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5편 군인과 사람들>
① 새벽녘 빗소리-13
그러한 나뭇더미가 지붕처마에 잇닿아 쌓이어있었는데, 위에서부터 나무토막을 하나씩 들어서 내리어놓고서 찾아낼 수밖에 없었다.
껍질도 벗기어지지 않은 채 가장이가 돋쳐 거친 소나무들을 거의 다 들어내놓았을 때에야, 가죽나무는 깊숙이에 하나가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한동안 다른 나무들을 들어내놓았는데, 거의 밑바닥에 깔리어있는 걸 또 하나 찾아내었던 거였다.
그리하여 가죽나무 두 토막을 그 속에서 가리어내는데 성공하였다.
가죽나무는 다른 나무보다도 훨씬 무거웠다. 하기에 나무를 인력으로 멀리 옮기려면,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어야하기에, 얼추 길이를 맞추어 잘라내었고, 쓸데없는 가장이도 다듬어 잘라내었다.
그렇게 얼추 다듬질한 가죽나무토막을 정옥과 함께 마주 들어다 집에 옮기어놓는 데는 젖 먹던 힘마저 들이어야하였다.
나무가 알차서 목심으로 들어갈수록 단단한 가죽나무는 마치 무거운 돌과도 같았던 거였다.
쓸 만하게 길이를 재어서 자른 나무토막의 끝과 끝에 멜빵을 걸어 둘이 어깨에 걸머메고, 두 차례에 걸쳐서 날랐는데, 쓰러질 듯이 헉헉거리어지었다.
아무튼지 가죽나무를 집으로 날라다가 놓은 뒤에야, 또 태수아버지를 불러 논의한 끝에, 지렛대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을 불러대어야 하였고, 태수아버지랑 막일꾼 둘을 더 얻어 손이 없는 생기복덕 길일을 잡아서 얼어붙은 땅을 파내고 받침목을 묻고, 지붕처마 밑의 윗중방에 받침대를 가로지른 다음에는 지렛대로 들어 올리면서 한참 수선을 피운 뒤에야, 굴뚝모퉁이에 버팀목 두 개를 장착시킬 수가 있었던 거였다.
그러한 뒤는 천복이 중방목문턱의 부러지는 진행상황을 살피려고, 삐죽삐죽 돋아나는 거스러미를 말끔히 제거시키고, 자고새기만 하면, 버릇처럼 그 부위를 눈살굽게 살피어보고는 하였다.
천복은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날 무렵에도, 거스러미가 돋아나지 않는 듯하자, 차츰 마음이 놓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가까스로 가라앉게 되자, 논배미를 가거나, 땔나무를 하러다니더라도, 속을 끓이는 게 없어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나절 골뜸댁이 셋째 딸 순희를 데리고, 경산을 찾아왔다. 이제 그녀는 쌍둥이를 한꺼번에 업고, 고개를 넘어서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두 아이가 다 제 발로 걸어 다닐만큼 자라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순희를 데리고, 함께 오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순희는 다름 아니라 옥희의 바로 밑에 동생이었다.
아마도 그녀의 혼담이 오가는 걸로 짐작되었다.
순희는 장찬지를 닮아서인지 키가 훌쩍 크고, 얼굴도 매우 해사한 게 말쑥하게 보이었다. 게다가 중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좀은 지성미가 넘치어 보이었고, 감성마저 예민하여 보이기에 한결 여성다움이 돋보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마당으로 들어서다가 천복을 보더니, 반색을 하면서 달리어들 듯하면서 입을 여는 거였다.
“형부, 오늘은 바쁘지 않지요?”
천복은 그녀의 물음에 활짝 웃으면서 능글맞게 대답하였다.
“숙녀가 데이트하자는 데야, 바빠도 바쁘다고 말하겠어.”
“오늘 형부하고, 극장구경하고 싶어요.”
그녀는 생게망게하게 극장구경을 가고 싶다는 거였다. 극장이라면, 이십 리밖에 떨어져있는 홍산까지 가야하는데, 그녀는 홍산중학교를 늘 걸어서 통학하였기에, 그곳이 이웃처럼 여기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옥희가 줄에 빨래를 널다가 순희의 말을 듣고 거들었다.
“순희야, 너나 형부하고 잘 다녀와라. 난, 안 간다.”
“누가 언니보고 가자고 혔어? 언니가 따라오면 외레 피풍나. 걱정 마. 형부하고 정답게 둘이서 갔다 올게, 언니.”
“그려라, 안 막는다.”
그때 먼저 방으로 들어가 있던 골뜸댁이 방문을 열어젖히고는 순희에게 손을 까불러대었다.
골뜸댁이 손을 까부르자, 그녀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천복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신문을 보고 있었다.
혁명군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삼권을 장악한 뒤에도, 포고령을 계속 발표하였다. 그런데 ㅇㅇㅇ 육군참모총장 명의가 아니라, 이제는 최고회의의장 육군소장 ㅇㅇㅇ의 명의로 포고가 발표되고 있었다. 군부가 정의롭게 문란한 정치권을 바로잡았으면, 이제는 본연의 국방업무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정권욕의 야심이 들어있는 듯이 느끼어지었다. 하기는 군대가 정치를 한다면, 부정부패가 없어지고, 국민을 위한 참신하고, 깨끗한 정치가 실현될 것 같기도 하여서 후련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점심때가 다 되어 가는데, 골뜸댁과 순희가 경산의 방을 나와 천복이 있는 방문을 빠끔히 열어보는 거였다.
“장모님 이리 들어오세요.”
천복은 얼른 몸을 일으키고, 골뜸댁을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나는 오늘따라 바쁜 일이 있어서 가봐야겠네. 얜, 자네랑 영화구경 간다니까. 갔다 오든지 알아서 하고. 잘 있게나.”
첫댓글 처제도 천복을 따릅니다. 하긴 처제사랑은 형부겠지요 ^^*
결혼한 남자에게는 처족이라는 또다른 세계가 있지요.
그 중에서도 장모와 처제는 꿈처럼 아늑하기만 한 관계입니다.
지난 26일인가요? 연재를 한밤에 올렸습니다.
서울에 사는 처제 하나가 세상을 떴습니다. 아내의 바로 밑에 동생인데......
빈소에서 조문하는데 아내가 통곡하고 있었어요.
나는 속으로 울었어요.
노년기란 아름답던 추억과 더불어 울타리가 하나둘 허물어지는 망실을 봅니다.
인생이란 잔인한 꿈임을 실감합니다.
아끼는 처제가 소천하셨다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신이 아닌 사람의 일을 알 수 가 없으니
저는 평소에 여러 애사의 가능성에 대해 미리 각오를 합니다
그 중에 옆지기와의 사별이 남자에겐 가장 클텐데
그다지 좋은 사이는 아니지만 어느 날 저보다 먼저 간다면 어찌해야할까
미리부터 고민이 되며 그 또한 담담해져보려고 다짐을 해봅니다만...
노년기란 자기 하나의 건강과 장수는 되레 욕이 되는 경우입니다.
비록 떠나는 순번은 없을지라도 심리적인 괴로움은 죽음보다 더합니다.
그저 존재하던 것이 그대로 있으면 좋겠는데 하나둘 허물어지는데는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내가 허물어진 뒤에 허물어져야할 것들이 먼저 허물어지면 그 절망감과 비통함이 자신을 꽁꽁 묶습니다.
그야 운명이겠지요. 사나운 운명....
그러니 나 하나의 건강장수가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다는데 비애감을 감출 수 없군요.
이런 슬픈 심리가 천복의 처제에게 갔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