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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56이세진
봄나들이 – (상주)천봉산,노음산,옥녀봉,국수봉
1. 노음산 지난 암봉에서 조망, 멀리 가운데는 백화산
부끄럽게 백발 되어 구름 산에 다시 오니
연무에 싸인 정경 고향 숲의 모습이네
시야 가득 복사꽃들 봄은 다해 가는데
술잔 들고 물가에서 그윽하게 읊조리네
雲山白首愧重尋
煙景依依認故林
滿眼桃花春欲暮
一樽臨水費幽吟
ⓒ 한국고전번역원 | 조순희 (역) | 2013
――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1587~1638), 「늦은 봄 산에서 노닐다(暮春遊山)」
▶ 산행일시 : 2026년 4월 5일(일), 맑음, 미세먼지 보통
▶ 산행인원 : 2명(악수, 광인)
▶ 산행코스 : 상주터미널,임란북천전적지,자산,묘봉,장고개,천봉산,356m봉,도로, 201m봉,540m봉 남동릉,
임도,540m봉,노음산,673m봉,옥녀봉,국수봉,작은점바위골,고철처리장,고향산천휴게소,북천벚꽃길,
능암리
▶ 산행거리 : 도상 15.0km
▶ 산행시간 : 08시간 17분(08 : 13 ~ 16 : 30)
▶ 교 통 편 : 동서울터미널에서 상주를 오가는 고속버스 이용
▶ 구간별 시간
06 : 00 – 동서울터미널
08 : 13 – 상주터미널, 산행시작
08 : 29 – 임란북천전적지, 천봉산 정상 2.6km
09 : 05 – 묘봉(292m), 쉼터
09 : 06 – 장고개, ┣자 갈림길 안부, 천봉산 정상 0.8km
09 : 24 – 천봉산(天峰山, △435.8m), 휴식( ~ 09 : 42)
10 : 00 – 천봉산 북릉 계단 내리다 왼쪽 사면 트래버스
10 : 26 – 2차선 도로
10 : 33 - 201m봉
10 : 50 – 196m봉, 휴식( ~ 11 : 00)
11 : 36 – 임도
12 : 05 – 540m봉, 휴식( ~ 12 : 20)
12 : 55 – 정자 쉼터, 전망바위
13 : 10 – 노음산(露陰山, △725.6m), 휴식( ~ 13 : 25)
13 : 44 – 673m봉, 전망대
14 : 16 – 옥녀봉(622m)
14 : 22 - ┫자 갈림길 안부
14 : 38 – 국수봉(581m)
16 : 08 – 고철처리장
16 : 10 – 도로, 고향산천휴게소, 북천 벚꽃길
16 : 30 – 능암리(능바위, 생편) 버스정류장, 산행종료, 상주 군내버스(16 : 36)
16 : 53 – 상주터미널, 저녁 및 휴식
18 : 50 – 동서울행 버스 출발
21 : 43 - 동서울터미널
2.1.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노음산(2023.11.23. 이미지 생성, 고도 3.84km)
2.2. 산행지도
▶ 천봉산(天峰山, △435.8m)
낯선 사람들과 버스 타고 여행갈 때에는 좌석 운이 좋아야 한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았고, 광인 님은 뒤쪽 중간쯤에
앉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06시에 출발하는 상주행 첫 버스를 타려고 새벽부터 서둔 탓에 느긋이 졸음을 청하며 쉬
려는데, 광인 옆에 앉은 연만한 남자 두 분이 하도 떠들어대기에 광인 님이 마지못해 목소리 좀 낮추어 줄 것을 요청
하였다. 잠시 목소리가 낮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높아지고, 휴대폰 유튜브로 음악까지 틀었다.
버스기사님이 점잖게 한 말씀하였다.
“뒤의 손님, 음악은 혼자만 들으세요. 이어폰 끼고.”
그러자 음악을 껐고 조용해졌다.
