산(天柱山/638.8m)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시, 함안군 경계에 있는 산이다. 천주산 주변으로 무학산·정병산·장복산·용지봉 등이 솟아 있다.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허목(許穆)의 글씨를 음각한 달천동(達川洞)이라는 글자가 달천계곡 암벽에 새겨져 있고, 매년 봄이면 북면 주민들이 주최하는 진달래축제가 열린다. 산행은 천주사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다가 달천계곡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고개에서 왼쪽 산등성이를 타고 주능선 끝에 있는 천주봉(484m)에 올랐다가 왔던 길로 안부까지 내려와 주봉인 용지봉에 오른다. 하산은 북쪽 안부로 내려서서 계곡을 따라 임도를 타고 1시간 가량 걸으면 달천계곡이 나오고 등산로는 외감 마을에서 끝난다. 찾아가려면 창원에서 북면행 시내버스를 타고 천주사 앞에서 내린다.
천주산 주봉은 용지봉(龍池峰)으로 주변 일대에 국내 최대의 진달래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동남쪽과 동북쪽은 창원시, 남서쪽은 마산시, 북서쪽은 함안군에 속하며 정상에서 3개 시,군을 만난다. 작대산과 상봉을 가운데 두고 북릉과 이어지고, 주능선은 남북으로 마산시까지 길게 이어져 있으며 주변에는 무학산, 정병산, 장복산, 용제봉 등이 솟아 있다.
▶ 천주산 지명유래
천주산(天柱山)은 낙남정간의 두척산(斗尺山/무학산)과 첨산(북산) 사이에 있다. 18세기 중엽경에 제작된 해동지도(1736~1760), 여지도(1736~1767), 지승(1776이후)등에 천주산으로 나오며,호구총수(1789)에는 천주리(天柱里:소계동 일원)라는 이름이 실린 것으로 보아 이 무렵부터 그리 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전에는 청룡산(靑龍山) 이라 불렸지만 하늘을 밭치는 기둥과 같은 산이라는 뜻을 담아 천주산으로 고쳐 부른 듯하다. 청룡산은 경상도지리지(1425)에 처음 나타나고, 동국여지승람(1486)을 개정 보완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는 청룡산이 창원 도호부 서쪽1리에 있다고 했으니 지금의 천주산을 이르는게 틀림없다. 천주산은 달리 용지봉(638.8m)이라고 한다. 앞선 이름인 청룡산이 용지봉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이며,예전에 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 자취가 지명에 담겨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북면 외감리에서는 동쪽 봉우리(482.9m)를 천주산으로 아루러져 왔다. 천주산 북쭉 달천(達川) 계곡에는 미수 허목(許穆1595~1682)이 쓴 달천동(達川洞)이란 새김 글씨와 유허비가 있고, 외감리 새터 마을에는 샘에 거북 모양의 돌이 있는 달천구천(達川龜泉)이 있다.
▶ 만남의 광장
천주봉 정상에서 내려서면 넓은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이 "만남의 광장"이다. 천주봉에서 만남의 광장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내림길이었다. 그러나 만남의광장에서 천주산 방면 헬기장까지 가파른 나무계단으로 이루어진곳을 올라서야 한다. 만남의광장 주변에는 산행안내도, 천주산 지명유래. 천주산 진달래 안내문이 설치되어 잇었고 창원,마산 등산객들이 무수히 많았다.
▶ 굴현고개(掘峴/판고개/북면고개/79번지방도/150m)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召畓洞) 굴현마을에서 북면 지개리(芝介里)를 잇는 1045번 지방도로(신도로명 천주로)가 지나고 있으며 고개에는 일반버스 굴현고개 버스정거장이 있다. 창원시의 진산(鎭山)인 검산(檢山, 293m)과 천주산(天柱山, 640m) 사이의 움푹 파인 부분에 개설된 고개이며 판고개 또는 북면고개라고도 하는데, 판고개라는 명칭은 이곳이 인공적으로 개설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창원분지와 북면을 이어주는 교통로로, 고개 인근에서 부사장붕익선정비(府使張鵬翼善政碑), 강홍조송덕비(姜洪祚頌德碑), 감계리 장승백이 입석 등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주요 통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검산(檢山/북산/284m)
경상남도 창원시(昌原市) 의창구 소답동(召畓洞)에 있는 산으로 높이 294m이다. 창원시의 천주산(天柱山/640m)과 봉림산(鳳林山/294m) 사이에 걸쳐 있으며 비교적 낮은 구릉성 산이지만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 시절 이곳을 지켜주는 진산(鎭山)으로 여겨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는 첨산(檐山)으로도 표기되어 있으며 창원시내의 북쪽에 있다하여 북산(北山)이라 하기도 한다. 산줄기는 북쪽으로 뻗어있어 구룡산(九龍山/432.1m)을 거쳐 백월산(白月山/453m)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진산으로서의 위격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고 산행을 하는 이들이 낙남정맥의 한 구간으로서 구룡산으로 통하는 갈림길로 삼고 있을 뿐이다.
▶ 검산(檢山/北山/284m)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 천주산과 봉림산 사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첨산(檐山)과 검산(檢山)으로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는 “첨산은 부 북쪽 1리에 있는 진산이다. 그 맥은 청룡산(靑龍山)에서 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같은 책 사묘조에는 “성황사(城隍祠)는 부의 북쪽 검산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첨산과 검산은 같은 산을 일컫는 다른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최근에 편찬된 지도에는 북산(北山)이라 등재되어 있는데, 이는 창원읍성(昌原邑城)의 북쪽에 있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검산은 낙남정간(洛南正幹)의 천주산(天柱山)과 봉림산(鳳林山) 사이에 위치한다. 산줄기의 정간은 신풍고개 동쪽의 망호등(望呼嶝)에서 봉림산으로 이어지고, 그 기맥은 북동쪽으로 구룡산(九龍山)-백월산(白月山)으로 이어진다. 기반은 풍화와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약한 경상계 불국사통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마루는 낮고 비탈은 밋밋한 구릉성 산지이다.
