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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雲小說 -李奎報
神策究天文 신기한 계책은 천문을 연구했고
妙算窮地理 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를 다했다
戰勝功旣高 싸움에 이겨 공이 높으니
知足願云止 족함을 알고 그치기를 원하노라
-을지문덕, 기이하고 옛스러움
織錦頌 眞德女王-太平詩라 하며 唐詩類記에 실려있음.
永徽(당, 고종의 연호)元年작, 雄渾함
大唐開洪業- 大唐이 큰 업을 열었으니
巍巍皇猶昌- 높고 높게 皇運이 창성하도다
止戈戎衣定- 전쟁이 그쳤고 천하를 평정했으며
修文繼百王- 文을 닦아 백왕을 이었도다
統天崇雨施- 하늘을 근본으로 하여 雨施(주역 건괘 雲行雨施)를 숭상하고
理物體含章- 만물을 다스리니 含章(주역 곤괘)을 본받네
深仁諧日月- 깊은 仁은 日用(계사전 5장)에 화합하고
撫運邁時康- 세상을 어루만지는 것은 時와 康(상서)으로 하네
幡旗旣赫赫- 깃발은 이미 빛났으며
鉦鼓何惶惶- 징과 북은 어찌나 큰가
外夷違命者- 外夷로서 명을 어기면
剪覆被大殃- 찢기고 엎어져 天殃을 받으리라
和風凝宇宙- 和風은 우주에 엉기었고
遐邇競呈祥- 멀고 가까운 곳에 상서로움이 다투어 드러나네
四時調玉燭- 사시로 임금의 은혜에 맞추고
七耀巡萬方- 七曜(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별)는 만방에 도네
維嶽降宰輔- 높은 산이 재상을 낳았으니
維帝用忠良- 임금은 忠良을 임용했도다
三五咸一德- 삼황오제와 한 덕을 이루었으니
昭我皇家唐- 당나라 皇家가 밝으리라
洞庭月落孤雲歸- 최치원의 구절로 추정
十二乘船渡海來 열두 살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와
文章感動中華國 문장으로 중화 나라를 감동시켰네
-최치원의 과거 동기인 顧雲이 최치원에게 준 儒仙歌 中
崑崙東走五山碧 곤륜산 동으로 달려 오악이 푸르고
星宿北流一水黃 별들은 북으로 흘러 황하가 누렇다
-최치원
畵角聲中朝暮浪 확가소리 들리는 중에 아침저녁 물결
靑山影裏古今人 푸른 산그림자 속엔 고금의 사람 왔다갔다
-최치원
燈撼螢光明鳥道 반딧불을 흔드는 듯한 등북은 鳥道(험한 길)를 비추고
梯回虹影落巖扃 무지개를 뻗힌 듯한 사다리는 바위 문에 이르렀네
-朴仁範
撼 감, han4 흔들다
門前客棹洪波急 문 앞 나그네 탄 배에 파도가 급한데
竹下僧棋白日閑 대나무 아래 중은 바둑 두며 한낮이 한가롭네
-朴寅亮
정지상이 들은 귀신 시
僧看疑有刹 중은 절이 있는가 살피고
鶴見恨無松 학은 보고 소나무 없음을 한했다
(夏雲多奇峰) 鄭知常-귀신시를 참고하여 제출한 시
白日當天中 (백일당천중) 눈부신 해 하늘 복판에 왔는데
夏雲自作峰 (하운자작봉) 뜬 구름이 저절로 봉우리가 되네
僧看疑有刹 (승간의유찰) 중이 보고선 절이 있나 의심하겠고
鶴見恨無松 (학견한무송) 학이 보고선 소나무 없는 걸 한탄하겠다.
電影樵童斧 (전영초동부) 번개 빛은 나무꾼 애의 도끼 번쩍임
雷聲隱寺鐘 (뇌성은사종) 우뢰 소리는 가려 있는 절의 종소리
誰云山不動 (수운산부동) 누가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하였더냐
飛去夕陽風 (비거석양풍) 석양녘 바람에 날아가 버렸는데.
琳宮梵語罷 아름다운 집에 염불을 파하니
天色淨琉璃 하늘빛은 유리처럼 밝다
-정지상
柳色千絲綠 버들 빛은 천 가지 잎이 푸르고
桃花萬點紅 복숭아 만점의 꽃은 붉네
-김부식, 정지상은 絲絲綠, 點點紅으로 해야 한다고 함
복양(濮陽) 오세재 덕전(吳世才德全)
北嶺石巉巉-북령의 돌이 우뚝한 것을
邦人號戟巖-사람들이 극암이라 부르네
逈摏乘鶴晉-학을 탄 왕자 진(王子晉)을 칠 듯이 솟았고
高刺上天咸-하늘에 오르는 무함(巫咸)을 찌를 듯이 높다
揉柄電爲火-휘어진 자루는 번갯불처럼 번쩍이고
洗鋒霜是監-씻은 칼날은 서릿발처럼 희다
何當作兵器-하필 병기를 만들어서
亡楚却存凡-초 나라를 망치고 범 나라를 존재시킬 것인가
巉巉 참참, chanchan22, 깎아 세운듯한 험한 산
선배 중에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난 자가 일곱 사람인데, 그들은 스스로 한때의 호준(豪俊)이라 생각하고 서로 어울려서 칠현(七賢)이라 하였으니, 아마 진(晉) 나라의 칠현을 사모한 것이었으리라. 매일 함께 모여서 술을 마시며 시를 짓되 자기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하니, 세상에서 그를 빈정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내 나이 19세였는데, 오덕전(吳德全)이 망년우(忘年友)로 삼아 항상 그 모임에 데리고 갔었다. 그 뒤 덕전(德全)이 동도(東都 경주(慶州))에 놀러갔을 때 내가 다시 그 모임에 참석하였더니, 이청경(李淸卿 청경은 이담지(李湛之)의 자)이 나를 보고 말하기를,
“자네의 덕전이 동도에 놀러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자네가 그를 보충(補充)하겠는가?”
하므로, 내가 곧 대답하기를,
“칠현이 조정의 벼슬인가요? 어찌 그 궐(闕)을 보충한단 말이요? 혜강(嵇康)ㆍ완적(阮籍) 뒤에 그를 계승(繼承)한 이가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소.”
