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제과학올림피아드 한국 대표로서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대회에 참가하여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국제 친선을 도모하며 국가의 명예를 걸고 열과 성의를 다해 노력할 것을 선서합니다.”
최민우(경기과학고 3), 김민솔(민족사관고 3), 이준혁(인천예송중 3) 학생의 우렁찬 목소리가 양재 엘타워 그랜드홀을 가득 채웠다. 지난 3일 진행된 ‘2019 국제과학올림피아드 한국대표단 발대식’ 현장이다.
일명 ‘두뇌올림픽’이라 불리는 국제과학올림피아드는 대학생을 제외한 20세 미만의 학생들이 모여 각종 과학 분야의 지식과 창의성을 겨루는 국제대회다. 수학, 물리, 화학, 정보, 생물, 천문, 지구과학, 중등 과학, 청소년 물리토너먼트 등 총 9분야의 세부 대회가 매년 진행된다. 우리나라는 1988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를 필두로 지금까지 총 192회의 대회에 참가, 38회나 종합 1위를 달성하는 등 그간 우수한 성과를 거둬왔다.
2019 국제과학올림피아드 발대식이 지난 3일 양재 엘타워 그랜드홀에서 진행됐다. ⓒ 한국과학창의재단
“공감하고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과학자 되길”
2019년 대회에 참가하는 대표단 역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한 이번 발대식은 대표단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날 행사를 앞두고 양재 엘타워에 모인 젊은 국가 대표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서렸다. 이윽고 안성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의 개회사로 발대식이 시작됐다.
안 이사장은 “1년여 동안 대표단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교수님들, 누구보다 가까이서 뒷바라지하신 부모님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라며 “무엇보다 부모님들이 제일 기쁠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자식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과 열정이 느껴진다”고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안성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대표단에게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 한국과학창의재단
안 이사장은 이어 대표단에게도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그는 “목적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자체만으로 여러분은 이미 훌륭한 사람”이라며 “세계 과학영재들과의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자신의 현재를 확인하는 경험은 미래를 개척하는 데 있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병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의 격려사가 진행됐다. 정 실장은 “올림피아드 참석을 계기로 대표단들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기둥으로 자라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며 “과기정통부도 여러분이 세계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연구자로 성장하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치하했다.
정 실장은 특히 ‘따뜻한 과학기술’을 강조했다. 그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때론 파괴적 혁신을 초래하기도 한다”고 전하며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항상 뒤를 돌아보고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과학자가 필요하다. 정부 역시 ‘사람 중심 과학기술’,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연구’를 지향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정병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는 ‘따뜻한 과학자’의 모습을 대표단에게 주문했다. ⓒ 한국과학창의재단
이후 ‘나는 국가대표입니다’라는 제목의 영상 상영, 대표학생 선서 및 기념패 수여가 진행됐다. 이날 대표단 전원은 기념패를 받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때론 활짝 웃고, 때론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성과에 집착 말고, 즐기며 소통하라”
다음으로는 앞서 국제과학올림피아드를 경험했던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전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들은 당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입을 모아 “즐기고, 교류하라”는 메시지를 건넸다.
그 첫 주자는 2002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김린기 KAIST 수리과학과 연구원.
“오랜만에 선배로서 여러분들 앞에 서니 감회가 새롭다”라며 운을 뗀 그는 “시험이 끝나고 베트남 학생과 함께 문제를 풀었던 기억, 대회 이후로도 이어진 이탈리아 학생과의 교류 등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이러한 경험은 김 연구원이 해외로 나가는 원동력이 됐다고.
그는 이에 대해 “결국 2011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 박사과정에 도전해 입학하게 됐다”며 “덕분에 영화 ‘뷰티풀 마인드’로 유명한 수학자 존 내쉬 등 유명한 석학들을 직접 만나며 학문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밝혔다.
2002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김린기 KAIST 수리과학과 연구원이 자신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 한국과학창의재단
2015년과 2017년, 두 번에 걸쳐 국제천문올림피아드에 참가한 나현준 학생(서울대 물리천문학부 1)도 비슷한 조언을 건넸다.
그는 “2015년의 목표는 오직 좋은 성과였다”며 “막상 대회가 끝나고 나니 남은 것은 상밖에 없었다. 많은 친구들이 있었음에도 성과에만 집중해 대화를 못 나눈 사실이 너무 아쉽고 후회됐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다행히 2017년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좋은 추억을 남겼다”라며 “다양한 친구를 사귀고, 팀원들과도 소중한 시간을 가져라. 무엇보다 모든 순간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2015년과 2016년, 2년 연속 수학올림피아드 금메달을 획득한 주정훈 학생(서울대 수리과학부 3) 역시 “즐기는 자세가 좋은 성적의 비결”이라며 “부담 가지지 않고 긴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대표 학생이라면 이미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응원했다. 선배와의 대화를 끝으로 발대식은 마무리됐다.
2019년도 국제과학올림피아드는 7월 6일 폴란드에서 개최되는 청소년 물리토너먼트를 시작으로 약 반 년 간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발대식을 통해 전의를 가다듬은 우리나라 대표단은 9개 분야 모두에서 총 44명이 참석, 우수한 성과를 노린다.
특히 올해는 독학으로 천문학을 공부해 대표단으로 선발된 학생 등 실력 있는 일반 중・고등학교 학생 상당수가 과학고・과학영재고 학생들과 함께 선발돼 그 결과가 더욱 주목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앞으로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과학올림피아드 대표단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올림피아드 선발 전형 다양화’, ‘사회배려계층 교육비 면제’ 등의 정책을 통해 기회의 문을 점차 넓혀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