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든 시간이 열두 시 가량으로 늦게 자기도 했지만 오늘 일정이 오슬로에서 시내관광을 하고 크루주를 타고 덴마크로 넘어가는 일정이어서 일정이 여유로와 늦게 일어나고 아침도 늦게 먹는 일정이다.
여섯시 정도에 잠이 깨어 주변을 둘러보는데 완전히 소나무 숲 속에 팬션식으로 된 호텔이어서 폐부로 들어오는 공기의 질이 다르다.
여섯시라고 하더라도 이미 해가 이미 오래 전에 떠 있어서 나무들이 아침 햇빛에 눈이 부시게 싱그럽다.
숲 속에 있는 호텔...전부 일찍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언제 이런 곳을 또 보냈나 하면서 아쉬워 한다.
카펬에 곰발바닥이 그려져 있어서 왜 그런가 했었다.
호텔 뒤쪽의 풍경
뒤쪽에 나 있는 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짐을 정리하여 본관으로 내려가서 이침을 먹고 아홉시 정도에 출발을 하는데 호텔 바로 옆에 작은 광장에 거다란 곰이 세워져 있는 곳이 있다.
구글 지도를 보니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면 동물원이 있어서 동물원을 홍보하기 위해서 커다란 곰 동상을 세워 놓았는가보다.
그리고 호텔의 벽에도 동물 그림이 있는 것이 이상했는데 동물원 때문이었다.
인터넷을 보니 호텔에서 묵고 출발하는 관광객들이 이 곰 앞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고 우리 일행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곰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식당이 있는 호텔은 다목적이다..없는 것이 없는...아래는 트롤과 곰동상이다. 그런데 곰동상에서만 사진을 찍는다.
호텔에서 오슬로까지 가는 길은 그림 같은 집과 그림 같은 들판이 펼쳐지는 농촌의 모습이며 강과 호수를 끼고 오슬로로 들어간다.
이제 피요르드와 눈들과는 이번 여행에서는 완전히 이별이다.
이곳부터는 거의 들판으로 강과 호수를 끼고 오슬로로 간다.. 한시간 반 정도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마는 할링달 강이라고 한다.
차창가에 보이는 들
바다처럼 보이지만 지도에는 튀리피요르덴 호수라고 되어 있다.
호수와 그림 같은 집들
사람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지만 아쉬운 것은 트롬쇠를 가보지 못하는 것이다. 트롬쇠는 노르웨이의 북위 69도에 있는 인구 7만의 작은 도시로 눈과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 찾아가는 곳이다. 참고로 오로라는 9~4월에 나타나며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구름이 없어야 한다고 한다.
하늘을 가득 채우는 황홀한 빛의 향연을 동영상이 아닌 현장에서 오로라를 직접 본다면 그 감동이 어떠할까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트롬쇠 도시와 오로라 사진들...인터넷에서
열시에 출발하여 열한시 반에 오슬로에 도착해서 곧바로 시청사 옆에 있는 아케르스후스성으로 갔다.
이 성은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요새로 오슬로 항구 동쪽 언덕에 세워져 있는 중세의 성채인데 호콘 5세(King Håkon V)가 도시 방어를 위해 1299년에 건립하기 시작하였으며 노르웨이 왕이 머물던 성이라고 한다.
17세기 초 크리스티안 4세(King Christian IV) 때, 성을 개조하면서 현재와 같은 르네상스 양식의 외관을 갖추게 되었다고....
이 성은 어떤 외국군도 요새를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하였는데 2차대전 때 독일인들이 덴마크에서 이유 없는 살상을 저지르는 것을 본 뒤인 1940년 노르웨이 정부가 전투 없이 수도를 완전히 비웠을 때(그때 노르웨이 임시정부는 트롬쇠에 있었다) 요새가 독일군에게 점령되었다고 한다.
독일 점령군이 이 성에서 노르웨이사람들을 처형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는데 전쟁이 끝난 뒤 전쟁범죄를 저질러 사형을 언도받은 노르웨이의 매국노 8명 또한 이곳에서 처형당하였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비드쿤 크비슬링(Vidkun Quisling)이라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육군 장교 출신으로 나치 점령기에 나치에 협조하여 노르웨이에 괴뢰정부를 수립했던 사람이라고 하며 그의 이름에서 유래해서 ‘quisling’은 배반자, 매국노의 의미를 갖는 단어가 되었다고 한다.