하니, 모두들 크게 웃었다. 또 나보고 시를 짓게 하면서 춘(春)ㆍ인(人) 두 자를 운(韻)으로 부르기에 내가 곧,
榮參竹下會-영광스럽게도 대나무 아래 모임에 참여하여
快倒甕中春-유쾌히 독 안의 술을 마시네
未識七賢中-모르겠다 칠현 중에
誰爲鑽核人-누가 오얏씨 뚫는 사람인고
라고 불렀더니, 모두들 불쾌한 기색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곧 거만스런 태도로 거나하게 취해서 나와 버렸다. 내가 젊어서 이처럼 미치광이 같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광객(狂客)으로 지목했었다.
내가 옛날 과거에 급제하던 해에 동년(同年)들과 통제사(通濟寺)에 놀러 갔었다. 그때 나와 4~5인은 일부러 뒤떨어져서 말 안장을 나란히하고 천천히 가면서 시를 창화(唱和)하였다. 맨 먼저 지은 사람의 시운(詩韻)을 가지고 각기 사운시(四韻詩)를 지었다. 이 시는 이미 노상에서 입으로 부른 것이라 붓으로 쓸 만한 것이 있지도 않거니와, 또한 시인의 상어(常語)로 생각하여 아예 기억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뒤에 두 번이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전하기를,
“이 시가 중국에 흘러 들어가서 사대부들에게 크게 칭송받는 바가 되었다.”
하고, 그 사람은,
蹇驢影裡碧山暮-나귀 그림자 속에 푸른 산이 저물고
斷雁聲中紅樹秋-외기러기 울음 속에 단풍지는 가을일러라
는 한 시구만을 외면서,
“이 시구가 더욱 사랑을 받는다.”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또한 믿지 않았다. 그 뒤에 또 한 사람이,
獨鶴何歸天杳杳-외로운 학은 어디 가고 하늘은 아득한고
行人不盡路悠悠-다니는 사람 끊이지 않는데 길은 길구나
라는 한 시구 만을 기억하고,
“첫구와 끝구는 다 알지 못한다.”
하였다. 내가 비록 총명하지는 못하나 또한 매우 노둔한 사람은 아닌데,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 그때 갑작스레 짓고 조금도 유의하지 않아 우연히 잊어서일까. 전번 구양백호(歐陽伯虎)가 나를 찾아왔을 때 좌석에 있던 어떤 손이 이 시에 언급하고 이내 묻기를,
“상국(相國)의 이 시가 대국에 전파되었다 하는데 진실입니까?”
하니, 구양백호는 선뜻 대답하기를,
“전파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두 화족(畫簇)을 만들어서 봅니다.”
하자, 그 손은 약간 의심하였다. 그러자 구양백호는,
“그렇게 의심하신다면, 내가 명년에 환국하여 그림과 시의 전본(全本)을 싸가지고 와서 보여주겠습니다.”
하였다. 아, 과연 이 말과 같다면, 이는 실로 분에 넘치는 말이니 감당할 바 아니로다. 전에 부친 절구를 차운하여 구양백호에게 주었는데, 그 시는 이러하다.
慚愧區區一首詩- 부끄럽도다! 구구한 이 한 수의 시는
一觀猶足又圖爲-한 번 보아줌도 족한데 또 그림까지 그렸나
誰知中國曾无外-중국이 이처럼 외국을 차별하지 않음을 누가 알았으랴
無乃明公或有欺-명공께서 혹 속이는 것은 아닌지
나는 아홉 살부터 글 읽을 줄 알아, 지금까지 손에 책을 놓지 않았다. 시서육경(詩書六經)ㆍ제자백가(諸子百家)ㆍ사필(史筆)의 글로부터 유경벽전(幽經僻典)ㆍ범서(梵書)ㆍ도가(道家)의 설에 이르기까지 비록 그 깊은 뜻은 궁구하지 못했지만, 그를 섭렵하여 좋은 글귀를 따서 글 짓는 자료로 삼지 않는 것이 없다.
또 복희(伏羲) 이후 삼대(三代)ㆍ양한(兩漢)ㆍ진(秦)ㆍ진(晉)ㆍ수(隋)ㆍ당(唐)ㆍ오대(五代) 사이의, 군신의 득실이며 방국의 치란이며 그리고 충신의사(忠臣義士)ㆍ간웅 대도(奸雄大盜)의 성패ㆍ선악의 자취를 비록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기억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들을 간추려 기송(記誦)하여 적시에 응용할 준비를 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혹시 지필을 가지고 풍월을 읊게 되면, 아무리 백운(百韻)에 이르는 장편(長篇)ㆍ거제(巨題)라 할지라도 마구 내려 써서 붓이 멈추지 않는다. 비록 금수(錦繡)와 주옥(珠玉) 같은 시편은 이루지 못하나 시인의 체재는 잃지 않는다. 자신을 돌아보건대, 자부함이 이와 같은데 결국 초목과 함께 썩게 되는 것이 애석하다. 한 번 붓을 들고 금문(金門)ㆍ옥당(玉堂)에 앉아서 왕언(王言)을 대신하고 고초(稿草)를 검토하며 비칙(批勅)ㆍ훈령(訓令)ㆍ황모(皇謨)ㆍ제고(帝誥)의 글을 지어 사방에 선포하여 평생의 뜻을 푼 뒤에야 말 것이니, 어찌 구구하게 대수롭지 않은 녹을 구하여 처자를 살릴 꾀를 하는 자의 유이기를 바랐겠는가.
아, 뜻은 크고 재주는 높건만, 부명(賦命)이 궁박(窮薄)하여 나이 30이 되도록 오히려 한 군현(郡縣)의 직임도 얻지 못하였으니, 외롭고 괴로운 온갖 상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내 두뇌를 알 만하다. 이때부터 경치를 만나면 부질없이 시를 읊고 술을 만나면 통쾌하게 마시며 현실을 떠나서 방랑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봄이라, 바람은 화창하고 날씨는 따스하여 온갖 꽃이 다투어 피니, 이처럼 좋은 때를 그저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윤학록(尹學錄)과 함께 술을 가지고 구경하면서 수십 편의 시를 지었다. 흥이 무르익었을 때 취기로 인해 졸았는데, 윤학록이 운자를 부르며 나더러 시를 지으라고 권하기에 나는 곧 보운(步韻)으로 다음과 같이 지었다.
