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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차의 오글오글한 이야기 91
생 피에로 미켈롱섬, 케이프 브레턴섬, 루이지에나 등으로 도망치고 추방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아카디안들이 죽었습 니다. 지금은 케나다 동부가 된 땅의 흑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롱펠로우의 서사시 에반젤린은, 바로 이 아카디안 추방의 내용을 노래한 것이지요. 지금도 아카디안들은 케이 프 브레턴과 몽튼과 디엡 등에 모여서 살고 있는데, 현대의 프랑스어와는 많이 다른 언어를 쓰고 있어 불어를 잘 하는 사람도 대화가 어렵다고 합니다.
아카디아에 처음부터 거주한 사람들은 상류층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기간 아카디아의 주민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고 이주해 오는 사람들은 제대한 군인들, 도시 빈민들이 대부분이었 는데 가장 중요한, 농사를 지을 농민들 이 별로 없었습니다. 풍토병이나 거수 들의 공격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아카디안들을 도와준 사람들은 바로 그 들이 멸시하던 인디언 들이었습니다.
믹맥족이라고 불리우는 인디언 일족은 마치 형제들을 맞이하듯이 아카디아에 오는 프랑스인들을 환영했고 누구에게든지 자신들의 생존 기술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믹맥족의 도움 없이는 아카디 안들은 생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냥하는 법과 배를 만들어 고기를 잡는법, 그리고 농사를 짓는 것 까지 도와주었습니다. 아카디안들이 살게 된 땅 은 풍요한 결실을 내어 주었고 정착민들 의 생활은 점차 나아지면서, 프랑스에 있을 때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할수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프랑스 정부는 아카디아를 그저 식민 지역의 하나로만 여기고 그다지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아카디안들은 믹맥족의 도움을 받아 모든 것을 자급 자족했고 인디언들의 집과 흡사한, 조악 한 집에서 거주했습니다. 거의가 문맹 이어서 선교사들과 정부 관리들이 들어 오기 전까지는 아카디안은 평화로웠습 니다. 믹맥족과 아카디안들의 관계도 선린이었고 별다른 갈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뒤에 들어온 선교사들과 교사들 은 누구에게든지 기독교를 가르치고, 기독교 율법대로 살기를 강요했고 믹맥 족과 아카디안은 이 시점부터 많은 갈등 을 겪게 됩니다. 인구는 1650년 이후 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해서 200여명에 불과하던 주민들이, 백 년 후에는 만 명 이 넘어 갔습니다. 아카디안들이 흩어 지게 된 7년 전쟁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1756년에서 1763년까 지 이어진 이 전쟁은 수 많은 나라들이 참전했습니다.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 해서 독일의 모든 주와 연방들이 제각기 주권을 행사하게 되어, 그 동안 명맥만 이어 오던 신성로마 제국은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버렸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의 나라들이 정부의 권력을 중앙으로 모우며 국가의 힘을 기를 때, 중요한 중부 유럽은 공백 상태가 된 것이지요.
헤쳐모여식의 동맹 관계는 날이 새면 달라지고,크고 작은 갈등은 유럽을 조각조각 무너트릴 듯 했습니다. 자연히 선점을 하고 국가의 권력을 확보하려는 나라가 나타나기 마련이었고,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가 세 발 솥처럼 버티고 섰습니다. 중국의 삼국지를 잠시 연상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과히 틀리지도 않습니다 .
18세기의 유럽은 수많은 전투로 얼룩졌으니까요. 이렇게 해서 일어나게 되 는 7년 전쟁에 참전한 나라는 영국,프랑 스, 러시아, 포르투칼, 스웨덴, 스페인, 작센, 무굴제국,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의 나라들이 참전했습니다.
전투 지역은 너무나 광범위한데 이 전쟁을 훗날 윈스턴 처칠이 -18세기의 세계대전 -이라고 표현한 것은 적절했지 싶습니다.
아메리카와 인도, 서인도제도와 독일, 아프리카와 카리브해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대부분의 대륙에서 폭죽 터지듯이 여기저기서 터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념으로 대륙이 양분되 어 전쟁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 무대는 독일이었으나 프랑스와 영국 이 자신들의 식민지에 대한 이해득실이 겹쳐 결국 식민지 쟁탈전 양상으로 변한것입니다. 원래 7년 전쟁이 발발한 이유는 아주 복잡한 왕위 계승 전쟁이 시발점이 되었고, 격동하는 18세기에 자국의 이득을 더 얻고자 하는 유럽의 검은 속셈이, 대륙간 대전투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국력을 쏟아 부어 전쟁을 한 결과치곤 별로 이득을 본 나라가 없는 겁니다.
마치 동네 꼬꼬마들이 골목 전투를 하는 것 처럼 이해득실이 마구 얽힌 전쟁이 오랜 시간을 끌었습니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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