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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 아버지의 등
-지금부터 나의 이름은 사공운이다.-4
철탑 같은 장신의 키에 지렁이 같은 힘줄이 돋아난 대머리, 험한
얼굴에 방울 같은 눈, 허리에 찬 두 자루의 도끼까지 그야말로 나
산적이오 하는 말이 필요없이 전신으로 다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온몸에 피 칠을 하고 있었고, 여기저기 상처가 난 모습
이었으며, 입은 가죽옷은 너덜너덜하였다.
입 언저리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이 정도면 사람이라고 말하기
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선 사내 역시 옷은 너덜거리고 있었으며
작은 외상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두툼하고 큰 눈, 평범하지만 차
갑고 강인해 보이는 얼굴에 후리후리한 키는 상당히 인상적이었
으며, 위엄 있어 보이는 두 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눅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남자의 허리에 찬 평범해 보이는 검이 잘 어울려 보인다. 한데
이 사내를 본 하소란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리고 얼굴
가득히 피어오르는 것은 감동과 반가움이었다.
"사공운, 사 영환님 아니십니까?"
"잘 있었소? 하 소호장. 아니, 지금은 호위장이 되었다 들었소."
모두 호흡을 멈추었다.
사공운, 사 영환이란 이름 세 자가 주는 충격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부 거대한 태풍이었다.
용취아는 주저 앉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또 달래며 사공운의 얼
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설마 잘못 듣지는 않았겠지.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언제인가 본 듯한 모습, 항상 가슴속에 담고 있던
모습. 아버지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그녀는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모든 사념이 마비되고 있었다.
마교의 무리나 마달이나 공손명이나 아랑, 그리고 도희염 역시
경이의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관패는 누가 무슨 생각을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용취아를 보며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자신의 내외상 따위는 별로 따지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으메 귀여운 것. 저렇게 귀여운 여아가 나의 조카라니, 주공이
참으로 딸 하나는 잘 만들어놓았구먼. 흐흐.'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연신 싱글벙글이던 것이었다.
하소란은 사공운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조금 다정해 보이고 온
화해 보였던 사공운은 현재 없었다. 대신 다가서기 어려울 만큼
위엄과 차가운 기운이 흐르는 사공운의 모습이 있었다. 하지만
하소란은 그의 변화가 그의 기본적인 성격까지 변화시켰다고 믿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가 나타나면서 그녀는 모든 걱정으로부터 자
유를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어떤 어려움도 잘 해결될 거란 믿음이
그녀를 가득 채웠다.
"잘 돌아오셨습니다."
하소란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단엽은 하소란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용취아에게 다가
섰다. 그가 걸어가는 앞에 벽력추가 있었지만, 그는 감히 그에게
달려들 생각을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는 천산의 두 노인을 거쳐 마달의 앞까지 왔다.
마달은 얼른 예를 취하려 하였지만, 단엽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
고 용취아의 앞에 섰다.
취아는 숨이 막혔다.
'아버지.'
불러보고 싶었다. 얼마나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말인가? 당장이
라도 그의 가슴에 뛰어들어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
는 자신의 정체가 아직은 알려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누차 들어
왓었다. 어린 가슴이 그것을 참아내려 무진 애를 쓴다. 그러나 눈
물이 핑 도는 것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단엽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연 자신이 아버지란 사실을 밝혀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여기까지 오면서 내내 고민한 것이었다. 밝히
면 용설아는 부정한 여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고 용취아 역시 그
런 어미, 아비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지탄을 면치 못하게 된다.
용취아는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들어서 알고 있기에 아버지
가 자신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단엽 역시 용취아가 자신이 아버지인 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했
다. 말을 해야 하는데 목이 메인다.
부르면, 아버지의 이름 대신 또는 딸의 이름 대신,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단엽은 취아를 보다가 눈이 시린 것을 느끼고, 잠시 하늘을 보았
다. 그리고 그 사이 취아의 눈엔 물리가 흘러내린다.
