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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좋은 교육
서정희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이 질문을 해 보았을 것이다. 필자 또한 자녀를 기르면서 수없이 이 같은 질문을 내 자신에게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 보았다. 성경을 통해 답을 얻기 전까지 말이다.
언제나 성경은 답을 가지고 있다. 성경을 연구하면서 잔잔하지만 힘있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교육의 성공과 실수와 실패를 통해 나는 ‘나의 자녀를 이렇게 교육시켜야겠구나’ 또는 ‘이렇게 교육시키면 안 되겠구나’라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성경인물들의 어린 시절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의 삶을 살펴 보면서 어린 시절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고, 누가 교사가 되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으며, 무엇을 교육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성경에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몇 명의 삶을 살펴 보며 성공적인 교육과 실패한 교육에 대하여 답을 찾아 보도록 하자.
1). 성공적인 교육, 성공적인 삶
1. 다니엘과 세 친구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받아야 할 교육
성경에는 어떤 포로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잡혀간 이스라엘 포로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이 이야기를 자세히 연구하면 좋을 것이다. 바벨론으로 잡혀 간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강철처럼 원칙에 굳게 서고, 이기심으로 부패되지 않은,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그리스도인 애국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표자가 되었는데, 그들 중 하나가 바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
남달리 총명한 그들은 왕의 궁전에 뽑혀 들어가 바벨론에서 마련한 학과 과정에 입학하게 되어 왕궁의 학교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결정적인 시험이 이르러왔다. 그것은 왕의 식탁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라는 명령이었다. 그 명령은 바벨론의 왕이 특별히 베푸는 은총이었다. 그러나 왕의 식탁에서 나오는 음식은 우상숭배에 바쳤던 것이므로 이것을 먹는 일은 바벨론 신들에게 충성을 표하는 것이 될 것이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이방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먹음으로 우상숭배에 충성을 표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 음식을 먹는 체하고 그 술을 마시는 체하는 것이라도 그들의 신앙을 부인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그 세 청년은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을 모욕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또 술과 음식의 방탕으로 육체적, 지적, 영적 발전을 저해하고 싶지 않았다.
절제의 습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부모들로부터 엄격히 절제하는 습관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 이 교육은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바벨론 궁정의 부도덕한 감화 중에서도 자신들을 지키게 하는 방편이 되었다. 부패하고 사치스러운 궁정 안에는 매우 강한 유혹들이 그들을 둘러있었으므로 그들은 부절제로 그들의 몸과 정신을 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떠한 권세나 어떠한 감화도 저희가 어린 시절에 배운 하나님의 말씀과 그 원칙에서 그들을 떠나게 할 수 없었다.
성실
만일 다니엘이 하려고만 했더라면 그 환경에서 엄격한 절제의 습관에서 떠날 수 있는 그럴 듯한 핑계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음식은 왕의 은총의 표시로 주어졌으므로 그 음식을 먹어야 하고, 만일 하나님의 가르침을 고수한다면 왕의 노를 사서 그의 지위와 생명을 잃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한다면 왕의 총애를 받게 되고 자신의 뛰어난 지력을 활용해서 세속적 번영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군주의 총애를 받는 것보다 더욱 귀중했고 생명 그 자체보다 귀중했다.
원칙 안에서 뜻을 정함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이 같은 결심은 세 친구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따돌림을 받는 이상한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불명예를 돌리기보다는 차라리 그렇게 되려고 했다. 만일 그들이 환경의 압력에 굴복하여 죄와 부절제에 타협하였더라면, 원칙으로부터 이탈하는 그 일이 의(義)에 대한 그들의 판단력과 악에 대한 경계심을 약화시켰을 것이다. 최초의 잘못 디딘 발걸음이 다른 발걸음을 잘못 딛게 하여 마침내 하늘과의 연결은 끊어지고 그들은 유혹에 횝쓸려 버렸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확고 부동함과 자신을 부인하는 자기 부정과 그들의 동기의 순결함을 귀중히 여기셨고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과 함께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하셨다.
좋은 습관에서 온 지,덕,체의 아름다운 조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3년 동안 바벨론의 모든 지식을 배운 것에 대한 시험을 보았다. 그러나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었다. 그들의 예민한 이해력, 해박한 지식, 정확한 언어는 그들의 힘과 지력이 뛰어남을 보여 주었다.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그래서 “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였다.
