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7장은 이제까지와 다르게 지혜로운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인간적인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지혜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지혜는 인본주의적 지혜와는 달리 우매한 것보다 월등한 우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가 이러한 지혜를 근거로 신중하게 말아가야 함을 전도자는 역설합니다.
1. 지혜자의 마음
1) 명예를 아는 지혜자
지혜로운 사람은 명예를 아는 사람입니다. 명예를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사람이 진정으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삶을 살아야 할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우둔한 사람은 육체의 즐거움을 위해 재물을 탐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의 헛된 것을 구하기보다 진리를 밝히는 명예로운 길을 선택합니다. 성도의 존귀한 이름이 탐욕때문에 더럽혀지지 않도록 자신을 절제하며 죽음으로 신앙을 지킵니다.
a. 제자의 이름을 더럽힌 가롯 유다(마26:14-16)
b. 뛰어난 이름(빌2:9)
2) 영원을 사모하는 지혜자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의 헛됨과 영원한 것을 비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둔한 사람은 한시적인 쾌락을 추구합니다. 잠깐 동안의 세상 연락을 즐기기 위하여 영원한 세계를 놓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죽는 날을 출생하는 날보다 더 낫게 여깁니다. 이것은 죽음 자체를 사모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출생하는 날은 한정된 삶을 예고하지만, 죽는 날은 영원한 삶에 들어선다는 사실을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애착을 가지는 출생은 죽음으로 치닫는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외면하는 죽음은 도리어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a.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전3:11)
b. 아들의 특권(요8:35)
3) 책망을 즐겁게 생각하는 지혜자
우둔한 사람은 책망을 싫어하며 칭찬만을 원합니다. 지혜로운 왕이 판단이 흐려지는 이유는 늙음과 뇌물 두 가지 때문입니다. 늙어서 판단력이 흐려질 경우 어리석은 결정을 내립니다. 그리고 뇌물은 칭찬하는 말로서 책망을 멀리하게 하며 간교하고 아부하는 사람만을 곁에 두게 합니다. 따라서 왕의 판단은 아부하는 자들의 칭찬 때문에 흐트러지게 됩니다. 고통스럽지만 진리를 바로 알려는 태도가 사람을 지혜롭게 합니다. 잔칫집만 선호하는 사람은 삶의 쾌락만을 추구할 뿐이며 내세를 소망하지 못하게 됩니다.
a. 영혼을 살리기 위해(잠23:14)
b. 범죄에 대한 징계(신25:1-4)
2. 세상을 사는 지혜
1) 신중하게 일하는 지혜
지혜로운 사람은 결단코 조급한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우둔한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일을 빨리 시작하려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일의 시작보다 그 끝을 중요하며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신중하게 계획을 짠 후에 시작합니다. 따라서 세상을 사는 지혜는 먼저 급한 마음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급한 마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며 노를 발하게 하므로 일을 그르칩니다.
a. 악한 때에 신중한 지혜자(암5:13)
b. 행동을 삼감(잠14:15)
2) 자족하는 지혜
지혜로운 사람은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구분합니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인간이 곧게 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범위 내에서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는 사람은 삶을 기쁘게 살아갑니다. 인간은 장래의 일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현재의 삶에 자족하며,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어렵고 괴로운 날에는 근신해야 합니다.
a. 자족하는 비결(빌4:11-13)
b.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족(합3:17-19)
3)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하고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증용)를 선택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지나치게 지혜를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자신의 지혜에 집착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신앙은 이성을 초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은 파멸의 길에 빠지고 맙디다. 사실 지혜자가 어떤 가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의거하여 세상을 바라보지만 세상의 모든 일을 바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자기 의로움 때문에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악행 중에 장수하는 악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욥의 세 친구는 지나치게 지혜를 중요시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욥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진정한 지혜는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하고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의 길에서 터득됩니다.
a. 자기 절제를 요구하는 중용(고전9:25-27)
b. 자신을 지키기 위한 중용(잠2:11)
3. 지혜자의 고백
1) 인간 이성의 한계
전도자는 가장 완전하고 진지한 자세로 삶을 탐구하여 지혜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전도자의 탐구와 지혜에 대한 열망은 결코 피상적인 것이 아니었고, 돈과 같은 어떤 세상적인 대가를 얻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지혜를 얻는 데 있어서 그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고 주제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였습니다. 좋은 것들은 그 상대적인 측면에서도 연구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도자의 열의와 탐구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그의 지혜로 인간의 비밀을 알 수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그 비밀은 인간의 지각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a. 이성의 한계(고전1:25)
b. 진리에 대한 편견(막2:6-8)
2) 인간 의지의 나약함
전도자가 지혜로써 인간을 탐구하여 얻은 결과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이렇듯 약간의 진기를 깨달은 전도자는 기뻤지만 이내 절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전도자는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의를 아는 의인은 있지만 선을 행하고 죄를 범하지 않는 의인은 세상에 없습니다. 인간 중에는 죄의 유혹과 올무가 곳곳에 놓여 있습니다. 인간의 나약한 의지로는 그러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진리를 발견한 후에도 나약한 인간 의지와 연약한 능력 때문에 좌절합니다.
a. 연약한 인간(신28:56)
b. 주가 담당하신 우리의 연약(마8:17)
3) 인간 본성의 죄악됨
전도자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속에 악함이 있음을 고백하면서 지혜의 헛됨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직하게 만드셨으나 우리가 스스로 타락하여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울지라도 악한 죄를 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타락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의 지혜는 무용지물입니다.
a. 마음의 악함(마15:19)
b. 출생하면서부터 악함(시51:5)
결론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삶을 산다면 보람되게 살 수 있습니다. 이 지혜는 결코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도에 지나치지 않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지혜를 실천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우리를 절망시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지혜를 받았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