그들의 숨 막히는 상봉 장면에 아무도 말을 걸지 못하고 있을
때, 단엽은 다시 고개를 내려 취아를 보았다.
"네가 취아구나."
취아는 가슴속을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마치 꿈결 같았다. 만약
꿈이라면 깨어서는 안 된다. 말을 하면 그 꿈이 깨질 것 같다. 그
래서 대답을 못하고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단엽은 품에서 천잠복대삼을 꺼내었다. 물론 그 안에 있던 칠살
금마공은 지워진 다음이었다.
그는 그것을 용취아에게 전해 주면서 말했다.
"나는 용설아 소공녀에게, 그녀의 후인이 있으면 그녀의 영환 호
위무사가 되어줄 것을 부탁받았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응했으며,
서로의 약속은 이 천잠복대삼이 증명해 줄 것이다. 너는 그것을
인정하겠느냐?"
용취아의 고개가 다시 끄덕여진다.
단엽은 가볍게 웃으며 손으로 취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 말거라! 이제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너를 건들지 못한다.
이 아저씨가 너를 지켜 줄 것이다."
용취아는 세상이 무너져도 자신은 안전할 것 같았다.
차가운 날씨와 매서운 한풍도 지금 그녀의 따뜻해진 가슴을 식
히진 못했다. 조금 거친 듯한 아버지의 손길이 그녀를 더없이 감
동스럽게 한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더 이상 말
을 안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는 자신이 바보라고 생
각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두려웠다. 어떻게 만난 아버지인데, 못
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것은 용설아 언니가 아저씨에게 준 것, 소중하게 간직하세요."
취아는 자신이 제법 말을 잘 끝냈다는 사실에 안심하였다. 어머
니를 언니라 부르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또 가다듬었다.
단엽은 취아를 보았다.
그녀의 또렷한 눈에는 단호함이 어려 있었다. 그는 천잠복대삼
을 다시 품에 넣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사 영환이라 불러라! 아니, 아저씨라 불러도 좋다. 네
편할 대로 부르렴. 지금부터 나는 사공운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리고 지금부터 나는 너의 영원한 호위무사가 되었다. 이제 너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유령의 무서움을 뼛속까지 깨달아야 할 것
이다."
용취아는 작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작은 소녀의 마음을 누가 헤아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기쁨, 환희, 안도감, 아버지에 대한 자랑스러움.
그녀는 이 숲의 나무들이 전부 마교의 장로들이라 해도 겁이 나
지 않을 것 같았다.
사공운의 단호한 말을 들은 육사령과 마교의 고수들은 몸을 부
르르 떨었다. 공포라는 이질적인 감정이 그들의 가슴을 흔들어놓
고 있었다. 사공운의 단 한마디에.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선 사공운이 마교의 무리들과 마달을 훑어
본다. 육사령은 그의 위엄 속에 자신의 존재가 아주 작아지는 것을
느끼고 다시 한 번 가슴이 서늘해진다.
용취아는 세상에서 가장 넓고 든든한 등을 보고 있었다 이렇게
아버지가 앞에 있으면, 그 어떤 폭풍도 그 앞에서 멈출 것 같았다.
그냥 뛰어들어 그의 등에 업혀서 울고, 또 울고 싶다.
'안돼, 용취아 너는 강하잖아! 아버지를 힘들게 해선 안돼!'
그녀는 그렇게 서서 하염없이 사공운의 등을 보고 있었다.
하소란은 감격적인 두 사람의 만남을 지켜보다, 사공운이 용취
아의 영환호위무사가 되자 얼굴을 활짝 펴며 육사령을 보았다. 그
리고 사공운이 돌아서서 마교의 무리들을 훑어보자 왠지 모르게
의기양양해졌다.
그녀는 사공운이 십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는 사
실을 알 수 있었다.
