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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3:1-4 광야의 소리
우리가 읽은 본문은 세상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인, 천국 백성,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는지를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즉, 그것은 우리가 아는 대로 세상의 방식으로만 살던 사람이 교회 다니고,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함이 아닌, 성경이 요구하는 “회개의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유일한 길을 기독교 생활, 즉 교회생활을 열심으로 잘 하고 사는 것을 말함이 아닌, 성경이 인정하는 회개를 하고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생활에 맺으며 살 때, 천국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백성이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세상 방식대로 살다가 기독교 종교를 가지고 교회 생활하는 것을 하나님의 자녀 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고 하는 자가 알아야 할 것으로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회개가 어떤 것인지 바르게 아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 방식으로 살던 사람이 하늘나라 방식으로 사는 사람으로 바꿔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바꿔진 것을 성경은 영적인 표현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또는 거듭났다 라고합니다.
저는 실제로 선교사역차 외국에 가서 살아 본 경험이 있는데,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과정을 설명한다면 한마디로 그 나라가 요구하고 원하는 조건을 갖추어 합당한 자격을 소유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하늘나라의 요구대로 자격을 갖추어야만 그 나라의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고자 하는 세상 사람은 가는 길을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이는 먼저 그 나라의 자녀 된 자나, 하나님의 아들이 알려주는 소리를 듣고, 바르게 알아 그 나라가 원하는 자격부터 갖추어야 합니다.
마 3장 본문은 세례요한을 통해 하늘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나라에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에 첫번째가 신분의 변화(바꿔짐의 사람이)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그러면 본문에서 말씀하는 회개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마 3:1-3)『[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이 본문을 잘 살펴보면 세례요한이라는 사람이 광야에서 외치는데 회개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절에 무엇인가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회개를 해야 한다며 외치는 세례요한이 어찌하여 만인이 들어야 할 회개의 메시지를 예루살렘 성의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번화가에서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전혀 살고 있지 않는 장소 즉, 물이 없고 메마르고, 건조한 땅, 사람조차 살기 어려워서 버려진 곳 사막 광야에서 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두 번째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회개해야 대상이 이방인이나, 죄인에게가 아닌,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는 백성에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사이 기준으로 본다면 세례요한의 전도 방법은 효율적이기보다는 오히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가 지하철역사 동네 마트 앞이나 시장 골목 같은데서 전해도 될까 말까 하는데 말입니다.
사실 아무리 회개하라는 설교의 내용이 좋다고 한들 정작 그 내용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에서, 떠들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그러나 그런 장소에서 외치는 이유가 다 있어서라는 것을 구약성경을 통해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은 세례요한을 보내서 회개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광야에서 외치게 하라고 기록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지금 세례요한은 구약성경 이사야의 예언한 그대로, 하나님의 지시대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외치는 자의 소리’(사40:3,요1:23)로 광야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어찌하여 세례요한으로하여금 아무도 살지 못하는 그 건조한 땅 광야에 나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외치도록 명하셨느냐는 것입니다.
본문을 조금 더 읽어 보면,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보낸 요한이 그곳에서 외칠 때 예루살렘 성에서 살던 이스라엘백성들이 실제로 그곳으로 나와서 듣고, 외친 내용 대로 회개의 합당한 자가 되는 세례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루살렘 성에 모여 살던 사람들이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는 것을 알게 되자 광야로 나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회개” 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외치는 자의 소리가 들려지는 곳으로 나가서 그의 소리를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회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입으로 외친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는 말씀으로 이 말씀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세례요한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지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로 부터 받은 율법에 근거하여 살았는데, 이제부터는 율법이나 종교로 사는 것이 아닌, 천국(구원자로 오신 분의 인도를 받아 살아야 하는)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며, 이렇게 바꿔 사는 것이 회개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세례요한의 외침의 요점은 현재 이스라엘에 와 계신 예수를 구원자 되시는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메시야 구원 자로 신랑으로 친구로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여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선지자로 광야로 나갔고 자신부터 광야 생활을 하면서 백성들이 전에 율법으로 살던 삶에서 예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으로 돌아서도록, 즉, 회개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외치며, 또한 자신이 직접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 광야에 살면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에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유대종교로 살던 삶에서 오신 예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의 회개 역시 관념과 머릿속에서 생각만으로 입술로만 하는 회개가 아닌, 실제적인 삶의 터전이 기독교 교리로 근거한 종교 행위로 살던 사람이 예수그리스도의 하신 말씀을 따라 사는 삶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요한의 광야의 삶의 모습은, 마치 유대교나, 기독교를 가지고 자신의 종교 교리로 사는 삶의 자리는 여전히 예루살렘 도성(오늘날 사람이 많이 사는 장소)이면서, 머릿속으로만 회개하고, 입술로 자신의 종교 생활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그렇게 하고 사는 것이 회개한 것으로 여기는 것을 고발하면서, 이제부터는 다르게 바꿔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라는 것입니다.
