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리 공소는
1987년 설립된 곳으로 강릉 지역 천주교의 모태와 같은 곳이다. 강원도 영동 지역에 신자들이 거주했다는 것은 1921년 [경향잡지]에 "영동 교우로 말하면 50-60년 전 병인박해 때에 전라, 충청, 경기도 교우들이 피난하기 위해 영동으로 넘어와 근근이 사는 교우들이다"라는 기록과 드보레 주교가 1923년 가을에 이 지역을 방문한 뒤 "병인박해 이후에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는 기록을 남긴 [서울 연보] 1924년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다.
병인박해를 피해 이주한 신자들은 깊은 산속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옹기 굽는 일이나 농사를 지으며 교우촌을 형성하였고, 이웃에게 신앙을 전파하며 생활하였다.
금광리 공소는
한때 영동 지역의 전교 거점으로 1921년 이철연 프란치스코 신부의 부임과 함께 본당으로 설립될 만큼 신자 수가 많았으나, 향후 신자 수의 증가와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여 1923년 주문진으로 본당을 이전하여 다시 공소가 되었다.
이곳은 박해를 피해 정착하여 오랫동안 신앙을 지켰던 이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온 신앙의 터전이다.
(출처: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강릉 성지순례 2일 차~
허난설헌 기념관을 관람하고 우리 일행은 금광리 공소로 향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도 많이 내리고,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도 쌀쌀했지만 우리의 성지순례 여정을 막지는 못했다
도로가에 위치한 주황색 지붕의 공소에 '1987년 창립'이라고 쓰여 있는 아담한 공소가 우리를 맞이했다.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는 아담한 공소에서 무릎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저희를 오랜 역사를 품은 성지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쁜 마음으로 가슴 벅차게 기도하고 돌아간다고,
교만하지 않고 늘 기쁘게 신앙생활할 수 있게 주님의 은총으로 잡아 주십사고..... '
눈물이 고인다. 늘 성지에 가면 눈물이 고인다.
비가 와서 옷은 젖었지만 가슴에는 한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총의 단비가 내렸다.
공소 건물 정원 뒤쪽에서
내리는 비를 온전히 맞고 계신 성모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예쁜 가을꽃이 없어서 그런지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셨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성모님 앞에서 기도드리고 잠시 머물러 있는 거밖에 없었다.
한송이의 꽃도 준비하지 않고 그저 내 옷 젖을까 우산만 쓰고 다닌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1949년 봄에 현 위치로 이전한 금광리 공소는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건물 모습은 초라했지만, 강릉지역 천주교 믿음의 모태와 같은 곳이라고 하니, 이 낡고 아주 작은 금광리 공소는 아주 크고 웅장한 모습의 어느 성지보다 더 가슴 벅차고 숙연해진 성지였다.
다음 순례 때에도
지금 그대로 아주 낡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 했으면,
보수하지 않고 박물관의 유물처럼 빛바랜 모습 그대로 있었으면.
성모님이 계신 정원은 예쁜 꽃이 심어져 있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