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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철수하면 한국도 아프간 꼴 난다"..美 칼럼니스트의 경고^^
-한국경제(8/17)-
미국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겸 작가가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함락된 아프가니스탄과 한국을 비교하며
미국의 군사적 지원이 없으면 한국도 빠르게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의 연설문 작성을 총괄했던
마크 티센 칼럼니스트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점령한 것과 관련,
16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만약 한국이 이런 지속적인 공격을 받는 상황이라면
미국의 도움 없이는 금세 붕괴할 것이다.
우리(미국) 없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동맹국은 사실상 없다”고 했다.
보수 성향의 작가이기도 한 티센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적 결정을 비판하면서
주한미군 2만8000여 명이 주둔 중인 한국을 연결한 것이다.
트위터에선 그의 주장에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한국은 정교하고 현대적이며 다재다능한, 고도로 훈련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군사력은 미국 없이 세계 6위다”
“남한이 그렇게 취약하다면 북한은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핵무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는가” 등의 댓글이 달렸다.
반면 국내에선 탈레반의 군사적 도발이 오랫동안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핵실험에 나서는 북한을 연상시킨다는 분석도 나왔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허망한 항복을 보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한다”며
“한·미 연합훈련 취소를 요구하며 압박해오는 북한,
그 북한의 눈치를 보는 정부와 여당 국회의원들이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한다”고 지적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페이스북에 “아프가니스탄 붕괴의
참담한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다시 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며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국민의 단합된 결기와 독자적 역량이 없는 한,
그 무엇도 우리를 대신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은 변치 않는 역사의 교훈”이라고 썼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미국에 테러와의 전쟁이 끝난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반도(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는 전혀 다르다”며
“다만 이번 사태를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안보에 있어 한·미 동맹의 견고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합동군사훈련 축소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오늘 신문을 보니 부시 정부 시절 수석 연설 보좌관을 지낸 마크 티센이란 평론가가
한국도 미군의 지원 없이는 아프가니스탄처럼 빠르게 무너질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저 기사를 보면서
왜 부시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잘못된 정책을 실행할 수밖에 없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여기서 우리 한번 9.11테러 당시 아프가니스탄 시골에 사는 평범한 파슈툰족 농부의 입장으로 돌아가보자.
이 농부는 20대 당시 무자헤딘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이슬람교와 파슈툰족 전통을 부정하는 소련군의 침략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10년이 흐르고 농부는 결혼했으며,
아프가니스탄 시골에서 전통적인 파슈툰족 가부장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오랜 내전으로 인해 현대화된 수도시설과 송전탑 등
기본 인프라도 구비되지 못한 상황이며,
당연히 아프가니스탄 밖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최근 탈레반이 파슈툰족의 지지를 받아 마수드가 이끄는
북부동맹과 싸운다고는 하나 이미 그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키르기스스탄 마나스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미군 전투기가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키겠다고 자신이 살던 마을을 공격했다.
물론 그가 소속된 부족은 탈레반에 우호적이었으며,
자신이 사는 마을에는 탈레반에 가담한 파슈툰족이 몇 명 있었지만 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심지어 그는 9.11 테러가 일어났는지조차 몰랐다.
그런 그에게 미군의 공습, 그리고 비-파슈툰족 출신 위주의
북부동맹 계열의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정권 창출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대다수 시골에 살던 파슈툰족에게 미군의 침공은 어쩌면 또 다른 외세의 침략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바라볼 때 항상 편파적인 목소리만을 듣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할 뿐,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만일 미군의 통치가 ①도시에 살면서 근대화된 소비 생활을 즐기는 파슈툰족과
②농촌 지역에 살면서 반농∙반목 생활을 이어가는 파슈툰족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왜 탈레반이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재건했을 뿐만 아니라,
자란즈 함락 10일 만에 카불 입성에 성공했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시골에 사는 파슈툰족에게 있어 탈레반이야말로
자신들의 전통적인 삶과 생활을 지키는 정치 세력이고,
미군은 소련군과 같은 외세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국군에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현재의 군 편제만 놓고 보면 내전 상황에 취약할 수 있고,
정보 자산 상당수를 미군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 한국인들이 미군을 외세로 보는가?