검산은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 당시 진산(鎭山)으로 성황사가 있었으므로, 산의 규모는 작으나 창원도호부에서는 가장 위격이 높은 산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검산이 가진 위격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가 드물다. 다만, 산행객들에 의해 낙남정간의 한 구간으로서 또는 구룡산-백월산으로 이르는 기맥의 갈림길로서 이해되고 기능하고 있는 정도이다.
▶ 신풍고개(新豊峙/용강고개/25번 국도/90m)
경상남도 창원시의 의창구 의창동과 동읍 용강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조선시대 창원 읍치의 동쪽에 있던 신풍역(新豊驛)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창원과 동쪽의 김해를 연결하던 도로와 남동쪽의 웅천(지금의 진해구)을 연결하던 도로가 모두 신풍역을 지나간다. 『여지도서』(창원)에 신풍역은 "부의 동쪽 10리에 있다. 동쪽으로 김해 대산역까지 20리, 서쪽 근주역까지 25리, 남쪽 안민역까지 40리, 북쪽 영산 온정역까지 50리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마산)의 동면 용전리(龍田里)에 신풍역이 있다.
▶ 신풍고개(新豊峙/용강고개/25번 국도/90m)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 과 동읍 용강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신풍고개는 조선시대까지 창원도호부에서 자여도를 잇는 주요 교통로로 기능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국도 14호선인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교통로의 기능이 쇠퇴되고, 도보 통행로로만 이용되었다. 그러다 1970년대에 이르러 남해고속도로가 개설되어 동서교통로의 기능을 회복하였다. 고개 동쪽에 있던 신풍역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창원도호부 성에서 자여도의 신풍역에 이르는 고개이기 때문에 그리 불리게 되었을 것이다. 낙남정맥의 검산(檢山)과 망호등(望呼嶝) 사이에 발달한 고개이다. 기반암은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풍화와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다. 이로써 이곳에 안부(鞍部)가 발달하게 되어 예부터 동서를 잇는 주요 교통로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현재 신풍고개 위로는 동서를 연결하는 남해고속도로와 경전선 철도가 개설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옛 고갯길은 적잖이 훼손되었다. 그나마 최근에 옛길을 따라 도로 정비가 이루어져 교통로로서의 기능을 회복해 가고 있다.
▶ 부처고개(佛峙)
봉림사지에서 서쪽에 위치한 [창원컨트리 크럽 10번 홀]창원골프장내에 있는 "부처고개 마애석불"은 약1,000년이 넘게 부처고개를 지켜오면서 오가는 많은 사람의 이정표가 되어왔다. 창원컨트리크럽이 들어 서기 전까지는 봉림사지 아래있는 마을 즉 소봉림리 반송리 등 상남면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용강리 소목리 등 동읍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던 산길이었고 이 산길 마루에 돌 부처 하나가 서 있었다. 이 부처가 바로 "마애보살입상"이였고 이 부처가 있던 산길을 부처고개라고 했다. 이젠 전설같은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지만 이곳에서 조상대대로 살아 왔던 우리들은 이 산길을 오가며 부처고개라고 불러 왔지만 창원골프, 창원공단 배후도시 조성과 신 도로개설 등 환경변화에 따라 이 산길도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멈춘지도 퍽 오래 되어가고 있다. 낙남정맥길을 이어지는 산꾼들에 의해 간간이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 봉림산(鳳林山/295m)
봉림산의 봉(鳳)자는 상상의 서조(瑞鳥)의 뜻을 가져 ‘봉림(鳳林)’ 하면 황제가 사는 정원이기에 진경대사 비문에 봉림은 축복받은 땅이라 하였다. 산 명칭의 한자어 뜻을 살펴 그 유래를 살펴보면, 봉림산은 봉의 수풀이라 했으니 봉이 둥지를 트는 오동나무 숲이 아니라면 봉의 먹이인 대나무 열매가 열리는 대숲을 이른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고래로부터 구산선문 중에 봉림사의 죽로차가 유명했다하였고 지금도 절터에는 대나무 숲이 무성하고 볕이 잘 드는 곳에 가락국 허황후가 전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엽종의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것을 미루어 볼 때, 봉림산이라 지은 연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경남 창원시의 경남도청과 창원대학의 뒤편에 암봉을 이루면서 창원시를 감싸고 있으며, 창원시민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산으로 일명 "정병산"이라고도 부른다. 이 산은 북쪽에서 남쪽을 뻗고 있으며 가장 북쪽에 우뚝 솟아 있는 암봉이 봉림산(정병산)의 정상이고, 경남도청 뒤편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암봉을 내봉림산이라고 한다.
산줄기가 남쪽에 이어지면서 비음산, 대암산, 용제(지)봉, 불모산, 진해의 웅산으로 이어진다. 내봉림산과 비음산 사이의 계곡이 용추계곡이다. 봉림산을 일명 정병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것은 1920년경 일본인이 군사 작전 지도를 만들 때 정병산이라 표기하여 사용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봉림산의 정상석에는 봉림산을 표기하여 놓고 있으나 등산로의 안내표기(이정표)에는 정병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 소목고개(牛項峙)
소목고개는 전단산(정병산)과 봉림산이 이어지는 안부에 자리하고 있는 고개로서 주변 평지와의 높이 차이가 크지 않아 교통로로 개척되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육상교통로가 동서 노선을 중심으로 발달함에 따라 현재는 거의 소외되어 창원시민들의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 고개를 통한 인간의 내왕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방증하는 자료로 소목고개의 북쪽 사면에 분포하는 삼국시대 고분군을 들 수 있다. 전단산의 북서서쪽 기슭에 고분군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취락이 분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덕산리 고분군의 존재는 이 주변 일대가 삼국시대의 인간 거주지였음을 말해준다. 여기서 당시 사람들의 교통로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 소목고개(牛項峙)
소목고개는 경남 창원시 사림동 과 동읍 덕산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덕산리의 옛 지명은 ‘소목[牛項]’이었다. 이 부근의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이며, 마을이 소의 목쯤 되는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유래한 명칭이다. 현재 사림동의 창원사격장에서 동읍의 덕산리에 이르는 소목고개는 창원분지에서 동읍으로 이르는 지름길이며, 안민역(安民驛)에서 신풍역(新豊驛)으로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하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우항치(牛項峙)로 소나와있는데, 한글 이름으로 소목고개이다. 이 고개의 이름에서 옛사람들의 풍수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봉림산(鳳林山)[293.8m]에서 전단산(栴檀山/567m)에 이르는 산체를 일체식으로 인식한 것은 풍수의 형국론에 근거하여 봉림산을 소머리로, 고개를 소의 목으로, 전단산을 소의 몸통으로 보아 전체의 형국을 와우형(臥牛形)으로 본 것이다.