耳欲爲聾口欲瘖-귀는 귀머거리 되려하고 입은 벙어리 되려하니
窮途益復世情諳-곤궁한 처지에 더욱 세정을 안다
不如意事有八九-뜻과 같지 않은 일은 십에 팔구나 되고
可與語人無二三-더불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열에 한둘도 없다
事業皐夔期自比-사업은 고기처럼 하기를 기약하고
文章班馬擬同參-문장은 반마처럼 하려 하였는데
年來點檢身名上-연래에 신명을 점검하니
不及前賢是我慙-전현에 미치지 못한 게 바로 나의 부끄러움이네
윤학록이 나를 보고 말하기를,
“팔구(八九)로 이삼(二三)을 대하니 평측(平仄)이 고르지 못하오. 공(公)은 평일에 있어서는 문장이 훌륭하여 비록 수백 운(韻)의 율시(律詩)라도 한 번 내려 쓰기를 마치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스쳐가듯 빨리 하나 한 글자도 하자가 없었는데, 지금은 한 작은 율시를 짓되 도리어 염(廉)을 어기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기에, 나는 말하기를,
“지금은 꿈속에서 지은 것이므로 가리지 않고 내놓은 때문이오. 팔구는 천만(千萬)으로 고치는 것도 또한 불가할 것이 없소. 대갱(大羹)과 현주(玄酒)가 초장만 못하지 않은 법이라. 대가의 솜씨는 원래 이러한 것인데 공이 어찌 그것을 알겠습니까?”
하였는데,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하품하고 기지개하면서 깨니 바로 한 꿈이었다. 그래서 꿈속에 있었던 일을 윤학록에게 갖추 말하기를,
“꿈속에서 꿈에 지은 것이라고 말하였으니, 이것은 이른바 꿈속의 꿈이구려.”
하고는,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따라서 희롱으로 다음과 같이 한 절구를 지었다.
睡鄕便與醉鄕隣-수향이 문득 취향과 이웃하였으니
兩地歸來只一身-두 곳에서 돌아오니 다만 한 몸일러라
九十一春都是夢-구십 일 온 봄이 모두 꿈이라
夢中還作夢中人-꿈속에 도리어 꿈속 사람이 되었네
내가 본래 시를 즐기는 것은 비록 포부(抱負)이기는 하나 병중에는 평일보다 배나 더 좋아하게 되니, 또한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매양 흥이 날 때나 물(物)을 접촉했을 때에는 시를 읊지 않는 날이 없다. 그렇지 않으려 하여도 되지 않으니, 이것 또한 병이라고 말할 만하다.
일찍이 시벽편(詩癖篇)을 지어 뜻을 나타냈으니, 대개 스스로 상심한 것이다. 또 매일 한 끼니 식사는 두어 숟갈을 뜨는 데 불과하고 오직 술만 마실 뿐이라 항상 이것으로 걱정하였는데, 백낙천(白樂天)의《후집(後集)》에 실린 노경(老境)에 지은 것을 보았더니 병중에 지은 것이 많고, 술 마시는 것 또한 그러하였다. 그 한 시는 대략 이러하다.
我亦定中觀宿命-내 또한 조용히 운명을 관찰하니
多生債負是歌詩-평생의 부채는 바로 시가일러라
不然何故狂吟詠-그렇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읊는 일에 미친 것이
病後多於未病時-병난 뒤엔 병나기 전보다 더하겠는가
꿈에 얻은 시를 수작한 시는 이러하다.
昏昏布衾底-어둡고 어두운 베이불 밑에
病醉睡相和-병과 취함과 졸음이 서로 어울렸다
운모산(雲母散)을 먹는 데 대해 지은 시는 이러하다.
藥消日晏三匙食-늦게 먹은 세 숟갈의 밥을 약이 녹이는구나
그 나머지의 시도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나는 이런 시를 보고난 다음에 너그럽게 생각하기를,
“나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옛사람도 그랬다. 이것은 모두 숙부(宿負) 때문이니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백공(白公)은 재직 중 병가를 내기를 1백 일이나 하였다. 나는 모일(某日)에 장차 퇴임을 청원할 터인데, 병가를 계산하면 1백 10일이니, 그것이 우연히 이처럼 서로 같다. 다만 부족한 것은 번소(樊素)와 소만(少蠻)일 뿐이다. 그러나 두 첩(妾)은 또한 공의 나이 68세 때 모두 내침을 당했으니 어찌 이때에 있었겠는가. 아, 재명(才名)과 덕망(德望)은 비록 백공에게 미치지 못한 그 거리가 매우 머나, 노경의 병중에 겪은 일들은 이따금 서로 같은 것이 많았다.”
하고, 따라서 그가 병중에 지은 시 열 다섯 수를 화답하여 다음과 같이 정을 서술한다.
老境忘懷履垣夷-노경에 세사를 잊고 평탄한 땅 밟았으니
樂天可作我之師-낙천은 나의 스승이 될 만하이
雖然與及才超世-세상에 뛰어난 낙천의 재주에는 미치지 못하나
偶爾相侔病嗜詩-병중에 시를 즐기는 것은 우연히 서로 같구나
較得當年身退日-그의 당년 퇴임하던 날짜를 비교해보면
類余今歲乞骸時-나의 금년 퇴임하는 때와 같다
낙구(落句)는 빠졌다.
백운거사(白雲居士)는 선생의 자호이니, 그 이름을 숨기고 그 호를 드러낸 것이다. 그가 이렇게 자호하게 된 취지는 선생의 백운어록(白雲語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집에는 자주 식량이 떨어져서 끼니를 잇지 못하였으나 선생은 스스로 유쾌히 지냈다. 성격이 소탈하여 단속할 줄을 모르고 우주를 좁게 여겼으며, 항상 술을 마시고 취해 있었다. 초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갑게 곧 가서 잔뜩 취해 가지고 돌아왔으니, 아마도 옛적 도연명(陶淵明)의 무리이리라. 거문고를 타고 술을 마시며 이렇게 세월을 보냈다. 이것이 그의 실록(實錄)이다. 거사(居士)는 취중에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읊었다.