주한미군을 침략군으로 이해하는가?
또는 과거 유고슬라비아와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인종 구조가 복잡하고,
극복할 수 없는 종파주의와 부족주의 문제가 있는가?
내가 생각하기로는 우리나라는 인종적으로 단일화되어 있고,
(북한과의 대치로 인해) 대륙과는 격리되어 있으며,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공동체 의식이 종교적 대립을 억누르고 있다.
무엇보다 국가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변수 또한 바다와 하늘을 통해서만 올 수 있다 보니,
국경을 인접한 대륙 국가들보다는 변수 통제가 쉬운 편이다.
심지어 우리 우파 언론이 그토록 사용하기 좋아하는 지정학적 위치만을 놓고 본다면,
아프가니스탄은 “반월지대”에서 “심장지대”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나라고,
우리나라는 바다와 대륙을 연결하는 교두보 국가다.
아울러 한반도는 지형적 특징상 강력한 해상능력을 갖춘 세력이
군사적 승리를 거두기 유리하다 보니,
지금과 같은 분열상태가 지속된다면 휴전선은 단순히 남북의 경계선을 넘어
“심장지대” 세력과 해상세력의 경계선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지리∙인종적 조건은 아프가니스탄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르며,
이 두 나라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백악관의 외교 정책 실수는 항상 상대국에 대한 몰이해와
자신들의 가치관을 제일시하는 그릇된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마크 티센의 저 발언은 왜 부시 정부가
①근대화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성전聖戰주의자들과
②탈레반과 같이 부족주의에 기반한 무장단체를 혼동하고,
모두 “이슬람 테러단체”로 인식했는지 보여준다.
9.11과 관련해서 많은 회고록과 기록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 지금,
우리는 그 당시 미국이 복수심에 불탄 나머지 너무도 빨리 정치적 해법을 포기하고,
무력으로 부족주의 정권을 굴복시키는 방법을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에 대해 편파적인 정보
(백악관이 듣고 싶은 정보)만을 토대로 정책을 입안했는지 알고 있다.
무엇보다 부시정부는 성전주의자들과 부족주의자들을
“이슬람 테러”이라는 종교적 기준을 근거로 하나로 묶어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아무리 소련과의 전쟁 과정에서 양 테러단체의 지도부가 가깝다고는 하나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다 보니 특정 사안에 대한 구성원들의 다수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고,
부족주의에 기반한 정치집단일수록 자신들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만일 미국이 이성적인 태도로 9.11 해법을 찾았다면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조금은 다른 결말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 자체가 파슈툰족이
주변부에 위치한 발흐, 바다흐샨, 편자브, 발루치스탄 등지를 점령한 다음 세운 나라고,
이 때문에 파슈툰족은 자신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세웠다는 역사적 사실에 문화적 우월감을 느끼는데,
이런 역사∙문화적 요소들을 다 무시하고
다수 파슈툰족 부족장들의 지지를 받는 탈레반 정권을 강제로 해체하고,
비-파슈툰족 위주의 북부동맹 출신들이 주도하는 연합정부의 지배를 받아들이라 했으니
아무리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라 한들
(지상의 파슈툰족을 모두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아닌 이상)
어찌 이길 수 있었겠는가? 이 전쟁은 시작부터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잘못된 정책 결정을 내린 정부 수석 연설 보좌관이
우리나라를 아프가니스탄에 비교하며,
미군 없이는 우리도 아프가니스탄처럼 정권이 전복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 중 누가 북한의 통치에 따르겠는가?
그전에 우리나라가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다민족 국가인가?
또는 중앙아시아 제국諸國처럼 부족주의와 종파주의 대립이 정치적 투쟁으로 이어질만큼 격렬한가?
상대방에 대한 무지는 부끄러운 일인데,
자신의 무지를 거리낌없이 자랑(?)하는 전직 수석연설 보좌관을 보며
나는 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저 발언에 대해 아래와 같은 비평을 하고 싶다.
