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01) 창작 과정의 실제 - ① 고통의 인내와 〈낙화〉/ 시인 이형기
창작 과정의 실제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jindalrae102/ 낙화
① 고통의 인내와 〈낙화〉
이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마무리를 짓는 방법으로 내가 택한 것은 시의 실제 창작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일이다.
시의 창작 과정은 규격화될 수 없다.
시인마다 다르고 또 심지어는 매 편의 시마다 다른 것이 창작 과정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 몇 편의 시마다 다른 그 창작 과정을 살펴본다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어떤 모델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시의 초심자에게 있어서는 자기가 직접 시를 써보려고 할 때
다른 사람의 그 창작 과정이 참고가 될 수 있다.
쑥스러운 일이지만 대상 작품은 나 자신의 시를 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시의 창작 과정을 가장 소상하게,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시를 쓴 시인 자신이기 때문에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시 한 편을 소개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激情)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訣別)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이형기, 〈낙화〉 전문
이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어 비교적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나의 졸작 〈낙화〉의 전문이다.
1950년대 중반, 그러니까 나이로는 20대 초반에 나는 이 시를 썼다.
휴전협정의 성립으로 한국전쟁은 끝이 났지만 전쟁의 포화가 무참하게 파괴해버린
여러 도시가 아직 복구되지 않은 채 앙상한 페허의 양상을 그대로 드러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좌절과 실의에 빠져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우리 집은 홀어머니가 삯바느질로 사 남매를 키우는 처지였기 때문에 고달픔이 더했다.
그 무렵 나는 등록금을 낼 수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고 혼자 서울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것은 집에 가도 별수가 없는데다가
서울에 있어야만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 못해 끼니를 거르는 날도 많았지만 그저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무렵 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통의 인내’라는 관념을 정신의 지주로 삼고 살았다.
참고 견대면 지금의 이 쓰라린 고통도 언젠가는 맑고 깨끗한 그 무엇으로 승화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랄까.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전에도 흔히 있던 일인데 그날의 그것은 작은 샘이면서 동시에 슬픔이 가득 어려 있는 눈의 이미지였다.
그 이미지가 떠오른 이유를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말하자면, 우연인 것 같다.
그러나 그때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이것은 시가 되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곧 종이쪽지를 꺼내 ‘샘=슬픈 눈’이라고 메모를 해놓고 역시
평소의 버릇대로 한동안 이리저리 생각을 굴렸다.
그러자 이윽고 떠오른 것이 ‘샘터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이라는 구절이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었다.
성숙한 영혼의 샘터에 고이는 맑은 물은 승화된 고통의 표상이 아닌가.
눈은 그런 영혼의 창이다.
그 눈에는 수많은 고통을 참고 견디는 동안 느꼈던 갖가지 슬픔이 어려 있을 수밖에 없다.
대충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한 구절을 살리기 위해 쓴다고 쓴 시가 이 〈낙화〉이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에 들었다 해도 처음에 얻은 그 한 구절만으로는 시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을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다른 표현이 필요하다.
다시 생각에 잠긴 내가 한참 만에 찾아낸 것은 ‘낙화 속의 이별’이라는 말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그 발견이 우연인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상 그 ‘낙화 속 이별’은 그 무렵 내가 막연하게 품고 있던 감정의 한 갈래와 관계가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로부터 버림받은 듯한 감정이었는데
실제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러나 한창 여자가 그리운 나이에 객지에서 혼자 고달프게 살다 보니 때때로 자기가
그런 실연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서 어느 날 나는 자신의 상상 속의 실연을 꽃잎이 지고 있는
벚나무 아래서 그녀와 헤어진 아름다운 이별이었다고 역시 상상으로 미화해본 일이 있다.
‘낙화 속의 이별’이란 말의 발견은 여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렇게 일단 떠오른 그 말은 곧 새로운 연상작용을 일으켰다.
그것은 낙화 자체가 바로 꽃과 꽃나무의 아름다운 이별이요,
또 장차 열매를 기약하는 값진 이별이라는 생각으로 발전한 연상이다.
나는 이 연상의 내용을 처음에 얻은 마음에 든 구절과 결합시켰다.
그랬더니 낙화의 이별의 고통이 인내를 통해 ‘슬픈 눈’을 가진
‘성숙한 영혼’을 이루어간다는 줄거리가 잡히게 되었다.
대략적인 줄거리가 잡히면 시를 쓸 수 있다.
〈낙화〉는 그 줄거리를 바탕으로 해서 의외로 하룻밤 사이에 쓴,
나로서는 예가 드문 속성(速成)의 작품이다.
속성으로 썼다 해도 시를 쓰는 동안에 고심한 대목이 없을 수는 없다.
가장 큰 고심거리는 그 시의 줄거리가 처음에 의도했던 것처럼
‘인내를 통한 고통의 승화’보다도 이별의 문제를 클로즈업시키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시라는 것은 쓰다 보면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의 표현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당초 의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잡힌 줄거리를 그냥 살려 나가기로 한 것이다.
일주일쯤 뒤에 간신히 퇴고를 시작했다.
퇴고의 과정에서는 ‘결별(訣別)’이냐 ‘몌별(袂別)’이냐를 두고 생각을 거듭했다.
뜻이 비슷하지만 전자는 ‘기약 없는 이별’,
후자는 ‘섭섭한 헤어짐’이라는 함축을 갖는 말이다.
그러니까 시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몌별’이 거기에 어울리는 말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몇 번인가 사전을 펼쳐보다가 처음 쓴 대로 ‘결별’을 택하고 퇴고를 마쳤다.
정서를 하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인내를 통한 고통의 승화’라는 당초 의도도
어느 정도 시에 반영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누구나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이형기 시인의 시쓰기 강의(이형기, 문학사상, 2020)’에서 옮겨 적음. (2022. 2.18.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01) 창작 과정의 실제 - ① 고통의 인내와 〈낙화〉/ 시인 이형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