그때도 강했다. 한데 지금은 얼마나 강해졌을까? 특히 배교의
환술까지 지닌 사공운의 가공할 능력을 느겨는 아주 가까이서 지
켜보고 느낀 적이 있었기에 그 기대가 더욱 컸다.
'이제, 소공녀는 성을 얻었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성이다.'
하소란의 생각이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아랑과 도희염을 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제 마교 전부가 와도 소용없을걸요."
흐뭇해하는 그녀를 보고 아랑과 도희염도 무엇인가 믿음과 안도
감을 느낀다.
사공운의 시선이 마달을 향했다.
마달은 침착하려 애썼지만 그것이 조금 전처럼 잘 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꿰뚫어 알고 있는 듯한 사공운의 시선이 부담
스럽다.
마달은 애써 포권을 하며 정중하게 말했다.
"천산의 마달이 사공운 대협께 인사드립니다. 저 역시 사공운 대
협을 흠모하여 호위제에 참가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데 여기서
뵙게 되다니 꿈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공운은 마달의 인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피식 웃으며 그
를 무시하고 육사령인 삼혈지와 마교의 무리들을 보면서 말했다.
"보았는가? 지금부터 나는 취아의 영환 호위무사다. 누구든지 취
아를 건드리거나 해하는 자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모두 돌아
갈 텐가? 아니면 덤비다 다 죽던지."
취아라 했다.
자신의 호위자이자 용부의 소공녀를 그렇게 불러도 되는지 모르
겠지만, 그의 호칭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오히려 다르게 부른다면
그것이 이상할 것 같았다.
'아버지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취아는 마냥 즐거울 뿐이었다. 사실 조금 전에도 불렀지만 그때
느 경황이 없었다.
육사령과 마교의 사령들은 기가 막혔다.
이건 한마디로 자신들은 안중에도 없는 행동 아닌가? 사공운이
아무리 십대 고수 중 한명이지만 이렇게 오만하고 자신들을 무시
할 수 는 없었다.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마교의 장로들은 화가
나기 전에 기가 막혔다. 그리고 불현듯이 상대가 두려워졌다.
조금 전 느꼈던 그 두려움이 다시 그들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사공운의 자신감이 가슴에 돌을 얹은 것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관패는 눈을 크게 드고 자신의 주공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부녀의 상봉에 서로 아버지라 못하고 딸이라 못하는 두 사람
이 안타까워 콧날이 시큰하기도 했다.
'염병, 한 겨울에 웬 비냐?'
주먹으로 눈을 훔친 관패가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며, 사공운이
말을 할 적마다 가슴속으로 결심하는 것이 있었다.
'취아야! 이 숙부도 있다. 잊지 마렴.'
그리고 사공운이 마교의 무리들을 싹 무시하는 광경을 보다 그
만 신이 났다.
'과연 우리 주공이 잘나기는 잘났구나. 마교 놈들 기가 싹 죽었
군. 흐흐 앞으로 신날 일이 많을 것 같다.
관패가 이렇게 슬프다 신이 났다 할 때, 벽력추가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지르며 사공운에게 달려들었다.
"이 찢어죽일 새끼야! 마교의 장로를 땅따먹기 해서 뽑은 줄 아
느냐?"
그의 고함도 벽력같았다. 그리고 산이라도 일거에 뭉갤 듯이 밀
려오는 철퇴.
사공운의 신형이 움직였다.
마치 바람이 흩어지는 듯 흐릿해진 사공운의 신형은 겨우 한 발
을 앞으로 전진 하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잇달아 두번
을 쳐내고 있었다. 하나는 날아오는 철퇴를 향해 하나는 벽력추를
향해.
'퍽' ,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얼어
붙고 말았다.
그들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우선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채 흩어지는 철퇴가 그들을 놀라게 하였고,
뒤로 십여 장이나 날아가 땅바닥에 처박힌 벽력추가 그들을 오그
라들게 하였다.
한 방에 즉사였다.