저 수석 연설 보좌관의 한국 관련 발언이야말로
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카불함락은 사이공함락 월남패망과 닮은꼴^^
: 아프칸 카불함락 주범은 반미극렬폭력테러집단 탈레반과
정치인-관료-군대 부패속 평화협정으로 단행된 미군철수였다
△역사상 최대의 국제적 위장평화 사기극은 미군 철수를 부른 베트남평화협정과 아프간평화협정
△다음 차례는 여권 국회의원 70여명이 미군철수에 서명하고
거의 매일 수도 서울 한복판 광화문 미 대사관 주변에서 미군철수를 외치고
김정은 방남을 촉구하는 집회가 벌어지고있는 대한민국 아닌가?
△월남-아프간 사태는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닌 대한민국의 현실일지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열린민주당-정의당 등
여권과 민주노총-전교조, 전농, 한국진보연대 등
4천여 종북반미좌파의 주장대로 북한과 종전선언-평화협정체결하고
미군 철수하면 대한민국도 북한의 대남전략대로 적화될 날 머지않았다
△문재인과 김정은의 2018년 4.27정상회담 종전선언-
평화협정 합의도 북한의 대남적화무력남침 초대장 될 수도
△월남과 아프간에서 보듯 평화협정에 따라 이행된 것은
미군의 완전 철수와 체제붕괴, 패망 밖에 없었다
△평화협정이 평화 보장하는 것 아니다:
세계역사 3000여년간 체결된 평화협정 8천여건, 모두 휴지조각되고 2년내에 전쟁재발로 이어졌다
△베트남협상 주역 키신저,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평화협정이란
결국 ‘공산화’였다” 뒤 늦게 후회
△북베트남은 공산화통일후 가장 먼저 ‘베트남판 종북좌파인사’인
정치인‧성직자‧교수‧학생부터 兎死狗烹식 처형했다.
탈레반은 그렇지 않겠다고 말하고있지만 정권의 속성상 아프간도 숙청 회오리 바람 일 듯.
△1차대전후 부전(不戰)약속 베르사유평화협정도 2차대전 못막았다
△북한은 김일성 이래 대남적화통일정책으로 일관되게 평화협정 요구하면서
평화협정이 고려연방제의 선결조건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과거 노무현 정부나 현 문재인 정부는 '우이독경'식이다
△김일성은 월남이 패망한 1975년 중국을 방문, 남베트남 공산화에 고무돼
재남침의사를 밝혔으나 당시 미 슐레진저 국방장관의
"재남침하면 핵사용 가능성도 있다"라는 발언에 주춤하고 말았다.
현 김정은 정권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만 핵무기 보유를 앞세워
소위 '조국해방투쟁' 카드를 만지작 거릴 수도 있다. 김정은이 노리는 것은
남한의 좌파정부의 응원을 받고있는 민주노총, 전교조, 전농, 진보연대등과
'연북연공'의 통일전선전략을 구축해 남한을 적회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최근 미군철수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것도 심상치않다
△탈레반, 미군 철수 선언 넉달만에 수도 카불함락 아프간 접수
△탈레반 오자마자 백기 든 아프간 정부...대통령은 항복선언 후 도망
△아프간에 2조달러 쏟아부은 美 결국 빈손...후폭풍 클 듯
△주민들은 탈출 러시,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최후의 날 방불
△탈레반의 천인공노할 만행 : 20대 청년을 붙잡아 산채로 가슴 부분의 피부를
칼로 벗겨내 심장을 노출시킨 다음 10
층 높이 절벽에 던져 살해하고 캐나다인-미국인 부부를 납치, 딸을 살해하고 부인을 성폭행
-서옥식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정박) -
△카불까지 점령한 탈레반: 이슬람 무장테러조직 탈레반 소속 대원들이
2021년 8월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낭가르하르주의
주도 잘랄라바드를 장악한 뒤 차량 위에 걸터앉아 자축하고 있다.