소목고개는 전단산(정병산)과 봉림산이 이어지는 안부에 자리하고 있는 고개로서 주변 평지와의 높이 차이가 크지 않아 교통로로 개척되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육상교통로가 동서 노선을 중심으로 발달함에 따라 현재는 거의 소외되어 창원시민들의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 고개를 통한 인간의 내왕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방증하는 자료로 소목고개의 북쪽 사면에 분포하는 삼국시대 고분군을 들 수 있다. 전단산의 북서서쪽 기슭에 고분군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취락이 분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덕산리 고분군의 존재는 이 주변 일대가 삼국시대의 인간 거주지였음을 말해준다. 여기서 당시 사람들의 교통로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 산행거리 : 17.2Km
◇ 산행시간 : 7시간40분
◇ 주요구간별 시간대 : 마재고개-천주봉(3시간30분)-굴현재(50분)-신풍고개(1시간10분)-소목고개(1시간50분)-창원 클라이사격장(20분)
▶ 소목고개(牛項峙)
소목고개는 전단산(정병산)과 봉림산이 이어지는 안부에 자리하고 있는 고개로서 주변 평지와의 높이 차이가 크지 않아 교통로로 개척되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육상교통로가 동서 노선을 중심으로 발달함에 따라 현재는 거의 소외되어 창원시민들의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 고개를 통한 인간의 내왕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방증하는 자료로 소목고개의 북쪽 사면에 분포하는 삼국시대 고분군을 들 수 있다. 전단산의 북서서쪽 기슭에 고분군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취락이 분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덕산리 고분군의 존재는 이 주변 일대가 삼국시대의 인간 거주지였음을 말해준다. 여기서 당시 사람들의 교통로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 소목고개(牛項峙)
소목고개는 경남 창원시 사림동 과 동읍 덕산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덕산리의 옛 지명은 ‘소목[牛項]’이었다. 이 부근의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이며, 마을이 소의 목쯤 되는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유래한 명칭이다. 현재 사림동의 창원사격장에서 동읍의 덕산리에 이르는 소목고개는 창원분지에서 동읍으로 이르는 지름길이며, 안민역(安民驛)에서 신풍역(新豊驛)으로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하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우항치(牛項峙)로 소나와있는데, 한글 이름으로 소목고개이다. 이 고개의 이름에서 옛사람들의 풍수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봉림산(鳳林山)[293.8m]에서 전단산(栴檀山/567m)에 이르는 산체를 일체식으로 인식한 것은 풍수의 형국론에 근거하여 봉림산을 소머리로, 고개를 소의 목으로, 전단산을 소의 몸통으로 보아 전체의 형국을 와우형(臥牛形)으로 본 것이다.
소목고개는 전단산(정병산)과 봉림산이 이어지는 안부에 자리하고 있는 고개로서 주변 평지와의 높이 차이가 크지 않아 교통로로 개척되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육상교통로가 동서 노선을 중심으로 발달함에 따라 현재는 거의 소외되어 창원시민들의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 고개를 통한 인간의 내왕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방증하는 자료로 소목고개의 북쪽 사면에 분포하는 삼국시대 고분군을 들 수 있다. 전단산의 북서서쪽 기슭에 고분군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취락이 분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덕산리 고분군의 존재는 이 주변 일대가 삼국시대의 인간 거주지였음을 말해준다. 여기서 당시 사람들의 교통로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 정병산(精兵山/566m)
경상남도 창원시의 의창구 동읍에 위치한 산이다. 동읍 남쪽에 위치하여 봉림동과의 경계가 된다. 서쪽으로 구룡산과 마주하고 있다. 남동쪽으로 비음산·대암산·불모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동쪽의 김해시와 경계를 이룬다. 천지가 개벽할 때 산 정상에 징 하나 얹을 정도만 남고 모두 물에 잠겨 징산 혹은 징빙산이라 불리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여 정병산이 되었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한편 임진왜란 때 산의 형세가 장군기마형이라 이곳에 군사를 정병(精兵)한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전단산(旃檀山) 혹은 단산(檀山)이라고도 불린다. 조선시대의 지리지와 지도에는 전단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병산은 일제강점기의 기록에서 처음 등장한다. 『여지도서』(창원)에 전단산은 "부 동쪽 25리에 있다. 염산(지금의 구룡산)에서 이어진다."라는 기록이 있다. 『해동지도』(창원)와 『영남지도』(창원) 등에도 읍치 동쪽에 전단산이 나타난다. 『대동여지도』에는 전단산(栴枬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마산)의 동면 자여리에 전단산이 있으며 혹 정병산(精兵山)이라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지형도』에는 정병산으로 나타난다.
