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한중수교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정말 놀거리를 찾기가 어려운 동네였습니다. 근데 비록 놀거리는 단순해도 희안하게 볼거리는 많았습니다. 팔대관 숲 속으로 들어가거나, 그 옆의 해변가를 어슬렁 걷다보면 청춘남여의 진한 사랑의 퍼포먼스를 원 없이 구경할 수 있었지요. 문화 선진국에서 왔다고 자부하는 우리들도 눈을 어디에 둘 지 몰라 당황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뿐 아니라 해가 떨어지면 공터란 공터는 모든 이웃들의 신나는 무도장이 됩니다. 녹음기 하나 아무데나 놓고 음악을 틀기만 하면 신기하게도 하나 둘 사람들이 자동으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처음 본 사람인데도 제 친구마냥 아주 자연스럽게 춤을 청합니다.
당시 실내 무도장이란 곳도 있었습니다.
중산로에 가면 '꺼우팅(歌舞聽)'이라고 간판이 걸린 곳이 있었는데, 고깔모자 처럼 생긴 앙증스런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면 됩니다.내국인은 1위엔.외국인은 3위엔을 했었습니다.(당시 물가로는 엄청 비싼 가격입니다.). 잔뜩 기대하고 갔다가 들어서는 순간 환상은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영 볼 품이 없어요. 학교 교실처럼 넓다란 공간에 중간 플로어는 비워 두고 그 주위로 빙 둘러 책상과 걸상같은 것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게 전부인 풍경입니다. 한쪽 구석에 PX 매점 처럼 생긴 가게가 하나 있는데, 음료수와 맥주. 그리고 간단한 과자 정도 밖에 진열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천장엔 백열등 하나만 외롭게 덜렁거리고 있구요.
구석에 놓여진 녹음기에서 음악이 흐르면, 이 테이블에서 저 테이블로 사람들이 이동합니다. 춤을 청하는 것이지요. 제 기억으로는 같은 테이블 사람끼리 춤을 추는 것은 못 봤습니다. 춤을 청하는 사람도 자연스럽고, 청함을 받은 사람도 아주 자연스러운, 말 그대로 춤을 즐기러 나온 청춘남여 들이었습니다. 느끼하고 음산한 문화에 물들어 있던 우리들 눈에는 아..여기는 아직도 저렇게 순수하게 춤과 음악을 즐기는구나.청량한 자연숲을 발견한 양 신기해 하였습니다.
그것은 문화와 본능을 통제한 도시였습니다.
개방이 가속화 되고,경제가 발전할수록 자연과 멀어진다는 말은 문화에서도 다르지 않을것입니다. 길거리 무도가 점차 가정불화에 빌미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남여관계가 쿨한 중국이었는데, 평등에서 격차로 넘어가게 되면서 사람도 차별화 시키기 시작합니다. 그것의 매개가 길거리 무도였습니다. 개방이 가속화되고 자연에서 멀어질수록 이제는 사회가 물질 문화의 통제를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고가 잦다보니 메스컴 에서도 너무 문란에 빠질까 걱정하기도 했지요.요즘 도시에서 거리의 무도를 구경하기 힘드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90년 초.어느날 해천호텔 신관과 구관 사이에 있는 멀티오락장(여기서는 多功能廳이라고 하지요.) 지하 3층에 있는 가라오케에 손님과 함께 놀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손님은 더물고 주로 일본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스텐드바를 연상하면 딱 입니다. 중간에 둥근 플로어가 있고 그 주위로 테이블이 놓여있지요. 음악을 신청하면 노래도 부를 수 있습니다.(당시는 LP판을 이용했지요.). 남자 복무원은 호텔보이 차림이고, 여자 복무원은 치파오를 입었지만 허리 아래 발 목까지 옆구리가 쭉 찢어진 옷이라 그 사이 쭉 뻗은 다리는 살짝 살짝 보기에도 아슬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주특기가 있지 않습니까? 술 한잔 들어가면 신명이 나는 거. 신이나면 복무원 아가씨 아무나 붙잡고 플로어에서 춤을 추자고 합니다. 아니 반 강제적으로 그냥 손목 잡고 무대로 나갑니다. 갑자기 경비원 여러명이 우르르 몰려와서 말립니다. 손님은 황당한 듯 멀뚱해졌고..당시 중국에선 술집에서 여자의 손을 잡으면 큰일이 났습니다.