자신의 딸을 해하려 한 자들에 대한 아버지의 응징이었다. 당초
사공운의 결심대로 자신의 딸을 건드리는 자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은 것이리라.
사공운은 천금마옥에서 나와 처음으로 칠절유령살수를 전력으
로 펼쳐 보았다. 과연 천금마옥에서 완성한 유령살수의 위력은
고생한 보람을 충분히 보상할 만했다.
사망미희와 겨루면서도 삼 푼의 힘을 아껴두었던 사공운이었다.
한데 지금 십이 성의 유령신공으로 펼친 유령살수상의 단혼유령
참(斷魂幽靈斬)은 만년한철만큼 단단하다는 흑운면철(黑雲勉鐵)
로 만든 벽력추의 철퇴를 산산히 부숴버릴 정도로 무서웠다.
육사령은 입이 들러붙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건 풍문으로 들
었던 사공운과 비교해서도 너무 차이가 났다. 대체 마교 내에서도
전력을 다해 공격해 오는 벽력추의 철퇴를 저렇게 부숴버릴 수 있
는고수가 몇이나 있겠는가? 더군다나 흑운면철로 만들어진 철퇴
를 말이다.
구대 마존이나 이대 호법, 그리고 마교의 교주라면 가능할까?
더군다나 그냥 있는 철퇴와 공격하기 위해 내공을 주입한 철퇴는
천양지차였다.
"협공한다."
육사령, 삼혈지가 단호하게 말했고, 혈삼마와 삼음사, 그리고 녹
안마장이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들도 일대일로는 도저히
이길수 없음을 알았던 것이다.
"비겁한 놈들."
보고 있던 마달이 항마보검을 빼어 들고 사공운과 합세하려 하
다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차가운 사공운의 시선이 그의 움직임을 잡아둔 것이다. 그의 눈
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까불지 말고 그 자리에 있기나 해."
사공운은 한 번의 시선으로 마달을 잡아놓고 취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조금 기다리거라!"
취아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공운의 신형이 마치 유
령처럼 허공을 맴돌았다.
빠르다. 그리고 그것뿐이 아니었다. 이미 속전속결을 결심한 사
공운이었기에 그는 최고의 절기를 전력으로 펼치고 있었다.
그의 신형이 네 명의 중앙으로 정면으로 돌진해 오자, 네 명은 일
제히 사공운을 공격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사공운의 신형
이 열여덟 개로 갈라졌다. 어떠 것이 허고 어떤 것이 실인지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이 같았다. 모두 기
겁을 하는 순간 열여덟 명의 사공운은 허공에서 일제히 유령연환
각 중 한 초식인 섬전환마각(閃電幻魔脚)을 펼치며, 네 명의 마교
장로들을 동시에 공격해 들어갔다.
환에 환이 더해지면 어떻게 될까?
지금 그 정수가 보여지고 있었다.
열여덟 사공운의 발은 각자 열인지 이십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공을 수놓았다. 그 화려한 발길질 앞에 , 지켜보던 마교
의 천마대나 도희염, 아랑을 비롯한 사공명이나, 마달이나 모두
입을 딱 벌리고 넋이 반은 나가버렸다.
관패만은 '뭘 그 정도 가지고' 하는 표정으로 지켜본다.
사공운의 환마각을 막기 위해 허둥거리며, 네 명의 마교 장로들
이 각자 흩어지는 순간, 허공에 가득했던 사공운은 거짓말처럼 모
두 사라졌다. 그리고 단 한 명의 사공운만이 남아서 연이은 연환각
으로 혈삼마를 공격하고 있었다. 마치 산을 무너뜨릴 것 같은 사공
운의 발길질에서 붕 하는 소리가 허공을 찢어놓을 것처럼 들려왔
다. 이것이 바로 유령연환각, 또는 연환유령각이라 불리는 유령신
공의 절기 중에서 그 위력이 가장 강한 초식 중 하나인 붕산퇴(崩
山腿)였다.