성은 군사요새로서 사방에 시야가 확보가 되는 곳이기 때문에 성에 올라가서 보면 오슬로 전역이 다 보인다.
성 내부는 제대로 둘러보지 못하고 주변만 구경하는데 같이 간 여자분들은 성채 건물의 벽에 있는 보라색 꽃이 핀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고 정작 성 구경은 관심이 없다.
그 분들은 아마도 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것 같다.
바다에서 본 아케르스 후스 성...인터넷에서
성 안에 있는 건물들로 요새도 있고 망루도 있고 왕이 살았던 건물도 있고...
바깥을 보고 있는 것은 대포들이다....그 옛날과는 상관이 없이 즐기는 시민들
대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부자
이름을 모르는 이 꽃은 향기도 있는데 여자들은 이곳에서 사진찍는 것이 성을 구경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의 이모저모와 성에서 보는 전망
이번 여행에서 오슬로 관광을 한 곳
성을 구경하고는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칼 요한슨 거리를 구경하였는데 칼 요한스 거리는 오슬로 최대의 번화가로 오슬로 중앙역(Oslo Central Station)에서 노르웨이 왕궁(Slottet)에 이르는 약 1.5km의 거리를 말한다.
거리의 명칭은 1852년에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을 다스렸던 칼 14세 요한(Charles XIV John)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고 하며 오슬로 시내를 동서로 가로 지르는 이 거리에는 오슬로대성당(Oslo domkirke), 국회의사당(Parliament of Norway Building), 오슬로대학교(University of Oslo) 등이 모여 있고 주변에 국립미술관이나 역사박물관 등이 있어 노르웨이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라고 한다.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보행자 우선 거리로 운치 있는 카페와 아담한 상점들이 들어서 있으며, 곳곳에 풍부한 녹지가 조성되어 있는 시민과 관광객들의 휴식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차 없는 명동과 인사동을 합쳐 놓은 느낌이다.
시청사 앞에 있는 분수...누군가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는 곳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기억이...
국립극장...여기서 점심시간에 공연을 한다.
칼 요한슨 거리...시간이 없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노르웨이 의회건물
아가씨들에게 가위로 옷을 잘라서 패션을 만들어 주는 사람
칼 요한거리 옆...이 분수가 있는 곳은 겨울에 아이스링크가 된다고 한다.
점심식사를 하러 들어오는 길에 국립극장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보았는데 직장인들이 평소에 연습했던 것을 경연식으로 연주한다. 구경을 한참 하면서 박수를 쳐주고 환호도 보내준다. 아마도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연주를 하는 듯...
점심은 시청사 맞은 편에 있는 금산이라는 중국집에서 중식으로 먹었는데 중국여행가서 먹었던 그런 음식들이다.
시청사 맞은 편에 있는 노천 카페와 상가들
아마 대부분의 패키지 여행객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는 듯...여행기에 대부분 등장을 한다.
여행을 한 참 하다가 보니 이제 우리 멤바가 아니라도 친해져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데 북유럽 여행이 여행의 끝판왕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이미 어지간한 곳은 다 섭렵을 하였기 때문에 이제 더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며 여행에서 가장 힘이 드는 것이 음식이라고 하면서 여행에서는 유럽여행치고는 음식이 아주 좋다고 한다.
제일 힘들고 음식의 질도 제일 안 좋은 곳이 서유럽이라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점심 식사 후에는 비겔란 조각공원을 갔다.
이 공원은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인 구스타브 비겔란이라는 조각가의 청동작품들을 전시하는 공원이다. 그는 처음에 목조각을 배운 뒤 프랑스 및 이탈리아에 유학하였고 유학시절부터 로댕의 영향을 받았으며, 청동의 부조 등을 제작하여 상징적 자연주의의 대표자가 되었다고 한다.