다르게의 내용은 유대교나 기독교 종교를 가지고 습관적인 종교 행위나, 마음이 아닌 입술로만, 머리나 생각으로만 돌아서는 것이 아닌, 말씀이 있는 곳(구원자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에게)으로 몸을 마음을 생각을 전체를 온전히 옮기는 행동을 하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즉, 회개란 두 발을 움직여서 우리의 삶의 터전을 바꾸는 것, 예루살렘 도성에서 말씀으로 오신 그분에게 나가는 것이 진정한 회개(돌아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을 회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사야 40:3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이 말씀의 강조하는 것은 “~에서”입니다.
이 말씀은 회개를 외치는 자나,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나, 모두 [광야에서], 사막에서 준비할 것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라면 광야로 나가야 할 대상은 세례요한만이 아니라, 유대인들 모두이며, 오늘날 종교로 살고 있는 우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우리더러 광야로 나가 사막에 거하면서 당신의 길을 예비하라는 것입니까?
그리고 회개하는 것이 마음의 문제라면 구태여 몸이 광야로 나가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로 스스로의 죄를 뉘우치고 통회 자복하고, 세상으로 향하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라면, 구태여 우리가 광야나 사막으로 나가야 될 이유가? 이해가 안 가는 말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요사이는 어떨지 모르지만 [세례요한이 살던 시대]에는 회개를 위해서 광야로 나아가 세례요한을 만나야 했던 것입니다.
이사야의 메시지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사막으로 나가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왜죠?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인데, 광야로 나아가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듣고 세례받는 것이 곧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2. 그러면 회개가 된다는 우리가 나가야 할 광야도 살펴보겠습니다.
신8:15절을 보면 광야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는데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 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이 광야입니다. 즉, 광야는 히브리어로 “에레모스” 라고 하는데, 사람이 살 수 없는 조건을 가진 장소를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에서 살 수 없는 곳으로 나간다는 말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으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으로,그 삶의 옮김을 하나님은 회개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을 영적으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광야로 나가지 않는 회개란 착각이며 관념일 뿐입니다. 먹을 것이 없이는 살 수 없고, 마실 물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뿐만 아니라 권세가 있어야 하고, 명예가 있어야만 사람 행세를 할 수 있는 종교 교리로 살던 곳에서 떠나 말씀이 외쳐지고 있는 광야로 자신을 옮긴다는 것은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쉽지 않기에 본문의 요한도, 오신 예수님도 회개를 가장 먼저 이 회개를 해야만 한다고 외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회개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가 계속하여 말씀하는 것처럼, 이사야 40:6-7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를 믿는 사람들만 광야로 나아갈 수 있고, 사막에서 주의 길을 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인생이란 어떤 것입니까? 과연 풀과 같은 것으로 여겨지시는지요?
우리의 일평생 노력이나 수고에 의한 얻어지는 영광이 과연 풀의 꽃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지 묻는 것입니다.
우리의 평생 수고로 얻어진 인생의 강건함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한낮 풀꽃에다 비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오랜 기간에 목사의 설교를 들어볼 때 그렇한 세상 물질의 것들이 하나님이 주는 축복이라고 설교를 들어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은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드신 우리의 인생은 만드신 분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안개와 같고, 또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는 들풀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인생이 풀과 같은 것이라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진리로 여겨지고, 받아들이며,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꿈꾸면 돈과 명예로 떵떵거리고 살던 사람이 어느 날 죽어, 그 죽은 사람 곁에서 그의 인생을 보는 한 순간만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는 얘기지만, 인생이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들로 믿음을 가진 선들들로 부터 배울 수 있었는데, 저들은 풀 같은 인생사에 연연하지 않으며, 꽃 같은 인생의 영광을 향하여 애쓰고 수고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삶, 그냥 잠시 나그네로 살 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연연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사람에게는 자기의 인생을 곧 시들어 버리는 안개와 같은 것임을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하나 더, 기독교 종교를 가지고 교회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영광을 취하고, 더 많은 하나님의 주시는 물질의 축복을 기도로 구하며, 그것으로 사는 것을 참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사는 삶이라고 여기며,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을 구하라고 열심히 헌금과 봉사와 구제와 등등...을 외치며 그 삶을 오히려 더 많이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 요한이 [광야에서 주의 길을 준비하라는 말씀]은 그런 생각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한 것들로 사는 곳이 아니기에 세상의 부귀영화와 같은 풀과 꽃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풀과 꽃을 버림이 곧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기다림이며 구함이라는 말입니다.
