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글은 바둑회(서울, 대구 다같이)회원들이 사랑방에 참여해 주십사 하는 뜻에서 졸필을 棋友들께 바칩니다.
여러 벗들이 이 글을 읽고 사랑방에 나오신다면 더 바랄것이 없습니다.
내가 바둑판과 돌을 제일 처음 본것은 아마 다섯살때 쯤이 아니었는가 생각됩니다. 나는 대구의 대신동 서문교회 골목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중학교 1학년때 까지 살았답니다.
내가 국민학교엘 들어가기도 전 이었으니 다섯살이나 여섯살때 인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다섯살때가 더 정확할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여섯살때 였을것 같으면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지 싶은데 그 친구의 얼굴은 기억되나 이름을 기억할수 없으니 말입니다.
내가 어릴때 대신동 네거리에는 한쪽 모퉁이에는 동산약국, 동산병원쪽엔 물고기를 파는집, 다른 한쪽엔 경북광유(석유회사), 서문시장쪽 에는 천일여객 자동차 정류소가 있었답니다.
매일 새벽이면 여자 차장아이들이 고령, 거창 함양가요 라던가 창녕, 합천, 마산, 진주갑니다 라고 외쳐 댔구요.
이 천일여객 뻐스 정류소로 들어가면 그 뒤에 살림집이 있었는데 그집은 낮에 들어가도 햋볕이 들지않아 기분나쁠 정도로 침침한것이 방안에 들어가도 한참 있어야 사물을 분별할수 있을 정도로 어두운 그런 방에 내 친구가 살았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천일여객 자동차정류장과 그 뒷집이 일본사람이 살던 적산가옥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리고 내가 처음본 그 바둑판도 그집에 살던 일본사람이 그대로 두고간게 아닌가 짐작 되네요.
그 친구는 한 동네에 살았으니 자연스럽게 같이 놀게 된 친구였는데 친하지는 않았답니다.
하루는 그 친구집에 들어가서 놀면서 바둑판과 돌을 보고 그 친구랑 땅 따먹기 한다고 돌을 판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튕기고 한 기억이 있는데 그게 내가 바둑판을 처음 본 기억 입니다.
그런데 우리집에서는 내가 어릴때 좀 엄하게 나를 키우셨고 바둑, 장기 같은건 雜技라 하여 금기시 하는 집안 분위기 때문에 배울수도 없었는데 국민학교때 서문교회 앞마당에 장기두는 어른들이 있었는데 어깨넘어로 보고 장기를 배워서 어른들과 두기도 했답니다.
원체 노는것을 좋아해서 한다리에 두다리 끼는 판이라 장기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어린넘이 어른들과 맞장기를 두고 동네에서 장기 잘 둔다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형님한테 벌을 받기도 한적이 있었지요.
국민학교때 어른들과 맞장기를 두고도 이기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내가 바둑을 다시 접한건 대학교 1학년때 였답니다.
내가 프레쉬 맨일때 우리들은 시간이 있으면 모여서 야구도 했고 또 어떤 패걸이들은 학교 앞에있는 기원엘 다녔는데 그게 바둑에 관심을 두게된 동기였지요. 큰 형님집에 좋은 바둑판이 있길래 나보다 3살 아래인 조카와 다섯살 아래의 조카가 있었는데 두넘을 불러놓고 우리끼리 바둑을 두기 시작을 한게 내가 바둑에 입문한 연유랍니다.
바둑 이론도 모르고 했으니 천원에서 부터 시작하는 엉터리 바둑을 두었는데 지금 까지도 나는 바둑을 옳게 배운적도 없고 단 한번의 지도기도 받은적이 없으니 내 棋歷란에는 獨學 이나 獨習이라 해야 할것입니다.
한가지 미리 밝혀 둘것은 나랑 같이 바둑에 입문한 내 조카 두넘은 어째 박명 하였던지 두넘다 벌써 故人이 되었는데 이들의 棋力이 형은 한국기원1급이었고 아우는 아마 3단인지 4단이었다는 얘길 들은적이 있답니다.
그 둘이는 서로 이기기 위해서 책을 사다 혼자서만 보고 했다는 얘기도 들은적이 있었고요.
그후 사회생활 하면서 7급정도 수준의 바둑을 두었는데 바둑 기초도 모르고 어깨넘어로 보고 배운 엉터리 바둑수준 이었답니다.
아마 그 정도가 기초없는 바둑의 한계가 아닌가 합니다.
그후 독일을 오고 바둑을 둘 기회도 영영 사라지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그후 본에 나 보다 몇살 아래의 한국친구가 한사람 있었는데 가끔 집에 놀러오기도 했는데 이친구가 바둑을 두는데 3급정도의 수준이라고 하드군요. 그래서 그때만 해도 바둑판을 살수가 없어서 뒷셀도르프에 일본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곳의 한 일본가게에서 휴대용 바둑을 하나 살수 있었답니다.
아쉬운대로 그걸 가지고 둘수 밖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또 다른 한국사람으로부터 바둑책을 빌려 볼수가 있었는데(열권으로 된것) 소설 읽드시 쭉 읽어 버렸지요.
그 책을 두고서 읽고 싶었지만 남의 책이니 그럴수도 없고... 그래서 한국에 연락을 하니 마침 조카사위가 나를 만나기 위해서 독일엘 온다는 말을 듣고 그 바둑책 열권을 사오라고 했었답니다.
그랬는데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책인데 그 열권말고도 또 열권이 출판되었다며 스무권을 사가지고 온적이 있었지요.