▶ 정병산(精兵山/566m)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 ·퇴촌동 일원과 동읍 용정리·단계리 일원에 걸쳐 있는 산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1961년 4월 22일 창원시 봉림동과 창원시 동읍 용정리의 정병산(566.7m)으로 고시하였다. 정병산은 1934년에 간행된 『영지요선』에 전단산과 함께 정병산(精屛山), 그 후 『창원 군지』(1962)에 정병산(精兵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창원 도호부 권역 지명 연구』(민긍기, 2000)에 따르면, 정병산의 ‘정병(精兵)’ 혹은 ‘정병(精屛)’은 ‘증봉(甑峯)’의 현지음(징봉〉정병)과 유사한 한자음 표기로 이해된다. 증봉의 ‘증(甑)’이 ‘시루’이고 ‘증’으로 표기된 산 이름이 거개가 ‘수리·시리·사리’로 불리기 때문에 ‘증’은 수리봉의 ‘수리’를 나타낸 표기일 것이다. ‘수리’는 동(東)을 뜻하는 말로, 창원도호부 동쪽에 있는 산이기 때문에 방위 인식에 따라 수리봉[甑峯]과 같은 이름이 생겨났을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수리봉이 변한 것이 정병산이라고 하였다. 『창원 시사』(1988)에 나오는 ‘오합지졸정병어단산(烏合之卒精兵於壇山)’이란 구절에서 따와 정병산(精兵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내용은 정병산을 민간 어원적으로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상도 지리지(慶尙道地理志)』(1425)에 정병산의 또 다른 이름인 전단산(旃檀山)이 나오는데,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정병산은 천주산에서 뻗어 내려 낙남정맥으로 이어진 산이다. 정병산 남쪽 용지봉에서 김해의 여러 산으로 이어져 낙동강에 닿고, 용지봉에서 남으로 갈라진 산맥은 불모산과 장복산맥으로 이어진다. 정병산 서남쪽에 창원천의 발원지인 용추계곡이 있고, 동읍에 속하는 북동쪽 산자락에는 주로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창원분지 동북쪽 산맥을 형성하며, 창원시청에서 북쪽으로 약 4㎞ 지점에 있다. 서남쪽은 봉림동·퇴촌동·용동 등이 시가를 이루고 북쪽은 동읍의 여러 마을, 동쪽은 김해시 진영읍과 진례면 일원이다. 남서쪽 산자락에 동읍과 연결 예정인 국도 25호선 연장 공사와 경전철 부설 공사 한창이고, 남쪽 자락에 경상남도청과 창원 대학교, 산 동쪽 자락에 고찰인 우곡사가 있다. 정병산의 정상은 창원시와 김해시 일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경관을 갖추고 있어 창원시민의 휴양처로 이름이 나 있다.
▶ 수리봉(독수리바위/448m)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단계리에 있다.
▶ 용추고개((龍湫嶺)
경상남도 창원시 용동 과 김해시 진례면를 연결하는 고개이며, 용추골의 배후에 있다고 해서 용추고개라고 부른다. 창원에서 이 고개를 넘어오면 동읍 단계마을의 우곡사(牛谷寺)에 이르게 된다. 또한 용동에서는 용추계곡을 따라 진례산성(進禮山城)을 거쳐 진례 방면으로도 교통이 가능하다. 최근 용추계곡 입구에서 통일신라시대의 도로가 발굴되어 이 길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시기가 천 년이 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비음산과 정병산(전단산) 사이에 발달한 고개인 용추고개는 현재 창원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행로가 되었다.
경상남도 창원시(昌原市) 의창구 용동(龍洞)과 김해시(金海市) 진례면(進禮面)을 연결해주는 고개이다. 창원시(昌原市)의 정병산(精兵山, 567m)과 비음산(飛音山, 486m)을 잇는 맥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고개로 용추령(龍湫嶺)이라 하기도 한다. 창원의 용동에서는 용추계곡을 따라 진례산성(進禮山城)을 거쳐 김해 방면으로 가는 방법도 있으나 사람들은 주로 이 고개를 이용하여 통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용추계곡 입구에서 통일신라시대의 도로가 발굴된 것으로 유추해 볼 때 이 고갯길을 이용한지가 천 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금은 주로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 창원진례산성 동문지(昌原進禮山城 東門址)
진례산성은 포곡식(包谷式) 석축산성으로서 성벽은 주변에서 쉽계 구해지는 할석으로 지세(地勢)를 최대한 활용하여 축조하였다. 성벽의 기초는 구릉을 의지하여 바로 쌓아 올린 육축(陸築)이며, 성벽은 구릉의 경사도에 따라 내탁식(內托式)과 협축식(俠築式)을 혼용하였다. 시설물의 구축에 있어서도 지형적 조건에 맞추어 구릉사이에 낮게 형성된 고개에는 문지(門址)를, 능선의 꺽임 부분에는 치(雉)를 조영하였고 이 밖에 능선의 고지와 군데군데 드러난 암벽은 망대(望臺) 등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은 제4구간으로 나누어져 제2구간의 동문지는 성벽 보존이 가장 양호한 곳으로 다른 구간에 비해 경사가 완만하다. 동문지는 성벽에서 김해시 진례로 통하는 고개에 위치해 있으며, 양쪽으로 거대한 자연 암괴가 포진해 있다.
▶ 비음산(飛音山/517m)
경상남도 창원시(昌原市) 성산구 토월동(吐月洞)과 김해시(金海市) 진례면(進禮面) 사이에 있는 산이다. 산 정상부에는 능선을 따라 쌓은 포곡식 석축산성인 진례산성이 있어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진례산성은 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성의 둘레는 약 4km로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었으나 동벽의 일부 구간(높이 157cm, 너비 77cm)이 남아있다. 북서쪽으로는 정병산(精兵山/567m)과 맥이 이어지며 남쪽으로는 대암산(大岩山/ 674.6m)과 불모산(佛母山/801.7m)으로 이어진다. 창원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며 곳곳에 진달래가 산재하고 정상부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매년 4월경에 비음산 진례산성 진달래축제가 열린다.
