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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1: 2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라 - 여자를 맞이하여(취하여)
(2) 여자를 맞이하여(취하여)
'취하다'의 히브리어 '라카흐'(*)는 축첩을 뜻하지 않고 결혼하라는 의미이다.
* 창 4: 19 -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 창 6: 2 -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 창 19: 14 -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 출 34: 16 - 또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네 아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음란한'의 히브리어 '제누님'(*)은 음탕한 기질이 있는 여자, 또는 매춘부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같은 명령이 하나님의 도덕적 특성과 신적 거룩함에 맞지 않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① 가설적인 결혼이라는 견해 :
호세아의 결혼이 하나님과 타락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한 하나의 비유 또는 환상이라는 주장이다(Augustine, Jerome, Kimchi, E.J.Young).
② 영적인 불신앙으로 보는 견해 :
여인의 음란을 이스라엘의 타락을 표현하기 위한 영적 음란으로 이해하려는 주장이다(Umbreit).
하나님의 명령이 선지자의 내적이고 영적 본능 속에서 행하여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Keil).
③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견해 :
선지자가 역사 속에서 실제로 경험한 결혼이라는 주장이다(Kurtz, Lange, Harper, Chrisholm, Given, Butler).
즉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실재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가 가장 받아들일 만하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신적 속성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문자적 해석을 지지하는 학자들의 견해도 두 가지로 나뉜다.
ⓐ 여인이 호세아와 결혼하기 전에는 순결하였으나, 결혼 후에 음란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 원래부터 음탕한 창녀였다는 주장 등이다.
그러나 ⓐ의 견해는 신적 거룩함을 옹호하기 위한 변증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적 뒷받침이 불충분하며, 특히 3: 1-3과 연관해 볼 때 수용하기 어렵다.
ⓑ의 견해는 하나님의 명령이 결코 그의 신적 속성을 더럽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명령을 어기는 것이 죄가 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즉 음란한 여인과의 결혼은 실제적인 음란죄를 범하라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죄악된 관습을 치료하여 선지자 자신의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결합이라는 것이다(Lange).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고상한 명령이자 선지자의 의무이지, 결코 도덕적 특성과 관련된 죄에 결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M.Henry).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일 때 음란한 여인과의 결혼을 명령한 하나님의 속성이 결코 불의하다거나, 또는 그 명령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호세아 선지자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3)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원문에는 '낳으라'는 말이 없고 '취하라'(*, 라카흐)는 동사가 나온다.
그래서 혹자는 고멜이 결혼시에 이미 자녀들을 데리고 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의 문맥을 고려해 볼 때, 음란한 자식들은 4-9절의 세 자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음란한 자식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름이 지어진다. (4, 6, 9절).
3]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1) 이 나라
'나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레츠'(*)는 이스라엘 땅의 백성을 가리킨다.
* 호 4: 1 –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떠나
'떠나다'의 히브리어 '메아하레'(*)는 여호와의 신실함에서 끊어진 관계를 나타낸다.
이처럼 그 백성이 여호와를 떠난 것은 '크게 행음하였기'(*, 자노케즈네) 때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이 계속해서 행해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이 나라'는 크게 음란(행음)하고 있는 음란한 아내로 상징되고 있는데,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우상숭배와 방탕한 생활 가운데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실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2절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음란은 성적으로 타락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음란은 2절 하반절에서 나오는 것처럼 여호와를 떠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장 어려운 시대가 언제입니까?
여러분 가장 힘든 시대가 언제입니까?
경제적으로 힘든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것이 바로 가장 힘든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고멜이라는 음란한 여인과 결혼을 하라라는 것입니다.
고멜의 뜻은 끝,,,멸망의 뜻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것이 끝났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1절 하반절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러분의 삶이 지금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대입니까?
붙잡을 것 하나 없이...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일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교회가 가장 부흥하고 크게 성장할때가 언제입니까?
6, 25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어 더 이상 희망이 없고 아무것도 없는 그때 선교사를 통해서 복음이 들어오고, 우리나라의 희망이 되고, 교회가 세워지고 회복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십자가만 세워도 교회가 부흥한다.”
원래 사람을 소개할 때 아버지의 이름이나...조상의 이름이 나오면 괜찮은 집안입니다.
그런데 호세아의 아버지 브에리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사전을 보면 브에리는 단 2줄만 나옵니다.
헷족속..그리고 호세아의 아버지...
쉽게 말씀드리면 호세아는 별볼 일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선지자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될까요?
영적으로 타락한 세상을 보고 그는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그는 회복되기를 소망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길 소망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내 자신의 영적인 마음을 보고 아파하고 돌아오길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호세아는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습니다.
출처 : 안동 소명 감리교회 글쓴이 : andongsyeongcurch
하나님께서 어떻게 음란한 아내를 취하라고 명령하실 수 있을까? (호 1: 2)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행음)함이니라" (호 1:2)
여기 호세아에게 이르신 하나님의 명령이 어려운 말씀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 때문이다.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음탕한 기질이 있는 여자 혹은 매춘부와 같은 여자와 결혼하라고 하시는가?
더구나 십계명에서 간음하지 말라고 명령하셨고 간음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부도덕한 죄로 정죄되고 있지 않은가?
* 출 20: 14 - 간음하지 말라.
* 고전 6: 15-18 –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 레 19: 29 - 네 딸을 더럽혀 창녀가 되게 하지 말라. 음행이 전국에 퍼져 죄악이 가득할까 하노라.