버스는 경유지인 점촌에 들르고 주유까지 하였다. 그 시간이 약간 걸려 화장실을 다녀오고, 버스 밖에 나가 맨손운
동도 하였다. 그때 뒤에서 떠들던 손님들은 아까의 광인 님과 버스기사님으로부터 들은 핀잔이 내내 분했는지, 자기
는 상주사람인데 좀 그러면 안 되느냐고 항의했다.
이른 아침이라 상주가 조용하다. 나는 아침을 거르고 준비한 먹거리가 부족할 듯해서 터미널 주변의 가게나 편의점
을 기웃거렸으나 문 연 데가 없다. 그냥 간다. 북천을 북천교로 건너고 그 뒤 지능선을 오를 작정이다. 광인 님은
등로가 있을까 의심했다고 한다. 임란북천전적지 오른쪽 담장 옆에 천봉산을 산책하는 등로가 잘 닦여 있는 것이
아닌가! 천봉산 정상 2.6km, 세천 먹거리촌 약 7.4km.
임란북천전적지는 임진왜란 때 조선 중앙군과 왜병의 선봉주력부대가 최초로 싸운 장소로 800여 명이 순국한 곳이
다. 1592년(선조 25) 일본군 주력 부대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1만 7000명이 조총으로 무장하고
침공하여 왔다. 순변사 이일(李鎰)은 싸움도 하기 전에 성을 버리고 도주하였으나, 상주판관 권길權吉)과 호장 박걸
(朴傑), 종사관인 윤섬(尹暹), 이경류(李慶流), 박호(朴箎)등의 경군과 사근도찰방 김종무(金宗武), 의병장 김준신
(金俊臣) 등은 800여 사병과 함께 죽기로 맹세하고 역전 분투하였으나 전원 전사하였다.(디지털상주문화대전)
어제 오전에 이곳에는 비가 제법 내렸다고 한다. 대기는 삽상하고 땅은 촉촉하다. 흙먼지가 일지 않아 걷기 좋다.
이른 아침에 벌써 천봉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그들은 간편한 차림인데 우리는 중무장하여
약간 멋쩍다. 산행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연신 거친 숨 몰아쉬며 갈지자 그린다. 곳곳이 벤치 놓인 쉼터이다.
자산(215m) 오르면 가파름은 잠시 수그러들다가,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은 데크계단으로 오른다.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은 데크계단이 못마땅했는지 그 옆 바윗길로 다녔다. 데크계단을 다 오르면 묘봉(292m)이다.
한 피치 내려 ┣자 갈림길 안부인 장고개 지나고 천봉산 오르는 두 갈래 길이 있다. 오른쪽은 0.6km, 왼쪽은 0.7km
이다. 왼쪽으로 간다. 사면 길게 돌고 얕은 계곡 지나고 다시 사면 돌아 지능선을 잡는다. 주변은 봄빛이 환하다.
가까이 또 멀리 피어 있는 진달래와 산벚나무가 화사하다. 그들의 응원 받아 씩씩하게 오른다.
돌탑 지나고 천봉산 정상이다. 널찍한 공터 가장자리에 이층 정자가 있다. 산불감시원은 출근하여 정자를 쓸고 닦는
다. 우리는 휴식하면서 (탁주에 진달래 꽃잎을 띄운) 두견주를 대작할 터여서 정자에는 오르지 않고, 정자 뒤쪽 산벚
나무 꽃그늘아래에 자리 잡는다. 딱히 아침이고 점심이 없다. 가다가 쉬며 주전부리한다. 대작하는 두견주가 아주
맛 난다.
천봉산(天峰山)은 사방에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있어 정자에 올라도 아무런 조망을 할 수 없다. 삼각점은 ‘상주 415,
2003 복구’이다. 다음은 천봉산 안내석에 새긴 내용이다.
“一名 석악(石岳)이라 부르는 상주의 진산(鎭山)이다. 상주의 북쪽에 솟아 남쪽의 갑장산(淵岳), 서쪽의 노음산(露
岳)과 더불어 상주 삼악(三岳)을 이룬다. 산의 높이는 435.8m로 봉황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기상을 하고 있다 하여
天鳳山이라 부르기도 하며 봉황이 앞들 죽전의 죽실(竹實)을 따먹는 형국이라 전해온다.
