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인용하는 성경 말씀이 오늘 본문 23절입니다. 즉,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입니다. 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믿음의 문제로 접근합니다. 믿음이 없어서, 믿음이 모자라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마가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이 산 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올라간 사이, 산 아래에 남은 제자들은 서기관과 논쟁을 벌입니다. 그 논쟁의 핵심적인 주제는 예수님과 세 제자가 산 위에 올라가 있는 동안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제자들을 찾아왔으나 제자들이 그 아들을 고치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산 위에서 산 아래로 돌아오자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호소합니다. 22절을 보면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말씀합니다. 아버지의 이 호소는 믿음의 말이기보다는 비아냥에 가까운 말입니다.
예수님은 아이 아버지를 꾸짖듯 대답하십니다. 23절을 보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나라 성경을 보면 “믿는 사람”이 주어입니다. 하지만 원어를 보면 “믿는 사람”이 주어 혹은 주체가 아닙니다. 곧 믿는 사람이 주체로서 “모든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모든 일”이 문장의 주어입니다. “모든 일”은 무생물 주어입니다. “모든 일”이 무엇인가를 능동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 문장은 주어가 숨은 수동태 문장입니다.
그러므로 23절의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를 “믿는 사람을 위해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다”로 번역하는 것이 원문에 맞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을 위해 모든 일을 일어나게 하는 그 숨은 주체는 누구입니까?
마가복음 9:1~8절을 보아야 합니다. 1절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2절을 보면 엿새 후에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고 산에 오릅니다. 4절을 보면 그곳에서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모세 및 엘리야와 함께 대화를 나눕니다. 7절을 보면 산 위에서 구름 속의 소리, 즉 하나님의 소리가 나서 예수님을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로 선언합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구름에서 나는 소리는 예수님의 말에 순종하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 일이 일어나는 그 시간에 산 아래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됩니다. 산 위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권능을 실행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 천명되지만, 땅에 있는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은 “권능”을 행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모든 일이 믿는 사람에게 일어난다”라고 말씀할 때, 이 수동태 문장의 숨은 주어가 누구입니까? 그 숨은 주어, 주체는 “예수님”이십니다. 마가복음 9:1~7절은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고, 그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인 예수가 실행하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권능으로 임하는 예수님에게 순종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은 마가복음 9:1~8절의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귀신은 한 아이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물며 제자들 역시도 귀신에 맞서 아무런 권능을 행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귀신에 사로잡힌 아이를 치유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이 귀신에 사로잡힌 아이를 치유할 100% 가능성은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 예수에게 권능으로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 9:23절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믿음”이란 예수님과 그의 권능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모든” 것을 하는 주체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28절을 보면 제자들이 묻습니다. 즉,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29절을 보면 “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원어를 보면 “기도와 금식”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무엇인가를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까? 마가복음 11:24절을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고 기도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구하는 기도 말고 기도하면서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겠다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실행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내가 아닙니다. 어떤 능력 있는 주의 종들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금식할 때 중요한 것은 “기도하면서 구하는” 마음,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 뜻은 내가 아닌 예수님만이 행하실 수 있다는,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나라의 권능을 실행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겸손함과 전적인 신뢰입니다.