다급한 혈삼마가 잘려진 구절편의 조각으로 사공운의 발을 막으
려 하였다. 또한 흩어진 마교의 장로들이 혈삼마를 도아주려 사공
운의 등을 공격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늦었고 사공운의
붕산퇴는 혈삼마와 구절편을 한 번에 차내고 있었다.
'퍽' 하는 소리가 들리며, '크아악' 하는 비명이 그 뒤를 따랐다.
부러진 구절편이 하늘로 날았고, 혈삼마는 턱이 부서지면서 뒤
로 벌렁 나자빠졌다. 몇 가닥 없느 그의 머리카락이 찬바람에 흩
어진다.
사공운은 그 자리에서 뒤로 회전하면서 동시에 옆으로 또한 반
바퀴를 회전하였다. 그러자 부랴부랴 그의 뒤를 공격해 오는 세 명
의 고수들과 다시 정면이 되었다.
사공운의 발이 유령미기의 보법으로 흔들리며, 그들이 공격하
는 틈으로 미끄러지듯이 흘러들었다. 그리고 그의 손은 유령살수
중의 십팔선회령(十八線會嶺)으로 정면에 있는 육사령을 휘감아
간다.
끝없이 돌아가는 바퀴처럼 사공운의 십팔선회령은 매서웠다.
육사령은 자신의 이름과도 같은 세 손가락을 들어 , 핏빛의 지력
세 가닥을 사공운에게 쏘아내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지금을 있게
한 삼혈지라는 지법이었다.
마교 내에서도 너무 지독하고 익히기가 극히 어려워, 익힌 자가
없다는 삼혈지. 이것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일곱 개의 손가
락을 전부 잘라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육사령은 당시 망설이지 않고 일곱 개의 손가락을 잘라내고 이
삼혈지를 익힌 뒤 자신의 아호마저 삼혈지라 칭했다.
세 가닥의 혈선이 십팔선호령을 뚫고 들어오려 하였지만, 사공
운의 장력은 마치 그물처럼 촘촘한 무형의 강기를 형성하며 삼혈
지를 쳐내었다.
그리고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삼혈지의 오른손이 앞으로 가볍
게 쳐나간다. 손가락이 하나도 없는 그의 손은 보기에 따라서 아주
애련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한데 그 손바다에서 벼락처럼 뿜어진
붉은 안개가 사공운의 면상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을 본 도희염과 관패가 동시에 놀란 듯 소리쳤다.
"혈수인(血手印)"
이는 마교에서도 최상의 절기 중 하나인 혈수인이었다.
손가락이 없는 손으로 펼쳐야 제 위력이 나온다는 혈수인. 결국
삼혈지는 바로 이 혈수인을 펼치기 위한 속임수이자 사전 초식에
불과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육사령이 삼혈지와 혈수인을 동시
에 펼치는 그때, 삼음사의 고가 둥 하는 소리를 내며 연달아 울리
고 있었으며, 녹안마장 역시 자신의 절기인 흑수장으로 사공운의
옆구리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것은 차라리 삼 면에서 협공당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처지였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삼음사의 음공은 상당히 부담스러워
보였다.
모두 놀라고 있었지만, 당사자인 사공운은 태연했다.
그의 초식이 유령살수의 제삼초식인 금령섬인(金靈閃印)으로
바뀌었다.
섬전 같은 무형의 기가 뿜어져 혈수인과 충돌하였다. 동시에 협
공해 오는 녹안마장의 흑수장을 향해 삼절유령신권(三絶幽靈神
拳)의 유령삼점(幽靈參點)과 유령선회(幽靈旋回)를 연달아 펼쳐
내었다.
'꽝' 하는 소리가 들리며 혈수인과 금령섬인이 충돌하는 순간
육사령은 온몸의 뼈가 전부 부서지는 충격을 받으면서 뒤로 일 장
이나 주르륵 밀려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입과 코로 피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 순간에 녹안마장의 흑수장은 유령삼점과 충돌하였다.