▶ 진례산성(進禮山城)
경남 기념물 128호. 창원시 토월동과 김해시 진례면의 경계인 비음산 정상 부근에 있다. 성의 형식은 능선에서 골짜기를 안고 도는 포곡식이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를 관측하고 성을 지키기에 안성맞춤이다. 약 4킬로미터로 규모가 꽤 컸으나 대부분 붕괴되고 동남쪽에 일부만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김해읍지, 여지집성에는 가야시대 때 축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창원시 토월동과 김해시 진례면의 경계인 비음산(飛音山) 정상부분에 있는 이 산성은 가야시대에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성의 형식은 비은산 능선위에서 골짜기를 안고 있는 포곡식이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외부를 관측하고 성을 지키기에 유리하여, 군사요새로서는 천해의 지형이라 할 수 있다. 돌을 쌓아 만든 성벽의 둘레는 약 4km였다고 하나 지금은 대부분 붕괴되었으며, 동남쪽에만 일부가 남아 있다. 자연석으로 쌓은 성의 높이는 1~2m이며, 폭은 1m 내외이다. 성터 주위로 산림이 우거져 성의 시설물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성문 터 세곳이 확인되었다. 신증독국여지승람과 김해읍지에는 "김해부의 서쪽 약26km 지점에 진례산성이 있는데 옛터만 남아있다. 신라시대에 김인광으로 하여금 진례의 군사를 맡게 하였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 또 여지집성에는 "수로왕 때 한 왕자를 봉하여 진례성의 왕이 되게 하였으며, 토성과 천문을 관측하는 첨성재가 있었는데 지금도 흔적이 남아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볼 때 이 성은 가야시대에 쌓은 것이라 추정된다.
▶ 청라봉(靑羅峯/517m)
청라봉은 비음산 옆 비상 이라는 큰 소나무 있는 곳으로 청라봉 이라고 이름 지어진 지는 얼마 안 되었다. “비음산(飛音山) 청라봉(靑羅峯) 창원기능대학 카일렉트로닉스과” 라고 적혀있는 정상표지판이 있었으나 현재(2015.03.21.)는 볼 수가 없었다.
▶ 남산치(南山峙)
경상남도 창원시의 동쪽 비음산과 대암산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성산구 가음정동과 김해시 진례면 신안리를 연결한다. 『조선지지자료』(마산)의 상남면 사파정(沙巴丁)에 비음산과 비음령(飛音嶺)이 있으며, 한글로 각각 '나름산'과 '나름산'라고 병기되어 지금의 '남산치'는 비음산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짐작된다. 즉 비음산은 '나르미' 혹은 '날음재'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비음산 남쪽의 고개인 비음령이 '나름산→ 남산재 → 남산치'로 변화된 것이다. 『조선지형도』의 창원 상남면과 김해 진례면 사이에 비음령이 있다. 일본어로 'ナルウムケ-'라 쓰였는데 곧 '나름고개'이다.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신안리와 창원시 사파정동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이정표가 있으며 신안리쪽으로 진례저수지가 보인다.
▶ 내대암봉(550m)
대방동체육공원 갈림길이다.
▶ 대암산(大岩山/670m)
대암산은 상남도 창원시 대방동 과 삼정자동의 동쪽에 걸쳐 있는 산이다. 대암산이란 명칭은 근년에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북쪽으로는 남산치를 지나 비음산(飛音山)과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낙남정간(洛南正幹)의 분기점인 용지봉(龍池峰)[일명 용제봉]으로 연결된다. 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릉에는 기반암이 드러난 곳이 많이 있다. 정상 부위는 거친 바위산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아래의 비탈은 임야로 구성되어 있다.
대암산(670m)은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신안리에 있으며 높이는 669m이다. 정상표지석과 삼각점, 쉼터, 정자가 있다. 대암산 정상에서 같은 높이로 이어지는 100m가량의 끝자락에 일제강점기 때 사용하였던 방공포기지가 있다.
▶ 신정봉(704m)
별도의 정상석은 없고 주변의 나무들로 조망도 없다. 봉우리 주변에는 10여개의 돌탑이 축성되어 있다.
▶ 용지봉/용제봉(龍池峰/龍蹄峰/744m)
경상남도 창원시 불모산동 과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북쪽으로는 대암산(大岩山/670m)과 이어지고 남쪽은 상점령(上點嶺)을 지나 불모산(佛母山/801.7m)과 이어지는 낙남정맥의 갈림길이다. 용지봉의 원래 이름은 용제봉(龍祭峰)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 김해도호부 단묘에 “용제봉은 김해도호부의 서쪽 불모산에 있으며, 50리이다. 기우단을 두었다.”고 하였다. 이로써 용제봉은 기우제(祈雨祭)와 관련하여 생성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이와 달리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는 용제산(龍蹄山) 또는 용제봉(龍蹄峰)으로 나온다. 제(祭)가 제(蹄)로 바뀐 배경은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용제(龍祭)’와 ‘용제(龍蹄)’는 이름처럼 상이한 기원 설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용제(龍祭)는 무제와 관련되고, 용제(龍蹄)는 진례면 무송리 용소의 용 승천설화와 관련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용제봉이 지금의 이름인 용지봉으로 된 것은 자음 변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용지봉은 창원·김해 지역의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산행 코스이다. 낙남정맥의 줄기가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꺾여 김해로 이르고, 그 기맥은 남쪽으로 불모산-웅산(熊山)[703m]을 거쳐 해안 산지로 이어진다. 정상에는 용지봉이라고 새긴 정상석과 김해에서 세운 용제봉 유래비가 있다. 또한 정상의 동쪽 비탈에는 김해시에서 세운 용지정이란 누각이 있고, 정상에서 남남동 방향으로 약 8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장유암이 있다.
