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고토리 포위망 돌파작전
철수하는 병력이 새로이 도착한 고토리에도 미 해병1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소장의 지시로 규모가 작지만 활용할 수 있는 야전 활주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하갈우리 활주로에 비해 훨씬 작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효율적으로 활용하였다.
12월 7일부터 12월 8일 아침까지 유엔 공군 전투물자 공수사령부의 C-47과 C-119 항공기가 수십 차례 출동하여 부상자들을 연포비행장으로 후송하였고, 연포비행장에서 다시 후방 병원으로 안전하게 옮겨졌다.
철수하는 부대는 하갈우리 야전 활주로를 통해서 식량, 탄약, 소총 심지어 중화기와 트럭 등 각종 보급품을 공수 받은 것처럼 고토리 캠프에서도 함흥-흥남까지 철수하는 데 필요한 각종 군수물자를 지원받아 철수의 다음 단계를 준비할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은 하갈우리 캠프와 마찬가지로 전사한 병사들이나 부상병을 대신하는 추가 병력을 항공편을 통해서 계속 보충받을 수 있어 전력상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를 할 수 있었다.
12월 8일 시작된 고토리에서 진흥리까지 16Km 거리의 철수는 12월 10일이 되어서야 끝날 정도로 철수하는 유엔군 병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중공군 사이에 몇 번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행군이 자꾸 지연되었다.
황초령 고개에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던 중공군은 이제 마지막 전력을 다해 유엔군을 공격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황초령 고개는 굽이굽이 산악지역이어서 중공군이 산 위에서 매복하여 유엔군을 공격하기에 좋은 장소가 많았다. 중공군은 60사단을 황초령에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고, 다른 3개 사단을 주변에 배치하여 공격준비를 완료하였다.
그리고 2개 예비 사단의 병력도 준비하여 그동안의 공격 실패를 일거에 만회하려고 기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공군의 공격은 스스로가 갖고 있었던 한계를 드러냈다. 중공군이 장진호 전투 초기인 11월 27일부터 12월 1일까지 장진호 서안과 동안을 공격할 때는 그들의 엄청난 인원을 동원한 공격에 유엔군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려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때에 비해서 중공군 병사들의 사기는 말할 수 없이 떨어져 있었다. 왜냐하면 워낙 막강한 유엔군의 공중지원 폭격과 멀리는 동해로부터 지원되는 미 함대의 함포사격의 위력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유엔 공군의 철저한 보급로 폭격으로 무서운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방한복은 말할 것 없고 식량마저 제대로 보급을 받지 못하고 있어 크게 위축되어 있었다.
중공군은 장진호 전투 초기까지는 몰래 숨어서 산을 타고 오거나 야간에만 이동하고 땅굴까지 파고 그 속에 숨어 있다가 기습공격으로 미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 중공군이 전투에 모습을 드러낸 이상 막강한 화력을 가진 미군을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유엔공군, 해군, 해병 1항공대의 전폭기들의 근접 공중 폭격이 매일 진행되었기 때문에 공포감으로 전투의지조차 약해졌다.
그리고 동계전투의 특성상 영하 20∼30도의 매서운 추위는 유엔군 측이나 중공군 모두에게 치명적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보급품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은 중공군에게는 더욱 혹독한 추위로 느껴졌다.
#1 황초령 고개와 교량 공중 투하작전
흥남항을 향하여 철수하는 유엔군이 마지막 고비로 넘어야만 하면서도 전진하기에 어려운 곳은 고토리 캠프를 출발하여 만나게 되는 황초령 고개였다. 함경남도의 부전령산맥 남부에 있는 황초령은 심한 안개와 바람 때문에 날이 더운 여름에도 풀마저 자라지 못해 그 일대가 누렇게 변한다는 이유로 ‘황초령’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으로 악천후 때문에 통행이 어려운 곳이었다.
이곳 험난한 황초령 고개에서 드디어 큰 문제가 발생했다. 중공군은 유엔군이 이동하는 보급로에 장애물을 막아 놓거나 교량을 파괴하여 철수병력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공격을 가하는 전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 전법의 일환으로 중 중공군은 12월 7일 고토리 남방에 있는 황초령 고개의 북쪽 끝 457미터 깊은 협곡에 있던 수문의 교량 상판을 5미터 가량 폭파시켜 철수하는 유엔군의 이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장진호 물을 역류시켜 함경산맥의 급경사면에 떨어뜨려 전력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유역변경식 발전소가 진흥리 부근에 있었다.
그 발전소에 물을 공급하는 설비의 수문이 황초령 고개에 있었는데, 중공군이 폭파시킨 것은 바로 그곳의 수문 위에 있는 교량 상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주변지역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인 낭떠러지로 되어 있어 새로운 도로를 만들 수도 없었다. 따라서 유엔군은 앞으로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봉착했다.