정상에 서면 넓은 평야와 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지고 새벽에는 日出의 광경을 볼 수 있다.
남쪽 지봉(枝峰)의 자산성과 그 아래 임란북천전적지가 있으니 이 일대는 외침을 막은 요충지임을 말해주고,
산 아래 영암각(靈岩閣) 미륵바위와 성황사는 土俗信仰의 산실(産室)이다.”
3. 천봉산 오르면서 뒤돌아본 노음산
4. 개복숭아꽃
5. 노음주릉에서 조망, 멀리 오른쪽은 속리산, 그 앞 왼쪽은 남산
6. 멀리 가운데는 갑장산
7. 가운데가 천봉산, 오른쪽 뒤는 병풍산(366m)
8. 앞은 채릉산(477m)
9. 멀리 오른쪽은 형제봉, 가운데 왼쪽은 구병산
10. 멀리 가운데는 속리산
11. 멀리 왼쪽은 수선산, 기양산, 그 오른쪽 뒤는 미모산, 우태산, 그 오른쪽은 백운산, 그 앞은 서산
12. 앞은 옥녀봉과 국수봉(오른쪽)
▶ 노음산(露陰山, △725.6m)
노음산을 향한다. 일단 북진한다. 천봉산과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를 지나고 가파른 계단을 내리다말고, 우리가 가는
데가 길이다 하고 왼쪽의 가파른 사면을 트래버스 한다. 근래 드물게 만나는 험로다. 형극의 길이다. 가시나무 숲을
뚫는다. 산초나무도 아니고 청미래 덩굴도 아닌 데 사나운 가시가 다닥다닥 달렸다. 엉겁결에 붙들어 손바닥이 오래
도록 속속 아리다. 장갑을 끼었어도 그렇다. 얇은 바지와 셔츠도 무방비상태다.
골짜기로 뚝 떨어졌다가 건너편 지능선 오르기 세 번이다. 산세를 육안으로 보고 지도를 자세히 읽어도 엉뚱한 데를
헤매는 게 아니다. 고도 150m를 어렵게 낮추어 바닥 친 안부는 2차선 포장도로다. 곧바로 능선에 오른다. 능선 양
쪽에는 임산물과 특수작물(약초 등)을 재배하였다고 출입하지 못하도록 경고문 붙이고 그물을 둘러쳤다. 201m봉
이 준봉이다. 오르기 힘든 가시밭길이어서 그러하다. 한편, 길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차하면 골로 간다.
북진하다 왼쪽으로 직각방향 틀고, 산간고개 지나고 한바탕 숨차게 오르면 196m봉이다. 남서진 한다. 아슬아슬하
게 능선 마루금을 잡는다. 맨발 님의 색 바랜 산행표지기를 본다. 광인 님은 맨발 님의 연세가 지금쯤은 80이 넘지
않았을까 한다. 험악한 산길이라며 투정하는 내가 머쓱하다 못해 부끄럽다. 가시밭길은 계속된다. 지도에 없는 임도
와 만난다. 임도 건너 능선에 붙는다. 인적인지 수적인지 낙엽이 약간 눌린 데를 골라 오른다.
곧추선 오르막 고도 250m이다. 4족 보행한다. 1보 전진하려다 번번이 2보 후퇴한다. 이런 데 덕순이가 있던지,
야생화라도 피었으면 그 얼마나 발걸음이 부드러울 텐데 퍽 아쉽다. 가시나무도 이런 오르막에는 없다. 붙들 돌부리
풀뿌리도 없다. 한 발 한 발 발자국계단 만들며 오른다. 540m봉. 노음산 주릉이다. 마치 고산준봉을 오른 듯한 기분
이다. 그늘진 낙엽더미 위에 널브러진다. 이제는 인적이 뚜렷하다. 한 차례 뚝 떨어졌다가 길게 오른다.