처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흑수장과 사공운의 권강이 충돌하며
사라졌다. 한데 그 사라진 틈으로 한 가닥의 권강이 스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재차 흑수장을 펼치려던 녹안마장은 그제서야 사공
운이 두 번의 주먹질을 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는 기겁을 해서 오른쪽으로 피했다.
날아온 권강이 그의 왼쪽 가슴을 공격하였기에 상대적으로 피하
기 쉬운 오른쪽으로 피한 것이다. 한데 오른쪽으로 피한 녹안마장
은 그 자리에서 부르르 떨다 절명하고 말았다.
삼점이란 세 가닥의 권강으로 세 군데를 동시에 공격한다는 의
미가 있었다. 주먹을 내지르면 주먹에서 뿜어진 강기는 세 가닥으
로 나뉘고 그 세가닥은 상대의 세 개 혈을 노리고 공격하는데 이
게 바로 유령삼점의 초식이다.
사공운은 유령삼점의 세 가닥 강기를 세 군데로 보내면서 그 속
도를 조절하였다. 먼저 일점이 흑수장과 충돌하였고, 이점이 녹안
마장의 왼쪽 가슴을 공격하게 하였다.
당연히 오른쪽으로 녹안마장이 피하는 순간 이미 그곳으로 날아
간 나머지 일점이 그의 내부를 완전히 박살 내고 만 것이다. 물론
마지막 일점은 극한의 유령기가 포함되어 있어 어지간한 상대는
알아채기도 힘들었다. 결국 연달아 두 번의 공격을 당한 녹안마장
은 영문도 모르고 죽은 셈이었다.
이렇게 세 가닥의 강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경지가 바로
유령종이었다.
그리고 놀라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공격을 당하지도 않은 삼음사가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삼절유령신권의 유령선회에 맞아 즉사한 것
이었다.
유령선회는 쏘아낸 권의 기를 마음대로 회전시킬 수 있는 절기
였다. 사공운은 이 유령선회로 녹안마장을 공격하는 것처럼 하면
서 그 기를 꺾어 삼음사를 공격했으며, 삼음사 역시 유령절기에 영
문도 모르고 죽은 셈이었다.
사공운이 두 번 공격을 한 것으로 기억하는 녹안마장은 유령삼점
의 두 번째 치고 들어온 권강을 사공운이 공격한 두 번째 초식으
로 계산했었다. 그래서 세 번째 권강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데다가
유령신공이 원래 음밀한 무공 아니던가? 죽으면서도 자신이 어떻
게 죽었는지 이유를 모르고 죽었으니 녹안마장은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다.
삼음사야 자신이 죽은 것도 몰랐으니까 좀 덜 억울하리라.
보고 있던 사람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도희염과 아랑은 아예 혼이 나간 모습이었고, 마달은 자신이 무
공에 지니고 있던 자부심이 사라지고 말았다. 함께 있던 쌍둥이
노인들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진 채 눈은 주먹보다 아주 조금 작은
정도로 찢어져라 떠져 있었으며 , 관패는 억울했다.
'에이 빌어먹을. 내가 몸만 성했어도 취아에게 점수 좀 따는 건
데. 주공 혼자 날아다니네.'
속으로 투덜거리며 주저앉은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육사령을 한
심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멍청한 놈. 실력이 없으면 눈치 빠르게 도망이나 할 것이지.'
연신 투덜거렸지만, 사실 관패는 사공운의 무공에 다시 한 번 놀
라고 있었다.
공손명은 흠모의 눈으로 사공운을 보고 있었는데, 아마도 신이
있다면 신을 보는 시선이 지금 공손명의 시선과 같으리라. 공손명
은 사공운이 자신의 아버지와 친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으며, 자
신의 꿈이 사공운이 아니었던가? 지금 그의 기분을 누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랴. 그러나 그 모든 사람의 기분이 용취아에게 비할
수 있을까?