오슬로시(市)의 자금을 얻어, 1915년부터 오슬로 교외의 프로그너 공원에 세계 최대의 조각원(彫刻園:Glyptotel)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는데 사람의 일생과 갖가지 희비(喜悲)를 나타낸 수백의 청동과 화강암의 조상(彫像), 군상(群像) 들로 꾸며진 천수(泉水), ·거대한 기둥 ·다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이것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으나, 초인적인 정력과 창작력 ·상상력은 그의 필생의 작업으로서 평가를 더욱 높였으며 작품을 관통하는 테마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희로애락이라고 한다.
공원 끝부분에 있는 "모놀리트(Monolith)"는 무게 260, 높이 17.3m의 거대한 화강암 기둥에 121명의 남녀노소가 서로 정상을 향해 기어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이 부조되어 있는 탑으로 인간의 본성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한다.
맨 처음에는 사람들이 열심히 찍다가 하도 많아서 포기를 한다.
이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청동상인 화내는 아이인데 누군가 쇠톱으로 손목을 잘라서 버려서 그것을 찾아서 다시 붙였다고 하며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손이 반짝거린다.
본래 이곳은 공원이었던 곳이어서 주변이는 이런 잔디 밭이 많고 햇볕만 나면 이렇게 일광욕을 한다.
보이는 기둥이 모롤리트이다....17터에 121명의 사람이 조각되어 있다고
모놀리트가 있는 곳에서 본 뒤와 앞
공원에 가서 보면 일단 규모에 놀라게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동상들의 표정을 보면 기쁨보다는 슬픈 얼굴들이 더 많은 것을 보면서 인생은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슬픔과 고통이 더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조각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이 화를 내는 어린아이인데 이 조각이 누군가가 팔을 부퍼뜨려서이기도 하고 표정이 귀여워서이기도 한데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씩 손을 잡고 가서 손이 반짝거린다.
공원 주변은 넓은 잔디밭과 나무그늘로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원 주변의 모습들
오후의 또 다른 일정은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이 있는 오슬로 국립미술관을 보는 것으로 오슬로의 일정은 끝이 나고 다섯 시에 크루즈를 타고 덴마크로 출발하는 일정만 남았다.
저도 저코스로 다녓습니다. 비겔란 조각공원의 유명한 작품도 보고. 백야를 보앗습니다. 노르웨이 핀랜드. 카블리라는 노르웨이 사람은 어릴적 빛에 관심을 갖고 광학 카블리 렌즈를 만들어 거부가 되엇고 세계적 물리학 장학재단을 만들어 대학에 카블리 연구소를 만들어주는 장본인이죠. 물론 2013년 돌아가셧답니다.
@우하제가 방문한 카시와 동대캠파스가 세계 17위라 17번째 지은 카블리 연구소랍니다. 동경대학교도 학교가 커져서 여기저기 캠퍼스가 나뉘어져 잇다고 하네요. 공대쪽이 카시와에 잇답니다. 물리학과도 여기 잇는지 대학원이 여기 잇는지 구체적은 모르지만 지진대비 근자에 아주 잘 지어진 건물이더군요.
첫댓글 괴물도 보이고. 멋집니다. ~~
저도 저코스로 다녓습니다.
비겔란 조각공원의 유명한 작품도 보고.
백야를 보앗습니다. 노르웨이 핀랜드.
카블리라는 노르웨이 사람은
어릴적 빛에 관심을 갖고 광학 카블리 렌즈를 만들어 거부가 되엇고
세계적 물리학 장학재단을 만들어 대학에 카블리 연구소를 만들어주는 장본인이죠.
물론 2013년 돌아가셧답니다.
찾아보니 제 2의 노벨상이라네요.
카블리상.
@우하 제가 방문한 카시와 동대캠파스가 세계 17위라 17번째 지은 카블리 연구소랍니다.
동경대학교도 학교가 커져서 여기저기 캠퍼스가 나뉘어져 잇다고 하네요.
공대쪽이 카시와에 잇답니다. 물리학과도 여기 잇는지 대학원이 여기 잇는지
구체적은 모르지만 지진대비 근자에 아주 잘 지어진 건물이더군요.
노르워이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