긴 한 피치 가파르게 오르면 노음산을 남장사에서 중궁암을 거쳐 오르는 주등로와 만난다. 아, 고속도로다. 광인 님
말씀, 제도권에 들어오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단다. 조금 더 가자 바위절벽 위 전망바위 옆에 2층 정자가 있다. 비로
소 상주 주변의 뭇 산들을 살핀다. 막판 까칠한 오르막은 데크계단이다. 이윽고 노음산 정상이다. 이곳은 아무런
조망이 없다. 고서에는 노음산(露陰山)을 “주 서쪽 10리에 있다. 혹 서로악(西露嶽)이라고 칭한다. 북석악(北石嶽),
남연악(南淵嶽)과 더불어 상산삼악(商山三嶽)이라 칭한다.”라고 한다. 삼각점은 보기 드문 1등이다. ‘상주 11’
노음산은 여러 시문에서 언급된다. 다음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였던 소재 노수신(穌齋 盧守愼, 1515~1590)의
「노음산을 생각하다. 조석간(趙石磵)이 여기에 우거하면서 거짓 미치광이 행세를 하였다. 우연히 지지(地志)를
열람하다가 느낌이 있어 쓰다(懷露陰山 趙石磵寓居佯狂。偶閱地志。有感書。)」이다.
노음산이 어디쯤에 있었던가
상주 서쪽으로 십 리쯤인데
소 타고 돌 계곡 길 지날 적에는
오직 한가함을 달과 함께 하였네
何許露陰山
州西十里間
騎牛石磵逕
惟有月同閑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20
위 시의 조석간(趙石磵)은 고려 말기 문신이었던 조운흘(趙云仡, 1332~1404)을 말한다. 그는 전법총랑(典法摠郞)
으로서 관직을 사퇴하고 와서 노음산(露陰山) 밑에 살며 스스로 석간(石磵) 서하옹(棲霞翁)이라 이름하고, 거짓으
로 미쳐 스스로 도회(韜晦)하여 출입할 때는 반드시 소를 탔다. 기우도찬(騎牛圖贊)와 석간가(石磵歌)를 지어서 뜻
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묘지명(墓誌銘) 지었다.
공자는 행단 위에 계시었고,
석가는 쌍수 아래 계시었네.
고금의 성인들과 현인들 중에,
그 어찌 독존한 분 있었으리오.
허허, 인생사가 이제 다 끝났구나
孔子杏壇上
釋迦雙樹下
古今聖賢人
豈有獨存者
咄咄人生事畢
또한 그의 시 「소를 타고 가는 그림을 보고 찬하다(騎牛圖贊)」는 다음과 같다.
나는 함곡관을 나선 노자만 못하고
나는 융중에 은거하던 제갈무후만 못하네.
우뚝한 저 하나의 물건(소)과 더불어
세상 만물과 다투지 아니하니
석간의 소나무요
노음산의 바람이로다.
吾不如老子之出關
吾不如武侯之隆中
兀然一物
與物無競
石磵之松
露陰之風
13. 멀리 가운데는 백화산(933m), 그 뒤는 주행봉(865m)
14. 멀리 왼쪽은 미모산, 우태산, 그 오른쪽은 백운산, 그 앞은 서산
15. 멀리 가운데는 갑장산(806m), 왼쪽은 백원산(524m), 오른쪽은 수선산과 기양산
16. 멀리 가운데는 구왕봉과 희양산, 그 오른쪽은 뇌정산
17. 멀리 왼쪽은 팔음산(?)
18. 옥녀봉 가는 길에 뒤돌아본 노음산
19. 왜제비꽃(Viola japonica Langsd. ex DC.)
