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마찬가지지만, 여기도(오늘도) 도심에 진입하기까지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렇지만 아직은 이른 시간(오후 네 시 넘어)이어서,
바로 찜질방에 가지 말고, 저녁을 먹고난 뒤 들어가는 걸로 하자. 며 느긋하게 시장통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 과정에 도심 개천을 지나게 되었는데, 거기 '징검다리'를 건너야 할 때도 있었고,
사진으로 한 장 남기고 싶었지만, 지친 몸에 10초에 맞춘 시간을 뛰어다니는 게 싫어, 차라리 여유있게 동영상을 찍는 것으로 대신해 보기로 했다.
(평소엔 시도하지 않던 일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어 시장통을 찾아가긴 했다.
그런데 이 부근엔 맨 '순대국밥' '돼지국밥' 위주여서 선뜻 들어가지지가 않았다.(내 입맛이 까탈스러워서다.)
이리저리 자전거를 끌고 돌아다니다, 어떤 내 또래의 상인이 있기에,
"저, 이 시장통에서... 어딜 가면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저집에 한 번 가보세요. 테레비에도 나왔다나... 하던데......" 하기에, 그 식당에 들어갔고,
메뉴를 보니 여기도 순대국밥이 있었지만,
나는 '김치찌개'를 시켰다.
뭔가 칼칼하면서도 시큼한 게 당겼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지친 목소리로 주문을 해서인지, 식당여자가(50대),
"어디를 갔다 오시기에 지친 몸으로 자전거를 끌고 다니세요?" 하고 묻기에,
"그저, 여행을 다닌다오." 한 게 잘못(?) 말한 것이었을까?
"저 자전거로요?" 하기에,
"예." 하고 그 집 냉장고에서 꺼내왔던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그... 연세에......" 하고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다시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힘은... 들지요." 했더니,
"근데, 왜요?" 하고 묻는 거 아닌가.
나는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예?" 하고 멈칫하면서도, "왜라니요?" 하고 내가 묻게 되었고,
"왜, 그렇게 힘든 여행을 하세요?" 하는데,
갑자기 내 앞에 무슨 커다란 벽이 가로막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냥 웃고 말았다.(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에 여자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갔는데,
나는 그 옛날이 다시 떠올랐다.
그 전에도 그랬지? 거기가 어디였던가? 아, 그래... '평창'이었어. 막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던 초기였는데, 거기서도 식당 여자가 날더러,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왜 그렇게 사세요?" 했었는데, 오늘 이 여자나 그 여자나 마찬가지로 봐야겠군...... 하면서,
그러니, 이렇게 다니면서는 '여행 다닌다'는 얘기도 쉽게 해선 안 되겠다. 그렇다면 뭐라고 얘길 해야 하나? 사람들은 물어오는데,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거고, 그렇다고 일일이 가는 곳마다 이런 얘길 밝히고 듣는 것도, 이젠... 싫고......
그 얼마 뒤에 밥이 나왔고(그 와중에도 나는 사진에 담아두었다.),
찌개와 '콩나물 무침'이 맛있었다.
그 두 가지로만 밥을 먹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왔어도 시간은 넉넉했다.
나는 충주 도심을 느긋하게 자전거를 타기도 끌기도 하면서 찜질방을 찾아갔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다시 그 찜질방에 들어갔는데......
(찜질방 찬미자)
오늘도 찜질방을 찾아 들어오면서 나는, 고마움을 느꼈다.
나 같은 가난한 사람이, 저렴한 비용으로(이제는 예전에 비해 많이 올라 만 원은 줘야 한다.) 편하게 씻고 잘 수 있는 장소(숙박시설)이기 때문이다.
사실 역으로 따져보더라도, 만약 찜질방이 없었다면 나는 아예 이런 출타를 하지 못했을 터라, 나 같은 사람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여행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자 아주 고마운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더구나 내가 자전거로 여행을 하다 보니,
그렇게 하루 종일 자전거로 달리다 보면, 피곤한 건 당연하지만, 입고 있던 옷도 땀에 범벅이 되고 또 길을 가다 야외 여기저기에 주저앉기도 하는 등 옷도 많이 지저분해진 상태라서,
행선지에 도착해 찜질방을 찾아갈 즈음엔 거의 거지꼴이기도 한데,(일반적인 다른 여행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초라한 행색에다 지친 몸이라)
그런 몰골의 나그네를 반겨줄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이다.