광야는 풀이 자라지 않고 꽃을 구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풀을 구하고 꽃을 얻기 위하여 광야로 나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세례요한이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은, 네가 하늘 백성이기를 바란다면, 세상이 주는, 또 종교가 주는 영광인 풀을 버리고, 꽃을 버리라는 외침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자신이 실제로 광야 생활을 하는 것으로 자신이 외치는 내용의 삶을 직접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참 회개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으로, 광야의 생활(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서 말씀을 듣고 사는)을 40년 동안 하는 것을 회개의 과정으로 모형으로 그림자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광야에 나와서도 애굽(세상)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했다는 얘기는 아직도 애굽에서의 풀과 같은 인생의 찌꺼기가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광야로 나왔음에도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오지 않을 때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있었던 것도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가나안)에 대한 기대보다는 풀의 꽃 같은 육신의 영광(애굽)을 더 좋아했다는 뜻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를 꿈꾸고 천국을 사모한다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떨까요? 우리의 살고 있는 장소는 본문에 있는 예루살렘 시내(교회 울타리 안에서) 영적으로 볼 때 애굽(세상) 장막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그렇게 살면서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은 영광을 인하여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교회 울타리 안에서 그런 것들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풀과 그 꽃을 남보다 더 많이 얻고자 하고, 그렇게 되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있는 곳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백성은 실로 풀인데, 풀인 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더러 살 수 없는 장소인 광야와 사막으로 나오라는 얘기는, 너를 이 세상에서는 별 볼일 없는 인간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이며, 나아가서는 이 세상의 것으로 살려는 생각을 죽여 없애겠다는 무지막지한 선포인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왜 이 세상의 것을 가지고 살려하는 것이 사라져야 하는가요?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세상 나라를 떠나야만 하나님의 나라로 갈 수 있기 때문)) 해야만 했던 이유는 가나안(천국)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가나안에 가자니 광야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이 세상을 빠져 나와야 하는 이유역시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을 빠져나와 천국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존재하는 것이 광야(외치는 자가 있는 곳에가서 들어야 하는)인 것입니다.
이 광야로 나와서 전에 살던 것들을 모두버리고(세례받음) 예수그리스도의 입으로 전해 들은 말씀에 잠겨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천국을 향하여 매진하는 삶이 주의 길을 준비함이며, 주의 첩경을 평탄케 함인 것입니다.
이 일이 세례요한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예수께서도 마11:12절에 이르기를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천국을 소망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듣고 회개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회개는 우리의 삶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을 추구하던 삶을 뒤로 하고,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는 광야로 나와, 천국(가까이 와 계신 그리스도를 영접)을 침노(마음 안에 모시는, 소유하는) 하는 삶(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말씀을 들고 믿는)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풀과 꽃에 연연하던 그 우리가 광야에서 죽어 없어지는 것이며, 회개의 참 모습의 신앙의 사람으로 바꿔지는(거듭나는)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을 돌아보시면 먼저 깨달은 사역자들(이단들이 아닌)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있는 것을 성령님의 인도로 알게 될 것입니다.
종교인의 지도자가 설교하는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전해지는 곳에(광야) 나가서 말씀을 듣고, 홍해를 건너는 영적인 사건이, (물에 잠기는), 즉, 말씀에 잠겨야 할 것입니다. 세례 받음의 실체인 것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세상 생각과 종교적인 생각으로 살던 곳에서, 하나님이 준비시켜서 말씀이 외쳐지고 있는 곳으로 나가(출애굽하여) 말씀에 잠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잠겨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인도하신 것처럼,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깨달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게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말씀 안으로)으로 가십시다. 홍해를 건넙시다.
주님이 광야에서 건너오는 우리를 말씀으로 천국나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