중국사람들이 춤을 추는것을 보노라면 어느때는 부럽기도 합니다.중국에선 초등학교때 부터 따로 사교춤을 배우는 시간이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곳에서나 음악과 상대만 있으면 자동으로 춤이 만들어 집니다. 당기고,돌리고,밀고,꺾고가 가락에 맞춰 너무 자연스럽게 돌아갑니다. 이것이 정말 춤을 즐기는 것입니다.사실 우리나라 사람 춤은 진짜 못 추지요. 춤 한번 춰보라 하면 십중팔구는 그냥 꽉 부둥켜 안고 음악따라 빙빙 돌기만 하지 왈츠나 지루박 같은 사교춤은 아무나 못 추고 또 배우려고도 안 하였지요. 무조건 찰싹 붙어버리니 남여간의 춤이 그것이 사교춤일리가 있겠어요? 자칫 날라리 제비란 소리만 듣지...
읽다보니 좀 길지요?ㅎㅎ
이 마당에서 30 여년전 유행했던 우리들의 애창곡..
스모키의 'Living Next Door to Alice' 오리지날 사운드를 한 곡 감상하고 청도 노래방이 언제부터 어떤 형태로 형성되어 왔는지 제가 본 눈으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스모키의 추억의 노래 참 오랜만에 듣는데, 이 늦은 밤에 들으니 더욱 흥취가 나는군요.
우리끼리 하는 농담이 있습니다. 교민 100명 이상 진출한 도시엔 어김없이 3가지 항목이 따라 들어옵니다. 바로 밥집.술집.그리고 교회. 우리음식은 독특해서 다른나라엔 거의 없습니다.반드시 된장찌개하는 식당이 들어와야 합니다. 또 놀기 좋아하는 민족이라 힘든것은 참아도 심심한것은 죽어도 못 참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여린 민족이라 영혼을 위로해주는 곳이 꼭 필요합니다.
청도에 우리식 가라오케가 처음 진출한 것이 90년 초. 지금의 출입국관리소 뒷 골목에 '백두산'이란 간판으로 개업을 했었지요. 중국식 바에서 이제 우리식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백두산은 가라오케+룸살롱+노래방 이 세박자를 다 갖춘 최초의 노래방이었습니다. 그곳 마담이 교포였는데, 단골을 확보한 후 일년후 독립해서 바로 옆 집에 '한반도'란 간판으로 두번째 노래방을 개업했습니다. 재미있는 애피소드 한 가지. 원래 이름은 청와대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북경에 있는 우리정부에서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란 이름을 술집에 쓸 수 없다고 통지가 와서 개업 한 달만에 청와대 간판을 내리고, 한반도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 후 최근까지 명맥을 유지했던 삼미정을 비롯 숱한 가라오케가 생겼습니다. 대다수 처음엔 한국인이 경영하다가 지금은 거의 현지인에게 기술전수가 완료된 상태입니다.규모도 커졌습니다.
