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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라이브 글 주제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조금씩 나누겠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멤버의 진로 갈등과 해결 과정을 같이 다루고 서로 달랐던 점과 느낀 점을 다루겠습니다.
서론
러브라이브 시리즈를 접한지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여러 커뮤를 돌면서 한 번씩은 나왔던 얘기가 갈등 구조 얘기였습니다. 니지애니도 나온 김에 돌이켜보면 러브라이브는 캐빨뿐이란 말을 몇 번 들었는데, 서사가 토대라면 인물은 기둥이며 복선은 시멘트와 철골이며 작화는 외장과 지붕, 미관입니다. 따라서 셋 다 챙기는 게 아니메를 포함한 영상매체에선 중요한데 장르마다 다른 기준이 적용됩니다.
러브라이브 시리즈는 학원물+아이돌물+일상물+스포츠물을 조금식 섞였는데 소년만화처럼 특수능력을 인물마다 가진 게 아니며, 순정만화처럼 연애에 방점을 두지 않고, 일상을 다뤘다고 보기엔 아마추어 아이돌 활동이란 주인공 일행의 목표가 명확해서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했는가에 대한 상황과 감정선 설명이 중요합니다.
가령 뮤즈와 아쿠아의 목표가 학교 살리기/대회 우승이란 걸 알았을 때 설정을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학교는 공무원이 살리지 학생이 살리냐며 학생에가 아이돌을 시키다니 제정신이냐, 오지랖이란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러브라이브 대관 유튜브 영상에 실제로 이런 댓글이 있음). 하지만 이런 반응은 관심이 없거나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비롯됐을 뿐입니다. 러브라이브 정보를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뮤즈와 아쿠아는 누가 시켜서 시작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시작했고, 그게 가능한 세계관임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선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질문은 후순위입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바깥에서도 샌다는 말을 뒤집어보면, 안에서 새지 않는 바가지는 바깥에선 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느 장르든 현실성을 찾는 사람들은 항상 있는 법인데, 니지애니까지 러브라이브 세계관에서 등장한 학교는 여학교가 배경이고 스쿨아이돌부 설정으로 학생이라도 희망하는 사람이면 가입해서 활동할 수 있으며, 러브라이브 대회 설정을 통해 목표의식을 갖게 만듭니다. 그리고 학업과 병행하기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꾸준히 넣는데 후술할 코토리/마리의 유학 이야기가 포함되며, 게임과 소설로 범위를 넓히면 스쿠스타에서 세츠나가 몰래 스쿨아이돌부를 다니고, 마키가 성적이 조금 떨어졌다며 한동안 아버지의 반대로 뮤즈 활동을 못했던 이야기도 들어갑니다.
즉 어느 매체든 현실성과 핍진성은 세계관 안에서 그게 가능한지가 우선순위고 세계관 밖에서 보는 게 후순위입니다. 러브라이브 시리즈는 니지애니까지 쭉 이 규칙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각에 바탕을 두고 판단하기 쉬운지라 선입견을 가지고 보기 쉽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식 범위를 넓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진로 선택이란 기로에서: 뮤즈
노조미가 1기 6화에서 해설을 넣었듯이 스쿨아이돌도 결국 학생인지라 학업에도 신경써야 합니다. 특히 진로와 관련해서요.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는 코토리와 마리가 진로와 스쿨아이돌 중에서 선택해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됐는데, 상황은 비슷했지만 주변의 대처는 달랐습니다.
먼저 코토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코토리는 러브라이브 애니 1기 9화에서 국제우편을 받는데 어머니가 아는 해외 학교에 의상디자인을 배우러 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문화제 뒤에 호노카에게 얘기해서 이 문제를 의논할 생각이었지만 호노카가 감기에 걸려서 말할 시기를 놓쳤고, 다 낫고 나서 얘기하려 해도 시간이 엇갈려서 머뭇거리다가 쫑파티 때 우미가 대신 얘기하게 됩니다.
셋 다 속상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호노카 입장에선 특히 충격이 컸습니다. 비록 학교 살리기란 1차목표는 달성했지만 문화제 때 감기에 걸려 쉴 동안 호노카를 너무 혹사시켰다고 판단한 나머지 멤버가 의논한 끝에 1차 러브라이브 대회 출전을 포기했는데, 코토리까지 떠난다고 하니까요.
몇 번이나 말하려고 했었어. 하지만 호노카는 그 동안 러브라이브 생각뿐이라 시간이 없어서 문화제가 끝나면 얘기하려고 했어. 그런데 하필 네가 그 날 쓰러지는 바람에... 정말이야! 호노카는 내 첫 번째 친구잖아!
코토리는 그 동안 말하길 망설이고 있었어요. 어쩌면 가기 싫어했는지도 몰라요. 계속 호노카에게 어떻게 말할지 신경쓰고 있었으니까요. 숨기려 했던 게 아니라 문화제가 끝나면 직접 얘기하기로 마음먹었고요. 코토리를 이해해 줬으면 해요, 호노카.