20. 멀리 가운데 오른쪽은 속리산, 맨 앞 오른쪽은 채릉산
21. 멀리 가운데는 희양산
22. 앞 왼쪽은 갈방산(508m), 그 오른쪽 뒤쪽으로는 갈모봉, 오봉산, 충터산 등
▶ 옥녀봉(622m), 국수봉(581m)
우연히 광인 님과 서울 가는 버스표 예매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상주 올 때 버스좌석이 절반도 차지 않아
서울 갈 때도 마찬가지이려니 했다. 광인 님은 진작 예매하였다며 나더러 예매할 것을 권유하였다. 바로 티머니
예매창구에 들어갔다. 8좌석이 남았다. 예매절차를 밟았다. 인터넷 송수신이 미약하여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절차대
로 사진을 찍어 올린 신용카드를 인식하는 데는 부지하세월이다.
결국 신용카드를 미리 등록해 놓은 광인 님이 예매하였다. 산을 다 내려가서 인터넷이 원활하여 예매창구를 들여다
보니 이미 매진이었다. 큰일 날 뻔했다. 산을 계속 다니려면 버스와 열차 예매창구에 신용카드를 미리 등록해 놓을
일이다.
노음산을 남쪽으로 내리는 길은 바윗길이다. 그러나 핸드레일 또는 데크계단을 설치하여 짜릿한 손맛 보는 재미가
없다. 길게 내렸다가 데크계단으로 673m봉을 오른다. 여기가 상주 최고의 조망처가 아닐까 한다. 전망대도 있다.
눈이 시원하다. 흔히 이럴 때 안복(眼福)을 누린다고 한다. 동으로는 병풍산 백원산 갑장산이, 남으로는 백운산
국수봉 백화산이, 서로는 구병산 형제봉 속리산이, 북으로는 구왕봉 희양산 뇌정산 이만봉이, 멀리서 노음산을 둘러
싸고 있다.
673m봉 내려 옥녀봉 가는 길은 하늘 가린 숲길이다. 쭉쭉 내린다. 옥녀봉은 나무숲 둘러 아무런 조망이 없다. 옥녀
봉을 약간 내린 ┣자 갈림길 왼쪽은 석장승 1.9km이고, 직진은 능암리 2.6km이다. 제도권 등로는 왼쪽 석장승 쪽
이다. 우리는 직진한다. 인적이 흐릿하다. 국수봉은 긴 한 피치 가파르게 오른다. 그런 만큼 그 정상 주변은 조망이
훤히 트인다. 백화산이 한층 가깝다. 국수봉 정상 주변은 옛 산성 터인지 석축이 길게 남았다.
국수봉에서 능암리 가는 길이 여간 사납지 않다. 낙엽이 수북하여 인적을 가렸다. 간혹 경남메아리산악회의 깔지
(땅바닥에 깐 진행방향 표시지)가 보인다. 그들은 작년 12월 4일에 고향산천휴게소에서 국수봉, 옥녀봉을 거쳐 노음
산을 올랐다. 산꾼들의 눈은 비슷하다. 실낱같은 능선을 한 치 오차 없이 찾아간다. 펑퍼짐한 사면을 치고 내려 묵은
임도와 만나고, 산모퉁이에서 능선을 내려 다시 임도와 만나고, 산판 친 능선을 내려 양쪽 계곡 합수점과 만나고, 잘
난 임도가 이어진다.
사방댐 아래 고철처리장을 지나면 도로다. 도로 건너편은 북천 벚꽃 길이다. 북천 양쪽 둑에 벚꽃 길을 조성하였다.
장관이다. 서울 가는 버스시간은 넉넉하게 남았다. 일부러라도 이 북촌 벚꽃길을 구경하러 오겠는데 이런 호사가
없다. 횡재하였다. 1km 정도 벚꽃길(벚꽃길은 더 계속된다)을 돌아가면 능암리 버스정류장이다. 때마침 상주 가는
군내버스가 달려온다.
23. 멀리 가운데는 형제봉
24. 멀리 오른쪽 뒤는 속리산
25. 국수봉 성곽 흔적
26. 왜제비꽃
27. 북천 벚꽃길
30. 멀리 가운데는 국수봉(440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