天地爲衾枕-천지로 금침을 하고
江河作酒池-강하로 주지를 삼아
願成千日飮-천일 동안 계속 마시어
醉過太平時-취해서 태평 시대를 보내리
또 다음과 같이 스스로 찬(贊)을 지었다.
“뜻이 본래 천지 밖에 있으니, 천지도 포용하지 못하리로다. 장차 원기(元氣)의 모체(母體)와 함께 무한한 공터의 세계에 노니리로다.”
내가《서청시화(西淸詩話)》를 상고하니,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 있다.
“왕 문공(王文公 왕안석(王安石))의 시에,
黃昏風雨暝園林-황혼의 풍우에 원림이 어두운데
殘菊飄零滿地金-쇠잔한 국화 떨어지니 땅에 황금이 가득하이
구양수(歐陽脩)가 이 시를 보고 말하기를 ‘모든 꽃은 다 떨어지나 국화만은 가지 위에 말라붙어 있을 뿐인데, 어찌 「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니, 문공(文公)은 크게 성내어 말하기를 ‘이는 초사(楚辭)의「저녁에는 떨어진 가을의 국화 꽃을 먹는다[夕餐秋菊之落英]」라는 말을 알지 못함이니, 구양수의 배우지 못한 과실이다.’ 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논한다.
시란 보는 일을 읊는 것이다. 내가 옛날 폭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노란 국화를 보았더니, 역시 떨어진 것이 있었다. 문공이 시에서 이미 ‘황혼의 풍우에 원림이 어둡다.’ 하였으니 ‘보는 일을 읊은 것이다.’고 하여 구양수의 말을 일축했어야 옳았을 것이고, 굳이 초사를 이끌었으면 ‘구공(歐公)은 어찌 이것을 보지 못했는가?’라고만 했어도 또한 족했을 것인데, 도리어 ‘배우지 못했다.’고 지목하였으니, 어찌 그리도 편협하였을까?
구양수가 설사 박학 다문한 지경에 이르지 못한 자라 하더라도 초사가 어찌 유경벽설(幽經僻說)이기에 구양수가 보지 못했겠는가? 나는 개보(介甫 왕안석의 자)를 장자(長者)로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옛날 매성유(梅聖兪 성유는 송(宋)의 시인 매요신(梅堯臣)의 자)의 시를 읽고 마음속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옛날 사람들이 그를 시옹(詩翁)이라고 호칭하게 된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겉으로는 약한 듯하나 속으로는 단단한 힘이 있어 참으로 시 중의 우수한 것이었다. 매성유의 시를 알아본 뒤라야 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옛사람들이 사령운(謝靈運)의 시에,
池塘春草生-못 언덕에 봄풀이 돋아난다
는 것을 용하다고 하나, 나는 좋은 점을 모르겠다. 서응(徐凝 당(唐) 나라 시인)의 폭포시(瀑布詩)에,
一條界破靑山色-한 가닥의 경계가 푸른 산 빛을 갈라 놓았다
는 것은, 나는 매우 좋은 시구라고 생각되는데, 소동파(蘇東坡)는 악시(惡詩)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면, 나 같은 자의 시를 알아보는 것은 옛날 사람에 미치지 못함이 매우 멀다. 도잠(陶潛)의 시는 담연히 화평하고 고요하여 마치 청묘(淸廟)의 거문고가 줄이 붉고 구멍이 커서 한 사람이 창(唱)하면 세 사람이 화답하는 것과 같다. 나는 그 체를 본받으려 하나 끝내 비슷하게도 할 수 없으니 더욱 가소롭다.
송(宋) 나라 선자(禪子) 조파(祖播)가, 우리나라에 오는 구양백호(歐陽伯虎)의 편을 이용하여 시 한 수를 우리나라 공공상인(空空上人)에게 부치고, 겸하여 까맣게 옻칠한 바리때 다섯 개와 반죽장(斑竹杖) 한 개를 주었으며, 또 암자의 이름을 토각(兎角)이라 지어 손수 그 액자를 써서 부쳤다.
나는 두 조사(祖師)가 천 리 밖에서 서로 뜻이 합한 것을 가상히 여기고 또 구양(歐陽) 군의 시명(詩名)을 듣고 무척 사모하였다. 그래서 두 수의 시로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此去中華隔大瀛-이곳과 중화 사이 큰 바다 막혔는데
兩公相照鏡心淸-두 공은 거울처럼 맑은 마음 통했네
空師方結蜂窠室-공공상인이 벌집만한 집을 막 지으니
播老遙傳兎角名-조파 선로(禪老)가 토각이란 이름 멀리서 전했네
杖古尙餘斑竹暈-지팡이는 예스러워 반죽의 흔적 남았고
鉢靈應秀碧蓮莖-바리때는 신령스러워 벽련의 줄기가 빼어났네
誰敎一日親交錫-하루에 이처럼 친절하게 사귀어서
共作金毛震地聲-금모(金毛)가 땅을 진동하는 소리를 함께 짓게 하였는가
邈從千里渡滄瀛-멀리 천릿길 바다를 건너 왔는데
詩韻猶含山水淸-시운은 오히려 산수의 맑은 기운 머금었네
可喜醉翁流遠派-기쁘다 醉翁의 원손이 스스로 구양영숙의 11세 손이라 하였다
尙敎吾輩飽香名-우리들로 하여금 꽃다운 이름을 실컷 듣게 하는 것
凌霄玉樹高千丈-하늘에 닿을 듯 옥수는 천 길이나 높고
端世金芝擢九莖-세상에 상서로운 금지는 아홉 줄기 빼어났네
早挹英風難覿面-일찍이 훌륭한 명성은 들었으나 상면하기 어려우니
何時親聽咳餘聲-어느 때나 친히 음성을 들을 건가
선사(禪師) 혜문(惠文)은 고성군(固城郡) 사람이다. 나이 30여 세에 비로소 승과(僧科)에 급제하여 여러 승질(僧秩)을 거쳐 대선사(大禪師)에 이르렀다. 그는 일찍이 운문사(雲門寺)에 머물렀었는데 위인이 강직하므로 한때 유명한 사대부들이 많이 그를 따랐다. 시 짓기를 즐겨 산인체(山人體)를 체득하였다. 그가 일찍이 보현사(普賢寺)에 쓴 시는 이러하다.