탈레반은 이날 잘랄라바드를 점령한 다음 카불로 진격해
아프간 정부로부터 항복 선언을 받았다(구글 이미지 캡쳐)-
△이슬람과격폭력테러조직 탈레반 병사들(이상 2개 사진, 구글 이미지 캡쳐)-
△탈레반의 공격속에 피난가기위해 지난 8월 10일
카불 국제공항의 한 구텅이에서 잠을 자고있는 아프간 어린이-
△아프간 피난민들(이상 2개 사진, 구글 이미지 캡쳐)-
△탈레반에 코가 잘린 아프간 여성(구글 이미지 캡쳐)-
△ 미군철수로 아프간 현 체제와 정부를 붕괴시킨 미-탈레반 평화협정 서명자들,
협정조인식이 끝난후 협정문을 교환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함락되자 항복을 선언하고
국외로 도주한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연합뉴스 이미지 캡쳐)-
△카불의 대통령 궁을 점령한 탈레반 지도자들이 정권인수문제를 논의하고있다(구글 이미지 캡쳐)-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카불 국제공항에 대거 집결하면서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프간을 탈출하는 미군 수송기 들(구글 이미지 캡쳐)
이슬람 무장폭력테러조직 탈레반이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아프간에서 미군의 완전 철군을 발표한 지 4개월 만이다.
이날 아프간 정부는 “평화롭게 정권을 넘기겠다”며 탈레반에 항복을 선언했다.
탈레반은 2001년 10월 발발한 아프간 전쟁으로
그해 11월 카불에서 퇴각한 지 약 20년 만에 아프간을 다시 장악하게 됐다.
앞서 아프간 주요 거점을 모두 점령한 탈레반은 이날 카불로 진격했다.
탈레반은 “무력으로 점령하지 않겠다”며 아프간 정부에 항복을 종용했다.
몇 시간 만에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에 정권을 이양하겠다며 ‘백기’를 들었고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출국했다.
탈레반은 이날 카타르에서 아프간 정부 협상팀과 만나 권력 이양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미국 측도 동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정부 항복 직전 카불에서는 엑소더스(대탈출)가 일어났다.
미국은 헬리콥터를 동원해 민간인과 외교관 등을 공항으로 실어날랐다.
아프간 국민들이 현금인출기 앞에 줄을 서며 현금을 인출했고
일부는 아프간을 빠져나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했다.
카불 점령 첫날 탈레반이 평화와 안전 보장을 외치고 있지만
앞으로 극심한 혼란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탈레반이 떠난 20년 동안 아프간 사람은 서구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여성은 고등교육을 받았고 직업을 가졌다.
하지만 탈레반 수중에 떨어진 이상 다시 이슬람 원리주의가
아프간을 지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이다.
국제사회의 우려를 의식한 듯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인터뷰를 통해
“히잡을 쓴다면 여성은 공부를 할 수 있고 직업도 가질 수 있다”며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설명했다.
대변인은 또 여성이 혼자서 외출하는 일도 허용하겠다고 덧붙였다.
인접 국가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은 신장 위구르족 무장단체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과
탈레반의 연계를 차단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다.
파키스탄과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수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아프간 난민을 받아들일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미국 역사상 최장 전쟁
아프간 전쟁의 시작은 2001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슬람 무장 단체 알카에다가 그해 9월 11일
미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등을 저지르자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해 10월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은
알카에다의 근거지로 지목된 아프간을 공습하며 아프간 전쟁의 막을 열었다.
같은 해 11월 연합군이 카불에 입성하면서 탈레반은 카불에서 쫓겨났다.
아프간 전쟁은 20년 동안 지속되며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 됐다.
‘미국의 치욕’으로 평가되는 베트남전쟁(14년) 기간을 능가한다.
미국은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에 2조달러(약 2340조원)를 썼으며
이자 비용까지 합치면 더 불어난다.
아프간 전쟁을 시작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후임들은
전쟁 처리 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아왔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인 2020년 2월 29일
탈레반과 카타르 도하(Doha)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함에 따라
협정 이행의 첫 번째 단계 조치로 2021년 3월 9일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주둔 중인 1만 3,000여 명미군을 철수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철군 선언 4개월 만에 카불이
탈레반에 점령당한 이유를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프간 군인과 경찰 숫자는 서류상 35만 명이다.
그러나 이 중 상당수가 급여만 받고 복무하지 않는
이른바 ‘유령 군경’으로 알려지는 등 부패 문제가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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