▶ 냉정고개(冷井峙/1042지방도로/2502 전투경찰대 표지판)
냉정(冷井峙)는 김해시 진례면 산본리에 있으며, 김해시 장유에서 진례를 넘는 2차선 1042번 지방도가 지나며 진례면 경계표지석과 용제봉 산행안내도가 있다.
냉정(冷井)마을은 옛날부터 김해에서 서부경남으로 가는 요지(要地)로서 장유면(長有面), 진례면(進禮面), 주촌면(酒村面)의 경계가 되는 마을이다. 지금은 남해고속도로 북부지선과 서부지선이 갈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의하면 냉천원(冷泉院)이 김해도호부에서 서쪽으로 30리에 있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냉천원이 김해도호부에서 서쪽으로 30리에 있었는데 생법역(省法驛)으로 옮겨 설치하였다고 한다. 냉천원이 있던 곳이 냉정마을인데, 지금은 ‘찬물등(嶝)’이라고 부른다. 옛날부터 이곳에 ‘찬물샘’이 있었기 때문에 벼슬아치나 여행객들을 위한 숙박시설을 설치하였고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되었던 것이다. ‘찬물샘’은 전경부대 입구부근 계곡안에 ‘정(井)’자 모양으로 쌓은 돌샘이었는데, 지금은 토사에 묻혀 그 흔적을 찿기 어렵다. 냉천원의 ‘천(泉)’과 냉정마을의 ‘정(井)’은 같은 뜻이기 때문에 어느 때인가부터 ‘냉천’ 대신에 ‘냉정’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9월 읍면 경계 조정으로 인하여 주촌 냉정과 장유 냉정으로 나뉘어졌다.
◇ 산행거리 : 16.1Km
◇ 산행시간 : 7시간30분(후미기준)
◇ 주요구간별 시간대 : 창원 클라이사격장재-소목고개(20분)-용추고개(1시간50분)-대암산(3시간)-냉정고개(2시간20분)
▶ 냉정고개(冷井峙/1042지방도로/2502 전투경찰대 표지판)
냉정(冷井峙)는 김해시 진례면 산본리에 있으며, 김해시 장유에서 진례를 넘는 2차선 1042번 지방도가 지나며 진례면 경계표지석과 용제봉 산행안내도가 있다.
냉정(冷井)마을은 옛날부터 김해에서 서부경남으로 가는 요지(要地)로서 장유면(長有面), 진례면(進禮面), 주촌면(酒村面)의 경계가 되는 마을이다. 지금은 남해고속도로 북부지선과 서부지선이 갈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의하면 냉천원(冷泉院)이 김해도호부에서 서쪽으로 30리에 있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냉천원이 김해도호부에서 서쪽으로 30리에 있었는데 생법역(省法驛)으로 옮겨 설치하였다고 한다. 냉천원이 있던 곳이 냉정마을인데, 지금은 ‘찬물등(嶝)’이라고 부른다. 옛날부터 이곳에 ‘찬물샘’이 있었기 때문에 벼슬아치나 여행객들을 위한 숙박시설을 설치하였고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되었던 것이다. ‘찬물샘’은 전경부대 입구부근 계곡안에 ‘정(井)’자 모양으로 쌓은 돌샘이었는데, 지금은 토사에 묻혀 그 흔적을 찿기 어렵다. 냉천원의 ‘천(泉)’과 냉정마을의 ‘정(井)’은 같은 뜻이기 때문에 어느 때인가부터 ‘냉천’ 대신에 ‘냉정’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9월 읍면 경계 조정으로 인하여 주촌 냉정과 장유 냉정으로 나뉘어졌다.
▶ 불티재(佛峴/280m)
불티재는 13번 도로가 지난다. 담안마을 뒤로 보이는 산으로 올라서면 불티재이다. 불티는 한자로 불현(佛峴)이라 쓰고 있다. 우리나라 산 곳곳에 '불티' '불현'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주로 돌부처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온다. 담안마을에는 옛날부터 '불티재'로 불렸다는 이야기만 전해져온다. "담안에서 김해로 가려면 불티재를 넘어 주촌으로 가야 했다. 불티재를 사이에 두고 양동산성과 황새봉이 있다.
▶ 황새봉(393m)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고모리 산162-1에 위치하며 높이는 393.1m이다. 고령마을의 상지이기도 한 황새봉은 진례면 고모리와 주촌면 내삼리의 경계지점이기도 하다. 황새봉 이름의 유래는 아주 옛날에 진례가 모두 물에 잠겨 있었을 때 황새 한마리가 한참 헤매다가 앉을 곳을 찾아 겨우 앉았는데 그곳을 황새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정상에는 삼각점과 이정표가 있는 자그마한 공터로 (폐)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조금 내려간 안부에는 평상과 운동시설이 있다.
▶ 금음산(金音山/쇠금산/376m)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과 한림면 경계선상에 있으며 높이는 376.1m이다. 정상에 있는 정상석은 쇠금산 350.8m로 되어 있다.
▶ 당고개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덕암리에서 영락공원묘원으로 가는 도로가 있는 고개로 고개아래로는 김해시 한림면 병동리와 주촌면 덕암리를 잇는 김해1터널(14번 동서대로)이 지난다.
▶ 망천고개(낙원고개/100m)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에서 김해시 삼계동 삼계사거리를 잇는 14번 도로가 지나는 고개로 낙원고개라고도 한다.
▶ 상리고개
한림면 안하리에서 안곡교를 건너고, 안곡마을과 중리마을을 지나면 가장 위쪽에 한림면 안곡리 상리마을이 있다. 제일 위쪽에 있어서 상리마을이라 부르며 상리마을 뒷산을 넘으면 삼계동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상리고개’라 한다. 상리고개는 안곡마을, 중리마을, 상리마을 사람들이 김해로 가는 길이었다. 장을 보러 갈 때는 물론, 이 고개를 넘어 학교에도 다녔다. 염·공·조, 세 성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리고개는 포장된 시군도 16번 도로가 지나고 있다.