爐火煙中演梵音-화롯불 연기 속에 범어를 익히니
寂寥生白室沈沈-고요한 속에 일광은 비치는데 집은 침침하네
路長門外人南北-길 문 밖에 나 있으매 사람들은 남북으로 오가고
松老巖邊月古今-소나무 바위 가에 늙었는데 달은 고금에 밝구나
空院曉風饒鐸舌-빈 절 새벽 바람 목탁소리 요란하고
小庭秋露敗蕉心-작은 뜰 가을 이슬 파초 상하누나
我來寄傲高僧榻-내가 와서 고승의 자리에 앉으니
一夜淸談直萬金-하룻밤 청담은 그 값어치 만금이어라
그윽한 풍치가 담겨 있으며, 함련(頷聯)은 사람들의 전송(傳誦)하는 바가 되었다. 그는 호를 송월화상(松月和尙)이라 하였다.
내가 꿈에 깊은 산에서 올라가 길을 잃어서 어느 골짜기에 이르니, 누대(樓臺)가 매우 특이하게 화려하였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여기가 어떤 곳이냐고 물으니, 선녀대(仙女臺)라고 대답하였다. 조금 뒤에 미인 6~7명이 문을 열고 나와서 맞이하므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더니, 이내 시를 청하였다. 그래서 나는 곧 다음과 같이,
路入玉臺呀碧戶-길 따라 옥대에 들매 푸른 문이 열리더니
翠蛾仙女出相迎-아름다운 선녀들 나와서 서로 맞이하네
고 불렀더니, 여러 선녀들은 자못 기뻐하지 않았다. 나는 비록 그 까닭은 몰랐지만 곧,
明眸皓齒笑相迎-밝은 눈동자와 흰 이로 웃으며 맞이하니
始識仙娥亦世情-선녀 또한 세정 있음을 비로소 알겠네
고 고쳐 지었다. 여러 선녀들이 다음 구를 계속 지으라고 청하기에, 내가 여러 선녀들에게 사양하니, 한 선녀가 다음과 같이 연속시킨다.
不是世情能到我-세정이 나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爲憐才子異於常-재자가 범상한 사람과 다름을 어여뻐해서이다
내가,“선녀도 운자를 그릇 쓰느냐?”
하니, 박장 대소하였다. 따라서 꿈을 깼다. 나는 추후에 그 시를 연속하여 다음과 같이 지었다.
一句纔成驚破夢-한 구를 겨우 이루고 놀라 꿈을 깨었으니
故留餘債擬尋盟-짐짓 빚을 남겨 다시 만날 기회로 삼노라
서백사(西伯寺) 주지(住持) 돈유 선사(敦裕禪師)가 시 두 수를 부쳐왔다. 사자(使者)가 문에 이르러 독촉하므로 주필(走筆)로 다음과 같이 화답해 부쳤다.
不是皇恩雨露疏-우로 같은 임금 은혜 성기는 게 아니라
煙霞高想自囗幽-연하의 높은 생각 스스로 - 원문 1자 빠짐 - 그윽해서라오
須知紫闥催徵召-임금께서 바삐 부르실 줄 아오니
休憐靑山久滯留-푸른 산 사랑해 오래 머물 생각 마오
遁世眞人甘屛跡-세상을 은둔하는 진인은 기꺼이 자취를 감추었는데
趍時新進競昂頭-시세를 따르는 신진들은 다투어 머리를 내미네
象王何日來騰踏-상왕(象王)이 어느 날에나 오셔서
狐鼠餘腥掃地收-호서의 비린내를 쓸어버릴는지
莫道長安鯉信疏-장안의 서신이 성기다 마소
俗音那到水雲幽-세속의 소리가 어떻게 그윽한 수운에 이르겠소
巖堂煙月棲身穩-그대는 암당의 연월에서 편안히 은거하시는데
京輦風塵戀祿留-나는 경연의 풍진에서 녹봉 그리워 머문다오
道韻想君風入骨-생각건대 그대는 도의 풍치가 골수에 스몄을 터인데
宦遊憐我雪蒙頭-가련하도다 나는 벼슬길에서 머리가 희었다오
掛冠何日攀高躅-어느날에나 벼슬 버리고 고상한 그대를 따라
六尺殘骸老可收-육척의 쇠잔한 몸 고이 늙을꼬
또 별도로 한 수를 다음과 같이 지어서 촉(燭)을 준 데 대해 사례하였다.
東海孤雲十世孫-해동 고운의 십세손인데
文章猶有祖風存-문장에는 오히려 선조의 유풍이 있구려
최치원(崔致遠)의 10세 손이다. 치원의 자는 고운(孤雲)이다.
兩條金燭兼詩貺-두 자루 금촉에 시까지 겸해 주셨으니
詩足淸心燭破昏-시는 족히 마음을 밝히겠고 촉은 어둠을 밝히리
선사는 다음과 같이 답서를 보내왔다.
“나는 그 시가 인물되어 전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이제 간판에 새겨 벽 위에 걸어서 길이 전하게 했소.”
