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대구 북구 산격동 경북도청 정문 앞에서 도내 고추 주산지 농가들이 건고추를 쌓아놓고 고추값 폭락에 대한 정부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같은 날 오전 국내 최대 고추 집산지인 서안동농협 고추공판장. 이날 건고추 거래가격은 화건 600g당 4700원 안팎으로 지난해 이맘때 7200원 선의 65% 수준으로 하락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정하는 올해 건고추 예상 생산량은 11만1000여t. 이는 지난해 10만4000t과 비교하면 7000t(6.7%), 평년과 대비하면 5000t(4.8%)이 늘어난 물량이다. 건고추 생산량이 겨우 5%가량 늘어난 반면 가격은 지난해 성수기 대비 반토막이 난 원인은 무엇일까.
농가들은 물가당국의 무분별한 고추수입을 지목하고 있다. 권오현 전국고추생산자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3년간 국내 생산량보다 많은 수입고추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대형 고추소비업체들이 국산고추 사용을 외면한 것이 고추가격 폭락사태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건고추 수입가격은 600g당 4000원 선. 따라서 국산 건고추 가격이 4000원 선으로 하락하면 국내 수입고추 소비처들이 국산 건고추로 갈아탈 것으로 물가당국은 예측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산지에서는 팽배하다.
민간에서 수입한 냉초(냉동홍고추)는 꼭지를 제거해 고춧가루 수율이 100%에 달하지만 국내 건고추는 꼭지가 포함돼 꼭지제거 작업비와 수율감소에 따른 비용 부담이 600g에 500원선에 달해 같은 가격대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상은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의장은 “지난 3년간 물가당국이 수입고추 중심의 가격정책을 휘두르는 바람에 대량 고추소비업체들은 수입고추에 제대로 맛을 들이고, 산지 고추수집상들은 수입고추가 무서워 국산고추를 사들이지 못하는 악순환 구조를 초래했다”면서 “고추 정부수매량을 국내 생산량의 10%수준으로 높이고 국산고추 사용업체에 대한 세제나 금융지원 등 생산기반 구축에 상응하는 국산고추 소비ㆍ유통기반 확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산 고춧가루가 시장을 망쳐놨다는 시각은 전북지역에서도 나오고 있다. 김용철 진안농협 상무는 “2011년과 2012년 고추가격이 높게 형성되면서 대형 소비처인 음식점들이 중국산 고춧가루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져 중국산 고춧가루 수입이 크게 늘었고, 이는 국내산 고춧가루 시장 붕괴로 이어져 국산 건고추 가격약세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재근 임실농협 조합장은 “최신 가공시설에서 위생적으로 생산한 국내산 고춧가루라는 점을 소비자들에게 집중 홍보하고 있지만 중국산 고춧가루가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어 자체 생산한 고춧가루 300t 중 현재 138t만 판매될 정도로 소비가 부진하다”면서 “고춧가루 원산지 표시제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와 전남ㆍ경남 등 마늘 주산지들도 값 폭락에 따른 고통을 겪고 있다. 제주지역 농협들이 올해 농가로부터 수매한 마늘물량은 2만9931t으로 당초 계약물량(1만7502t)보다 71%나 늘었다. 작황호조로 계약농가의 생산량이 늘어난 데다 약세를 보이고 있는 마늘값의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비계약농가의 물량까지 사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가 수매가 끝난 6월 말 이후 지금까지 4개월 가까이 산지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과잉 생산 소식이 알려진 데다, 제주지역 농협들의 수매가격(지름 5㎝ 이상 상품 1㎏당 2700원)이 시세보다 높은데 따른 것이다. 마늘 판매부진은 보관비 상승과 감모율 증가, 품질하락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면서 농협들의 속앓이도 커지고 있다.
강승태 서귀포 대정농협 상무는 “정부의 비축수매가 늦어질수록 농협의 경영압박이 심해지고 이는 ‘농협의 마늘 계약재배사업 축소→농가 재배면적 감소→타작목 재배 증가→농산물 수급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가 하루빨리 농협 계약재배물량 2만t을 수매해 내년 8월까지 시장에서 격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수원 전남 고흥 녹동농협 조합장은 “남도마늘 거래가 사실상 실종돼 지역농협들의 재고 부담에 따른 큰 손실이 우려된다”면서 “유통손실보전기금을 보유하고 있는 농협은 위기를 헤처갈 수 있지만 그마저 없는 농협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박병주 경남 남해 새남해농협 판매과장은 “지역농협이 적극적으로 수매하거나 매취한 결과 농가들이 보유한 마늘 재고는 없는 상태”라면서도 “깐마늘의 경우도 남해산 <남도> 마늘이 창녕 등지의 <대서> 마늘과 비교해 매취가격이 1만원 이상 높아 경쟁력이 뒤져 시름이 많다”고 전했다.
공정표 창녕 이방농협 상무는 “김장철이 다가오면서 깐마늘 수요가 일부 증가할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지만 이방농협에만 860t, 창녕지역 전체적으로는 3400t의 농협 계약재배 물량을 재고로 안고 있어 물량 소진에 얼마나 도움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