설사, 예를 들어, 어떤 특정한 지역엔 내가 찾아갈 (아는)사람이 있다고 쳐도, 그런 몸으로 누군가를 찾아가는 것도 싫지만, 또 그런 몸을 한 나를 맞아줄 사람의 입장에서도 결코 즐겁지 만은 않을 일이라,
그런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운 사람들과의 접촉에 신경 쓸 일 없이 자유롭고 편하게 드나들며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최대한의 장점이 있는 곳이 찜질방이라서다. (그래서 언젠가는 한 도시에 갔다가, 거기서 사는 한 친구를 저녁에 밖으로 불러 술만 한 잔 하고는,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고, 나는 찜질방으로 가서 자기도 했는데, 그게 훨씬 내 마음이 편해서였다.)
물론 내가 형편이 좋아 찜질방보다 더 편하고 좋은 호텔에서 묵으면 이상적(?)이겠지만, 그건 나와는 현실적으로 너무 먼 일이기 때문에, 나는 아예 그런 쪽엔 생각 자체를 않는 사람이다.
아무튼 그런 몸으로 찜질방을 찾아들어가면, 땀에 찌든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나 같은 경우는 가방 안에 비닐 봉지를 준비해 갔기 때문에 거기에 빨랫감을 넣고), 바로 목욕탕에 들어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뒤, 탕 속에 들어가 죽은 사람처럼 몸 속까지 찌들어 있을 피로를 녹여내게 되는데...
그 과정 자체가, 찜질방에 닿기 전까지와 비교해 보면, 어쩌면 천당과 지옥의 차이 같기도 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디 그 뿐이랴?
그렇게 개운하게 몸을 씻고 나와도, 찜질방에서는 편한 옷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갈아입으면 되니(옷 걱정도 없고), 그 입은 옷은 다음 날 나오면서 거기에 벗어두고 나오는 것마저도, 나 같은 나그네에겐 얼마나 홀가분한 일인지 모른다.
물론, 찜질방에서는 개인의 사생활이 있을 수 없고 공간마저도 타인들과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나 같은 다소 예민한 성격의 사람에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도 그런 단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그래서 싫기도 하지만,(그동안 수없이 겪어봤기에 더욱 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찜질방 찬미자'가 돼 있는 것은,
그런 찜질방마저 없다면(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많이) 이런 나들이를 해오지 못했을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나그네에게는 숙박료의 비중이 제일 크기 때문에, 그래서는 아예 여행을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생각해 보면, 내가 이렇게 찜질방 시스템에 익숙해져서 전국을 돌아다니게 된 것도,
스페인의 '까미노'와 관계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그 첫 까미노가 2001년이었기 때문에 이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2005년보다 훨씬 앞선 것인데, 까미노의 값싼 숙박시설인 '알베르게(Albergue)' 생활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내가, 현지에 도착한 다음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목욕하는 것'에서는 훨씬 편하고 좋은 찜질방 시스템에 적응을 못할 리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공동침실에서의 불편함과 시끄러움은 (하루종일 시달렸던)피곤한 몸이기 때문에 웬만큼 무뎌질 수 있는 거니까.
그 말은, 나는 외국에서거나 국내에서나 여전히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값싼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인 것은 자랑할 게 없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여행(떠돌이 생활?)을 돈 때문에 자제하거나 포기할 수만은 없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여전히 없는 처지에다 이제는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찜질방을 이용해가며,
나는 그 대상인 찜질방에 고마워해 하면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돈 없어서 여행도 못한다'고 하늘을 원망하며 서울 생활에 찌들어가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여기저기 다닐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첫댓글 아무튼 대단하십니다.
나이를 잊은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글쎄요,
보기만 그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