작가들은 한국의 조훈현이 바둑입문 한권만 저술하고 다른 작가는 모두 일본기원출신의 유명한 9단들이 쓴것인데...
일본 기사를 선호한게 아니라 내가 아는건 그때 그것 뿐이었답니다.
그래서 시간이 나는대로 책을 읽어보기도 했는데 바둑을 둘 사람이 있어야 읽은것도 연습을 해 보겠는데 그럴수가 없으니...
그런데 마침 기회가 왔답니다.
3급 실력이 있다는 그 친구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보기엔 멀쩡한 사람이 2주일 이상을 입원하여 진찰을 받아야 한다나요...
그래서 면회도 할겸 내가 시간이 나는데로 병원에서 의사의 동의하에 바둑을 둘수가 있었 답니다.
원래 이 친구에게 3점을 깔면 내가 지는 수가 많고 4점을 깔면 비슷한 수준이었지요. 그런데 이 친구랑 두주일 동안에 거의 매일 몇판씩을 둘 기회가 있었는데 아니 이럴수가...
세판을 달아서 이기면 한점을 올리던가 내리던가 치수를 그렇게 맞추기로 하고 두었는데 91집 이상의 만방과 불계승은 두판으로 계산하고...
일주일도 안가서 맞바둑을 두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집에오면 시간 나는대로 이책 저책 책도 보면서 두었는데 심지어 백도 빼았고 어찌된 셈인지 이 친구의 바둑이 제 갈피를 못잡는것 같더군요. 가만히 생각하니 자꾸 무리한 바둑을 두게되니 그럴수 밖에요. 내 자신도 너무 욕심을 부려보고 해 보았지만 절대로 무리수는 통하지 않는다는것, 설사 실수를 했더라도 차선책을 찿다보면 또 기회가 온다는것, 바둑은 한가지 힘자랑만으로 통하지 않는 조화가 필요 하다는것등 많은걸 느낄수가 있었는데 정말 좋은 게임이로구나, 이래서 옜날부터 신선노름이라고 했구나, 도끼자루썪는줄 모른다더니 그랬구나 싶은 생각이 나고 인생살이의 어떤 교훈 비슷한걸 감지할것 같았답니다.
그래서 다음에 한국에 갔을때 다른것 다 재쳐놓고 두꺼운 바둑판과 돌을 한벌 갖고 왔답니다.
예의 그 친구는 퇴원하고 또 일년에 한판 둘까 말까 그러니...
지금 생각하면 그때 한달 정도만 이라도 더 두었다면 내 바둑 실력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았나 싶었는데 그 친구랑은 재 작년에 몇번 둔적이 있었는데 몇 판을 두면 맞 바둑 정도 되리라 싶더군요.
사오년 전에 한국의 천안에 있는 S 대학교의 B 교수가 일년간 독일에 온적이 있었답니다. 이 친구는 박사 학위를 본에서 했고 옛날 공부할때도 잘 알던 친구일 뿐더리 그 처도 내 아내가 근무하던 대학병원의 같은 근무처에서 일한적이 있는바라 남달리 가까운 사이였답니다.
나중에는 자기 처도 이곳에 오고해서 일년있다 돌아갔는데 처음 서너달을 혼자서 와 있었지요.
이 친구도 바둑이 3급이라 했는데 처음 두어달 동안은 거의 매일저녁 바둑을 많이 두었는데 내가 석정믈 놓고 시작 했는데 얼마 가지않아 맞바둑을 두다가 내가 백을 뺐고 서너점까지 치석을 올린적이 있었답니다.
그 친구의 처가 독일에 오는날 마지막 한판을 두고 돌아갈때까지 바둑을 둘 기회가 없었답니다.
옛날의 3급두던 그 젊은 친구는 지금도 본에서 살고 있으나 내가 어떤 연유로 거리를 두고 있고 또 식당을 하는 한 사람이 7급을 둔다기에 집에 놀러오라고 해서 두어 봤는데 바둑도 바둑이지만 친구할만한 사람이라야 재미가 있지... 바둑을 안두면 안두었지 아무하고야 둘수 없는게 바둑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옛날 친구들과 언제나 만나서 같이 바둑도 두고 할수있는 여러분은 얼마나 행복한지 잘 모를것 입니다.
나처럼 살아봐야 어떤지 알지... 그러니 열심히 동기회 사무실에 나가고 바둑도 많이 두시길 바랍니다.
바둑 급수가 6-7 급에서 턱걸이 하고있는 대감들도 책을 보시고 마음을 다스리는 연습을 하시면 실력이 향상한다는걸 확신합니다.
내 자신도 지금 바둑을 둘수가 없으니 처음몇판은 형편이 없답니다.
바둑은 두지 않으면 실력이 준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지난번 7급 둔다는 그사람이 왔을때 석점을 놓아주고 두엇는데 맞바둑 까지 내려 갔다가 다시 넉점까지 올려 놓은적이 있었답니다.
조금만 무리를 해도 당장 결과가 달라지고 그 감각을 찿으려면 또 한참 걸리는가 봅니다.
특히 우리 나이에 두뇌를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권장할만한 것이지요.
신체적으로 운동량이 부족하지 않으면 말이지요.
그러니 바둑만 두시지도 말고 등산도 적당히 하시고 사랑방에 글도 가끔 쓰시고 모든것이 적당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겠지요.
이상이 내가 바둑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나름대로의 재미를 혼자서 터득한게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언젠가 여러 대감들과 手談을 나눌때가 있기를 고대 합니다.
아울러 바둑회의 발전을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