이 구절의 모순을 피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제시되어 오고 있다.
첫째로, 이 결혼은 실제가 아니라 가설적이라는 것이다.
호세아의 결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한 하나의 비유나 환상이었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대부분의 히브리 사람들이 지지하는 것으로 선지자는 실제로 아내와 결혼한 것이 아니라 환상으로 결혼하도록 명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온 백성은 그가 그런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을 알았다.
다만 선지자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들 앞에 생생한 이야기를 제시하기 위함이었다.1)
다음으로, 영적인 불신앙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여인의 음란을 이스라엘의 타락을 묘사하기 위한 영적 음란으로 이해한다.
원래가 매춘이나 음란의 뜻은 문자적으로 부정한 욕망의 행위로 자주 재정적이거나 물질적인 취득이 포함되는 것이었다(참고, 2: 5).
그러나 역시 종교적 불신앙이나 배교행위를 서술할 때 쓰였는데 우상과 이교주의의 신화를 위해서 한 분 참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포기하는 것을 가리켰다.
호세아 시대에는 특별히 바알의 숭배가 여기 해당되는 죄였다.2)
그러나 가설적인 결혼이나 영적인 불신앙으로 보는 견해보다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가장 합리적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견해를 취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실제적인 결혼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징하셨다는 것이다.
문자적인 해석의 경우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실제로 선지자에게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라고 명령하셨으므로 난제가 되는데 이 해석을 취하는 학자 중에 카일(Keil)은 그 자녀들이 그녀가 호세아와 결혼하기 전에 그녀의 음행의 결과였다고 믿었다.
그 이유로 고멜은 그녀가 호세아와 결혼하기 전에 매춘부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부자연스럽다.
하퍼(Harper)는 첫 자녀는 호세아의 자녀였으나 둘째와 셋째는 다른 사람의 아이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름이 첫째 아이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호세아의 음란한 아내와의 결혼과 하나님의 이스라엘과의 관계 사이에
하나님을 떠난 영적인 간음의 행위를 병행하여 소개하고 있음에 비추어 본다면
호세아가 그녀를 취하기 전에 매춘부였다고 가정하는 것은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두 관계가 유사한 것이었다면,
고멜이 호세아와 결혼 후에 부정한 여인이 되었으며
그 다음 차례로 그녀의 아이들이 그녀의 본을 따랐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신 후에 부정해졌으며
그들의 후손들이 그 후에 그들의 삶과 똑같은 모형을 따라 간 것이다.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부정한 여인과 결혼을 명령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호세아의 아내가 비록 처음에는 매춘부와 같은 여자가 아니었을지라도
그녀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그녀가 후에 음란한 여인이 될 것을 모르셨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사건은 과거를 다시 회상하면서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그를 불행한 만남으로 이끈 것을 처음부터 명령으로 해석했던 것이다.4)
가이슬러(Geisler)는 이 구절이 모순이 아님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이 구절은 창기의 행위를 너그럽게 봐 주지 않는다.
호세아는 영적(우상숭배)이나 육적인 모든 종류의 매춘 행위를 정죄하고 있다.
2. 호세아는 창녀와 결혼하도록 명령받았으나 그녀와 간음하라고 명령받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서 네 자신을 위해 아내를 취하라고 하셨다.
그녀와 결혼하되 비록 그녀가 너에게 부정하게 될지라도 그녀에게 성실하라고 하시었다.
그리고 실제로 호세아는 그녀가 불성실했을지라도 그 아내에게 성실하였다.
3. 매춘부와 결혼하지 말라는 레위기 1: 14의 명령은 레위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것이지 모든 사람에게가 아니었다.
살몬은 분명히 그의 법적 족보에서
마침내 그리스도가 나신 매춘부 라합과 결혼하였다(마 1: 5).
어쨌든, 호세아는 선지자였지 레위 제사장이 아니었으므로 매춘부와 결혼하지 말라는 금제는 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4. 고린도전서 6: 16의 명령은 매춘부와 관계를 맺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매춘부였던 여인과는 결코 결혼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차라리 그 명령은 결혼 관계 밖에서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자들에 대한 명령이다.
그러나 호세아는 결혼 밖에서 성적 관계를 갖지 않았다.
하나님은 호세아가 고멜과 결혼하되 항상 그녀에게 성실하라고 명령하셨다.5)
거룩하신 하나님은 결코 죄 된 명령을 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속성은 결코 변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 하나님의 거룩에 모순된 표현은 인간 저자의 표현의 제한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
1. John Calvin, Commentaries on the Phophet Hosea(Grand Rapids: Baker, 1989), p.45
2. David Allan Habbard, Hosea(Downers Grove: IVP, 1989), p.60
3. Leon J. Wood, Hosea, E. B. C. Vol.7(Grand Rapids: Zondervan, 1985), p.171
4. 글리슨 아쳐, 성경 난제 백과사전, 황영철역(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402
5.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298
출처 : 개혁주의 마을 글쓴이 : 이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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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몇번의 기회는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기회가 여러번 와도 꿈이 없으면 우리들은 그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맙니다.
그 꿈은 삶에 대한 애정과 적극적인 노력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때 이루어 진답니다.
오늘 하루는 참 잘 살았다 하고 얘기 할수 있는 보람된 삶이 되시고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