바벨론 궁정에는 모든 나라의 대표자들, 최고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 천부적인 재능과 가장 넓은 교양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나 그 모든 사람들 중에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과 견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체력과 용모와 지력과 학식에 있어서 그들과 비길 사람이 없었다. 바로 선 자태, 굳고 탄력 있는 발걸음, 우아한 용모, 흐리지 않은 판단력, 오염되지 않은 호흡, 이 모든 것은 좋은 습관에 대한 반박할 수 없는 증명서가 되었다.
믿음과 기도의 활용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 사람의 지혜를 습득하는 일에 동료 학생들보다 훨씬 더 성공적이었지만, 그들의 학식은 우연히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든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고 하나님의 지식을 교육의 기초로 삼았다. 지혜를 얻기 위하여 그들은 믿음으로 기도하였고 저희의 기도를 실천하였다.
하나님을 높이려는 동기
그들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하여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었다. 그들은 이교의 거짓 신앙 중에서 참 신앙의 대표자들로 서기 위하여 명료한 지력을 가져야 하며 그리스도인 성품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교사가 되셨다. 어떤 방면에서든지 참된 성공은 기회나 우연이나 운명의 결과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완성하는 일이고, 신앙의 보상이며, 덕행과 인내의 보상이다. 우수한 지력과 높은 도덕적 경향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기회들을 주시며 성공은 그 기회를 이용하는 데 달려 있다.
2. 엘리사
조용한 시골 생활, 단순한 습관, 순종 그리고 가정감화
성경의 훌륭한 사람의 이야기 중에는 엘리사가 있다. 엘리사의 아버지는 부유한 농부였고 그 가족들은 우상숭배가 거의 보편화됐던 배도의 시대에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무리 중에 속해 있었다. 그들의 가정은 신앙에 굳게 섰고, 그것이 날마다의 생활의 법칙이 되어 있던 곳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엘리사는 그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조용한 전원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교훈과 자연의 가르침을 배우고 유익한 일에 대한 훈련을 받음으로 단순한 습관과, 부모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웠다. 이것이 후일에 엘리사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높은 직분을 감당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했다.
집안 일을 도움
엘리사가 선지자의 소명을 받은 것은 그가 아버지의 종들과 함께 밭을 갈고 있을 때였다. 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일에 성실하였다. 그는 사람들을 지도할 능력과 섬기려고 하는 겸비한 마음을 함께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조용하고 온순한 정신을 가졌지만, 또 활동적이고 확고 부동하였다. 그는 성실함과 충실함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고, 매일의 평범한 일과에서 목적을 이루는 끈질김과 고상한 품성을 연습하여서 그의 실생활과 영적인 지식이 끊임없이 증가하였다. 그는 집안일에 그의 아버지와 협력함으로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을 배웠다.
작은 의무에 충실함
작은 일에 충실함으로 엘리사는 더욱 무거운 임무를 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날마다의 실제적인 경험을 통하여 보다 넓고 높은 사업에 대한 적합성을 배웠다. 모든 사람들은 작은 일에 충실히 하는 것이 큰 책임을 지기에 적합한 증거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따라서 작은 의무에 있어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보다 높은 책임을 맡게 하실 것이다.
작은 일은 어떻게 하든지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보다 높은 직분을 맡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는 큰 의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외모보다 더 깊은 곳을 들여다 보신다.
3. 나아만 장군 집의 어린 하녀
선교사로 교육시키는 부모의 역할
이교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나아만 장군 집에 하녀가 된 이스라엘의 작은 소녀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이교도의 가정에서 처신한 그 소녀의 행동은 어렸을 때에 받은 가정 교육의 힘이 얼마나 큰가에 대한 유력한 증거이다. 그 소녀의 부모는 딸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칠 당시에는 그 소녀에게 닥쳐올 운명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소녀는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배운 대로 충실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실패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주어진 임무 중에 저희 자녀를 돌보고 교육하는 일보다 더 높은 임무는 없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교육하는데 있어서 습관과 품성의 기초를 놓는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자녀들의 장래는 부모의 모본과 가르침에 의하여 거의 결정된다. 부모의 생애가 하나님의 형상을 제대로 반사하여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이 자녀의 마음속에 감사와 경의를 일으키게 하는 부모, 부모의 친절과 공의와 오래 참음이 자기 자녀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 오래 참으심을 설명해주고, 자녀에게 부모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순종하도록 가르침으로 그 아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순종하도록 가르치는 부모는 훌륭한 부모이다.