거기에다 유엔군은 중장비, 중화기와 함께 이동하므로 산길로 갈수도 없었고, 철수하면서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하고자 후위부대가 후방의 모든 교량을 파괴하고 왔기 때문에 뒤로 다시 돌아갈 방법도 없었다.
철수대열은 파괴된 황초령의 수문교 앞에 멈춰서 있었고, 중공군 58사단과 59사단, 60사단 4만여 병력은 해병대의 후미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리고 60사단 산하 179연대는 미리 황초령을 넘어 진흥리에 포진해 있었다. 꼼짝없이 포위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동안에 중공군도 적지않은 타격을 입었기에 섣불리 덤벼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저들이 전투력을 회복하기 전에 신속히 황초령을 넘어야 했다.
이제 철수의 성공여부는 교량 복구에 달렸다.
그러나 세계 최강국 미국은 이러한 난관을 타개할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책을 선보였다.
유엔 공군 전투물자 공수사령관 윌리엄 터너 소장은 특수 공중보급 훈련을 받은 미 육군 병참 공수단 소속의 8081병참공수 중대의 협조를 받아, 8개 경간(經間: SPAN) 으로 나눠진 M2 답교(踏橋: Treadway Bridge)를 공중 투하하는 작전을 진행했다.
장진호 전투 때 있었던 이 교량 공중 투하작전이야말로, 그야말로 무모하게 인명을 앞세워 희생시키는 군대와 기계화된 장비와 무기로 무장하고 군수품 지원을 제대로 해 주어 자국 군인의 희생을 최소화시키는 군대간의 전투력이 얼마나 현격한 차이가 나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본보기였다.
12월 8일 흥남 인근의 연포비행장에서 발진한 미 5공군 소속의 8대의 C-119 수송기에 1개씩의 경간 부품을 운송하여 8081병참 공수 중대원들의 지원으로 1개의 무게가 1,136톤의 경간으로 조립한 후 황초령 고개 상공을 향했다.
잠시 후에 요란한 엔진 음을 울리며 C-119 대형 수송기 8대가 현장 상공에 나타났다. 플라잉 박스 카(Flying Box Car)란 별칭이 붙은 C-119는 최대 이륙 중량이 3만 8천Kg에 달하는 초대형 수송기로 숙천과 순천 공수작전 때는 105밀리 곡사포를 투하했던 적도 있었다.
공수 담당관들은 트레이드 웨이를 8개로 분리해서 8대의 C-119에 싣고 공중투하하기로 한 것이다.
황초령 상공을 선회하던 8대의 C-119 수송기는 지상에서 신호가 오르는 것을 확인하고 상공 152m 높이에서 차례로 트레이드 웨이를 낙하시켰다.
이 장면이야말로 세계의 메스컴이 주목하고 있는 해병대 철수작전의 클라이맥스였다.
OY2 스팀슨 정찰기에 탄 10군단장 알몬드 소장과 스미스 소장이하 모든 지상의 장병들은 숨을 죽이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철수작전의 승패가 여기에 달린 것이다. 8개의 트레드 웨이는 낙하산에 매달린 채 황초령을 향해 떨어져 내려갔다. 8개 중에 6개만 있으면 파괴된 수문을 복구할 수 있었다.
투하된 8개의 경간 중 1개는 중공군 지역에 떨어졌고, 1개는 망가졌지만, 다행히 6개가 아군지역에 무사히 낙하되었다. 해병과 육군 공병대는 신속하게 작업에 들어갔고, 사용가능한 6개의 경간 중 4개의 경간을 사용하여 12월 9일 15:30분경 M2답교를 마침내 설치했다. 복구된 수문교 위로 철수 병력 전원과 1,200여 대의 차량과 중장비는 이틀에 걸쳐 무사히 통과했다.
중공군 송시륜 9병단 사령관은 미군이 자재를 일본에서 공수하여 황초령 수문교를 복구하는 것을 보고 미국의 엄청난 힘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당시 이러한 교량의 투하는 세계 전투 역사상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이러한 고도의 기술을 포함하여 후방부대의 철저한 지원을 받는 군대를 열악한 장비를 갖춘 당시의 중공군이 대적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첫댓글 전쟁이 일어나면 젤 먼저 활주로가 건설된다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생각해보니 보급품 전달 부상자 수송등
정말 필요한 것인데 활주로에 관해서는 일반인들은 생각을 못해습니다.
이것은 잘못하면 상대가 이용하거나 폭파하거나 의 대상이 되었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전쟁의 실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급품이 그리 아주 중요한데
보급품에 대한 이야기들은 별로 안하니 몰랐지요.
훌륭한 장군 장비만 이야기 하니까요.
중공군 송시륜사령관의 전후 회고담에서 다 이야기 했군요.
기저를 이해하니 쉽게 풀리고
이길 거라는 확신이 섭니다.
중공군의 보급품 조달
유엔군의 보급품 전달
싸움이 안되게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