어느날 밤 꿈에 어떤 사람이 푸른 옥으로 된 조그마한 연적(硯滴)을 나에게 주기에, 두드려보니 소리가 나고 밑은 둥글고 위는 뾰족하였으며, 매우 작은 두 구멍이 있었는데, 다시 보니 구멍이 없어졌다. 꿈에서 깨어 그를 이상히 여겨 시로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夢中得玉甁-꿈속에 옥병을 얻었는데
綠瑩光鑑地-푸른 옥 빛이 땅을 환히 비치네
扣之鏗有聲-두드리니 쟁그랑 소리 나고
緻潤宜貯水-단단하고 윤택하니 물 담기 알맞다
剩將添硯波-여유있게 벼루에 물을 부어서
快作詩千紙-시 천 장을 쾌히 지으리라
神物喜幻化-조물주는 변화하는 걸 기뻐하고
天工好兒戲-천신은 아이의 장난 같은 일을 좋아하는구려
脗然飜閉口-갑자기 구멍이 틈없이 닫혀져서
不受一滴沘-한 방울 물도 받지 않는군
有如仙石開-신선 돌에 틈이 열려서
罅縫流靑髓-그 틈에서 석종유(石鐘乳)가 흐르는 것과 같으니
須臾復堅合-잠시 뒤엔 다시 굳게 닫혀져서
不許人容指-사람의 쏜가락도 용납하지 않는다
混沌得七竅-혼돈이 일곱 구멍을 얻더니
七日乃見死-이레 만에 바로 죽었노라
怒風號衆穴-폭풍이 뭇구멍에서 일어서
萬擾從此起-온갖 요란이 이로 좇아 일어났다
鑽瓠憂屈轂-박을 쪼개는 일은 굴곡(屈轂)에게 걱정을 끼쳤고
穿珠厄夫子-구슬을 꿰는 일은 부자를 괴롭혔다
凡物貴其全-모든 물건은 그 온전한 것이 귀하니
瓠鑿反爲累-박을 쪼개는 일은 도리어 누가 된다
形全與神全-형체가 온전함과 정신이 온전함에 관해서는
要問漆園吏-칠원리(漆園吏)에게 물어보라
지주사(知奏事) 최공(崔公)의 집에 천엽류(千葉榴) 꽃이 만발하였다. 그것은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한(內翰) 이인로(李仁老)ㆍ내한 김극기(金克己)ㆍ유원(留院) 이담지(李湛之)ㆍ사직(司直) 함순(咸淳)과 나를 특별히 초청하여 문자를 내서 시를 짓게 하였다. 나의 시는 다음과 같다.
玉顔初被酒-백옥 같은 미인 얼굴 처음 술에 취하여
紅暈十分侵붉은 빛이 십분이나 더하듯
葩馥鍾天巧꽃다운 꽃송이 조물주의 온갖 기교 모였고
姿嬌挑客尋아리따운 그 자태 유객의 마음 끄누나
爇香晴引蝶훈훈한 향기 맑은 날에 나비를 이끌고
散火夜驚禽-불빛처럼 환한 꽃 밤에 새를 놀라게 하네
惜艶敎開晩-그처럼 고운 것을 늦게 피도록 하였으니
誰知造物心-누가 조물주의 마음을 알겠는가
내가 늦게 출세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내가 중추(中秋)에 용포(龍浦)에 배를 띄워 낙동강(洛東江)을 지나서 견탄(犬灘)에 정박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밤은 깊고 달은 밝은데, 급류의 여울은 돌을 치고 푸른 산은 물결에 잠겼으며 물은 매우 맑으니 뛰는 고기와 달리는 게를 굽어 보며 셀 수가 있었다. 그래서 배에 의지하여 길게 휘파람부니 기분이 상쾌하여 쇄연(灑然)히 봉영(蓬瀛 봉래(蓬萊)와 영주(瀛洲))의 생각이 감돌았다. 강가에 용원사(龍源寺)가 있었는데, 그 절 중이 나와 맞이한다. 서로 대하여 약간 이야기를 나누고 따라서 두 수의 시를 이렇게 썼다.
水氣凄凉襲短衫-물기운 서늘하여 짧은 적삼 엄습하는데
淸江一帶碧於藍-기나긴 맑은 강 쪽보다 푸르구나
柳餘陶令門前五-버들은 도 연명의 문전에 있던 다섯 그루 버들이요
山勝禺强海上三-산은 우강의 해상에 있는 삼신산(三神山)보다 낫다
天水相連迷俯仰-하늘과 물이 서로 연했으니 상하 구별 어렵고
雲煙始捲辨東南-구름과 연기 걷히니 동남을 구별하겠네
孤舟暫繫平沙崖-외로운 배를 잠깐 평평한 모래 언덕에 매니
時有胡僧出小庵-때마침 자그마한 암자에서 스님이 나온다
淸曉泛龍浦-맑은 새벽에 용포에 배를 띄워
黃昏泊犬灘-황혼에 견탄에 정박하노라
點雲欺落日-조각 구름은 떨어지는 해를 가리우고
狠石捍狂爛-굳센 돌은 미친 물결을 막는구나
水國秋先冷-수국이라 가을 날씨 먼저 서늘하고
船亭夜更寒-선정이라 밤 공기 다시 차갑다
江山眞勝畫-강산의 진경이 그림보다 나으니
莫作畫屛看-그림 병풍으로 보지 말지어다
흥이 날 때 경솔히 읊은 것이라 또한 격률(格律)에 맞는지 알지 못하겠다.
다음날 배를 띄워 노를 젓지 않고 물의 흐름을 따라서 동으로 내려가 밤에 원흥사(元興寺) 앞에 정박하여 배 속에서 기숙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밤은 고요하고 사람은 잠들었는데, 오직 들리는 것은 물 가운데서 고기가 팔딱팔딱 뛰는 소리뿐이었다.
나는 팔뚝을 베고 조금 졸았으나 밤 기운이 차가워서 오래 잘 수가 없었다. 어부의 노래소리와 상인의 피리소리는 원근에서 서로 들리고, 하늘은 높고 물은 맑으며 모래 빛에 언덕은 하얗고 달빛에 찬란한 물결은 선각(船閣)을 흔든다. 앞에는 기암 괴석이 있어 마치 범이 걸터앉고 곰이 쭈그리고 앉아 있는 듯하였다. 나는 건(巾)을 잦혀 쓰고 배회하노라 자못 강호(江湖)의 낙을 얻었는데, 하물며 날마다 미인을 끼고 관현(管絃)ㆍ가무(歌舞)로 마음껏 논다면 그 낙을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다음과 같은 두 수의 시를 지었다.
