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은 턱을 까딱이며 말을 끊었다.
"그럼 ."
홍주는 뒤돌아서 나직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응 나야.6시 30분? 데리러 오겠다구? 응, 알았어."
전화를 간단히 끊은 홍주는 다시 국장쪽으로 향했다.
"신랑이가?"
"...네에......"
홍주는 사적인 질문을 하는 국장에게 순간적으로 화가 났으나 꾹 참고 대답했다.
"거 참 부럽네~부러워~."
"국장님.그럼 가보겠습니다."
"아이다.아직 말 안끝났다 말이다."
홍주는 회식자리에서 국장이 옆자리에 앉는 것 조차도 영 못마땅한데
개인적으로 자리를 함께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내일 마 점심 다른 약속 잡지 말래이. 그럼 가 일보래이."
"싫습니다.국장님!"
단호한 홍주의 거절에 국장은 순간적으로 얼굴을 굳혔다.
"이건 명령이래이.이것도 회사를 위한 일이니 거절은 절대 불가래이.
그렇게 알고 그만 가보래이."
자신의 의견을 무조건 통관시킬때만큼은 그 꼬리표처럼 따라붙어다니는
'마'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이 번이 그랬다.
"저 불편한 자리는 딱 질색하는 거 국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아모.아모.이기자 맘 다 안다.근데 마 내 소보에 점장 맘도 잘 안다.
그라니 내가 낀다 안카나.마 눈 딱 감고 점심 한 번 먹어주면
누이좋고 매부좋고 아이가."
금방 표정을 온순하게 풀며 국장은 다시 홍주의 맘을 돌리려 노력했다.
'어쩐담..길게 말늘어 놓아봤자 나만 피곤하겠는 걸..'
홍주는 회사의 이익을 위한 거라는 명목을 붙이는 통에 어쩔 수없이 승낙한다.
"..네.알겠습니다.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뒤돌아가는 홍주의 맵시를 바라보는 국장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하다.
'아,정말 한 송이 백합같구마...' 꿀꺽.
'..이럴 때 여자임이 몹시 화가 나.
여자를 무슨 꽃정도로 보는 남자들의 의식수준이라니..여자들의 사회생활을
버겁게 만드는 주범이지..
여성상위 시대로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의식개혁은 왜 이리 더딘걸까...'
자리로 돌아온 홍주는 강유와의 약속에 맞추느라 부지런히 자료 정리를 한다.
쉰이 넘은 국장의 눈길은 틈틈이 홍주의 뒤를 따라다니며 즐거워하고 있다.
*******
****
**
*
" 어서 타."
말끔한 모습으로 나타난 강유.
"어떻게 딱 맞춰 왔네."
빌딩 현관문 앞에 차를 대기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강유에게 홍주는 반가워 달려간다.
"몇 번을 뱅뱅 돌았어.금방 출발할 건데 주차 하기도 귀찮고."
"어머 고생했구나.우리 신랑."
홍주는 기분이 날아갈 것같다.
회사에서 나오자 마자 사랑하는 남편의 차에 올라 근사한 식당으로 가는 기분이란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만이 알 것이다.
"오늘이 우리 결혼 3주년이네.참 세월 빠르다.그치?"
홍주는 말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내 나이도 어느덧 28세나 되었어.올 여름엔 아기를 가져볼까?..
그럼 내년 봄쯤 애기엄마가 될 수 있겠지..어떤 기분일까????ㅋㅋㅋ..'
"응 그래.정말 빠르다."
강유는 갑자기 말이 없어진 홍주를 바라보며 씨익 웃는다.
홍주의 밝은 표정을 보자 강유는 남자로서 성공한 기분이 들어 가슴이 뿌듯해왔다.
"자기야~.있지..."
"말해.뭐가 있는지."
"자기 아기 갖고 싶어?"
"응.근데 갑자기 그건 왜물어?"
"내 나이가 점점 많아져서..."
"그치만 올 가을까진 가질 수 없잖아."