▶ 나밭고개(나전고개/羅田峴/110m)
경상남도 김해시의 삼계동과 생림면 나전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대동지지』(김해)에 나전현이 북쪽으로 가는 길로, 『조선지지자료』(김해)에는 생림면 나전리에 있는 고개로 나전령이 기재되어 있다. 『조선환여승람』(김해)에도 "나전현은 군의 북쪽 15리에 있다."라고 하였다. 『광여도』(김해)에 좌부면 북쪽, 해반천 상류에 나전령이 묘사된 것을 비롯해 『대동여지도』(18첩 2면), 『해동지도』(김해) 등에 나전현(羅田峴), 나전령(羅田嶺)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나밭 지명은 풍수적으로 '선녀나대하강전형(仙女羅帶下降田形)'의 명당이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산길이 험하여 숨이 가쁘다고 '가쁠 노(露)' 자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나전고개로도 불리며 58번 국도가 지나는 4차선 도로이다.
◇ 산행거리 : 15.5Km
◇ 산행시간 : 6시간40분
◇ 주요구간별 시간대 : 냉정고개-장고개(20분)-망천고개(4시간20분)-나전고개(2시간)
◇ 주의사항 : - 냉정고개에서 마을로 직접 고속도로 통과 또는 냉정고개에서 마루름을 타고 왼쪽으로 내려가 통로를 통과 후 오른쪽으로 오르면 마루금과 만난다(골프장 공사중)
- 성원이엔지만나면 정문(세륜시설)있는곳으로 진입 좌측으로 간다(공장에서 통제) 또는 왼쪽 포장 도로를 따라 내려 오다가 오른쪽 공장쪽으로 가서 오른쪽 변전실로 올라가 마루금을 탄다.
또 한가지 방법은 237봉을 포기하고 차도를 따라 직접 망천고개로 간다
▶ 나밭고개(나전고개/羅田峴/110m)
경상남도 김해시의 삼계동과 생림면 나전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대동지지』(김해)에 나전현이 북쪽으로 가는 길로, 『조선지지자료』(김해)에는 생림면 나전리에 있는 고개로 나전령이 기재되어 있다. 『조선환여승람』(김해)에도 "나전현은 군의 북쪽 15리에 있다."라고 하였다. 『광여도』(김해)에 좌부면 북쪽, 해반천 상류에 나전령이 묘사된 것을 비롯해 『대동여지도』(18첩 2면), 『해동지도』(김해) 등에 나전현(羅田峴), 나전령(羅田嶺)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나밭 지명은 풍수적으로 '선녀나대하강전형(仙女羅帶下降田形)'의 명당이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산길이 험하여 숨이 가쁘다고 '가쁠 노(露)' 자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나전고개로도 불리며 58번 국도가 지나는 4차선 도로이다.
▶ 영운리고개(가야CC/280m)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나전리에서 김해시 삼방동을 잇는 고개로 가야CC(회원제) 골프장과 가야CC(퍼블릭)골프장을 잇는 육교가 설치되어 있다.
▶ 신어산 서봉(神魚山 西峰/630m)
지도상엔 641m로 표기되어 있는데 정상석엔 630m로 되어 있다.
▶ 신어산(神魚山/631.1m)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삼방동·대동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 630m 이다. 금관가야(金官伽倻) 시조 수로왕과 허황옥(許黃玉) 왕비의 신화가 어린 성산(聖山)이다. 신어는 수로왕릉 정면에 새겨진 두 마리 물고기를 뜻하며 밀양 만어산(萬魚山:670m) 전설에도 나오는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과 가락국(駕洛國)의 상징이다. 일명 선어산(仙魚山)이라 하며, 동신어산은 동쪽 신어산의 와전이다. 이 산을 핵으로 시 복판의 황새봉(393m)·경운산(慶雲山:379m)·분성산(盆城山:375m)이 동쪽 백두산(白頭山:352m)·덕산(德山:457m)·까치산(342m) 등과 연봉을 이루고 낙동강 건너 소백산맥의 산들과 대치하고 있다. 카펫처럼 부드러운 백두산∼신어산 종주능선은 부산 근교의 워킹 산행지이다. 산마루에 서면 부산을 에워싼 연봉들의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금정산(金井山:801m)과 태백산맥의 구봉산(九峰山)에서 몰운대(沒雲臺)로 뻗은 낙동정맥(洛東正脈)의 산군은 물론, 지리산 영신봉(靈神峰:1,651m)에서 분성산에 닿는 낙남정맥(洛南正脈)의 연산들을 비롯해 이웃한 무척산(無隻山:703m), 양산시 물금읍 오봉산과 원동면 토곡산(土谷山:855m), 웅상읍 원효산(元曉山:992m)과 천성산(千聖山:812m) 등 동부의 크고 작은 산들을 살펴볼 수가 있다. 가야의 올림포스산답게 초기의 고찰 은하사(銀河寺)와 영귀암(靈龜庵) 등이 있으며 기우단도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구암사(龜岩寺)·십선사(十善寺)·청량사(淸凉寺)·이세사(離世寺)가 있다고 할 정도로 이 산은 불모산(佛母山:801m)의 신화와 함께 남방불교 전래의 성지라 할 수 있다. 대동면 초정리 원명사에서 출발, 약수터와 백두산, 510봉 감천재로 종주하고 상동면 대감리 고암마을로 내려오며 7시간쯤 걸린다. 신어천이 낙동강으로 흐르는 경관 속에 삼림욕장 등을 갖춘 종합레저시설 가야랜드와 골프장이 인근 도시민들의 주말 휴양지로 인기다. 경부선·경전선·남해고속도로 등이 통과한다.