碧天浮遠水-푸른 하늘 아득한 물에 떠 있는데
雲島認蓬萊-구름에 잠긴 섬 봉래산인 줄 알았네
浪底紅鱗沒-물결 밑엔 붉은 고기 떠 다니고
烟中白鳥來-연기 속엔 흰 새 날아오네
灘名隨地換-여울 이름은 곳에 따라 바뀌고
山色逐舟回-산 풍경은 배를 따라 달라진다
喚取江城酒-강성의 술을 불러와서
悠然酌一盃-유연히 한 잔을 따르노라
夜泊沙汀近翠巖-밤에 모래톱 푸른 바위 가까이에 정박하고
坐吟蓬底撚疏髥-배 안에 앉아 시 읊으며 성긴 수염 쓰다듬는다
水光瀲瀲搖船閣-물결은 출렁출렁 선각을 흔들고
月影微微落帽簷-달빛은 휘영청 모자 챙을 비추누나
碧浪漲來孤岸沒-푸른 물결 밀려오니 우뚝한 언덕 잠기고
白雲斷處短峯尖-흰 구름 끊어진 곳에 나직한 산봉우리 뽀족하이
管聲嘲哳難堪聽-요란한 관악 소리 차마 못 들어
須喚彈箏玉指纖-쟁(箏) 타는 섬섬옥수 부르노라
이때 한 아전을 시켜서 피리를 불게 하였다.
나는 조칙(朝勅)을 받들어 변산(邊山)에서 벌목(伐木)하는 일을 맡아보았다. 벌목하는 일을 항시 감독하므로 나를 ‘작목사(斫木使)’라고 부른다. 나는 노상에서 장난삼아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權在擁車榮可詑-호위하는 수레 속에 권세 부리니 그 영화 뽐낼 만한데
官呼斫木辱堪知-벼슬 이름 작목사라 하니 부끄럽기 그지없네
이것은 나의 하는 일이 지게꾼이나 나무꾼의 일과 같기 때문이다.
처음 변산에 들어가니 겹겹이 산봉우리가 솟았다 엎뎠다 구부렸다 폈다 하였고 옆에 큰 바다가 굽어보이고 바다 가운데 군산도(群山島)ㆍ위도(蝟島)가 있는데, 모두 조석으로 이를 수가 있었다. 해인(海人)들이 말하기를,
“순풍을 만나면 중국에 가는 것도 멀지 않다.”
하였다. 일찍이 주사포(主使浦)를 지날 때 밝은 달이 고개에 떠올라 모래 벌판을 휘영청 비추어서 기분이 상쾌하기에 고삐를 놓고 천천히 가며 앞으로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한참 동안 침음(沈吟)하였더니 마부가 이상히 여겼였는데,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지었다.
一春三過此江頭-한 해 봄에 세 번이나 이 강가를 지나니
王事何曾怨未休-왕사가 어찌 이렇게도 쉬지 못하게 하는고
萬里壯濤奔白馬-만리라 장엄한 파도는 백마가 달리는 듯
千年老木臥蒼虯-천년이라 늙은 나무는 푸른 교룡이 누웠는 듯
海風吹落蠻村笛-바닷바람은 만촌에서 나는 피리소리 전하고
沙月來迎浦谷舟-모래에 비친 달빛은 포곡에 뜬 배를 맞이한다
擁去騶童應怪我-추동을 거느리고 가니 응당 나를 괴이하게 여기리라
每逢佳景立遲留-아름다운 경치 만날 적마다 오래 머무네
나는 당초 시를 지을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갑자기 저절로 지어졌다.
시(詩)에는 아홉 가지의 불의체(不宜體 마땅하지 않은 체)가 있으니, 이는 내가 깊이 생각해서 자득한 것이다.
한 편 안에 옛사람의 이름을 많이 쓰는 것은 바로 재괴영거체(載鬼盈車體)요, 옛사람의 뜻을 절취하는 것은, 좋은 것을 절취함도 오히려 불가한데 절취한 것도 또한 좋지 못하다면 이것은 바로 졸도이금체(拙盜易擒體)다. 그리고 강운(强韻)을 근거없이 내어 쓰는 것은 바로 만노불승체(挽弩不勝體)요, 그 재주를 요량하지 않고 운자를 정도에 지나치게 내는 것은 바로 음주과량체(飮酒過量體)요, 험한 글자를 쓰기 좋아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혹되기 쉽도록 하는 것은 바로 설갱도맹체(設坑導盲體)요, 말이 순조롭지 못한데 사람이 그것을 쓰도록 힘쓰는 것은 바로 강인종기체(强人從己體)요, 통상 말을 많이 쓰는 것은 바로 촌부회담체(村夫會談體)요, 구가(丘軻 구는 공자 이름이고 가는 맹자 이름이다)같은 것을 쓰기 좋아하는 것은 바로 능범존귀체(凌犯尊貴體)요, 거친 말을 산삭하지 않은 것은 바로 낭유만전체(莨莠滿田體)다. 이 불의체를 능히 면한 뒤에야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다.
대저 시란 뜻으로 주를 삼는 것이니 뜻을 베푸는 것이 가장 어렵고, 말을 꾸미는 것이 그 다음 어렵다. 뜻은 기운으로 주를 삼는 것이니, 기운의 우열로 말미암아 곧 천심(淺深)이 있게 된다. 그러나 기운은 하늘에 근본한 것이니, 배워서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운이 약한 자는 문장을 수식하는 데 공을 들이고 뜻으로 우선을 삼지 않는다. 대개 문장을 다듬고 문구를 수식하면 그 글은 참으로 화려할 것이나, 속에 함축된 심후한 뜻이 없으면 처음에는 꽤 볼 만하지만, 재차 음미할 때에는 맛이 벌써 다한다. 시를 지을 때에는 먼저 낸 운자가 뜻을 해칠 것 같으면 운자를 고쳐 내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의 시를 화답할 경우에 만일 험한 운자가 있거든, 먼저 운자의 안치할 바를 생각한 다음에 뜻을 안배해야 한다.
시구 중에 대(對)를 맞추기가 어려운 것이 있으면, 한참 동안 침음(沈吟)해 보아서 능히 쉽게 얻을 수 없거든 곧 그 시구는 아낌없이 버리는 것이 좋다. 시를 구상할 때에 깊이 생각해 들어가서 헤어나지 못하면 거기에 빠지고, 빠지면 고착되고, 고착하면 미혹되고, 미혹하면 집착되어 통하지 못하게 되니, 오직 이리저리 생각하여 변화 자재하게 해야 원만하게 된다.