'저분이 나의 아버지다.'
용취아는 몸이 떨려오는 감동 앞에 눈조차 깜박이지 못하고 있
었다.
한 번 움직이면 마치 해일처럼 세상을 덮을 것 같고 산처럼 진중
하다. 강하고 독하다고 알려진 마교의 장로들이 대항 한번 제대로
못하고 펑펑 나가떨어진다.
어려서 이미 험하고 험한 일들을 많이 겪어온 용취아였다. 어린
마음이지만 자신을 싸고 돌아가는 용부의 공기를 어느 정도 이해
하였기에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두려
움에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부지기수였다. 언제나 살수가 자신을
죽이는 악몽에 시달려야 하는 십오 세 소녀의 삶을 세상의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언제나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더 그
녀였다.
이제 아버지가 옆에 있으면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젠 악몽을 꾸지 않을 것 같았다.
사공운은 마교의 육사령인 삼혈지를 보면서 말했다.
"가라! 가서 전해라! 마교가 취아를 건드린 대가는 반드시 치러
야 한다고. 그렇게 전해라! 오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리라!"
육사령은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호랑이에게 압도당한 여우는 '낑' 하는 소리도 못 내는 법이다.
'더 무서워지고, 더 강해지고, 마음은 독해졌다. 누구든 사 영환
님을 적으로 둔 자는 편히 자지 못하리라.'
하소란의 생각이었다.
사공운이 돌아서서 용취아를 보았다.
용취아 역시 사공운을 본다.
"너는 두렵지 않느냐?"
조심스런 물음이었다.
그 말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 상황이 두렵지 않느냐 하는 물음은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
는 자신이 두렵지 않느냐는 물음이리라.
딸 앞에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취
아는 지금 한참 예민해져 있을 나이였다. 사공운은 상대를 죽이면
서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 점이었다. 마교의 무리들
을 단호하게 처리하기는 했지만, 아버지로서 딸에게 약해질 수 밖
에 없엇다.
용취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사공운이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이런 물음을 하는지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저들이 살아난다면 나의 주변에 있는 누군가 저들에게 죽겠죠?
저는 사영환 아저씨를 이해해요. 동료들의 복수도 대신 해주셨다
는 것을 압니다."
사공운의 눈 깊은 곳으로 아픔이 스쳐갔다. 한편으로 안심이 되
면서도 안쓰럽다. 십오 세 소녀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비극이었다. 하필이면 그것이 자신의 딸이라는 것이 더더욱 가슴
아프다.
어린 소녀가 세상을 얼마나 험하게 살아왔는지, 용부에서 그녀
에게 무엇을 교육시키고 얼마나 강하게 가르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이 가라앉고 나자 어떤 면에서는 그녀가 대견스
러웠다.
외유내강한 용취아의 성정은 자신의 어미를 그대로 닮아 있었다.
"참으로 강한 아이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그 정도면 이 험한 세
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싫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너를
위해 죽어간단다. 네가 약하면 그들은 더욱 많이 죽을것이며, 죽
은 사람들은 모두 헛되이 죽은 것이 된다. 그래서 강해야 한다. 육
체도 강해야 하지만, 정신적으로도 강해야 한다. 그것이 너의 숙
명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사공운이 손으로 용취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정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체취를 느낀 용취아는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사공운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왜 겁이 안나겠는가? 또한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도 사
람을 죽이는 아버지는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는 한다. 그러나
감정까지는 아니었다.
강한 아버지에 대한 동경과 믿음. 그리고 아무리 악한이라고 낙
인 찍힌 사람들이라도 그들을 죽이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사
이에 작은 죽다리기는 있었으리라.
잠시 찬 바람이 사공운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첫댓글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아 너무멎져 즐독..감사
감사합니다
잘 ~ 읽었습니다
즐감~!
즐독하였습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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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
즐독!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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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그리고 감사 합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