결국 호노카는 1회 우승팀인 어라이즈를 2회 때 만나도 못 이겔 텐데 그냥 스쿨아이돌을 때려치우겠다고 말했다가 니코의 원망을 듣고, 우미에게 따귀를 맞게 됩니다.
니코 입장에선 3년 동안 혼자 아이돌 연구부실을 지키다가 호노카 덕분에 스쿨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게 됐는데, 어라이즈와 대회에서 만나지도 않고 못 이긴다고 하니 화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미는 코토리와 호노카 사이에 낀 입장이며 호노카가 영입해 왔는데 그 호노카가 그만둔다고 하니 갑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 호노카는 홧김에 한 말과 상황을 고려해도 무책임했으니 맞을 만 했습니다.
호노카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어요... 정말 최악이네요!
그래도 코토리가 출국할 때까지 2주 여유는 있어서 그 동안 다들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호노카는 공항으로 코토리를 따라가서 설득한 끝에 유학 대신 뮤즈를 선택하게끔 했습니다.
나는 네게서 중요한 걸 배웠어. 두려움 없이 꺾이지 않는 용기를.
당신은 우리가 두려움으로 가지 못하던 멋진 곳으로 인도하죠. 그때 전 당신이 코토리의 속마음을 몰라서 화낸 게 아니에요, 호노카. 당신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어서 화를 냈던 거에요.
각설하고 방영 후에 커뮤를 돌면서 반응을 봤던 기억을 떠올려 보니 후반에 갈등과 해결을 너무 몰아줬다는 반응과, 호노카가 뮤즈를 하라고 친구 앞길을 막았다는 반응이 섞인 게 기억납니다. 1기에선 유학 이야기를 빼면 2/3은 뮤즈 결성 과정을 다뤘고, 우편으로 암시는 했어도 일어난 일 때문에 하마터면 뮤즈가 와해될 수도 있었죠. 제때 말하지 못한 코토리야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12화 호노카는 무책임했으니까요. 다행히 2기도 있어서 1기 때 달성하지 못한 러브라이브 대회 이야기는 2기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아쿠아를 생각해 보면 호노카가 이 때 코토리를 데려온 게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이었습니다. 적어도 남은 시간을 허비하진 않았으니까요.
또다른 결말: 아쿠아
이번 글에서 뮤즈 분량은 끝났으니 아쿠아로 넘기겠습니다. 아쿠아가 활동한 계기는 뮤즈와 비슷했지만 진행과 결말은 달랐는데, 이 글에선 3학년의 과거 진로 문제를 다루겠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인 다이아, 카난, 마리는 고1 때 학교가 신입생이 줄어서 시내 학교에 통폐합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자 뮤즈를 참고해서 스쿨아이돌 그룹 아쿠아를 만들었습니다. 인지도를 높여서 도쿄에서 열린 스쿨아이돌 이벤트에 참가할 때까지는 잘 풀렸지만, 참가 직전에 마리가 발목을 삐자 기권한 뒤 누마즈 시내에서 열릴 불꽃놀이 참가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뮤즈 때처럼 진로 문제가 생겼는데, 해외 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받는 조건으로 마리에게 외국 고등학교 유학 제의가 온 것이었습니다. 스쿨아이돌을 계속할 생각이던 마리는 거절했지만, 소식을 들은 카난에게 등떠밀려 스쿨아이돌을 그만두고 유학을 갔다가 고3 때 일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쿠아는 뮤즈 때보다는 사건 당시에 셋이서 손발이 안 맞던 뮤즈보다는 소통이 된 편이지만, 카난과 다이아는 합의를 봤지만 마리가 등 떠밀려 유학을 가면서 문제가 불거지게 됩니다. 물장판에서 마리 어머니가 지적했듯이 유학을 다 마치고 귀국했다면 나았겠지만, 도중에 귀국해서 입시 기회를 하나 날렸으니까요.
초등학생 때 집을 나갔을 때도 그렇고, 고등학생 때 말 없이 유학을 그만두고 학교를 살리겠다며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도 네 아빠를 봐서 넘어갔는데 결국 어떻게 됐니? 학교는 못 살리고, 해외 진학 기회도 잃었잖니! 하찮은 스쿨 아이돌 따위에 빠져서 이렇게 된 거야...
마리의 입시 문제야 부잣집이라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해도(선샤인 애니 2기 10화에서 이탈리아 쪽 대학에 유학 예정이라고 마리가 직접 말합니다), 마리가 떠났으니 카난도 다이아도 스쿨아이돌을 계속할 이유가 사라졌고, 특히 동생이랑 스쿨아이돌 덕질에 한창 빠졌던 다이아로선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3 때 치카가 요우와 리코를 영입해서 새 아쿠아를 만들었을 때 겉으론 불만스러워했음에도, 루비가 가입하는 걸 굳이 막진 않고 최소한으로 도우며 쭉 지켜본 것입니다.
