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 오백만 불의 제작비. 이연걸, 장만옥, 양조위, 장지이, 견자단까지 이어지는 출연진들의 화려한 갑빠. 그리고 중국을 대표하는 존성대명, 장예모.
당 영화 <영웅>에 대해 알려진 상기와 같은 전언만으로도 이 땅의 수많은 무협애호 관객 제현들께서는 경천동지 십갑자 내공 만빵의 무협 비무를 간만에 다시 한번 강호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잇빠이 설레고 있는 중이라는 것 - 보지 않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바라.
하지만, 오호 통재. 관객 제현들 앞에서의 시전을 앞두고, 본 공사의 절정고수들이 먼저 당 영화와 일합을 겨루어본 결과, 장예모와 <영웅>의 내공과 초식은 별반 새로울 것도 없고 그다지 웅혼하지도 않다는 것이 뽀록나 버리고 말았음이다.
구체적으로 가라사대, 무협씬 초식을 구사함에 있어서 무협애호 관객 제현들이라면 일백번 고쳐봤을 법한 피아노선 액션 장면들을 재탕 삼탕 포장하는 얕은 수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과, 그와 같은 무협씬들에 웅혼한 진기를 불어넣어 줄 스토오리 내공의 운기조식에 공을 들이지 않았더라는 썰되겠다.
특히, 이제는 몇 초 앞의 수도 뻔히 보이는 피아노선 액션의 빈약함을 가리고자 영화 초반부부텀 원색 대량 살포 화면빨 초식과 슬로우 모션 후까 허허실실 검법으로 제현들을 미혹하려 드는 참인데, 찬탄을 불러 일으킬만한 초식도 분명 존재하나 이미 대부분 왕가위 대인의 <동사서독>이나, 서방파 장문인 이안의 <와호장룡>에서 이 방면의 이치를 터득한 제현들을 상대하기에는 다소 수련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도다. 또한, 바로 그 화면빨의 필살 초식도 초반 반 시진안에 다 소모해 버림이니 나머지 한 시진동안 당 영화와 상대할 관객 제현들은 가히 심심하지 않을 수 없음이라.
그러나 무엇보다 하늘도 찌를 듯한 사기로 당 비무와의 일합을 고대하던 무협 애호 독자들로 하여금 진실로 전의를 상실케 만드는 요인은 무협씬의 초식이 아니라 뒷심 부족의 스토오리 내공이도다. 장차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진시황으로 등극할 진나라의 왕 '영정(진도명 분)'의 목숨을 노리던 절정고수 커플 '파검(양조위 분)'과 '비설(장만옥 분)'을 해치운 공로로 말단 무사였던 '무명(이연걸 분)'이 영정을 알현하고 그 무용담을 플래쉬백으로 보여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무명의 썰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한 영정이 나름대로 추리한 사건의 정황이 다시 플래쉬백으로 보여지고, 거기에 다시 무명의 주장이 플래쉬백으로 겹쳐지는 식의 이른바 '액자 구성'을 띠고 있는 것이 당 스토오리의 기본 얼개라 하겠다. 이와 같은 구성상의 특이점은 종래의 무협 비무에서 접하기 힘들었던만큼 분명 칭송 받아 마땅한 점이나, 플래쉬백이 진행되면서 진실의 실체가 점점 드러나는데 막판에 밝혀지는 그 진실의 내용이라는 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장예모와 <영웅>의 웅혼한 내공을 대비하고 있던 관객 제현들로 하여금 피를 토하게 할 정도로 허수에 불과하더라는 거다.
강호 제현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양조위, 장만옥, 그리고 <와호장룡>이후 새로운 무협퀸으로 떠오른 장지이와 같은 배우들 볼 맛에 당 비무의 별 볼일 없는 초식과 내공을 감당하겠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보시라. 세상의 온갖 꿀꿀함은 다 끌어 담은 것 같은 눈으로 대사 별로 없이 앉아 있는 양조위, 품위와 처연함을 동시에 풍기는 중년 캐릭터 장만옥, 그리고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말괄량이 소녀 장지이. 다 어디서 한번 이상은 본 것같지 않냐? 무협씬들의 초식을 짜는 것 뿐 아니라, 배우들의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있어서도 이미 기존의 것들을 끌어다가 재탕삼탕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예모'의 내공이라는 게 그 명성에 비해 그다지 창의적이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도다. 지난번 연출작 <내 책상서랍 위의 동화>에서 난데없이 이란 영화의 유행을 따라간 것처럼 말이다.
이런 연유로, 오랜 세월 짱께 무협영화에 길들여진 우리 무협애호 관객들 앞에서 검을 뽑기에는 여러모로 수련이 더 필요한 듯한 당 비무에 뮝기적을 하사한다. 이 정도 공력으로는 같은 주에 개봉하는 다른 비무들을 상대하기도 벅찰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