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요한복음 강해(제32강)
요한복음 제4장 27절~38절
항상 우리주변에 예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기독교인의 삶이란 예수의 삶을 본받는 것이다. Thomas A Kempis(1379~1471, The Imitation of Christ의 저자, 독일신비주의, 중세문학의 걸작)는 “하늘나라는 오직 나의 내면에 있다”고 하고 있다. 예수의 수난, 죽음 부활에 대한 각오가 필요하며 이것이 예수의 삶을 구현하는 것이다.
27. Just then his disciples came. They marveled that he was talking with a woman, but none said, "What do you wish?" or, "Why are you talking with her?“
당시 여성은 인간대접을 받지 못했다. 랍비인 예수가 여성과 진지한 담론을 벌이는 것은 놀라운 광경이며 시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에게 친절한 태도를 보이며, 예수의 삶의 주변에는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연학하고 핍박받는 계층인 여성을 똑같은 인간으로 취급하는 예수의 위대성을 말해주며 시대를 앞선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보편주의, 평등주의에 대한 예수의 인식이 바로 기독교의 혁명성이다.
참고로, 구약에는 유대인 선민사상만 있지 인간 평등성이 없다.
28. So the woman left her water jar, and went away into the city, and said to the people,
물동이를 버려두고 떠났다는 것에 대해 목마른 물은 이제 먹을 필요가 없다, 영생을 얻었다는 의미라고 성경 주석가들은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이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내 생각으로는 단순히 놀라고 또는 무서워서 허겁지겁 간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정하다.
29. "Come, see a man who told me all that I ever did. Can this be the Christ?"
사마리아 여인의 예수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 여인은 영생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자신의 과거를 맞춘 것에 놀랄 뿐 예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30. They went out of the city and were coming to him.
31. Meanwhile the disciples besought him, saying, "Rabbi, eat."
32. But he said to them, "I have food to eat of which you do not know."
33. So the disciples said to one another, "Has any one brought him food?"
34. Jesus said to them, "My food is sto do the will of him who sent me, and to accomplish his work.
로고스(Logos)서의 예수의 존재를 드러낸다.
35. Do you not say, 'There are yet four months, then comes the harvest'? I tell you, lift up your eyes, and see how the fields are already white for harvest.
요한복음의 사상이 반복되고 있다. 4개월의 기다린다는 것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종말이 온다’라는 생각이나 파종할 때 이미 추수를 하는 것이라는 말은 이미 종말이 임했다는 것이다.
씨를 뿌리는 것과 거두는 것이 한가지므로 심판의 때가 따로 있지 않다.
앞에서 “나를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라는 구절과 같은 맥락이다.
요한복음이 선포하는 천국은 Here and Now이다. 어느 한 미래에 구원을 얻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미래의 보상으로서의 구원의 기다림은 없다.
기독교인은 영과 진리(Spirit and Truth)속에서 예배하는 때에 이미 추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미래적 사건으로서의 최후의 심판을 현재화 하고 있는 것이다.
36. He who reaps receives wages, and gathers fruit for eternal life, so that sower and reaper may rejoice together.
37. For here the saying holds true, 'One sows and another reaps.'
38. I sent you to reap that for which you did not labor; others have labored, and you have entered into their labor."
요한복음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구절을 진지하게 해석하지 않고 있으나 예수는 자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로 인해 제자들이 수고하지도 않고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다르다. 그러나 이것은 인생의 비극으로 볼 수는 없다. 비록 이들이 서로 달라도 결국 함께 기뻐한다. 즉, 영생의 진리는 당대의 보상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순수하게 자식을 키우는 것과 같은 의미의 기쁨이다.
이 몇 구절이 비록 난해한 구절이나 쉽게 생각하면, 인생이란 내가 수고한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도 수확을 거둘 수 있고, 내가 고생하였지만 그 결실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결국 진리의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참여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첫댓글 또 잘 나가다가 뚱단지 같은 주장을~~돌이 말하기를~"물동이를 버려두고 떠났다는 것에 대해 목마른 물은 이제 먹을 필요가 없다, 영생을 얻었다는 의미라고 성경 주석가들은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이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내 생각으로는 단순히 놀라고 또는 무서워서 허겁지겁 간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정하다." 한다. 이런 뚱단지 같은 해석을 가끔하니 그가 성령을 얻지못한 지인이란 뜻이다. 우짾든지 나보려(티어보이기)는 돌출적인 발언들이 문제다!! 이런현상은? 나는 너거들 무지랭이들 하고는 다르다!! 하는 교만에서 비롯되는 전형적인 지인들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ㅋㅋㅋ
또 "씨를 뿌리는 것과 거두는 것이 한가지므로 심판의 때가 따로 있지 않다."고 한다 이는 “나를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라는 말씀을 근거로 단정했다. 그러면서 확대하여 믿음에 대한 미래적인 내세의 천국이나, 상급이나,심판이나를 묵살해 버린다. 이렇듯이 학자들이란 뭔 논리로 체계화하기를 좋아 한다. 그래야 결론이 난 논문으로 가치가 있나 보다! ㅋㅋㅋ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무소부재와 과거 현재 미래와 영원성을 모르는 육체의 한계를 가진자들의 당연한 추리이겠으나, 그나마도 자신의 실존을 모르고 남을 업수이 여긴다는 것이다. 이런 지인들이 한둘은 아니다. 오늘날의 지식 바벨탑 시대에는 저마다의 지식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하나님께서 시방도 편히 쉬시지를 못하고 일 하신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