▶ 생명고개(새명고개/295m)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주동리에 있으며 김해시 삼방동의 신어산산림욕장에서 대문바위를 거쳐 생명고개에 이른 후 대동면 예안리와 대감리 또는 상동면 매리와 묵방리로 갈 수 있다.
▶ 장척산(長尺山/531m)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과 대동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가 531m이다. 장척산은 백두산(354m)보다 표고가 높지만 국토지리원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산으로 남으로는 까치산(342m), 동으로는 백두산(354m), 북동으로 동신어산, 북서로 신어산(630m)과 연결되어 있다. 정상에는 표지석이 없으며 소나무에 걸린 알미늄 판에 장척산이란 표시를 하여 놓았다. 벤치 2개가 놓여있고 뒤쪽으로 계속 나아가면 김해 상동으로 하산 할 수 있는데 정상에서는 조망처가 없다.
▶ 감천고개(310m)
김해시 상동면 매리에서 대동면 덕산리를 잇는 고개 길로 추정된다.
▶ 동신어산(東仙魚山/459.6m)
경남 김해시 대동면 덕산리에 있으며 높이는 459.6m이다. 일명 선어산(仙魚山)이라 하며, 동신어산은 동쪽 신어산의 와전이다. 정상에는 검은 대리석에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이라 적힌 표식과 삼각점이 나란히 박혀있다. 경남 김해시 상동면과 대동면에 걸쳐 있는 동신어산(631.1m)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산이다. 낙동강으로 사뿐히 내려앉는 산줄기가 낙남정맥의 끝자락이냐, 아니냐를 두고 아직까지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산은 산'일 뿐이거늘 그게 무에 그리 중요하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산이나 동부 경남에서 낙남정맥 종주 산행에 나서려는 산꾼들에게는 기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군의 산꾼들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한 낙남정맥이 창원 불모산을 지나 남쪽으로 뻗다가 김해 분산(盆山)을 거쳐 동신어산에서 끝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부산·경남지역 산꾼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주장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동신어산은 낙동강 유역 안의 산줄기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져 주맥은 바다에서 끝나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 따라서 낙남정맥은 영신봉과 불모산, 보배산(보개산), 봉화산을 지나 부산 강서구 녹산수문에 이르러 꼬리를 내린다는 것이다. 두 주장이 결론 없이 여태 엇갈리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동신어산이 낙남정맥의 꼬리라는 것이 다수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신어산에는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동판이 설치됐고 낙남정맥의 끝이자 한반도 산줄기의 끝이라는 지위가 부여됐다.
▶ 녹산수문
낙동강 본류인 서 낙동강 입구를 막아서 농업용수로 쓰도록 강물을 유입하는 대저수문을 만들고 하류에는 염도 높은 바닷물 유입을 차단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하구 둑이 된 녹산수문을 만들어 농업용수를 확보하여 낙동강 삼각주를 김해평야로 만들게 하였다. 설치년도: 1934년 / 배 수: 문비:10련 / 수 문: 중량25톤, 전동기 15HP / 목 적: 관개배수, 조절배수 / 수문위도로: 부산-진해 국도.그리고 지금은 노후되어 1994년 12월 31일부터 1997년 11월 22일까지 3년에 걸친 보수공사를 하여 지금은 수문으로 재설치 되었다.
▶ 녹산나루
부산광역시 강서구에서 녹산수문이 있는 곳으로 가다보면 소형어선들이 즐비해있는데 이곳이 옛 녹산 나루의 흔적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낚시를 즐기는 소수의 주민들도 있었으며 나루의 기억은 연세가 있으신 분들에게 구두확인은 가능하였으나 여타의 자료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이번 답사에서 나루의 현 모습으로 가장 뚜렷한 변화는 다리의 존재이다. 일부는 이동의 흔적이 있으나 그는 다리의 특성상(차량의 이동) 조금 돌아가더라도 강과 강사이의 폭이 좁은 곳을 통해 건설된 경우도 존재하나 녹산의 경우 실재 교량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이에 수문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앞서의 신포 나루터의 위치 역시 수문이 존재하고 신포나루는 을숙도나 명지IC 등이 우선이 되나 녹산의 경우 수문이 우선이 된다. 또한 신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소형어선이 존재한다. 토진나루의 경우 강의 맞은편의 명칭이 존재하지 않으며 다수의 주민들이 토진나루를 기억하고 있었으며, 하풍 나루의 경우 60세 이상의 주민들만 일부 기억하는 것으로 보이며 실재 나루의 위치는 조사지역의 상부에 존재하였다고 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며 보다 상류에 있다는 증언이 있었으며 하풍나루 역시 기억하는 주민은 다수 있으나 다른 명칭은 알 수 없었다. 불암나루의 경우 불암나루라는 것을 기억하는 주민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낙동 문화원에서 불암나루의 위치를 그곳으로 추정하고 있었으며 불암동의 일부 주민들 중 김해와 부산을 잇는 곳으로 그곳에 나루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다수 존재함. 낙동 문화원에서 불암나루(감해)의 맞은편은 대서진 나루(부산)라 판단하고 있었다. 또한, 명지IC의 신포나루와 하단의 나루 등 각각의 나루의 명칭이 존재하였으나, 이는 보다 큰 나루의 경우로 판단되며 나루의 명칭은 대부분이 그 지역의 명칭을 따르며 그에 관한 자료는(사진) 대부분 존재하지 않았으며 각 행정구청에서는 자료의 공유에 관하여 문의를 하였으나 일부 자료(극히 일부)이외에는 모두 자료 존재의 여부를 부정한다.
▶ 고암나루터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고암마을 앞에 있는 나루터를 말한다.
◇ 산행거리 : 15.6Km
◇ 산행시간 : 8시간
◇ 주요구간별 시간대 : 나전고개-신어산(3시간10분)-동신어산(3시간50분)-매리2교(1시간)
◇ 주의사항 : 가야 CC 정문으로 간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간다. 골프장에서 통제가 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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