"난 여름에 가졌으면 하는데..."
"유산도 아기 낳은 것과 같대잖아.안돼.산모가 몸이 튼실해야 건강한 아기 낳지."
"꼭 그래야 돼?"
홍주는 고마운 맘과 더불어 섭섭함과 아쉬움이 교차되었다.
'....남자가 조르고 여자가 자기 몸 챙겨야 정상 아닌가?.....'
홍주의 뜬금없는 말에 잠시 강유도 생각에 빠진다.
'흐음..아기라..눈물겹지..내 나이도 서른이 넘었으니 이젠 ...
근데 ..그럼 내 청춘은 그것으로 끝이 나는 건 아닐까...
아버지를 닮아 혹시 내가 아기를 낳아도 다른 여자들을 넘본다면...
두렵다...'
"자긴 나이에 비해 너무 세심한 것같아.
좋게 말하면 자상하다는 거지.그렇게도 내 몸이 걱정 돼?"
"그럼~평생 내 등 긁어줄 사람인데 건강해야 부려먹지.하하하하."
"뭐야~."
홍주는 강유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봄태생 아기를 갖고 싶었지만 가을태생 아기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 낳으면 회사는?"
"으응..엄마 있잖아. 어릴때는 퇴근 길에 데리고 오구,좀 크면 주말에 데리고 오구,,"
"당신도 힘들겠지만 어머님이 매우 힘드실텐데...."
"그럴까?...가끔씩 베이비시터 붙이지 뭐."
"아,머리 아프다.그건 닥치면 그 때 생각하자."
강유는 화제 거리를 돌렸다.
"배고프지? 조금만 가면 돼."
강유가 차를 댄 곳은 산중턱에 자리한 호텔앞이었다.
"뭘 이렇게 비싼 데서 먹어,,"
홍주는 가끔 강유의 사치성에 놀라곤 한다.
결혼 전엔 감격이었지만 이젠 낭비로 보였다.
홍주보다도 훨씬 급여가 높은 강유였지만 씀씀이가 큰 편이라
정작 저축 액수는 많지 않았다.
그것이 결혼 후 알게된 강유의 단점이었지만 홍주는 간섭하지 않았다.
단 자구지책으로 주택마련 적금을 붓는다는 핑계로 일정액을 받아내는게 고작이었다.
"아기 낳으면 이런 데 오고싶어도 못와.
아무 생각말고 맛있게 먹어."
강유는 남자답게 홍주의 좁은 계산속을 잘라내 주었다.
"응.알았어.고마워.. 오빠!"
"왜 다시 오빠냐? 연애기분 나나보지? 하하하."
강유의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경쾌하다.
강유는 루비 목걸이를 선물로 주며 감미롭게 한마디 한다.
"우리 행복하게 살자~."
홍주는 와인 한 잔으로 붉어진 볼을 감싸며 미소 지었다.
"정말 고마워.오빠 사랑해~."
"나두."
기쁨으로 미소가 떠나지 않는 홍주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강유는 미안한 마음이 기어 올라온다.
'잘해주고 싶다...어려운 일도 아닌데...'
"자,이제 그만 우리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갑시다!"
홍주는 따라 일어서서 든든한 강유의 팔짱을 끼고 기댔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드라이브하듯 내려오며 모처럼 밤하늘을 올려다 보니
수많은 작은 별들이 얼굴을 내밀고 축하해주듯 웃고 있었다.
홍주는 별들처럼 환한 빛으로 소중한 정원을 지키리라 다시 한 번 마음 먹는다.
'나의 정원에 푸르른 새싹들이 돋아났어.이 번에는 풍요로운 정원으로 가꿀테야.'
♪따 라라라라 라라라 ♪♪따 라라라라 라라라.♪♪
갑자기 시끄러운 핸드폰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클래식 음악을
누르고 차 안을 점령했다.
강유는 흘끔 핸드폰을 확인해 보더니 망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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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2.
[ 장편 ]
'..레드 메모리..' ②④
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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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5.0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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