혹은 뒷글귀로 앞글귀의 폐단을 구제하기도 하고, 한 글자로 한 글귀의 안전함을 돕기도 하니, 이것은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순전히 청고(淸苦)로 시체(詩體)를 삼으면 산인(山人)의 체격(體格)이요, 순전히 화려한 말로 시편을 장식하면 궁액(宮掖)의 체격이다. 오직 청경(淸警)ㆍ웅호(雄豪)ㆍ연려(姸麗)ㆍ평담(平淡)을 섞어 쓴 다음에야 체격이 갖추어져서, 사람들이 능히 일체(一體)로 이름하지 못한다.
시의 병통을 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기쁜 일이다. 그의 말이 옳으면 받아들이고 옳지 않으면 나의 뜻대로 할 뿐이다. 어찌 듣기 싫어하기를 마치 임금이 간언을 거절하는 것과 같이 하여, 끝내 자기의 허물을 모르고 넘길 필요가 있겠는가?
무릇 시가 이루어지면 반복 관찰하되, 지은 것으로 보지 말고 다른 사람이나 또는 평생 심히 미워하는 자의 시를 보듯하여, 하자(瑕疵)를 열심히 찾아도 오히려 하자가 없어야만 그 시를 세상에 내놓는다.
무릇 옛사람의 시체를 본받으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시를 습독(習讀)한 뒤에 본받아야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표절도 오히려 어렵다. 도둑에게 비하면, 먼저 부잣집을 엿보아 그 집 문과 담의 위치를 눈익혀 둔 뒤에야 그 집을 잘 들어가 남의 것을 탈취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되 남이 모르게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남의 낭탁(囊橐)을 더듬고 협상(篋箱)을 열 때에 반드시 잡힐 것이다.
나는 젊을 때부터 방랑하여 몸을 단속하지 않고 글 읽는 것이 매우 정하지 못하여, 비록 육경(六經)이나 자사(子史)의 글도 섭렵했을 뿐, 원리를 궁구하는 지경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제가(諸家)ㆍ장구(章句)의 글임에랴. 이미 그 글을 익숙히 알지 못하는데 그 체를 본받고 그 말을 도둑질하겠는가. 그래서 부득불 새말로 짓게 되는 것이다.
《서청시화(西淸詩話)》에 이산보(李山甫)가 한사(漢史)를 보고 읊은 시가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王莽弄來曾半沒-왕망이 희롱해 오매 일찍이 반쯤 빠졌더니
曹公將去便平沈-조공이 가져 가니 문득 깊이 잠겼다
나는 이를 아름다운 시구로 여긴다. 그런데 고영수(高英秀)라는 자가 기롱하기를 ‘파강시(破舡詩)’라 하였다.
나는 생각건대, 무릇 시란 물(物)의 체(體)를 말하기도 하고, 또는 그 체를 말하지 않고 곧장 그 용(用)을 말하는 것도 있다. 산보(山甫)가 뜻을 밝힌 것은, 필시 한(漢) 나라를 배[舡]에 비유하고 곧장 그 용을 말하기를 ‘반쯤 빠졌다’ ‘깊이 잠겼다’고 한 것이리라. 만일 그 당시에 산보가 있어서 말하기를,
“자네가 내 시를 파강시라고 하니, 그렇다. 내가 한 나라를 배에 비유하여 말하였는데, 장하도다, 자네가 능히 알아봄이여!”
라고 하였더라면, 영수(英秀)는 무슨 말로 답변했겠는가. 《시화》에서는 또한 영수를 함부로 지껄이는 경박한 무리로 여겼다면 반드시 그의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천하에 여의치 않은 일이 십중 팔구인데 인생이 이 세상에 처할 때 뜻에 맞는 것이 그 얼마인가?”
라고 하였다. 나는 일찍이 위심시(違心詩) 열두 구를 지었는데, 그 시는 이러하다.
人間細事亦參差-인간의 일들은 고르지 못하여
動輒違心莫適宜-걸핏하면 마음과 틀린다
盛歲家貧妻尙侮-젊을 땐 집이 가난하여 아내도 업신여기더니
殘年祿厚妓常隨-늘그막엔 녹봉이 두둑하니 기생이 항시 따른다
雨霪多是出遊日-비 올 때 나가 노는 날이 많고
天霽皆吾閑坐時-갠 날은 모두 내가 한가히 앉아 있을 때라
腹飽輟飡逢美肉-배 불러 숟가락 놓으니 아름다운 고기를 만나고
喉瘡忌飮遇深巵-목구멍 아파 술 금하니 좋은 술을 만난다
儲珍賤售市高價-저장된 보배를 헐하게 팔고 나니 값이 오르고
宿疾方痊隣有醫-묵은 병이 막 낫고 나니 이웃에 의원이 있네
碎山不諧猶類此-세쇄한 일이 잘 아니됨도 이와 같은데
揚州駕鶴況堪期-양주에서 학 타는 일은 더구나 기대하겠나
대저 만사가 마음과 틀리는 것은 거개 이와 같다. 작게는 일신의 영췌(榮悴)ㆍ고락(苦樂), 크게는 국가의 안위(安危)ㆍ치란(治亂)이 마음과 틀리지 않은 게 없다. 졸시(拙詩)는 비록 작은 것을 들었으나 그 뜻은 실로 큰 것을 비유하는 데 있다. 세상에서 전하는 사쾌시(四快詩)는 이러하다.
大旱逢嘉雨-큰 가뭄에 좋은 비를 만나는 것이요
他鄕見故人-타향에서 친구를 보는 일이로다
洞房花燭夜-동방에 화촉을 밝히는 밤이요
金榜掛名辰-금방에 이름이 걸릴 때일러라
그러나 가뭄 끝에 비록 비를 만난다 하더라도 비 뒤에는 또 가물 것이고, 타향에서 친구를 본다 하더라도 방금 또 작별할 것이고, 동방 화촉이 생이별하지 않을 것이라 어찌 보장하며, 금방에 이름 걸리는 것이 우환(憂患)의 시초가 아니라는 것을 어찌 보장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마음에 틀리는 게 많고 마음에 맞는 게 적은 것이니 탄식할 뿐이다.
첫댓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