우리의 자녀가 어느 분야에서 봉사하도록 부르심을 받을지 알지 못한다. 그들이 가정의 범위 내에서 저희 생애를 보낼지, 인생의 일반적인 직업에 종사할지, 아니면 복음의 교사로서 이교의 나라로 갈지 모르지만, 모두 다 똑같이 하나님을 위한 선교사, 곧 세상을 위한 자비의 기별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자녀들은 헌신적인 봉사로 그리스도의 편에 서는 데 도움이 될 교육을 받아야 한다. 선교사로서 받아야 할 교육, 바로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받아야 할 교육을 부모로부터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공한 인물들이 받은 교육을 살펴 보았다. 이제는 실패한 인물의 삶을 보며 왜 실패했는지를 살펴 보고 그들의 실패를 통해 성공한 인물에게서 배우지 못할 더 큰 교훈을 알아 보도록 하자.
2). 실패한 교육, 실패한 삶
엘리와 두 아들
자녀의 종이 되는 아버지
엘리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인 동시에 사사였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가장 높고 책임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엘리는 거룩한 제사장 직분과 최고의 재판권을 가지고 그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로서, 본받아야 할 사람으로 추앙되고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큰 감화를 끼치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는 비록 온 백성을 다스리도록 임명을 받았으나 자기 가족들을 잘 다스리지 못하였다.
엘리는 아이들을 너무 귀여워하는 아버지였다. 평화와 안일을 사랑하는 그는 자녀들의 악한 습관과 정욕을 시정하는 데 자기의 권위를 행사하지 않았다. 그는 자녀들을 나무라거나 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뜻에 굴복하여 그들이 마음대로 하도록 방임하였다. 그는 자녀들의 교육을 가장 중요한 책임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고 사소한 일처럼 취급하였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이요, 사사인 엘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보호 아래 두신 자기 자녀들을 억제하고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는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려면 그의 아들들의 뜻을 거스리고 그들을 체벌하고 어떤 것은 거절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는 그의 자녀들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하도록 하고,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봉사와 생애의 의무를 감당하는 일에 적합한 자가 되도록 교육하는 일을 게을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그가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창 18:19) 할 것을 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엘리는 자기의 자녀들이 자기를 지배하도록 허용하였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종이 되었다.
‘크면 나아지겠지’라는 잘못된 생각
엘리는 가족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그의 가족을 다스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판단을 따랐다. 그 다정한 아버지는 그의 아들들의 유년 시절에 그들의 과오와 죄를 묵과하고 장차 그들이 자라나면 그들의 악한 성벽을 버릴 것이라고 혼자 속으로 믿었다. 지금도 그와 같은 과오를 범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런 부모들은 자녀들의 그릇된 성벽을 조장하면서 “아이들은 벌받기에는 너무 어리다. 저희가 커서 사리를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자”고 핑계한다. 그리하여 그릇된 습관들은 제2의 천성이 된다.
제지하지 않는 잘못의 결과
제지를 받지 않는 자녀들은 좋지 않은 품성의 특성을 가지고 자라난다. 자녀들을 제멋대로 하도록 허락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더 큰 저주가 없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고 유익이 되지 못하는 방종적인 일을 마음대로 하게 할 때에, 자녀들은 곧 부모들에 대한 모든 존경심과 하나님이나 인간의 권위에 대한 모든 존중심을 잃어버리고 사단의 뜻에 복종하게 된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교사는 분명 부모이다. 부모들은 먼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신실하며, 우리의 완전한 모본이신 예수님이 우리 자녀들의 교사가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최고의 교과서인 성경으로 부모와 자녀가 함께 교육 받아야 한다. 우리 앞에 제시된 성공적인 교육방법은 어려운 길이 아니요, 밝고 분명하고 명확히 제시된 길이다. 부모된 우리들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성경을 통해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얻기 바란다.
100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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