다이아는 그렇다 쳐도 카난과 마리가 서로 생각하는 최선이 달랐던 것도 중요합니다.
카난이 생각하던 최선: 마리가 유학을 마치는 것
마리가 생각하던 최선: 셋이서 스쿨아이돌을 계속하는 것
이 상황에서 등떠밀려 나간 마리는 고3 때 돌아와서 기부금 거액 기부로 학교 이사장직도 얻으면서, 새 아쿠아가 스쿨아이돌부를 만들고 활동하도록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카난을 다시 설득하려 했으나 카난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비록 미련은 없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말하기 전에 집 근처에서 스쿨아이돌 안무를 따라하던 게 후배들에게 들키자 얼굴을 붉히는 장면을 통해, 제작진은 카난에게도 미련은 있으나 마리의 진로 문제를 우선시해서 유학을 보냈는데 도로 돌아온 일로 불편한 감정이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이 때는 후배들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했던 터라 다이아는 집에서 자세한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직접 설명해서 서로 오해를 풀게 하는 게 최선이었으니까요.
그 날 카난은 노래를 못 부른 게 아니라 안 부른 거였어요. 그 날 당신이 발목을 삐었기 때문에... 그 날 라이브를 계속했다면 당신이 크게 다칠 수도 있었어요. 유학을 가라고 한 것도 마리, 당신의 진로를 위해서였어요. 카난은 당신을 누구보다도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상황을 파악한 마리는 카난을 찾아나섰고, 학교에서 만난 자리에서 서로 속마음을 풀게 됩니다.
그런 사정이 있었다면 진작 알려주지 그랬냐는 마음, 스쿨아이돌을 계속하고 싶었던 마음... 그것들이 해결되면서 셋도 아쿠아에 돌아오는 걸로 1년 반 동안 끌었던 문제가 풀립니다. 서로 최선의 선택지를 고르려 했지만 최선이 되지 못한 문제 말이죠.
고1 때 셋이서 어떻게 할지를 합의했다면 유학을 갔더라도 미련은 적었을 것입니다. 비록 학교가 뮤즈 때와 달리 시골 어촌이라 후배들처럼 폐교라는 결과를 바꿀 순 없었더라도, 고1 때 시작했으니 활동할 기회는 더 많았을 거고 적어도 같은 동네인 치카, 요우, 루비는 데려올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카난이 총대를 매어 마리를 보낸 뒤에 다시 돌아오면서 마리가 처음에 잡은 진로도 꼬이고, 카난과 다이아도 본의 아니게 스쿨아이돌을 못하게 되면서 1년 반을 보내게 됩니다. 당시로선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론 최악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후배들이 다시 아쿠아를 시작하면서 3학년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며 전화위복으로 끝났지만요.
그리고 마리는 확실히 철이 들었습니다. 리코가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하느라 도쿄에 잠시 간 동안, 평소에 친했던 치카와 거리감이 생긴 것 같다고 고민하던 요우에게 속으로 앓지 말고 직접 얘기해 보라고 말해서 요우가 받아들였으니까요.
정리
뮤즈와 아쿠아 서사는 큰 틀은 비슷하지만 결국 다른 작품 속 인물인만큼 전개 양식이 다릅니다. 선샤인 애니가 뮤즈보다 나중에 나왔으니 뮤즈 때 시청자들의 불만사항을 참고해서 개선할 시간도 있었고요. 둘 다 놓인 상황이 비슷했지만 서로 소통을 잘 했는지, 일이 터진 뒤 수습은 잘 했는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왔습니다. 멀티 엔딩 게임으로 비유하면 루트에 따라 다른 결말이 나온 거죠.
그 점에서 비교해 보면 선샤인 때가 나중에 나온 덕에 시청자들의 반응이 더 나았습니다. 복선을 일찍 깔아서 회수도 아쿠아가 다 모일 시점에 확실히 회수했고, '그 상황에선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할 기회를 더 많이 줬으니까요.
러브라이브 관련 다음 주제를 올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인용문을 남깁니다.
선배는 아버님께 연주를 보여드리고 싶었다면서요? 누구보다도 전국대회에 가고 싶었잖아요? 그걸 왜 없었던 일로 하려는 거예요. 자기만 참으면 원만하게 수습될 거라니, 그런 건 선배의 자기만족이에요. 적어도 난 선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포기하지 마세요. 후회할 만한 선택지를 스스로 고르지 마세요. 어른인 척 하면서 상처 입지 않도록 행동하다니, 그런 건 무조건 잘못됐어요. 포기는 마지막까지 노력한 다음에 하세요.
울려라! 유포니엄 3권 211페이지에서 어머니가 활동을 반대해서 전일본 취주악 콩쿠르 출전을 포기하려던 아스카를 주인공인 쿠미코가 설득할 때 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