우리식 디스코텍은 90년 중반. 대규모의 시설로 들어 선 파라다이스가 최초입니다.지금의 아동공원 안에 있는 실내체육관을 개조해 만든 매머드 시설이었지요. 중국인에게는 신기한 놀이터였을것입니다. 디스코텍도 이제 기술전수가 완료되어 지금은 현지인이 뉴욕바,Feeling 등, 규모는 파라다이스에 못 미치나 품질은 한 단계 높여 계승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가라오케도 기술전수 끝냈고, 디스코텍도 기술이전 다 해 줬고, 이제 무엇을 들여오나 봤더니 당시 우리나라에도 유행했던 가족 노래방. 이것이 청도에 처음 들어 온 것이 90년대 후반이었을겁니다. 산동로에 있던 완자노래방이 최초 아니었을까? 그곳에 가면 이쪽 방엔 어른들이, 건너 방엔 10대들이, 또 건너 방엔 가족들이.. 말 그대로 순수 노래방이었습니다. 그 후 몇개의 노래방이 더 생겼는데, 한중수교 20년이 된 지금..그것도 다 기술이전이 완료되었습니다. 이 역시 현지인이 계승발전시켜 청도시내엔 지금 홍콩화원내에 있는 완자(萬家)노래방과 하오러띠(好樂地: 홀리데이)가 대규모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실료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큰 방인 8인실은 한시간에 200원이 넘어요.음료는 내부에 있는 슈퍼에서 적당히 사면 되지만...여하튼 지금까지 십수년 동안 금영노래방 기계 무지 많이 팔렸습니다.
사교춤이 양성화 된건 부작용 보단 좋은면이 많은것 같습니다. 제 생각 일진 모르겠지만요ㅎㅎ 가무의 변천사가 눈앞에 파노라마 같이 펼쳐지네요. 스트레스 해소에 노래만한것이 또 있을까요? 거기에 춤까지 덩실거린다면야 그만이죠. 꼭 술을 논하지 않더라도 즐거움을 줄수있는 여러 놀이문화의 보급이 절실하긴 어느곳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언제나 맛깔난 글 고맙습니다.^^
첫댓글 맛깔나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청도에서는 참 추억거리도 많을텐데...
시골버스님은 그런 추억없지요?ㅎㅎ
사교춤이 양성화 된건 부작용 보단 좋은면이 많은것 같습니다. 제 생각 일진 모르겠지만요ㅎㅎ
가무의 변천사가 눈앞에 파노라마 같이 펼쳐지네요. 스트레스 해소에 노래만한것이 또 있을까요?
거기에 춤까지 덩실거린다면야 그만이죠. 꼭 술을 논하지 않더라도 즐거움을 줄수있는 여러 놀이문화의 보급이 절실하긴 어느곳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언제나 맛깔난 글 고맙습니다.^^
중국도 이제 사교춤이 많이 변색되어 공식적인 장소와 파티.경기 외에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도 아직 막춤은 좀 추지만 사교춤은 그냥 부럽게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ㅎㅎ
오래전 칭다오에 있을 때 하오러띠(好樂地:홀리데이)를 여러 번 갔었지요. 사람이 많아 예약도 어려웠었는데…. 요즘도 사람이 많은 지 몰라~ ㅎ 노래 잘 들었습니다.
강빵님이 안 계시니 요즘은 잘 가지지 않더라구요.언제 오시면 한번 갑시다요.
노래 잘 듣고 갑니다..
10년전 통계로는 베이징에 2,000여개 가라오케가 성업중이었습니다. 그중 대다수가 무허가.
업소의 절반 정도가 협회를 만들어 활동(?)을 하였다고 합니다.ㅎㅎ
북경 역시 가라오케 놀이문화는 한국이 전수해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리엔꺼팡(練歌房: 노래연습실) 역시 우리가 전해 줬습니다. 정말 대단한 대한민국...ㅎㅎ
꺼우팅은 한국 캬바레 군요
지금 F3 에선 누가 부르고 있을까 ㅎㅎㅎ^^
으하하..F3..이거 아는 사람 많지 않은데...대만에 F4가 있다면 청도에는 F3이 있다는 그런말은 아니고, 얼마전에 보니 F3 리모델링 했더라구요.
오랜만에 좋은 노래 잘 감상하고 청도 생각나네요!! 건강하시죠?
건전노래방이네요~
청도의 최초의 가라오케는 1)백두산 2) 한라산
청양최초의 가라오케는 ( 비원) (광한루). (영등포) ㅎㅎㅎ 세월이흘렄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